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지만, 인디영화계 또한 아주 우수한 영화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개봉환경에서 열세에 놓인 영화들이지만, 메이저 흥행배우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결코 뒤지지 않는 연출과 촬영, 연기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가피하게 상업성이 개연된 영화들보다 좀 더 깊은 고민과 진정성이 담겨있는 점이 장점일 것입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균일하게 표현된 영화들은 사실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은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개봉중인 <두만강>과 <굿바이, 평양> 그리고 이전에 개봉됐던 <어떤나라>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남한의 시선이 아닌, 각각 재중동포감독, 재일동포감독, 그리고 영미권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시선과 시각, 그에 따른 다른 표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두만강>
감독 : 장률 / 배우 : 추이젠, 윤란, 최건, 이경림, 지안 쿠이
<영화소개>
희망도 절망도 소리 없이 얼어가는 곳, 두만강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변의 한 마을. 할아버지와 누이와 함께 사는 열 두 살 창호는 식량을 구하려고 강을 넘나드는 또래의 북한 소년 정진과 우연히 친구가 된다. 처음엔 축구시합 출전을 대가로 시작된 거래였지만 어느새 의리가 생긴 것. 하지만 탈북자들을 도와주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그들의 문제로 골치를 썩자, 소년들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창호는 누이 순희가 탈북 청년에게 겁탈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 나머지 정진을 매몰차게 내친다. 그럼에도 정진은 창호와 했던 아랫마을 아이들과의 축구시합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서 마을에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상업영화계보다는, 해외영화제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장률 감독의 여섯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재중동포로서, 국가를 넘어 공간이 주는 정체성과 인간의 무력함, 관계의 무미건조함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해온 감독은 이번에 '두만강'을 소재로 두만강 인근에 사는 조선족들과 탈북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덤덤하게 그려냅니다. 사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일반관객들이 호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두만강>은 리얼리즘의 정서에 입각한 영화이면서도 극영화의 맥락을 놓치지 않아, 일반관객들도 충분히 부담갖지 않고 볼 수 있을만큼 잘 만들어졌습니다. 얼어붙은 두만강보다 차가운 현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그들의 우정과 약속이 있습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유쾌하게 웃어볼수도 있고, 어떤 절망앞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도합니다.. 특히, 벙어리인 윤란(순희 역)과 최건(창호 역) 연기는 보는이의 감정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을만큼 자연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선(善)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살아갈 뿐이며,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어느 특정지역에 구분되어지지 않는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어디에라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탈북자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길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조건없는 약속을 이야기 하고, 어른들의 세계에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경계와 이념을 초월한 우정은, 북한 수뇌부의 괴씸한 도발들로 인해 쉽게 망각되어 버리는 우리네 '사람'에 관한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률 감독의 예술적 자아에 그저 경의를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두만강>은 2010년 가장 푸대접받은 걸작이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고 절실하게 바라게 되는 영화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 나도 그렇다. 완벽히 동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굿바이, 평양>
감독 : 양영희 / 출연 : 양선화, 양건화, 양영희
<영화소개>
양영희 감독은 전작 [디어 평양]을 통해 북한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이번에는 1970년대 초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오빠의 딸 ‘선화’를 등장시킨다. 선화의 모습을 통해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이민 세대는 물론이고, 처음부터 북에서 자란 이민 후세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선화의 성장 과정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지만, 북한이라는 사회 속에 담겨 있는 특별함이 은근하게 묻어난다. 또한, 북한 사회의 이민 세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북한을 단순히 폐쇄적인 사회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지구상의 한 지역이 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양영희 감독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 ‘북한’이라는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름에 평범함의 일상을 부여한다.
<디어 평앙>을 연출한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버린 남한보다는 북한이 나을것 이란 아버지의 판단아래, 양영희 감독의 오빠들은 모두 북한으로 향합니다. 이후 그들은 영영 북한을 떠날 수 없게 되고, 그런 오빠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그들의 부모님과 양영희 감독 자신은 함께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혹 그러지 못할때는 여러가지 생필품을 지원합니다. 이런 방문의 여정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영화는, 6.25 이후의 이민세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내려오는 그 후세대의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소박하고, 현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때론 이 영화가 때로는 홈비디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족소장용이지, 애초부터 영화화를 목적으로 한 영상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이 먼저 극적으로 흘러가서, 곧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 진 것이겠죠.) 물론 그것들이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들의 화질보다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전문적인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어 극적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간단한 카메라로 그 순간을 하나 꾸밈없이 들여다본 날것의 시선은, 극영화나 자본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에서는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순수한 이야기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굿바이, 평양>은 선화라는 아이의 성장사를 통해서 평범한 북한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때부터 혁명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선화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개탄을 금할 수 없기도 하지만, 아직 이념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이념을 대입해서, 미리 그들을 이분법 하고, 동정(同情) 해버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합니다. 또한 선화의 성장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화목하면서도 벅찬 생활을 보면 때로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런 여건속에서도 그들 나름의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고선, 그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보다 낮다고 어찌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두가지 국가를 함께 가져야만 했던 감독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양영희 감독은, 국가라는 개념이 한정하는 요구와 정체성을 벗어나, 그저 같은 핏줄로써, 모든 정체성의 고민이 녹아버리는 가족을 통해서 북한이 아닌, 우리 한국사람이 사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특별한 가족임에도 말이죠.
표면적으로, 위트있고 쓸쓸한 "아- 정전입니다. 영광스러운 정전입니다" 라는 선화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 적응하며, 때묻지 않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나라>
감독 : 대니얼 고든 / 출연 : 박현순, 김송연
<영화소개>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결코 알 수 없었던 모든 것 평양 소녀 현순와 송연이의 지상 최대의 쇼! 뉴스에서 본 북한은 잊어라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 매스게임에 참여하게 된 여중생 13살 현순이와 11살 송연이는 김정일 장군님께 자랑스런 모습을 선보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에 임한다. 카메라는 연습이 시작된 겨울부터 공연이 있는 9월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오로지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겨내는 모습과 더불어, 때론 가끔 연습을 몰래 빼먹기도 하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겹기만 한 여느 십대 소녀들과 같은 모습을 지닌 평양소녀 현순이와 송연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게 된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한 번도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평양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일상생활이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그 동안 교과서와 뉴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북한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북한의 집단체조를 통해서, 북한의 체제를 유지케했던 근원을 살펴보고, 그로인한 북한주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북한의 체제와 북한 수뇌부의 도발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여러 경축일날 행사중의 하나인 집단체조는 주인공인 현순이와 송연이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것은 휴전이후로 뿌리깊게 전해져 온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한 경배이기도 한 셈이니깐요. 이것은 서방국에 대한 적대감과 그 맥락을 함께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6.25 전쟁 때 우리 남한에게는 당연히 득이 되었을 미군의 폭격이, 북한군뿐만 아니라 많은 북한주민들까지도 희생시켰고, 그로인해 시작된 미국에 대한 반감 (정확히는 수뇌부가 그것을 체제유지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게 된)은 지금까지도 북한주민들의 의식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전쟁에는 이기고 지는게 없으니깐요. (이부분은 길게 다뤄지진 않습니다.)
어쨌든 중요한것은, 북한의 그런 집단체조를 비롯한 여러 집단행동이, 개인에게 강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 맹목적인 (지도층에 대한) 추종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분석과 동시에 영화는 평범하면서도, 조금 특별한 두 소녀들을 통해 어떤 이념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자신이 노력하는 일에 조금 더 인정받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저 자신에게 최대의 영광이 그 집단체조인원 선발에서 뽑히고, 지도자에게 보여지는 것이 다인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연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굿바이, 평양>과 같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띔으로써, 두 소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도 꾸밈없이 드러납니다. <굿바이, 평양>과 다른 점이라면, 북한 사회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굿바이, 평양>이 개인적인 기록과 개인적인 감정이 중심이라면, <어떤나라>는 좀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중산층의 가정과, 소녀들의 꿈,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가죠.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 생각진 않지만) 북한의 집단체조는 가히 예술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순수 개인의 예술적 욕구와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체제결속의 수단으로써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애석한 점일테지요. 그럼에도 거기서 좌절도 하고, 행복도 느끼는 현순이와 송연이를 보면, 여러생각이 들게됩니다.
**************************************************************************************************************
<두만강>, <굿바이, 평양>, <어떤나라>는 모두, 우리와 같은 평범한 북한, 혹은 조선족의 이야기들로 그려집니다. 평범하단 이야기는, 우리만큼의 생활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북한하면 떠올리는 '기아'와 '아사'가 전면으로 부각되지는 않는단 얘기죠. 그래서 이 영화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강요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 영화들은 많은 북한사람들이 처한 최악의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할테지요.) 다만, 우리처럼 여러 성향의 사람이 존재하고, 이념너머 순수한 약속을 존중하며, 어떤 일에 대해서 (비록 그 근거는 다르더라도) 자긍심을 느끼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헤어짐에 안타까운 정서를 이야기 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두만강'을 연출한 장률 감독의 말처럼) '북한주민' 또는 '조선족' 이라는 단어들을 통해 일반화된 개념으로 그 사람들을 한데묶어 바라보는게 아닌, 김씨, 이씨 등의 우리와 같은 한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적어도 한가지는 건져오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을 보고 그동안 제가 바라봤던 북한에 대한 시선과, 바라보아야 할 북한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편의 영화를 즐겁게 봤다면 그것은, 일정한 돈으로 시간을 잘 쓴것 이겠죠. 하지만, 극적인 요소나 화려한 영상미는 여느 영화들에 비해 조금은 부족할지라도 영화관을 나왔을 때 어떤 깊은 울림과 고민을 안겨주었다면, 그것은 일정한 돈으로 시간을 잘 쓴것이 아니라, 돈과 시간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얻어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얻은 것. 곧, 어떤 성찰에 대한 투자가 되는게 아닐까요.
참고적으로 덧붙이자면, <두만강>은 눈쌓인 두만강 인근 마을을 매우 빼어나게 담아내며, 상업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반면, <굿바이, 평양>은 영상면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아쉽더군요. 이것이 장점은 아니겠지만, 날것 그대로의 평범한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담아내는데는 적절했고, 또 그럴수밖에 없던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화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구요. 다만 상업영화를 많이 봐오신 분들이라면 조금은 감안하고 봐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로 개봉된 곳도 있긴한데, 그쪽은 제가 보질 못해서 말씀드릴수가 없겠네요. 좀 더 낫지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개봉관이 드물군요.)
상대적으로 개봉관과 적고, 일정이 짧기 때문에 혹시 관람을 계획하신 분이라면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만강>은 그래도 좀 수월한 편이지만, <굿바이 평양>같은 경우는 <두만강>보다 먼저 개봉하기도 해서 상영일정이 많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