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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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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미술전, 영화제, 만화축제 등은 사실 숱하게 많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런 예술들은 대중들 곁으로 다가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그런 반면에 왜 평소에는 건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일까.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이 아니라 어디에도 존재하는 것이 건축 아닌가. 매일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푸드스타일리스트처럼 밥을 장식하지 않듯, 그저 거주의 목적으로 매일 우리가 만나고 또 보는 건축들을 보노라면, 역시 건축은 실용이라는 가치가 우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표방되는 현대의 건축에서, 거주의 목적으로 지어지는 건축들에서 뚜렷한 개성을 찾는 것은 힘들다. 각 나라마다 조금씩 그 디자인과 분위기의 미묘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전의 건축들의 차이점 들과 비교해서 본다면 그것은 차이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안도 다다오 또한, 이런 면에서 이런 획일적인 건축술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가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지하든 아니든, 어디에서, 누군가는, 건축을 자신의 열정을 다바칠 예술로써 만나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음식의 표현이 곧 예술이 되 듯, 건축가인 그에게 건축의 구상과 설계는, 실용과 맞닿은 하나의 예술이었다. 건축가의 책이라 해서 나는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른다. 건축가가 하는 얘기니 분명 공간을 떠올리게끔 하는 이야기가 많을 테고, 그런 부분에서 다소 취약한 내게 그것은 또 한번 난감한 문제였다. 더욱이 이 책은 중간과 끝에 일정부분을 할애해서 그의 작품사진들을 포함시켰기에, 29가지로 나뉜 이야기들을 명확히 따라가기에는 조금 난해한 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한, 그가 상상하게끔 하는 건축의 이미지를 멋대로 상상하며 책을 읽어보려 했더니, 곧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이 책은 그의 여행에세이 이자, 예술에 관한 담론, 건축에 대한 상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무살 무렵, 이곳저곳을 때로는 어느 예술가를, 어느 작품을, 혹은 그저 그 지역을 만나기 위한 그의 여행은 차곡차곡 그의 내면에 쌓여, 그를 건축가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그가 본격적으로 건축가가 되기 전의 짧게 언급되는 그의 이력들도 흥미롭다)  

(여행에세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보통의 여행 에세이가 그 지역의 사람들과 여러 상념들과 감정에 주목한다면,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확실히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행이야기가 있다. 그렇다고 표현적인 부분에서 특별히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부분을 통해서, 건축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느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그의 건축에 충실하게 반영되고 있었다.  

그의 건축중에 오사카에 세운 교회의 설명을 읽으며, 사실 별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그런데 그것을 잠시 잊고, 다른 여행기를 읽고, 다른 건축을 그려보다, 만난 몇페이지에 걸린 그 교회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소문으로 듣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 사진부분에서 그의 작품들을 몇개 짚어보며, 나는 그 안도 다다오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의 글들은, 건축가의 열정에 맞추어 설명해야 옳겠지만, 그와 못지 않은 예술과 삶에 대한 고찰을 만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어느것이 우선이 되느냐 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다. 다있다. 다들어있다. 건축도, 예술도, 삶도. 그가, 그의 건축이, 지금까지의 위치에 자리잡기 위해서 그가 오로지 설계에만 전념한게 아니 듯(그의 여행기가 증명하듯) 그는 건축물은 당연하거니와, 다른 수많은 예술가, 예술작품 들을 만났고, 또 그만큼 자신의 건축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 테니깐. 실용적 목적, 현실적 제약이 결코 배제될 수 없는 건축의 (그는 이미 그런 과정을 건너뛰었지만) 창조에 있어, 그런 고찰이 없었다면 그만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건축에 대한, 건축을 통한, 건축을 넘는 그의 통찰에서 나는 예술적 열정과 집착을 보았다. 그의 예술의 대한 태도는 곧 삶의 대한 태도 였고, 방황은 있을지언정, 포기나 안일함은 없었다. 건축가를 있게한, 그리고 건축가가 생각하는 여행을 좇는동안 수많은 과정들을 생각했다. 완성된 건축보다 오히려 완성되기 전의 건축을 더 좋아하기도 하는 그 처럼, 나 또한 수많은 과정의 가치들과 거기에 덧씌워질 열정을 반문했다. 

총체적인, 예술을 향한, 삶을 향한 열정을 건축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이 책은, 안도 다다오의 팬, 건축 미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이들 외에 일반인들이 읽어도 충분히 무리가 없을만한 책이다.    

 

마치면서.. 책의 디자인에 관하여..

이 책의 디자인또한 매우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이는데, (처음엔 표지를 펼치면 포스터가 되는 줄 알았다) 그 노력과 가치는 책을 읽기전보다 책을 읽은 후에 더 뚜렸했다. 물론 책의 그 본래적 목적 (기존의 형식에 대한 익숙함과 가독성) 에는 다소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다. 모든 페이지의 글자는 사각프레임 안에 구성되어 있고, 때로는 글자색이 반사되어 읽는 자세를 조금씩 고쳐야 하기도 한다. 투덜투덜 읽고나니, 안도 다다오의 고백이 떠오른다. 좁은 집을 설계하고 건축한 후, 그 건물주에게는 미안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 자신이 의도한 것의 가치와 신념을 버리지 않는 태도. 아마 그런것이 이 책의 디자인에 녹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 보니.. 어느새 이 건축가에 좀 빠져들었긴 한가보다. 책의 디자인을 보편적으로 하여 단가를 조금이라도 낮추어 판매지수에 유리하게 하던지, 혹은 이렇게 컨셉츄얼하게 가던지 그것은 출판사의 판단이겠지만, 이런 시도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불편한 감도 있었지만, 큰편도 아니었고, 결국 스페셜한 디자인의 책으로 기억될 듯 하다. (다만 여기서 조금 더 과해진다면 그건 재고할만한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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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미술, 과학을 탐하다> 그저 순수하게 보이는 그림에는 얼마나 치밀한 과학이 들어있는가. 그 아주 쉬운 예가, 아직까지도 과학적으로 명확히 풀어내는 '중'인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황금분할, 원근법, 착시효과, (안료와 같은 재료의 변화로 인한 화법의 변화) 등..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막론하고 과학은 미술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그 반대도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다) 나아가 과학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한 미술읽기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판단되고, 각 목차가 세밀하게 나눠진점으로 미뤄 '깊게'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사진을 바꾼 사진들> 사진이, 사진기술이 바꾼 것들은 실로 어마어마 하겠지만, 과연 사진은 사진을 어떻게 바꿔갔을까? (적어도 이것은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관심사겠지만) 모든 미디어가 크로스오버 되는 시대에, 사진 또한 기존의 사진을 넘어서서 새로운 차원의 '사진'을 만들어내는데 열심히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혹은 상징적이든, 거기에는 많은 작가들의 고민을 통했으리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상상, 그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셔터를 누르는 20인의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화가의 집> 많은 사람들이 유명인이 살던 집에 관심을 갖는다. 단순한 호기심 이상으로 넘어가보면, 그것은 공간이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예외의 경우도 있겠지만 공간이 주는 많은 요인들은, 그 속의 사람을 규정짓기도, 혹은 사람에 의해 집이 규정되기도 하니깐 말이다. 더욱이 빛 하나, 풀 하나에도 미적 영감을 찾곤했던 화가들의 집안과 집밖의 모습은 화가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깊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이미 이 시대의 아이콘중 하나로 떠오른 진중권이 펼치는 서양 미술사는 어떨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곳을 비틀어버려서, 모두가 함구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그가 이야기하는 모더니즘은 왠지 '무삭제판'같은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  단순 서양미술사의 전공을 넘어, 미학을 필두로 현대 대중문화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그가 펼칠 서양미술사(모더니즘)은 왠지 좀 더 특별할 것만 같다.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 그래픽 노블이라 하면, 마블이나 DC 만 겨우 아는 정도인데, 이건 또 무슨 발견인가 싶다.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작가인 듯 한데, 몇페이지를 보니, 데생과 채색 모두 한편의 그림과 같다. 스토리 텔링 또한 수준급이라 한다. 상상력만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세계가 아닌, 실제적인 니카라과 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기에, 다양한 독자들이 만나봐도 괜찮을 것 같은 작품이다.

   

 

아래는, 개인적으론 선호하지만, 조금은 모호해서, 아무래도 개인적 관심으로 남겨둬야할 책같은. 

 

<진회숙의 스토리클래식> 음악이 없는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면 이것은, 듣는 것이 배제된 것을 염두해둔 음악관련 도서인 것. 우선 책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솔깃하다. 결국 현재의 대중음악을 재외한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들의 안과, 밖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는 것. 창작자를 드러낼 수 있는 요소가 무엇보다 강렬하지만, 또 무엇보다 짧은 음악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파헤칠지 궁금하다. 낯익은 작품들이 갖는 당위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음악의 부재가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예술서적 한두권 출간한 출판사도 아니니, 충분히 음악없이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럴것이라 생각한다.   

 

 <사진가의 가방1> 의외로 가방의 내용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물며 들고있는 가방의 브랜드 가치로도 사람이 평가되는 세상인데) 활동시에 무엇을 챙겨가느냐는, 곧 그 사람이 무엇을 사용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준비하느냐 의 문제가 되겠는데, 특히 고가의 장비, 어디서 간편하게 구할 수 없는 장비를 다루는 사진가들의 가방은 곧 그 사진작가의 스타일을 결정한다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렌즈를 비롯한 많은것들) 겉으로는 사진장비나, 사진가에 귀속되는 것 같지만, 책의 설명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그것들 보다는 사진가들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가 되리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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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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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사람은 쉬이 실증을 낼 때가 있다. 전쟁같은 일터도, 평화로운 가정도, 어쨌든 사람은 반복을 반기지 않는다. 분업화된 자동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이들이 일을 오래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중에 하나일 것이다. 모든 일이든 반복되면서 점차 기쁨, 슬픔 혹은 흥분의 감정을 잃고 맹물같은 맛을 내는 것이다. 헌데 맹물? 이미 맛을 표현하는 것 아닌가? '아무 맛도 없다' 는 표현은 으레 맛이 사라진게 아니라 맛이 좋지 않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무 맛도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자연이 주는 설명하지 못하는 향과 맛, 그것을 아무리 실패한 조리법이라도해도 맛을 뿅- 하고선 블랙홀에다 던져버릴 수는 없다. 단맛, 매운맛, 짠맛, 쓴맛 등의 강한 자극이 없다면 모를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다보면 맛을 음미하지 못한다. 맛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네 일상이 이와 크게 다름없다. <여름휴가>의 인물들은, 그런 일상에서 가치 부여하기를 보여준다.

 

대학시절에 어느 수업이 있었다. 그것이 '가치'에 대한 수업은 아니었지만, 토론안에 일종의 '가치'를 포함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즈음에 <콘트라베이스>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내용들이 잊혀졌지만, 분명 나는 그 당시에 <콘트라베이스>라는 책에서, 그 악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연주되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는 그 존재자체로도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의 형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나, 어떤 음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연주될 수 있고, 그에 걸맞는 음색을 울려퍼지게 할 수 있는 가능성 만으로도 이미 가치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소리내야만 하는 악기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악기의 가치가 끌어올려지는 순간은, 우수한 연주자가 그 콘트라베이스를 걸출하게 연주하는 순간일 수 밖에 없다.그런 맥락을 통해 나는 일련의 그 토론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토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말하지 못한 생각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은 한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7)

 

유키는 성인임에도 여전히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런 유키의 남편인 마모루는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우리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그냥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암묵적인 강요나, 친근함의 표현이 아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일종의 모방행동이다. 어쩌면, 무언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때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라도 한것마냥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나른한 일상의 가정. 특허사무실에서 일하는 유키는 그의 직업정신에 맞게 새롭고, 이로운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그녀에게 새롭지 않거나 쓸모있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마모루는 물건의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일을 한다. 온갖 새로운 것들이 개발되는 시대에, 사용설명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익숙한 낡은 물건을 비슷한 새것으로 바꾸는 것에 익숙한 많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특별하거나 가치있는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그것들은 으레 지루하게 짝이없게 생겨먹었다. 하지만 사용설명서의 그 권위적인 외향을 들여다보면, 새로운것을 배우기 위해 기초가 되는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모루는 물건을 더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하는 셈이다. 

 

쇠로 된 물체를 자화(자성을 띄게 하는 일)시킬 수 있는 기계를 갖게 된 마모루는 집안에 있는 쇠로된 물건들을 모두 자화시켜보려는 시도를 한다. 자신의 집에 있는 쇠뭉치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유키의 친구 마이코의 남편인 요시다는 어느날 불현듯 가출한다. 그를 걱정하던 마이코는 결국 요시다를 찾는 (다는 빌미로) 여행을 떠난다. 선발로 떠난 마이코와 유키는, 예고없이 돌아온 요시다와 마모루가 후발대로 도착했을 땐 요시다와 같은 메모를 남기고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있다. 결국 그녀들을 만나지 못한 마모루와 요시다는 어쩔수 없이 평화로운 온천여행을 즐기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왠지 미심쩍다. 그리고 먼저 돌아와있는 유키와 마이코는 요시다에게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제안한다. 피할 수 없는 승부, 힌트라면, '마모루'는 일본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인것과 동시에, '지킨다'는 뜻도 있다는 사실 정도?

 

 

너무 덤덤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우리가 선뜻 강하게 인지하진 못하지만, 이 <여름휴가>의 캐릭터들, 다소 황당스러운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유키는 결혼 전, 마모루와의 교제 중에 같은 직장에서 다른 남성에게 구애를 받고는, 자신의 엄마에게 그 둘의 사진을 보여주며 선택해 달라고 하질 않나, 마모루는, 유키와 마이코가 결혼시기에 대한 약속을 한것으로 판단, 누가 먼저 이혼하면 같은 시기에 이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마이코와 요시다의 이혼 가능성은, 마모루 에게도 (나름의)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셈이다.

 

'세계 삼대 미덕 중 하나, 사이좋게 지내기' (126)

 

마모루는 담배 몇개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약속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있을정도로,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약속을 지키는데 성실하다. 요시다는 남들이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한, 고장난 카메라 분해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그 방면에 뛰어난 일가견을 갖는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했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마모루와 요시다에게, 오붓한 온천여행 중, 평소라면 지나쳤을 노천온천에 발가벗고 첨벙 뛰어드는 행동은, 섬세하고 사려깊은 마음(달빛)으로 인해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풍경)이 얼마든지 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 자신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래서 그런 그들에게 유키와 마이코는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황당하고 기괴한 목적의, 비디오 게임 승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정성에 가득 찬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은 아주 유쾌하다. (139)

 

마모루와 요시다가 그 제안을 그저 가벼운 장난으로 여겼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그런 엉뚱한 제안에 유키와 마이코가 부여한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조금은 다른 전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둔 가치를 인정하는것도 꽤 중요한 셈이듯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적절한 기준점이 있어야 겠지만 말이다.)

 

"가출이라든가 여행같은 걸로 뭔가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돌아왔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192)

 

어쨌든, 요시다에게, 카메라 분해를 위해 가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아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실은 미리 알았지만 전하지 못한것이지만) 여름휴가는 그렇게 끝이났다. 그리고 마이코와 요시다 부부를 이혼의 위기에서 구함과 동시에 '마모루'또한 자신의 가정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다. 나아가 그 '여름휴가'로 인해 자신이 제대로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유키의 엄마에게 '장모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 머릿속에만 있던, 한 존재에 대한 가치는, 말해짐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또 다른 발견을 하게 해주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여름휴가>는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체 또한 특별할 것 없이 평이하다. 그냥 술술 읽혀진다. (오죽하면 책 늦게읽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가 몇시간만에 다 읽었을정도이다) 일상의 언어, 그리고 간혹 그 사이에서의 통찰들이, 시냇물에 던져진 돌맹이가 일으키는 물수제비같은 떨림을 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작은(헌데 사실 작지 않은) 파문은 그들이 일상에서 쉽게 간과했던 것들에 가치를 이야기한다. 어떤 강렬한 의도가 독자를 향해 달라드는 것은 아니니, 그저 산들바람 처럼 잔잔하게 생각하게끔 해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 보여준, '같이' 있음에 대한 '가치'는, 나를 둘러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새삼 떠올리게 해준다.

 

'어떤 것에 깃드는 가치란, 개인이 각자 알아서 발견해내면 되는 것이다.' (193)

 

가치는 형태를 띄지 않은 채로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을 어떤 틀에 맞추냐에 따라 그것은 그 모양만큼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것에 어떤가치를 부여해서 어느 대접을 하느냐에 따라 그 '어느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일상의 가치들을 찾아내다보면 우리가 간과하는 옆사람의 가치를 새삼 깨닫지 않을까. 그렇지만 가치를 '올바르게' 부여하는 것이 쉬운일도 아니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허투루 가치를 매겨봤자 허망하게 잊혀질 뿐이다. 진심을 다해 가치를 부여해도, 휘발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유키와 마모루, 마이코와 요시다는 언제 또 그 해 여름의 가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그러면 또, 찾아나가는 것이다. 가치를.

 

일상적인 것들에 하나하나 가치를 부여해서, 흥미로운 일상을 만드는 과정의 그들을 보며, 우리가 미쳐 가치를 부여할 생각조차 않는 것들에 대해 잔잔한 생각들을 해본다. 사물, 사람, 그것들과 '같이' 있는, 같이 있던 시간에 대한 '가치'. 결과적으로, 가치의 존재는 자명하니, 가치란 존재여부재의 문제가 아닌, 인지여부의 문제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의 나른하고 방탕하고 건조한 하루와 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 갑자기 새 가치를 부여하기란 힘들 것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자체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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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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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 사실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음을 먼저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옛 것 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어떤 고리타분한 느낌이랄까. 서양미술사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언제부턴가 그림을 판단하는 척도로 인식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누런 종이에 그려진, 색의 화려함보다는 농담의 깊이와 여백, 우리가 많은 사극들과 역사 유적지에서 봤을 전혀 화려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일상사, 그리고 풍경들. 하지만 그 그림들 한장 한장 속에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간결한 그림속에는, 우리가 관심갖고 들여다보고, 알수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나처럼 서양미술사의 화려한 모습에 더 시선을 주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그것이 옛 것 이라는 표현보다 더 고리타분하고 막힌 생각이라는 것을. 

 이 책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진 우리조상들의 옛그림들이 실려있다. 어떤 것은 많이 보기도 한 비슷한 풍경이되, 어떤것은 생소한 그림도 있다. 풍경을 고즈넉하게 그린 그림들이 있는가 하면, 일상의 한 부분을 절묘하게 담아낸 그림도 있고, 동물들의 모습도, 사색의 모습이 담겨진 그림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한발 더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저자가 그림을 바라보며 이야기해주는 따뜻하고, 때로는 따끔한 시선이다. 이리 여러편의 그림 관련 저서를 내기도 했던 저자 손철주의 글맛이 없었다면 독자가 이 그림들을 이렇게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정도로 말이다. 한편의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물들의 한자에서 그림의 의도를 읽기도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와닿는 것은 한편의 그림에서 길어올리는 옛 사람들의 사고와 풍습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한편의 그림에서 놀랍도록 많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 이야기또한 어떠한가, 마치 구수한 옛 이야기처럼 이제는 잊혀져간 아름다운 많은 표현들에서 마치 그 시대의 느낌을 오롯이 전하려고 노력했던 저자의 노력과 애정이 느껴진다. 책이 만약 조금 바랜 종이였다면, 진정 옛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림과 글, 어느것이 좋은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저자의 글은 그림을 밝혀주고, 그림은 글을 밝혀준다. 서로 혼연일체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읽는 내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혹여, 옛 생각이란 제목에서, 옛 것만을 찾을 것이란 생각또한 무지하디 무지한 우려였다. 조상들의 옛 생각에서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있는지를 잠시 망각하게 해준다. 시대와 모습이 변해도 자연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보고, 출세에 집착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무척이나 행복함을 느끼게끔 해주는 책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저자가 바라보는 옛 시대의 지식과 혜안, 그리고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행복하고 따스한, (때로는 따끔한) 질책들이 가슴에 물들었던 시간들 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사는 모습, 생각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깐. 아니 오히려, 옛 것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다시 고쳐 생각하게끔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달빛 아래서 시를 읇고 싶게끔 해주는 책이다. 정말 하루에 한장씩 담아, 두고두고 생각하고 싶게끔 해주는 책이다. 누가 고르든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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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으레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미술사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광받는 양식이 있었고,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단어들은 그에 맞는 대표적인 예시의 그림들이 있고, 그것들의 그룹그림들을 몇장 보다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곳에서, 여러가지 이론엔 대입되며 사용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그 늬앙스가 풍기는 어떤 기묘한 느낌보다도 더 규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그림들을 보아도 뭔지는 대충 알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제대로 알았다는 확신이 들지않는것, 그것이 나에겐 '그로테스크' 였다. 보통의 미술사적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미술사의 흐름과 화가, 나아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학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중세부터 시작해 그로테스크의 어원을 따라 간다.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어느 시대에 탄생해서 훌쩍 규정되어 진 것이 아니다. 시간을 지나고, 여러 학자들과 화가들의 머리와 손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모하고,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조금씩 다른 의미도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이 책이 비교적 잘 읽히고 명료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어느 누군가가 한 시대에서, 규정한 의미를 이후로, 혹은 그 당대의 비슷한 이들마저도 끊임없이 '조금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그로테스크란 것이 어느 한 분야, 한 시대에 귀속되어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종교, 그 시대의 인식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시각적 그로테스크'(미술) 뿐만 아니라 '상상적 그로테스크'(문학) 으로 화두가 이어지기 때문에, 단지 그림의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조금 생경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문장들이 매우 명료하고, 근거와 주석또한 매우 충실해서 연구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그로테스크를 정리할 수 있겠다 싶으면 또 조금 다른 그로테스크가 등장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처음의 궁금증들이 여전히 남아있는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끊임없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담론들을 읽었고, 그것들은 축적되었다.  

현실을 아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을 껴안고 있는 것. 현실에서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거기에 안주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에 더 흉폭하고 잔혹한 행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세계에 대해 결합하고, 분쇄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기괴함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309) 

어쩌면 그것들은, 우리 스스로를 아주 깊숙이 들여다본, 희곡과 같은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어깨에 힘을줄 필요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한 단어가 탄생하고 만들어진 먼길을 읽었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 막연하게 받은 느낌에 이제는 '그로테스크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듯 하다." (314,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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