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쓰지 않아도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평점 :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
애쓰고 노력했던 어린시절
그 빼앗긴 유년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친구 현주
미리가 맞이하는 <무급휴가>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느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근거없는 미움과 무시, 무리지어 약자를 괴롭히는 데는 이유가 없다.
친절 속에 숨은 폭력과 잔인함, 당하는 약자의 고통앞엔..
다 너를 위해서야 란 말.
그 시절이 정말 <호시절>이었을까.
애쓰지 않아도
누군가와 밥을 먹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그런 때가 있을까.
그런 시절, 그런 나이가 있을까.
애쓸수록 망가져 가는 관계, 어색해져가는 사이.
그런 관계와 그런 시절이 있다.
무엇이든 애쓸수록 힘들어지는 시절,
그 시절엔 그것이 사랑인줄 알았지만,
애쓰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잇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느까”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편하며, 애써야 하며, 늘상 내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하는 관계가 사랑이라 믿는다. 그래서 사랑은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까 생각한다.
정작 진짜 사랑앞에선 용기없이 되돌아서고, 이렇게 쉽게 느껴지는 게 사랑이 아닐거라 그 관계의 의미를 작게 작게 말아서 담장밖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곤 후회한다. 그것이 사랑이었고, 그것이 마음이었고, 그것이 진실이었음을......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조금 엉뚱하지만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첫 문장은 당신이랑 커다란 그네를 같이 타고 싶다.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의 요즘 취미란다.
아이들이 학교로 유치원으로 어린이집으로 모두 떠나고 나면,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는 텅 비어, 햇살만 가득한 한가로운 오전.
엄마는 챙이 넓은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그리곤 힐긋힐긋 주변을 살핀 후에,
몰래 그네에 엉덩이를 뒤미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흔들흔들..
멀리서 보면 그저 그네에 앉아있는 듯한 모습.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속도로 천천히 그네를 타신다.
양 팔로 그네줄을 잡고, 조용히 아주 조심스레 두 발을 떼고 천천히.
그네타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라는 말에, 조심해서 천천히 탄다하시면서 아이처럼 웃으신다.
무엇이 되고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 살았다. 아무도 물어봐주는 이조차 없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 자신의 속도로, 햇빛 속에서 천천히 발을 구르고 계신다.
그런 엄마와 마주보고 커다란 그네를 타며,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쾌하게 웃는 당신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나란히 앉아서 그네를 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빛으로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시간,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잇는 시간 말이야.
당신, 내가 그곳에서 잃어버린 당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처음 데비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거부감을 느낀 건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들과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 도취한 모습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게 감정을 강요하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내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너는 진짜였고 나는 그게 무서웠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네가 내 안에서 무언가 좋은 걸 본다면, 그건 오해일 뿐이고 넌네가 속았다는 걸 곧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떠날 거라고.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테고.
당신이랑 커다란 그네를 같이 타고 싶다. 그곳은 넓은 초원일지도,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닷가일지도모르지. 그곳이 어디든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햇볕따뜻할 거야. 우린 그네의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테고, 앞으로, 뒤로 조금씩 흔들리면서 서로를 보고 웃고 있을 거야.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있잖아. 그런데도 난 당신에게 말해. 고마워, 이렇게 나와 함께있어줘서 고마워.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