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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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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원작의 영화들은 가능하다면 영화->소설의 순으로 접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기가 쉽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게 어느쪽에도 '더 만족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영화를 못 본 상태임에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만으로 이 책을 기대했다. 애석하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같은 상황이고, 그것이 무척 아쉽다. 물론 아쉬움의 크기만큼 이 책이 맘에 든다는 뜻이다.


 처음엔 읽기가 좀 버거웠다. 작품 초반에는 신변잡기와 묘사와, 인용 등이 다소 복잡하게 뒤섞이며 이야기가 좀 처럼 시원하게 전개되진 않는다. 문제는 문장을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하지 않거나 문장 과 문장의 연결을 쉬이 넘기면 헷갈리게끔 대화, 생각, 인용문이 문장부호로 잘 나눠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또는 그 표시 방법이,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변화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다만, 이것이 책에 오류가 있단 뜻은 아니고, 작가가 내세운 화자이며 주인공인 작가 캐릭터가 세상과 타인을 묘사하는 '의도된'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자랑은 결코 아니지만) 책을 잘 읽지 않고 있는 내게는 더욱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느정도를 꾸역꾸역 헷갈려하며,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더러 반복하다보니 이 작품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차, 신형철 평론가의 소개글이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강연을 들으러 가는 여성 (화자)으로 부터 시작한다. 강연의 내용은 전 지구적인, 인류와 기후에 관련한 디스토피아 적인 내용이다. 또한 더불어 얼마안가 성별 갈등에 관해서도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라 하며 말한다.


(치매가 있는 듯한 노인과 며칠 간 마주 칠 때마다 스몰토크를 했다가 어느날 더위로 인해 다소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날 전혀 다른 사람처럼 '위협적으로' 치근덕대던 노인에게서 도망쳤던 여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여자가 절대 갖지 않았고 절대 갖지 않으려 했던 희망이 딱 하나 있었다. 만약 삼십 년이나 지난 후에도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단 한 사람,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내가 기다려왔던 신비를 가져다줄 강한 남자를 찾지 못한다면, 세상에 가득한 괴짜나 약골이나 애정에 굶주린 사람이 아닌 진정한 남자를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남자는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새로운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일은, 당분간은, 서로를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일 뿐이다. 거기서 더 나올 것은 없으니, 분쟁과 혼란, 모든 관계에 내재한 어긋남에서 각자 빠져나올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여자와 남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상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다른 어떤 것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래야만 한다. 강력하고 신비롭고 진정한 위대함을 지닌 어떤 것. 다시금 서로 기꺼이 따를 수 있을 어떤 것.


 어쩌면 언젠가는. 하지만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자전적인 글에서 이렇게 쓴 것이 거의 반세기 전인데, 그 이후 남자와 여자는 더욱 벌어지기만 했다.

p79




이 얼마나 영리하게 젠더갈등에 대해 말하고, 방안을 제시하는가. 일단 우리가 다시 새로운 화합을 할 방법을 찾을 때 까지 일단 '친절' 하라. 이렇게 거시적인 담론을 거쳐, 그 속의 한 개인으로 향함에 있어 거침없으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움이 뭍어난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조심스런' 물음과 관심이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한.




하지만 나중에 내가 깨달은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자기들끼리도, 다른 어른들은 물론 친밀한 사람들하고도 전혀 옛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입힌 일이라면 특히 더 그랬다. 누가 그런 일을 떠올리고 싶을까? 그런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을까? 오직 작가들이나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겠지.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untold' 은 그런 면에서 좋은 단어이다. 물론 이야기하거나 서술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또한 너무 버거워서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 고통.

p115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p122




앞서 말했듯 초반엔 주로 신변잡기나, 인용을 통해 마치 타인의 생각을 대신 전달하듯 묘사하다가 점차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살펴보고, 고민하고 드러낸다. 책을 보고 있을때는 그저 어렴풋하게 느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작중 화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과 그에 따른 심경 변화에 따라 묘사하는 대상과 시점이 변화하는 것이 꽤 적절했던 듯 느껴진다. 좀 더 기민하게 읽었다면 이 점진적인 변화가 꽤 흥미로운 지점이 되었을 것이다.

인류의 존망에 관한 강연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차 한 인간의 존망이 걸린 이야기로 흘러가는 이 작품. 즉 인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 했지만 결국은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오히려 이런 한 인간과 인간이 함께하는 모습을 통해 인류가 나아갈 길에 질문을 던진다.




내게 필요한 건 나와 함께 있어줄 사람이야. 친구가 말한다. 물론 혼자 있는 걸 원하기는 해. 결국 내게 익숙하고, 또 늘 열망했던 게 그거니까. 말기 환자라고 그게 달라지지는 않아. 하지만 완전히 혼자서 있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새로운 시도이고, 그게 정말 어떤 일일지 어떻게 알겠어. 뭐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해? 전부 다 잘못되면 어떡하겠어? 옆방에 누군가 있을 필요가 있는거지

p129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p167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살아가든 그리고 삶을 위해서든 아니든 누군가가 필요하다. 설혹 바로 옆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삶 또는 죽음에, 그러니깐 그것을 다 포괄한 인생에 있어 타인의 필요와 그에 따른 적절한 거리를 생각해 본 적이 다들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거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혼자 있기 원하지만 모든 걸 혼자 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거리, 옆 방 만큼의 거리.




그런데 실은 신이 거기서 더 나아간 거라면. 서로 다른 언어가 단지 서로 다른 종족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지문처럼, 개별 인간들에게도 주어진 거라면. 그런 다음, 인간의 삶에 훨씬 더한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여 인간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민족이 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있지만, 한 민족 내에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전 애인에 따르면 이것으로 인간 고통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농담이라고 여기겠지만, 그저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그러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언어를 지녔으므로 그 뜻이 저 자신에게는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도? 미소를 띠며, 떠보듯이, 기대하면서, 내가 물었다. 우리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그저 미소만 보였다. 하지만 몇 년 후, 쓰라린 헤어짐의 순간에 쓰리란 대답이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그렇지.

p219-220


애도하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독자들이 소설로 이끌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기로 떨리는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덥히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베냐민은 말했다.

나도 애를 썼다. 단어를 차례로 놓았다. 그 모든 단어가 다른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다른 삶이 그렇듯 친구의 삶도 다른 식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애를 썼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ㅡ

실패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p252




타인의 고통이 내가 겪지 않을 것이 아니라, 나도 겪을 수 있다 생각하고, 누군가의 절규에 문을 열고 건너가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무의미하거나, 손해일 수 도 있다.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이타적인 이들을 통해 세상은 서로를 견디게 한다.




네영카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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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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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인터뷰 하여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컨텐츠를 보고 분석하고 사람들, 그 중에서도 유해컨텐츠를 분류하고 조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다루기에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신들이 보았던 유해 컨텐츠를 묘사하듯, 주인공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끔 시각적이고 일상적인 비유를 무척 자주 섞어가며 설명합니다. 나아가 주인공의 회상들은 마치 우리가 주인공을 촬영한 컨텐츠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이런 유해컨텐츠를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들은 얼마나 자극적이고 잔인한 컨텐츠를 봤는지, 트라우마는 없는지 등등 일것이라는 것이 뻔합니다. 저 또한 그런 호기심이 가장 앞섰고, 이 책의 주인공인 케일리 또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실제인지 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부분을 묘사한 부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딱히 등장인물들이 그것으로 인해 무척 강한 트라우마에 괴로워했다는 느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진 않습니다.

즉 유해 컨텐츠의 몇몇 사례가 묘사되지만 그것보다 중심이 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영향받는 그 감수자들의 모습과 변화 입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영향은 예상보다 격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트라우마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모습보다는, 일상에 조금씩 낯선변화가 생겨나거나 혹은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들이 변화해버린 모습을 그려내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 우리가 시청하는 컨텐츠가 우리의 삶에 조금씩 긍정 또는 부정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보통 경계하게되는 종류의 유해컨텐츠 -폭력적이건 잔인하거나 성적인 것- 를 통해 우리가 자극적인 것에 중독되는 것 만큼이나, 우리가 편협하고 아집만 남아있는 바보가 되는 것이 무서운 일이 될 것 이라는 것.

어쩌면 현재의 이 갈등의 시대는 정말 무서운 것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네영카 를 통해 책을 지원받아 가이드 없이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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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물의길 : 아트북 아바타 3
타라 베넷 지음, 이솔 옮김 / 아트앤아트피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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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물의길 아트북의 첫 인상은 무척 고급지다. 두꺼운 양장커버에, 그 사이즈를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그 자체로도 왠지 아바타의 한 조각을 가진 느낌이다. 내용은 어떤가하면, 영화 [아바타 물의길] 에 관한 미학적 자료와 그 성취를 향한 여정의 기록이다.


아트북 이라는 그 이름답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아바타:물의길]의 미술자료와 설정들을 방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 미술적 자료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적절한 종이를 사용했음이 짐작된다. 이 미술적 자료들은 단순히 디자인 뿐만 아니라 세계관, 캐릭터, 의상, 장신구, 장비 등 아바타에 등장하는 모든 미술적인 것들을 총 망라한다. 영화에서는 이야기에 쫓아가며 바빴기에 지나쳤던 많은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정말 제임스카메론과, 그의 스태프들이 이뤄낸 성취는 단순히 영화에만 그치는게 아닌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이 아트북은 아바타:물의길 의 미학적인 요소의 시각적 전시뿐만 아니라 그 발전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서문에서 로드리게즈 감독이 밝힌 이책에 대한 정의 -시각적 로드맵- 는 책장을 얼마 채 넘기지 않았을때에 이미 완전히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정말로 아바타:물의길 에 대해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수많은 그림들로 구성되어있다. 단순히 아바타:물의길에 관한 시각적 자료였더라도 이 책은 굉장했겠지만, 이 아트북은 아바타의 이런 미학적 성취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왔는지를 제임스카메론의 발자취 뿐만 아니라 여러 팀의 노력의 과정이 텍스트로 담겨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미술적으로 감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다시 미학적인 자료들을 보며 더욱 감탄하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물론 전문 인터뷰집은 아니겠지만) 그 이야기를 많은 컨셉디자인과 설정자료들과 잘 분표시켜서 [아바타:물의길] 에 대한 미학적 자료를 원하는 독자 뿐만 아니라 그 발전과정을 흥미로워할 모든 독자들까지 만족시킬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디테일하게 소개된 디벨럽 과정들이 시각적인 자료들 못지않게 정말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일련의 미학적인 발전과정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아바타:물의길 에 대한 컨셉과 설정 자료들을 다양하게 담고 있어서 아바타:물의길 이라는 영화의 미학적 발전 과정뿐만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의 세계관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까지 만족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미술자료에 감탄하고, 그 과정과 치밀하고 깊은 고찰에 대해 책장을 넘겨도 넘겨도 끊임없이 감탄을 자아내는 이 책 아바타 물의길 아트북 은 판도라 행성에 대한, 나비족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거대한 아바타:물의길 세계에 대한 가장 미학적인 안내서 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단점이라는 가격인데.. 이 책을 사기전까지는 그럴지 모르나, 이 책을 사고난 후에는 돈에 대한 미련은 안남지 않을까.



이 리뷰는 #네영카 를 통해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 받았으며, 가이드 없이 주관적으로 리뷰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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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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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기 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다시 봤습니다. 어쩌면 감독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들과 배우, 그리고 산업에 대한 애정과 때로는 냉철한 시선이 거침없이 녹아든 영화는, 보통의 상업영화에서 기대하는 서사의 재미보다는 캐릭터와 그 배경, 그리고 영화와 배우라는 것 자체를 흥미롭게 곱씹으며 따라가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헐리우드의 고전영화들이나 감독들은 꿰뚫고 있진 않아서 한귀로 듣고 흘린 부분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 할리우드, 배우, 감독 그리고 (자신의 감독한 것을 포함한?) 영화에 대한 타란티노 자신의 시선을 릭과 클리프를 통해 따라가는 재미는 쏠쏠했죠. 그렇지만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 비하면 한물 간 배우로 취급받던 릭과 그의 스턴트맨인 클리프에 대해 실제로 드러난 것은 많진 않았습니다. 어떤 인물이냐는 알 수 있었어도 뭘 어떻게 했던 인물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 책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 는 그 아쉬운? 부분을 잘 채워줍니다.

처음엔 그저 영화를 소설의 형태로 바꾸고 약간 수정정도 한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영화에 비교해 훨씬 더 풍부하게 캐릭터를 묘사하며 마치 NG 컷이나, 영화에선 다 못담은 장면들을 확장판으로 보여주듯 이야기를 훨씬 더 확장되게 보여줍니다. 사실상 영화의 스토리를 베이스로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릭(디카프리오)이 에이젼시와 이야기 하는 것은 장소, 분위기, 디테일은 완전 새롭게 쓰여진 수준이고, 거기에 비서에게 작업거는 클리프(브래드 피트)까지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소설처럼 시나리오 써놓고 영화는 여러 제약에 의해 다르게 찍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볼 정도입니다. 물론 아니겠지만요. 소설을 보니 그런 생각까지 든 단 말이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또한 소설에서는 더 확장되고 다릅니다. 

영화 장면, 캐릭터의 디테일이 소설에서 더욱 풍성한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타란티노의 문체를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어딘지 모르게 그의 스타일이 묻어 납니다. 헐리우드의 영화나, 그 당시 (혹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브랜드들을 언급하고 (물론 가상의 브랜드들도 있지요) 거리낌없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는 시원하게 못 보는 것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타란티노 스타일이 소설에도 영락없이 보인다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세상엔 수많은 소설이 있기에 이것을 타란티노의 것이다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 그것을 소설로 본다는 것은 충분히 그렇게 타란티노만의 화끈한 영화스타일-소설스타일로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영화도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영화들은 사실 안본 작품들이 더 많기에 초반에는 그런 부분에서 읽는 속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거침없는 묘사나, 흥미로운 디테일들을 통해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단점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릭 달튼 이나 브래드 피트의 클리프를 볼 수 없다는 것 뿐 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역으로 소설이 가진 디테일한 묘사와 무한한 확장성을 통해 독자에게,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추측정도 했던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죠. 그래서 단점은 역설적이게도 장점으로 승화됩니다. 이 타란티노의 첫 소설 <원스어폰어타임인헐리우드>은 영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 찰진 묘사와 풍부한 디테일을 쌓아 놓는, 소설만의 고유한 매력을 지닌 영화의 확장 그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네영카 서평단을 통해 감상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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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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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행하지 않은 살인, 아슬아슬하게 피한 살육,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파괴적 증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한번은 들어봄직한 학교괴담. 만년 2등에 머무르는 학생이 1등을 살해한 이야기. 이것이 그렇게 보편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야기의 단순성 때문일까? 그 2등을 했던 학생의 감정에 대하여 우리가 최소한의 수긍을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회가 발달할 수록, 모두가 다 원하는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기 싶다. 인간이 희소한 것에 가치를 두는지, 우연찮게 가치를 둔것이 희소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2등을 하는 학생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1등을 하는 학생 때문일까. 둘 다 라고 생각되어진다. 한 사람의 삶이 바뀌는데에 타인의 존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깐. 우린 결국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하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그 영향을 준 타자에 대한 대응이 없어질 순 없다. 만약 그것이 마찰과 파괴라면, 우리는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으레 거기서 멈추며 살아간다. 하지만 증오의 감정이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라면, 영향이 컸다면, 혹은 그렇게 느꼈다면...? 자신의 삶이 지녀온 그림자의 발단은 타인에게서 찾은 존재,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행하는 복수, 추리, 그 심리의 묘사가 바로 이 <편집된 죽음>의 이야기다.

 

사교능력이 좋진 않았지만, 절친한 친구 둘과 뜻을 모아 문학잡지를 펴냈던 에드워드는 재정적 어려움을 니콜라에게 의존함으로 인해 니콜라의 글을 싣게 되며 절친했던 친구 둘을 잃는다. 또한 니콜라를 위한 잡지가 되어가며 결국 발간은 중지된다. 애초부터 잡지에 대한 권한을 쥐고싶던 니콜라는 당연히 에드워드가 기댈 곳이 되지 못했고, 에드워드는 지하묘지에서 만나게 된 야스미나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했지만, 얼마 후 그녀는 죽음을 맞는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자책과 절망으로 어긋나 살아온 30년의 세월, 하지만 콩쿠르 수상이 확정된 니콜라의 소설이 그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이제 남은 니콜라의 삶을 편집할 것이다. 그 죽음 까지도.

 

그동안의 세월을 보상받기 위한, 에드워드의 복수는 유년시절에서부터, 그 현재까지의 심리, 그리고 책의 제작과정을 이용한 범행으로 '비블리오 미스테리'에 대한 놀라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현대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이전 책의 제작과정을 잘 모르는 이에게, 책을 활용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를 끌지만, 그것보다 더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열등감과 배신감, 복수와 열등의식, 그리고 그럼에도 차분히 범행의 장치를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에드워드의 심리에 대한 것일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정말 한 사람에 의서 좌우되는 것일까? 삶에, 편집의 개념을 대입해본다면, 우리가 주어진 삶이 어떻게 편집 되는가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기만한 것일까? 에드워드는 문학잡지에서 니콜라의 글을 편집함으로써 니콜라가 니콜라가 아닌 것으로 편집 하였다. 그리고 니콜라는 야스미나를 사지로 내몰면서 에드워드의 삶을 편집한 것에 다름없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일, 이것은 분명 편집의 개념과도 멀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책임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수긍의 여부는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사랑의 편집, 감정의 편집, 결국, 삶의 중요한,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한 편집. 하나의, 한명의, 삶은 어쩌면 수많은 편집자를 거쳐 앞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가장 큰 권한을 갖고 있지만, 때론 누군가에 의해서 방향이 바뀌기도 하듯 말이다. 잘 아는 분야긴 하지만 일단 책의 마케팅을 예로 들기만 해봐도, 출간된 책의 판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지, 그 방향으로 안내한 이에게 책임을 돌릴지, 아니면 그 방향으로 진행시킨 이에게 돌릴지 판단은 제각각이 될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모는 것은 쉽다. 누가 그 삶을 대신 살아줄 순 없으니깐.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리 삶의 편집자는 바로 우리 각자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삶의 가장 큰 특성중에 하나일,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 각자의 생을 책임지지만, 그 사실이 그 주변을 지나쳤던 타인들의 면책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모두 책임질 필요가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코 누구의, 혹은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적어도 문명사회에 이르러서는) 삶의 책임은 결코 거울속에 비친 존재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방향을 침범한, 그런 무례한 외부의 편집자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혹은 적어도 자신만을 탓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스스로를 강하게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덕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만약 그런 괴로움이 자신의 하루를 더디게 한다면, 조금은 그 짊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벼울지도 모르니깐.

 

어쩌다보니 에드워드를 옹호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살인을 어떻게든 옹호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 책임에 대한 '실행'이 없다고 해도, 그 원래의 몫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것처럼, 우리는 거기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 개인의 탓으로 여길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우선시되야 할 것은 '구분'이진 않을까.

 

한 사람의, 한번의 삶은 그 자신이라는 책임편집자와 더불어 사는동안 만나는 수많은 편집자들과 함께 한다. 에드워드와 니콜라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편집해왔다. 그것이 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재미와 동시에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만나고 헤어지는 타인의 존재를 얼마만큼, 어떻게 인식할지에 따라 삶은 매 순간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 에드워드의 인식이 달랐다면 이야기도 분명 달랐을 테니깐.

 

자신에 대한 인식, 자존감, 나 자신의 삶에는 어떤 수많은 편집자들이 거쳐갔을까. 진심으로 고마운 이도, 미웠던 이의 이름도 하나씩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편집자로 기록되어 있을까 하는 물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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