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과 만남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새 책을 펼치면 표백한 것 같이 깨끗한 종이의 질감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채 마르지 않은 듯한 잉크 냄새에 홀려서 책에 빠져 들기도 한다. 새 것이라서 첫 만남부터 기분 좋은 느낌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중고 책은 그렇지 않다. 책 모서리 부분이 해지거나 변색된 흔적이 있거나 책에서 묵은 냄새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종종 책의 이곳저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여백에 남겨진 메모를 볼 때면 책 내용은 뒷전이 되기 일쑤다. 중고서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책은 어떠할까.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할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작은 행운을 기대하게 된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 같은 요행을 바라는 일이 될지언정 말이다.
며칠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 두 권을 구입했다. 그 중 하나는 플라톤의 저서로 천병희가 우리말로 옮긴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2012년에 출간되었다가 2017 년에 플라톤 전집을 구성하는 개정판이 나오면서 지금은 구판이 되었다. 중고 도서 상태가 ‘중’ 등급임에도 책을 구입하였다. 변색과 묵은내를 감내할 요량이 있었다. 그러나 배송된 책은 새 책 같이 깨끗한 상태여서 놀랍고도 어찌나 반갑던지!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이, 구입한 책에 군데군데 포스트잇 안표가 붙여져 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전 소유자가 책을 읽으면서 붙였을 안표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나한테 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귀찮아서 그랬을까, 그게 아니면…
책에서 안표가 붙은 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여 펼쳐 보았다. 앞부분을 읽지 않아서 그럴 테지만, 대화 도중에 끼어든 것처럼 내용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안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읽는다.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다니!)
중고 책의 떼어지지 않은 안표가 독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줄 같다. 그 줄을 붙잡은 행운으로 뜻밖의 유대감이 생긴다. 중고 책과 우연한 만남이 새 책을 구입한 것보다 더욱 정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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