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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수기일 수도 있고, 수필일 수도 있다. 소설은 아니다. 필자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한마디로, '자발적 가난'이다.
그렇다. 스스로가 더 편한것, 더 가진것, 더 귀한것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취하여 살아가려 시도한 것이다. 사람이 뜸한 곳으로, 자연과 더 가까운 곳으로,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그래, 그 시도는 인정할만하다.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거슬러,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 거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2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글재주는 그닥 와닿지 않는다.
모르겠다. 외국인의 삶이여서 그럴 수도 있고, 현대가 아닌 예전 사람의 삶의 모습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무언가가, 읽는 내내 미소를 띠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애초부터 쭉 이렇게 살려는 마음이 아니라, 잠시동안 이렇게 살고 다른 이들에게 글로써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무튼 이러한 연유들로 인하여, 그의 선택을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살고 싶다거나 그의 삶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발적 가난을 미화하고 자신은 이렇게 살아도 잘산다는 투의 뻐김은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좀 더 현실적으로 무엇이 어려웠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역시 태생적인 한계인가. 애초부터 가난한 이가 아니었기에, 그냥 그런 것에 대해 거부감은 가지고 있어도 완전한 반대는 아닌 마음이었기에, 그렇게 보이기에, 그런가보다. 부를 누리는 사람 중에는 정말 자수성가해서 열심히 땀흘려 얻어낸 사람도 있고, 나누는 마음으로 섬길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좀 아니지.
'진정한 부(富)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나는 그것을 원한다.'는 말은 곧, '나는 가난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로 들린다. 지금 같아서는 뭇매맞을 일이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