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는 없다 2 -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롤리타는 없다 2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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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없다2


러시아 미술관련 책에서부터 팬인 이진숙 작가님의 책과 그림,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 두번째이다

프리고나르의 그네 그림을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로 풀어나간다.


서포트하는 늙은 남자는 여인의 치마 끝에 젊은 남자가 있음을 알지 못한체, 어둠 속에서 열심히 그네를 밀고 있다. 젊은 남자는 여인을 다 차지한 듯 하지만, 정말일까.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는 듯 발을 뻗은 그녀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네처럼 흔들리며, 순결함과 열정의 중간 사이 분홍으로 물들고 있다. 모든 것을 아는 듯 큐피드는 비밀스레 침묵을 지키는 이 곳, 사랑은 게임일뿐. 그렇지만 사랑은 게임도 아니고 소유도 아님을 그림도 소설도 알고 있다. 흔들리듯 멈춘 곳엔 떨어진 신발 말고 무엇이 또 있을까.

 

가장 타락하고 욕망이 부끄럼없이 드러나던 그 시대, 그 도시의 남자들. 욕망과 타락 속에 뒹굴고 싶지만 두렵다. 매춘, 그리고 여권신장을 주장하는 강한 여인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여인들을 예전엔 마녀란 이름으로, 이젠 팜파탈이란 이름으로 가두고 옥죄려 한다. 그러면서 아직 어린 소녀들의 순수와 천진함 위에 멋대로 천박함을 덧씌운다. 어린 소녀의 유혹이라니.

그렇게 롤리타와 사진 속 앨리스, 발튀스 그림 속 소녀들이 만들어진다. 유혹하는 소녀라니, 변태같은 남자들의 면죄부처럼 만들어진 이미지일뿐이라고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와 자코메티의 우정,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경으로 쓰인 자코메티의 나무. 더 이상 뺄 것도 없이 뼈만 남은 자코메티의 남자는 의미를 상실한 황량한 삶 속으로 고독하게 걸어간다.

 

겨울의 나무는 봄을 기다린다. 검게 말라버린 외피 속으로 봄의 색들이 피어날 것임을 알게 해 주는 그림이 있다. 박수근의 나무그림들, 박수근의 나무들엔 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동독출신의 리히터 작가이야기는 영화로도 나와 있다. 어린 이모가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갇혀 강제로 불임수술등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첫 번째 아내의 아버지가 바로 이모가 갇혔던 병원의 의사임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2차대전을 겪으며 쏟아지는 폭탄들을 봤고, 독일군복을 입은 선량했던 삼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끌려간 이모, 그리고 남아서 동독의 이념에 부응하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 누가 선인지 누가 악인지 알 수 없는 의문들 속에, 그는 과거의 사진들을 흐릿하게 그려나간다. 마친 핀트가 나간 듯 흔들리는 사진처럼 그려진 그의 그림앞에선 희미한 기억과 흐릿한 선과 악이 모호한 피해자들의 모습이 흩어진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떠오른 작가가 한 명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는 아니지만, 지금 부산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유대계 러시아인 의사였던 아버지는 아파트 마룻바닥에서 1년간 숨어살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이름모를 흑백의 증명사진과 그 아래 놓은 주석상자. 어둡고 노란 빛의 전구와 기차소리가 들린다. 이름없는 작품이지만 추측할 수 있다.

유대인을 실어나르는 기차소리와 버려진 사진들과 유품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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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3 17:38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리히터 영화 보고 충격을!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 회화 콜라쥬 작품 속에 삶의 비극을 엿본 정신적 충격과 충돌의 겹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겨울의 나무는 봄을 기다린다. 검게 말라버린 외피 속으로 봄의 색들이 피어날 것임을 알게 해 주는 그림과 사진
미니님의 리뷰
넘 ㅎ 좋습니다

베를린에 잃어버린 기억과 흔적을 전시하는 지하 벙커(실제로 나치가 자신들 은닉처로 만들어 놓은)가 있습니다
그곳 그 장소에 발을 딯는 순간 열차의 굉응 소리 바퀴소리
짐작 같은 트럭이 달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벽에 귀를 대고 옆집 소리를 도청하는 것 같은 웅얼거니는 소음이 들리는 공간

시대와 공포 소음이 넘쳤던 시기를 지나
지금 우리 모두 겨울의 나무들 처럼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롤리타는 없지만

미니님 리뷰는 좋습니다 ^ㅅ^

mini74 2021-12-03 17:44   좋아요 7 | URL
저도 우연히 영화채널에서 리히터 영화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 아름답고 찬란했던 감수성 예민했던 이모가 끌려가던 모습. 떨어지는 폭탄들.ㅠㅠ 베를린에 그런 공간이 있군요. 스콧님 댓글도 넘 좋습니다 *^^*

미미 2021-12-03 17:4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리히터의 삼촌 사진에 눈길이 머무네요 삼촌에 대해 모르고,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사진을 본다면 그저 독일군이라 무섭다고 느낄것 같아요🤔

mini74 2021-12-03 17:46   좋아요 7 | URL
리히터와 볼탕스키. 대척점에 있는거 같지만 또 공통된 상처와 상실을 가지기도 했고. 리히터작품들 좋지요 *^^*

새파랑 2021-12-03 17: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림천재~!! 마지막 사진은 보기만 해도 왠지 슬프게 느껴지네요 ㅜㅜ 표지는 밝은데 책 내용은 어두운거 같아요~~

mini74 2021-12-03 17:51   좋아요 6 | URL
저기 새파랑님 그런 말 하시면 안돼요. 누가 볼까 무서워요 ㅎㅎㅎㅎ 새파랑님 그죠.순수하고 웃는 모습이라 더 슬픈거 같아요 ~

오늘도 맑음 2021-12-03 18: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유혹하는 소녀라니요~! 제 눈엔 병들어가는 소녀처럼 보이는데요~!! 참으로 흉흉합니다. 리히터의 이야기를 읽고 위장이 불편해졌습니다. 정말이지 저시대는 지옥 그자체인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mini74님, 제 마음 속 멋진 작가님이셔요~!! 늘 느끼지만 글이 제 피부로 잘 스밉니다~!!! 그림 리뷰때는 더 빛을 발하시는 것 같아요🥰

mini74 2021-12-03 18:04   좋아요 7 | URL
그죠 짠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소녀를 너무 선정적으로 찍어 더 불편하지요. 맑은님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

2021-12-03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12-03 18:28   좋아요 4 | URL
헉 손가락이 케이크 먹고싶었나봐요 ㅎㅎ 고맙습니다 고칠게요 ~ 전쟁 전 마지막 불꽃같던 시절이 아닐까싶기도 합니다 *^^*

페넬로페 2021-12-03 18: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합니다.
북플이 책뿐 아니라 음악, 미술로도 저를 일깨워주네요~~
미니님, 그림 천재 맞아요^^

mini74 2021-12-03 18:31   좋아요 6 | URL
앗 아니옵니다 페넬로페님. 리뷰 좋게 봐주셔서 넘 감사해요. 저도 페넬로페님께 많이 배운답니다 *^^*

그레이스 2021-12-03 1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책!
이진숙씨 책 좋아하는데 이책은 더 특별해요

mini74 2021-12-03 19:24   좋아요 4 | URL
저도 좋아해요 그래이스님 찌찌뽕 ㅎㅎ

오거서 2021-12-03 19:35   좋아요 4 | URL
아 안타까비…

서니데이 2021-12-03 19: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있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원하지 않는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것같아요. 개개인의 선량함과는 상관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일들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mini74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mini74 2021-12-03 19:24   좋아요 6 | URL
공감합니다 서니데이님 *^^*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밤 보내세요 ~

coolcat329 2021-12-04 0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히터 영화 저도 봐야겠어요.
박수근의 겨울나무 그림 찾아봐야겠네요. 봄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는 앙상한 나무가 이 책에서 제일 긍정적인 내용같아요.

mini74 2021-12-04 11:48   좋아요 3 | URL
리히터 영화 재미있었어요. 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

희선 2021-12-05 0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롤리타는 없다군요 어린아이를 저렇게 그려두다니...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힘들었겠네요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독일에도 예술가가 있었겠지요


희선

mini74 2021-12-05 13:04   좋아요 1 | URL
리히터 영화도 좋았답니다 희선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