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남자만을 위한 선물이다.
말은 여자에게 재앙이다.
기혼 여자는 삭발 후 가발을 써야 한다.(인모는 허영심을 갖게하니 꼭 인조가발로 써라.)
히틀러는 동화된 유대인들을 제거하고 정화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세상에 동화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파멸할 것이다.
대학살로 인한 유대인 인구를 회복하기 위해 출산에 주력하라.
조혼을 강요하며, 피임을 금지한다.
남편을 위해 몸을 정화하고, 월경혈을 매번 검사받아야 한다.
<시녀이야기>의 가상 국가 이야기냐고?
현대에도 버젓이 행해지는 유대인 하시딕 공동체에서 여자가 지켜야 할 것들이다.
그들은 주변과 동화되었기에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믿었다. 그래서 다시 주변과 섞인다면 신을 배신한 벌을 받을 것이란 믿음아래, 종교지도자의 말을 믿으며 똘똘 뭉쳐 살아간다.
여자들에겐? 엄격한 종교수업과 엄마가 되기 위한 수업, 순종적이며 말 잘 듣는 아내를 위한 수업들이 있을 뿐이다. 영어는 영혼을 타락시키며, 책은 여성에겐 필요없는 것이다.
이런 폐쇄적인 공동체가 뉴욕 한복판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 곳에서 태어난 데버라.
그의 아버지는 지능이 낮다. 돈으로 팔려 온 엄마는 동성애자임이 들켜 이 마을에서 쫓겨난다.
조부모의 집에서 성장한 데버라는 바로 이 브루클린 윌리암스 버그 하시딕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총명했으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중매로 17살에 결혼했고, 성교육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1년간 남편과 성생활을 하지 못한다. 더 최악인 것은 이 모든 것을 동네사람들이며 가족들이 화제로 삼고 떠들며 훈수를 둔다는 것, 이 일로 이혼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러다 19살에 아들을 낳는다. 이 곳에서 여자는 그저 성욕해방과 아이를 낳는 도구일뿐이다.
자신의 아들이 이 곳에서 자란다면, 결국 어린 시절부터 종교교육과 세뇌로 결국 남편처럼 될 거란 두려움에, 아이와 함께 그 곳을 도망쳐 나오게 된다.
책을 덮으면서도 정말? 지금 이 시대에 이게 말이 돼? 라지만 지금도 버젓이 여성들의 할례, 조혼, 염소에 팔려가는 걸 보면 수긍이 가면서도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열등감과 수치심을 심어주며, 결국 그 모든 것을 속죄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복종하며 더 많은 아이들을 낳는 거라니!!!
왜 언제나 종교적 신념과 지켜야 할 덕목들은 여자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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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을 쓴 작가 타라 또한 엄격한 몰몬교 집안에서 아동학대와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왜곡된 역사관과 지독한 남펴차별, 일부다처제, 대체의학, 비난과 극도의 공포속에서도 그 곳을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책과 배움이었다.
<완벽한 아이>의 모드 또한 공포와 망상에 찌든 부모사이에서 자란다. 성폭력을 당하는 딸을 외면했다. 아버지는 사악했고, 어머니는 공범자였다.
그 속에서 모드가 그나마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책과 글이었다. 모드를 사랑해준 강아지 린다와 늙은 말 아르튀르와 오리 피투....
인간은 더 없이 사악하고 세상은 더 없이 위험하다며 철책을 두르고 아내와 모드를 가둔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위험하고 사악한 존재였다.
이 책의 저자 데보라도 몰래 읽은 책들을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불합리함을 그리고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힘을 키웠다.
두렵고 억압받던 어린 시절, 온갖 종교적 규율로 남녀차별이 당연한 이 곳에서, 아이에게 자신의 지옥같던 유년시절을 답습하게 할 순없다 생각했다.
작가는 이 책을 쓰고나서 온갖 위협과 가족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여기며 그 정체성은 내가 가진 문화적 유산이다. 하지만 유대교로부터 어떠한 영적 자양분도 얻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아들에게 백지에서 시작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내 경험에 영향받기를 원치 않으며, 두려움이나 혼란 없이 세상을 탐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꿈꾸던 어린 시절을 아이가 누리고 있음에 감격한다. 설사 아이가 자라서 랍비나 탈무드 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더라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당장은 우리의 선택과 자립과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굴욕과 고통과 갈등의 시간을 넘어 작가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가장 본인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곤 남탓을 한다. 그러면 부모들은 단호하게 남탓하지 말라며 아이를 꾸짖는다. 그런데 과거의 세상은 참 편하게 굴러갔다. 주로 남자들은 여자탓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바가지 박박 긁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러면 혀가 짤리거나 양들의 침묵에서 살인마 한니발이 쓰던 고문도구같던 수다쟁이를 체벌하는 가면을 써야 했다. 물론 사이좋게 행복하게 잘 사는 가정들도 많았겠지만, 무난한 가정이 다수라고 해서 없었던 일처럼 퉁 치고 넘어갈 순 없는 일이다.
어릴 적 물건을 사러갔다가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재수없게 마수걸이로 여자가 걸렸다고.
나는 이미 물건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 날의 장사를 망치는 재수없는 여자일뿐이었다.
길게 누워있는 타인의 몸을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특히 여성은 더욱더 그렇다.
여성은 불경한 존재, 월경을 하는 더러운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라나.
금기 속에 갇히는 것은 여성이며, 금기밖의 자유는 남성의 몫이다.
왜일까.
그들의 눈에 여성은 도구일뿐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연장탓만 하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아이를 낳지 못해? 연장을 바꿔보자.
일이 잘 안 풀려? 연장을 바꿔보자.
과거의 여성들 삶을 읽어낼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그나마 지금은 나아져서 다행이야 아직 갈길은 멀지만....그런데?! 못 사는 나라, 혹은 아직은 미개한 나라에서 행해지는 거라 생각했다. 또는 이단이라 일컫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케이스라 생각했다. 미국 뉴욕 한복판의 정통 유대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금 현재? 이 책은 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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