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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 그래픽 노블
아메 데용 그림, 이수은 옮김, 윌리엄 골딩 원작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할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의외의 책을 만난다는 것이다. <파리 대왕>은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픽 노블을 발견하고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맘에 대출했다. 원서 제목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비행기가 폭발하면서 산호섬에 떨어진 아이들. 어른은 아무도 없고, 아이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랠프는 어른이 없는 세상이라며 즐거워했고, 구출될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뚱보라 불리는 아이를 만났고, 우연히 발견한 고둥을 불자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 같은 복장을 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합류하게 되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는 잭이었다. 어디든 사람들이 모이면 대표를 뽑아야하는 건지 그들은 투표로 대표를 정했고, 랠프가 대표가 되었다.잭은 굴욕감을 느꼈다. 랠프와 잭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잭의 무리에 속했지만 랠프와 의견이 맞았던 사이먼, 뚱보, 랠프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에 속했다.몸을 누일 곳을 짓고, 불을 피워서 구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반면, 잭은 돼지를 사냥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그곳에서 당장 살아남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야수를 봤다는 한 꼬마의 말에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형체도 없는 야수가 아니라 잭이 이끄는 무리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집단적 광기 같은 것에 의해 사이먼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의견과 달랐다는 이유로 뚱보도 목숨을 잃었다. 잭의 무리는 랠프를 돼지 몰듯 사냥하기에 이르는데. . . . .막상 그들을 구하러 온 어른이 그들에게 던진 말은 "뭘 하고 있었지? 전쟁놀이 같은 걸 했니?" 였다.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랠프는 살해당했을터였다. 그들은 너나 할 것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어린아이였다는걸까? 더 큰 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참혹함이 눈 앞에 그려졌다. 저 섬을 벗어난다고 해서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힘든 일이 눈 앞에 닥친다. 함께 힘을 모아서 그 위기를 극복한다.'가 당연할 것같은데, 무리에서는 꼭 힘을 잡고싶어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인가보다. 의견이 다른 이는 찍어 누르고, 아니 없애버리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과정이 이 책에서 고스란히 그려졌다. 어떻게 분열이 되고, 어떻게 상대를 무너뜨리려하는가?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로 흘러가는 과정이 참 오묘했다. 왜 저렇게 될 수 밖에 없는거지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똑 같은 상황에 처해도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고, 내가 어느 편에 설지는 그 상황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특성상 이미지로 만나게 되어서 더 강하게 소설의 내용이 각인되었다. 잔인한 장면, 소름끼치도록 충격적인 장면도 있었지만, 그래서 이 소설을 더 깊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글 소설로 다시 한 번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옮긴이 이수은의 옮긴이의 말에서 와닿는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본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 과연 함께 살자는 것인지, 같이 죽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일한 식량 공급원인 숲을 통째로 불태우면서까지 랠프를 추격하는 잭과 사냥단의 어리석음은 멸망을 재촉할 뿐이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압도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우리를 구원하러 극적인 타이밍에 도착할 리 없기 때문이다. -P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