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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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아주 어린 자살지망자이다. 겨우 여덟살. 이탈리아인이니 우리나라 셈으로 헤아려도 아홉에서 열살 남짓일 것이다. 테오의 13일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내 어릴 적도 생각하게 되었다. 입학식 날 할머니를 붙잡고 여쭈었던 말이, 할머니 수업 중에 방귀가 나오면 어떡해요? 였다. 그게 큰 고민거리였으니 테오와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기억 속의 나는 곤충채집에, 공기놀이, 고무줄 뛰기 등을 하고 놀았다. 그런 소소한 추억들이 나의 <여덟살>을 통째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긴 하다. 테오 역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잘 지내는데 한편으로는, 여덟살 소년치고 다소 무거운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홉살 인생』의 여민이 말처럼 인생은 아홉살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테오의 경우, 여덟살.) 환경이 여민이를 철든 어린이로 만들었듯이 테오의 가정환경은 아이를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인생에서는 승리가 중요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 그대로- 테오는 자신이 원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폴레옹을 만날 결심을 한다.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백전백승의 비결을 전수받기 위해서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을 화해시켜 화목한 가정을 얻고자 한다. 그 동안 배운 것과,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구체화하는 테오는 이탈리아 사람답게(?) 신화도 알고 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이승으로 데려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나폴레옹을 데려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장면에서는 그 발상이 깜찍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테오는 결국 대장군을 만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세어 보고 해답을 찾아나간다.

 

아이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모의 등 뒤로, 나폴레옹과의 상봉 계획을 세우는 테오의 모습이 교차될 때는 섬찟하기도 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배우자와의 불화로 복잡해진 머리에 어린이의 순수한 질문이 자리잡을 수 없었을 터. 아빠와 엄마의 사정도 이해하려는 테오의 예쁜 마음은 순수한 만큼 아프기도 했다. 목표 달성 직전, 자랄만치 자란 여덟살의 세계를 깨트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관심이었다. 아이의 질문을 지나치지 않은 어른의 한 마디였다.

 

어린아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나름대로 잘, 해석하는 테오를 보며 나는 과연 원하는 것을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내게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의 무심한 행동과 말들도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매일 새로운 전투를 치르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좁지만 순수하고, 꼬이지 않은 세계의 이야기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바람처럼, 그러한 존재인 나폴레옹을 느껴보라는 뜬구름 같은 말.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게 다짐케 한다. 게으른 일상에서 벗어나 많이 생각하고, 순간을 소중히 여겨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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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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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수수께끼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김전일이나 코난 같은 유명한 네버엔딩 탐정만화도 있고,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트릭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장르소설도 발달했지만 그 중에서도 일위는 단연 추리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본의 추리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녹스머신을 읽기 전 기대가 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소개를 보면 신본격파의 대표 작가라 쓰여 있다. 찾아보니, 신본격파는 새로운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뜻으로, 수수께끼와 해결에 초점을 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특히 노리즈키 린타로는 글의 논리적 귀결을 위해서 고뇌하기 때문에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책은 네가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스머신>, <들러리 클럽의 음모>, <바벨의 감옥>, <논리증발-녹스머신2>.

 

일단 <녹스머신>의 세계관을 보면, 시대는 2050년. 컴퓨터 문학제작 프로젝트인 <오토포에틱스>의 발달로 사람이 쓰는 이야기는 뒤로 밀려난지 오래이다. 주인공 유안 친루는 스물 일곱의 오버닥터로 20세기 탐정소설을 연구한다. 이미 빛바랜 연구분야가 된 문학수리해석(시나 소설에 사용되는 단어나 관용구 빈도를 분석하는 학문)엔 새로울 것도 없었다. 연구모델을 찾던 유안은 영국 작가인 로널드 녹스가 발표한 <녹스의 십계>라는 탐정소설 규칙을 발견한다.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제 5항,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된다.>였다. 유안 친루는 지적 탐정소설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을 법칙화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한다. 바로 십계의 각 항목을 수식화하여 10차원의 매트릭스를 구성한 <녹스장>을 만드는 것.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모델은 지적탐정소설이 60년을 주기로 유행함을 증명한다. 이 발견은 북경의 높으신 분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유안 친루는 그 곳으로 불려가 시간여행을 제의받는다. 이 작품은 마지막으로 수록된 <논리증발>과도 이어진다.

 

이야기 생성 방정식을 발표, <오토포에틱스>의 부흥을 가져와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마얀의 딸 프라티바가 <논리증발>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골플렉스사 전자책 사업부의 원전 관리 책임자다. 긴급사태라는 호출을 받고 회사를 가니, 양자화된 텍스트의 일부가 불탄다는 소식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과 같이 분서가 일어난 상황. 불길이 인 이유는, 양자화된 데이터의 정보에너지량이 증가하여 해당영역 일부에서 방출된 열량 때문이란다. 프라티바는 엘러리 퀸의 <숙명 시리즈>중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서 불길이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등장한 <녹스장>때문에 그녀는 이 사실을 해결해줄 유안을 찾아나선다.

 

두번째 이야기 <들러리클럽의 음모>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의문의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탐정의 조력자들이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 위협을 느껴 크리스티 여사를 납치하고 실종사건으로 꾸몄다는 내용이다.

 

세번째 이야기인 <바벨의 감옥의 주인공은 지구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이클로프스인에게 붙잡힌 지구인 요원이다. 그의 임무는 사이클로프스인의 지배를 받는 행성 갈라테이아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적의 마인드 리딩 공격에 대비하여 그의 인격은 둘로 나뉘었다. 그는 비상코드 323을 외는 그의 경상(거울에 비친 상)인격과 함께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신본격파라는 소개글대로, 작가가 고뇌하여 글을 쓴 것처럼 독자도 고뇌하면서 읽어야 한다. 비유해보자면, 긴장이 풀어진 상태인 내게 수학문제 풀이 과제가 생긴 상황. 풀어보려고 문제를 읽는데 파악이 안 되는 거다. 다시 한번 문제를 잘 읽어보니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힌트를 준다. 어떻게 풀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배운 적도 없는 유형과 내용인데 불구한데 말이다! 녹스장을 설명하는 10단계 매트릭스, 양자화된 텍스트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머릿속에 얼른 들어오지 않는 생소한 용어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넘어간다.

 

작가는 양자역학 같은 모르는 분야를 독자가 따라오게끔 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했을까. <녹스머신>이 가정하는 것처럼 컴퓨터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소설에서는 2040년이 전성기)가 그렇게 금방 도래할까? 상상해보니 눈 앞이 캄캄해진다. 컴퓨터가 인간에게서 문학성마저 앗아가버린다면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는 무기체와 유기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her』를 보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성이 등장하는데, 진짜 이런 시기가 오는 거 아닌가 싶다. 운영체제 사만다는 시로 노래가사도 짓고 심지어 주인공과 섹스도 한다. 영화의 배경은 2020년. 5년밖에 안 남았다. <녹스머신>의 시대는 25년이 남았다. 작품이 시사하는 바와 풀어가는 논리가 상당한 소설이었다.

 

<바벨의 감옥>은 이런 것이 트릭이라고 한 수 가르침을 준다. 텍스트의 구조를 가지고 독자와의 밀당을 하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감탄하게 했다. 일본어 세로쓰기에 맞춘 트릭을 가로쓰기인 한국어로 옮기면서 일부 내용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데... 정말 비범한 작가다. 원어로 읽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난 소감? 아마존 재팬에 남겼다는 독자의 말을 빌릴까 한다.

《굉장한 소설이다. 이 한마디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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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7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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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은 에밀 졸라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 제2제정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집안의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역사』의 13번째 이야기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말 그대로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의 이야기인데, <아델라이드 푸크>의 자손들의 일생을 5대에 걸쳐 서술하면서 프랑스 제 2제정의 민중사를 드러내고 있다.

 

총서의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졸라는 철저히 유전학과 가족의 계보를 투사하여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이야기인 즉슨, 인간의 기질과 같은 특성은 세대를 거듭하며 유전(자연적 역사)되는 것으로, 그 사람이 처한 환경(사회적 역사) 또한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루공-마카르 집안의 할머니인 아델라이드 푸크는 정신병을 앓고 있던 여성으로, 원예가였던 남편 루공과의 사이에서 피에르 루공을 낳는다. 남편의 사후, 밀수입자인 정부 마카르와의 사이에서 딸 위르쉴과 아들 앙투안을 얻는데 『목로주점』의 제르베즈는 바로 앙투안의 딸이다. 적법한 장자인 피에르 루공은 상류층, 시집간 위르쉴 무레는 중류층, 앙투안 마카르는 하류층의 생활을 대표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할머니의 정신병과 아버지의 기질은 각각의 자손에게 유전되고, 이는 극복할 수 없는 기질로서 자손들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게 된다.

 
가족 계보 그림의 출처: 클릭해서 보기 (사이트에서 이름을 클릭하면, 프랑스어로 쓰인 인물 소개를 볼 수 있다.)

 

 

목로주점의 줄거리를 간단히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르베즈는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술취한 어머니에게 수태되어, 절름발이로 태어났다.

2. 10대 시절 오입쟁이 랑티에의 아이 둘을 낳고, 함께 머물던 파리의 호텔에서 버림받는다.

3. 성실한 함석장이 쿠포와의 결혼은 제르베즈에게 안정감을 주고, 열심히 일하여 자기의 세탁소를 차리게 된다.

4. 가게를 보러 가는 날, 딸 나나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진다.

5. 쿠포는 다친 다리를 핑계로 일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러 다닌다.

6. 세탁소의 여사장이 된 제르베즈의 씀씀이는 점점 커지고, 그녀의 30살 생일잔치인 거위파티에서 흥청망청은 극에 달한다.

7. 파티에 나타난 옛 남자 랑티에 때문에 제르베즈는 두려워하지만, 랑티에는 남편 쿠포와 죽이 잘 맞아 친구가 된다.

8. 랑티에의 교활함은 쿠포 집안과 제르베즈의 세탁소와 세탁소가 위치한 구트도르 가를 지배하게 된다.

9. 제르베즈의 플라토닉 러버인 구제는 이를 걱정하며 함께 달아날 것을 청하지만 거절한다.

10. 결국 제르베즈는 랑티에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고, 나나는 엄마의 부정을 빛나는 눈으로 지켜본다.

11. 사실을 알게 된 구제는 제르베즈에게 차가워지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제르베즈는 자신을 놓아버리고 비극으로 치닫는다.

 

제르베즈의 비참한 말로는 예정되어 있고, 그녀의 세 아이들*(클로드, 에티엔, 나나) 또한 유전학과 환경의 법칙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제르베즈는 절름발이로 태어나는데, 이는 (졸라에 따르면)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다. 수태 기간 동안 알코올에 빠져 있는 어머니 덕분에 제르베즈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유전적 특성도 물려받는다. 제르베즈의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 두 남자- 첫 남자인 랑티에 역시 교활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며, 이후 남편이 되는 쿠포 역시 술꾼인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 받았다. 소설 내에서 쿠포 할멈 역시 부정이 여러 번 암시되며, 이는 딸 나나의 미래가 그리 순탄하지 못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목로주점을 읽으면서 줄곧 드는 생각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도무지 <절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이들에게 '절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에서 쿠포와 친구들이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쿠포 무리는 지나가는 로리외와 구제를 보고 술집으로 불러 들이는데, 이들은 분위기를 살피더니 핑계를 대고 가 버린다.(로리외는 소심하고, 구제는 하층민이지만 성실한 인물이다.) 이 장면 이후로 이어지는 술집 투어는 삼일이나 지속되며 돈이 없으면 외상을 내서라도 술을 마신다. 재밌는 점은 이 술판을 벌인 무리 속에 랑티에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돈을 내지 않는다.) 이 교활한 남자는 자기 절제가 뛰어난 편이라, 술에 취해도 티가 나지 않고 자신이 취한 것 같으면 어느샌가 술자리에서 사라지고 없다. 심지어 없어진 걸 들키지도 않는다.

 

랑티에의 캐릭터를 현대의 용어로 설명하자면,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 있겠다. 주위 사람들을 주물러 원하는 것을 얻는데 도가 트인 자로서, 쿠포를 살살 녹여 제르베즈의 세탁소에 들어와 이 가족을 수중에 넣는다.(제르베즈의 첫 남자였기 때문에 쿠포는 랑티에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제르베즈의 대외적인 남편 역할을 하면서 그녀의 몸까지 취하며, 나나의 교육에 간섭하고 세탁소의 주인 행세를 한다. 온갖 루머가 돌아다니는 구트 도르 가(세탁소가 위치한 거리)지만, 이상하리만큼 랑티에의 평판이 좋다. 반면 제르베즈의 평판은 바닥을 뚫고 맨틀까지 닿을 기세다. 쿠포 가가 몰락하면서 푸아송 부부에게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넘기게 되는 흑막에는 랑티에가 있고, 더 무서운 것은 푸아송네를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랑티에는 여전히 그 집에 살기로 한 것이다!

 

제르베즈의 몰락에는 이러한 랑티에의 음흉함과 교활함이 큰 역할을 했는데, 제르베즈의 '자기만족적인 기묘한 헌신'이 여기에 합쳐져 몰락에 빠르기를 더한다. 랑티에와 쿠포는 일하지는 않고 제르베즈의 등골을 빼 먹기만 하며 제르베즈는 빚을 내서 이 두 남성을 거둬 먹인다. 빚더미에 앉은 집이 흥청망청 외식을 하고, 빚을 내어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다. 제르베즈는 식도락에서 큰 만족을 얻는데, 이는 세탁소의 여주인이 되면서 생긴 '과시욕'과 합쳐져서 이를 보는 독자를 심란하게 한다.

 

쿠포, 랑티에, 제르베즈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 또한 이 몰락에 한 도움을 했다. 랑티에가 하숙생으로 들어오면서 제르베즈의 세탁물은 오갈 곳을 잃는데(세탁방이 랑티에의 방이 됨), 더러운 빨랫감은 집과 세탁소의 경계를 없애 버렸다. 이 장면은 나중에 쿠포의 토사물 때문에 제르베즈가 랑티에의 침대로 건너가는 장면에서도 중첩된다. 쿠포는 제르베즈의 부정을 짐작하면서도 모른 체 하며 랑티에를 통해 지적 허영심을 채웠고(아니면 그저 술 핑계를 댈 수 있는 좋은 친구?), 랑티에는 여자들을 농락하며 편히 살 수 있어 좋고, 제르베즈는 이 상황을 거부하려 했지만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고.

 

아무튼 이들에게는 <절제>가 없었다. 빚더미에 올랐으면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더 흥청망청 돈을 썼다. 제르베즈는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보려 했지만, 거듭되는 실패 때문인지 두 남편의 방종함에 물들고 만다. 그 와중에도 옆집의 랄리나 브뤼 영감에게 보여준 제르베즈의 관심이 여주인공의 비참한 죽음을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졸라는 이러한 하층민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유전학과 환경결정론을 통해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과학적인 이론이었고 각광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를 터무니 없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우리 생활에서도 종종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쟤는 아빠를 닮아서 술을 잘 마실거야>, <쟤는 제 엄마랑 식성이 꼭 닮았어>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처럼, 인생에 어떤 정해진 법칙이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타고난 기질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인생의 황금기 때에는 잠복하고 있다가 인생의 불행기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야말로 더 주목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반면 환경결정론은 어떻게 부인을 못 하겠다... 오히려 140여년 전 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에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한다. 반면, 환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도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나를 끌어들였던 흡입력만큼이나 커다란 허탈감이 남았다.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 한 자락 남기지 않고 담담하게 소설의 끝을 선언하는 졸라의 태도는 매정할 정도다. 하지만 다시 책을 집어 들어 19세기 파리의 한 거리를 들여다보게끔 하는 이야기의 힘이야 말로, 『목로주점』의 매력이 아닐까.

 


*『목로주점』에는 세 아이들만이 등장하지만, 계보 사진을 보면 둘째인 자크 랑티에가 있다. 『인간 짐승』의 주인공으로서 아마도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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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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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크세논 개스 채취를 원하시어 지구를 개발하셨도다. 여가 시간에는 심즈게임을 즐겨하시니, 심이란 인간을 이르는데 그분의 형상을 닮았더라. 인간들에 푹 빠지신 하느님은, 천국 주식 회사를 설립하시어 그들 가운데 천사를 뽑으시더라. 천사들은 인간을 돌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널리널리 퍼뜨렸도다.] 

 

하느님은 천국 주식 회사의 CEO로 본업은 따로 있고, 인간을 돌보심은 취미 생활 정도다. 매일 지지율을 보고받는 하느님. 미식 축구 리그와 골프에 푹 빠지시고, 좋아하던 밴드의 재결합을 위한 TF팀 결성을 지시하시는 하느님. 이 소설에 나오는 하느님은 기존의 인식과는 다른, 엉뚱한 분이다. 

 

이 분이 얼마나 자비롭냐면, 피를 보는 번제를 받지 않는게 천년이 넘었는데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리처드 도킨스가 신은 없다고 무신론을 외쳐도 봐주는 너그러움을 가진 분이다. 자신을 찬양하는 기독 채널에 푹 빠져 계시며, 수상소감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선수들을 예뻐하신다. 일은 언제 하냐고? 글쎄…  

 

한편, 기도 수취부의 계약직으로 일하던 일라이자는 17층 기적부 산하 종합 웰빙과 소속을 발령받는다. 정규직의 꿈을 이룬 것이다! 천사 배지를 가슴에 단 일라이자, 사수 크레이그의 멋진 기적들에 감탄을 하며 일에 매진하지만 모니터에 뜬 것은 대형 쓰나미 경고. 패닉이 되어 CEO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더니, 하느님이 하신 말씀. 거기 케첩 좀 주게나. 

 

크게 실망한 일라이자는 이렇게 하실거면 사업 접는게 낫지 않냐고 패기있게 외치고, 하느님은 콜! 하셨다. 그리하여 인류 멸망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일라이자와 그녀의 사수는 이를 막기 위해 CEO와 딜을 한다. 

 

작가가 SNL 출신이라 그런지 스케치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임무를 띤 찌질이들을 이어주는 장면들은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왜, 배우가 대사 한 번 하고 잠시 멈추면 웃음소리 나오는 어색한 상황들 있지 않은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미있다.

 

천국 주식 회사는 구글을 뛰어넘는 사내 환경과 복지를 자랑한다. 또 직장인들의 꿈, 월급 루팡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신체적 안전과에서 일하는 브라이언은 열흘 넘게 휴가 가고, 업무 시간에 사적인 일을 보는데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모든 일이 마무리 된 뒤, 엄청난 승진을 한다. 하지만 월급 루팡들만 있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리가 없으니... 이쯤에서 나올만한 질문. 심즈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이 무엇일까? 정답은 치트키를 써서 엄청난 부자가 되더라도, 직장에 꼬박꼬박 나가고 스킬창을 만렙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그러한 워커홀릭들이 바로 천국 주식 회사에도 존재한다. 아마겟돈을 불러 온 주범인 일라이자와 그의 사수 크레이그다. 

 

반면, 야망이 드글드글한 캐릭터 빈스도 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은 이 분의 작품이다. 기적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하느님의 법칙을 깬 빈스는, 엄청난 공(하느님 지지율 대폭 상승)을 인정받아 대천사가 된다. 

 

이렇듯 캐릭터들은 생동감 있지만 다소 뻔한 구석도 있다. 빈스와 크레이그의 오해가 풀린 후, 빈스의 향방이라거나 사교성(?)이 좋은 브라이언의 승진이라거나. 인도계 캐릭터인 라지의 말투도 실제 발음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다. ~하지, ~하지로 끝나는 말투는 번역가가 고심했으리라. 

 

실제로 있었던 일들과, 있음직한 캐릭터들의 활약은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우울했던 기분을 단번에 날려주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장점이다. 깊이가 없으면, 교훈이 없으면 어떠한가? 독자에게 주는 재미야말로 소설의 목적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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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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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노블마인 2014년 11월 17일 초판 1쇄

 

이 소설의 주된 화자인 틸데는 스웨덴의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해 영국으로 왔다. 그녀는 아들, 다니엘에게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긴 요약해서 들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틸데는 과연 미쳤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광인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틀란닝. 이 땅의 바깥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스웨덴어가 이를 설명해준다. 틸데는 모종의 사건으로 16살에 부모님을 떠나게 된다. 고향마을에서, 그리고 부모님에게 그녀는 우틀란닝이었다. 독일, 스위스를 거쳐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영국에서도 그녀는 우틀란닝이었다. 은퇴 후 돌아간 고국에서도, 그리고 남편에게도 그녀는 우틀란닝이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건 아들, 다니엘 뿐이었고 영국으로 찾아와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믿어 달라고. 내가 <왜>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달라고.

 

소설은 다니엘이 깨닫는 것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스웨덴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는 삶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유배지에 불과하고, 작은 지역사회일지라도 권위가 가지는 위력은 진실을 덮는다. 익숙한 것을 떨쳐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사건이 일단락된 후, 다니엘이 스웨덴으로 떠나기를 결심한 이유는 틸데의 이야기가 더 정교해지고 윤색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정을 통해 다니엘은 한층 더 성숙하게 되고 엄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원제는 『The Farm』인데, 한국어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이다. 얼음은 자연을 연상시킨다. 겨울이 와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 다니엘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자연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동시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 고립된 삶과 폐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얼어붙은 강 아래로 물은 계속 흐르듯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던 틸데의 상처는 봉합만 되었을 뿐 여전했다. 미아 문제를 해결한 후, 보다 중요한 틸데의 유년시절을 짚어나가면서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하고 역겨운 문장이 나온다. <꼬마 틸데는 아프다.> 결국 얼음 속에 갇힌 소녀는 미아, 틸데 그리고 무수히 존재할 잠재적 피해자들을 이른다. 때로는 소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곤경이 찾아와 내 지지기반인 가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가깝다는 이유로,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정말로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기를 잘 버텨내면 한결 나아진다. 진짜다.

 

소설을 읽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톱 롭 스미스가 장르 소설에서 과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사회고발적인 소재는 전작을 떠올리게 하지만 익숙한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의 불편함과 공포 역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거부당하는 상황의 미묘함들 역시 잘 잡아내었다. 다음은 틸데가 스웨덴에 도착해 농장으로 향하는 날의 날씨를 묘사하는 인상깊은 장면이다.

 

농장까지의 후미진 길을 따라 황량한 갈색 들판이 있는데, 겨울에 내린 눈은 녹아서 사라지고 없지만 표토는 단단한 데다 얼어서 삐죽삐죽하단다. 거기엔 어떤 생명의 징후도, 작물도, 트랙터도, 농부도 없어. 오직 정적뿐이지만 하늘을 흐르는 구름은 어마어마하게 빨라 마치 태양이 지평선에서 싱크대의 마개를 빼는 것처럼 뽑혀나가고 햇빛을 따라 구름도 싱크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빨리 움직이는 구름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질어질해지면서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어. 넘어올 것 같아서 크리스에게 밴을 멈춰달라고 했지. 64-65p

 

아름답고 강한 틸데와 섬세한 다니엘을 영화로도 볼 수 있다니 이 소설의 영상화 소식이 반갑다. 책을 덮었지만 찜찜한 기분이 남는 것은 얼음이 녹더라도 그 속에 갇힌 소녀들은 여전히 소녀일 거라는 것. 여전히 그 곳에 갇혀있을 것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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