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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의료 - 현장 의사에게 듣는 현대 의학의 자화상
셰이머스 오마호니 지음, 권호장 옮김 / 사월의책 / 2022년 6월
평점 :
최근 잘아는 지인이 그동안 도시에서 오래 살았으니, 이젠 나이가 들어서
자연을 벗하고 살고자 시골에 주택을 구입하여 이사할 것을 고려했다가, 자녀들이 극구 반대하여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녀들의 반대 이유는 노인이 되면 여러가지 병에 시달릴 수도 있고, 응급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가급적 병원이 가까운 도시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부모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이 말을
듣고는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또다른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한동안 마음이 가라 앉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껴야 할 자녀들의 권고가, 왜 이렇게 허탈한 쓴
웃음마저 짓게 하는 것일까?
당연히 의사의 말을 잘 듣고, 약을 잘 복용하고,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병을 예방하고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정말로 이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가?
세머스 오마흐니 박사는 자신의 경험과 방대한 의학, 과학, 인문학등의 인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지난 50 년간의 의료의 충격적이고도 어쩌면 서글픈 변화를 세심하게 기술하고있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현재의 의료는 이미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이 변화 했으며, 이제 의료는 더 이상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병 장수라는 불가능한 꿈을 미끼로, 올지도 않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질병 위험성을 과장하고, 죽음의 공포를 조장하여,
멀쩡한 사람에게 가지가지 새로운 이름의 질병을 낙인 찍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환자를 양산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온갖 새로운 검사를 받게 하고, 더 많은 수술을
받게 하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온갖 새로운 약을 더 오랫동안 복용케 하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하는 소위 “의료 산업 복합체” 이라는 기이한 형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의학연구는 지금 너무 병들어 그 자체가 환자가 되어 버렸으며.. 모든 과정마다 오류와 논리적 모순으로 얽혀있다. (p114)
의료는 아픈사람, 죽어가는 사람, 취약한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보건의료에 얼마만큼의돈을 쓸지는 필요에 근거해야지 감상주의에 근거해서는
안되며, 특별한 이해관계나 특정 환자의 로비에 근거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p170)
“의산 복합체는 우리에게 막대한 비용에 비해 빈약하고 미미한 위안 만을 주고있다. 의산복합체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생존과 지속적인 지배력이며….. 임상
진료는 방대한 산업으로 변해서 주로 퇴행성 질환과 노화에 관심을 두고 (종합검진, 질병인식개선, 질병 팔이, 예방적
처방을 통하여) 전체 인구집단을 환자로 몰아가고있다.” (p321)
물론 저자는 의학 발전 혹은 현대 의료가 수많은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구하였고,
과거라면 극심한 장애와 고통 속에 살아야 할 살아야 할 환자 생명을 구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항생제의 개발로 과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콜레라, 결핵 등 각종 감염 질환을 해결하였고, 심장 수술과 심장 혈관 스텐트
기법은 심장 질환자의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 시켰으며, 인공 관절 수술을 비롯한 각종 첨단 수술은 과거
같으면 평생을 불구로 고통 속에 지내야 할 사람들에게 다시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암은
이제 절반 이상이 완치가 되고, 과거 죽음과 동의어로 불리던 진행 암 마저도 완치되거나 삶이 연장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환자가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현대 의료는 이제 완전히 병든 의료가 되어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폭발적인 과잉 진단과 이에 따른 과잉 치료, 효과가 의심스러운 약을 기적의 신약으로 둔갑시키는 임상시험을 포함하여, 과거
같으면 당연하다고 판단해야 할 사소한 삶의 문제, (과잉행동장애, 우울증 등) 을 심각한 질병으로 둔갑시켜 멀쩡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약을 복용하게 만드는 삶의 의료화 (medicalization),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학 연구, 등을 꼽고있다. 당연히
현대 의료는 전폭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변형된 의료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에, 또 너무 많은 헛된 희망에 취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의료 개혁을 이루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고있다.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는 삶의 과정과 병존할 수 없다. 삶의
과정 자체는 개인과 환경 사이의 연속적인 상호 작용인데, 종종 손상과 질병을 가져오는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질병으로부터의 완전하고 지속적인 자유는 인간 복락을 위해 설계된 에덴 동산이라는 상상으로부터
나온 꿈에 불과하다. 질병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건강과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 (p309, 인용문)
저명한 법인류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수 블랙 박사는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기록한 또다른 책 “남아있는 모든 것” 에서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아니다” 라 고 말하고있다. 오히려
죽음이 두려워서 재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 블랙 박사 자신은 고통스러운 병의 치료는 받겠지만, 삶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 예를 들어 심장병을 예방하는 스타틴 복용
등, 소위 건강을 증진시키는 의료는 거부할 것이라고 말하며, 때가
되면 아무도 없이 혼자서 죽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책, “병든 의료”는
과거 우리가 알던, 혹은 지금도 충실하게 믿고있는, 하지만
이미 사망 해버린 과거 의료에 대한 웅장하고 품격 있는 추도사 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다른 의학 즉 “현대의학 사용 설명서” 일 수도 있다. 영리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왜 이약을 먹고있는 지, 혹은 왜 자신이300만원이나 드는 최고급 건강검진을 받고있는 지에 대하여, 혹은 의사가
왜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지에 대하여, 혹은 왜 의사가 걱정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뿐만 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50년간의 의학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반인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듯도 하다. 아마도 의료인이라고 할 지라도,
오랜 경험과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저자의 의견을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이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부지 불식 간에 이런 저런
환자가 되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검사와 치료라는 의료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삶을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기적과 해악을 자유자재로 동시에 행하는 현대 의료를 현명하게 이용하려면
꼭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책을 편안히 읽을 수 있도록 훌륭히 번역해 주신 역자와 편집자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