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읽는 심리 에세이, 작가 본인의 상처나 경험담을 통해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는 책이다. 아침에 하나의 에세이를 읽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가끔 밤이면 아무 페이지나 들춰 읽어도 위로가 된다.
언제나 정답게 건네는 따뜻한 말들이 담긴 책.
다정함이 필요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펼쳐보는 책이 된다. 가끔 내가 가진 아픔과 닮은 추억들이 소환될 때면 그 페이지에 표시를 하곤 한다. 작가님의 아픔 끝엔 해결책도 있고, 그냥 어쩌겠어, 그렇지만 네 탓도 아닌 걸 하는 혹은 나도 그랬다는 동감의 말들에 따뜻해진다.
살다보면 소나기를 맞을 때가 있다.
그러면 왜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냐며 칠칠맞다고 내 탓을 하는 이가 있다.
그와 반대로, 소나기가 내리고 젖어 버린 건, 소나기 탓이지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도 있다.
이 책은 후자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우산 하나로 막아지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젖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해가 발생했을 때는, 성숙하게 인정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것을 잘 모르면서 섣부르게 판단했음을, 당신이 괜찮은 척하는 동안, 우리가 애써 행복한 척하는 동안 멀어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어떤순간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 마음이 있다. 타인에게는 늘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생각의 여백이 있을 거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늘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을 것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한 차가운 의심을 애정 어린 친밀감으로 바꿀 수가 있다. 타인의 마음속에는 내가 결코 짐작할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있을 것임을 잊지 말자. 누군가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바로 내 각도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타인의 마음속 사각지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식이 싫어하는 것을 계속 강요하는 부모의 이기심이 투사의 비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다.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이게 다 널 사랑해서그런 거니까, 네가 무조건 참아!‘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욕망은 투사의 비극을 강화한다. 트라우마의 사슬을 끊는다는 것은 내 욕망을 투사하여 타인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나를 너무 닮았어, 저 사람은 나의 분신이야, 저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돼‘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끝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독립성을 인정해주고, 원하는것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착취하는 부모들, 내가 널 위해 이렇게 희생하는데‘ 라며 아이를괴롭히는 부모들은 사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깊은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치유하지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이렇게 타인에게 전염되거나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타이거맘‘은 아이를 스파르타식으로 키우는 것이 결국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 믿고그야말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무섭게 아이들을 몰아세우지만, 혹독한 훈육을 내면화한 아이들은 세상을 따스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잃어버린다. 안타깝게도 트라우마는 유전된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낫게 하는 자기치유력은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속에,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당신의 마음속에,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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