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사무라이 4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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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를 여기까지 쭉 따라온 독자라면 누구나 가질마한 궁금증, 세노 소이치로의 과거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 바로 4권이다. 지금의 소이치로를 있게한 그의 뿌리는 역시나, 핏빛이었다.

 

 

 

키쿠치를 고용하여 세노 소이치로를 베려 했던 인물, 얼굴에 흉터가 있던 오무라사키 주조의 입을 빌려 그려지는 소이치로가 에도에 오기까지의 과거는, 소이치로의 부모들에서 부터 시작하였으며, 꽤나 골치아프고 안타까운, 그리고 매섭고 날카롭다. (자세한 내막은 언급을 생략하겠음)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소이치로는 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것은 운명이자, 곧 비극임은 분명하다. 특히, 키쿠치가 잡혀간 후, 오무라사키 주조의 휘하에 있던 모리가 소이치로를 상대하러 에도로 상경했을때, 신사에서 모리의 낌새를 눈치챈, 소이치로의 말은, 그 비극적 운명을 잘 설명해준다.

 

"아직 죽고 싶지 않으니깐요. 앞으로 당분간은 이러한 경치를 바라보고 싶군요."

 

소이치로를 베러 온 모리는 샌님같은 얼굴을 하고선 에도로 상경하는 중간에 남을 돕기도 하는 선량한 모습을 갖추었으면서도, 또 자신에게 해가 되는 상황에서는 서슴없이 칼을 꺼내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또 소이치로와의 술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된 모습은 귀여운 모습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말미에 다시금 수면위로 등장한 키쿠치, 5권에서는 다시 이 키쿠치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키쿠치와 소이치로 사이에 모리는 어떤 역할을 하게될지..

 

아이들을 좋아하고 풍경을 즐길줄 아는 선량한 얼굴 안에 애써 여우같은 얼굴을 감추고 싶어하는 소이치로는 피를 부르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그것을 거스르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다지려하고 있다. 드러난 그의 과거, 그리고 그의 평화를 깨뜨리려 하는 인물들은 쉼없이 그의 앞에 선다. 소이치로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평화로운 해결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리 없음은, 소이치로와 독자의 똑같은 생각이 아닐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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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9 - 완결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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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것들을 담아왔던 이야기가 끝났다. 갑자기 맡게된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함께 나란히 부모처럼 성장해가던 한 남자, 다이키치와 그 아래에서 서서히 어두운 면을 떨쳐내며 어느 부모 아래 못지 않게 잘 자라준 린, 한 개인이 부모라는 역할을 맡게되며.. 타인 임에도 그것을 기꺼이 짊어진 이와 결국은 포기할수 밖에 없었던 이의 대조적인 모습들을 통해 부모란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돌아보게 해주고, 그리고 그 아래에서 조용한 혼란을 품고 살아가고 성장하는 순간들을 조심스럽지만, 우울하지 않게 풀어내었던 그 동안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뿐 아니라 그들 각자가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되며 두근거리는 이야기들.. 결코 흔하지 않은 부모, 흔하지 않은 남녀관계들을 주로 다루었던 토끼드롭스의 완결 (하지만 외전이 남아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들은 통상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보기엔 매우 위험한 요소를 지닌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토끼드롭스에서 주인공들의 마지막 선택을 조금만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매우 부정적이다. 그래서 작가가 그 결말을 그리기까지 풀어놓는 이야기와 감정들은 매우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 그저 사회가 부정한눈으로 바라보는 숫자를 떼고 바라보는 순간 이 둘은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신뢰와 애정으로 두텁게 이어져있다. 따지고보면 유유히 통상적인 남녀관계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후 마치 이젠 희망없이 새드한 상황에서 비춰진 빛은 사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토끼드롭스는 아이가 어른으로. 어른이 더 나은 어른이자 부모로 성장하는 모습, 환경에 적응하거나 때론 싸우거나. 하며 부모자식간과 남녀간의 모습을 모두 섬세히 그렸던 작품이다. 초반의 어린 린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것도 좋았지만 뒤로 갈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게감을 잡지 않고서도, 다루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꽤 폭넓으니깐 말이다.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에 사회의 기준이나 남의 시선은.. 어쩌면 너무 바보같은 기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이키치가 어린 린을 처음 맡았던 것처럼 다 자란 린이 다이키치를 선택하는 것도 말이다. 행복은 결국 타인의 눈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솔직함에 달려있으니깐 말이다.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온 그들의 앞날에 조금 다른 형태의 행복이 비춰질 터. 낯선 그 형태도 곧 적응되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를 그렇게 오래 바라본 사람들의 결말로 어쩌면 당연할수도 있긴하겠지만.. (인간적으론 당연스러운데 사회적으로는 아마 쉽지 않겠지..)

 

통상적인 연결에 결국 실패하고.. 남들과 많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된 린과 다이키치는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신뢰 마냥 행복할거라 생각한다.. 가볍게 읽기 시작한게 재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의 캐치와 깨달음을 주었던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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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묘인간 -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탐묘인간 시리즈
SOON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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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 동물에 푹 빠진 모습과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장점만을 극대화해서 바라보는 모습이 사뭇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이 리뷰를 적으려다 해본다. 반려동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 내가 보았을때, 타인의 집에서 만나는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경우는 어떤 경우엔 나또한 저리 키우고 싶은 욕심을 한껏 내게 해주었다가도, 어떤 경우엔 정말 뭐가 이뻐서 키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전자는 귀여운 외모와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말이 통하진 않지만, 어딘가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고, 후자는 함께 사는게 대체 맞는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인간을 수고스럽게 만들고 괴롭히는 부류였다. (뭐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게 아니라 동물이 사람을 키우는 것 같은 모습을 그려내는건 사실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강아지는 은근히 접할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의외로 고양이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대부분 사진으로나, 혹은 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났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뭐 특별히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다룬 것들은 무척 흥미로운게 사실이다. 고양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귀여움이라던가, 캐릭터화 했을 때의 그 모습들을 보면 흥미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실제 애묘가들의 애정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탐묘인간> 또한 내가 '탐묘인간'이 아니면서도 들 수 있던 가장 큰 동기는... 소박하지만 개성있고, 상큼하면서도 푸근한 고양이의 모습과 책의 인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탐묘인간>은 현재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다. 헌데 이 책은 그것을 옮겨온것이 아니라, 작가가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만화니깐.. .. 순도100% 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그려진 만화라고 볼 수 있겠다. 웹툰의 팬이라면 아마 안만나고는 못 베길 스펙이다.

 

일단 책을 보고 드는 순간까지, 드는 생각은 '귀엽다'. 그리고 만화를 펼쳐서 한장 한장 읽어보면, 단순한 그림속에 함께사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무척이나 진정성 있게 그려지고 있다.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에서부터, 아주 애정있는 관심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고양이와 사람의 좌충우돌에서 상상된 이야기들은,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도, 약간은 조리된 이야기도 차별없이 사랑스럽다.

 

이 <탐묘인간>을 읽고서는, 고 박완서 작가님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두번 읽으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문장을 하나 떠올렸다. "상상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어느 얘기 끝에 나온 것인지는 이제 잘 기억나질 않지만, 내가 이 <탐묘인간>을 다 읽고나서 바로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상을 아기자기 하게 그려낸 틈에서 살짝 그려지는 상상들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쉬이 나올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으니깐 말이다. 일상을 그대로 담은 것은 그것 그대로, 귀여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또 그것 그대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누군가의 진정성 있는 마음,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라면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때가 있다. 내가 기르는 게 아님에도, 그 순수한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참 기분좋은 일이었다.

 

강아지도 쉽진 않겠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일은 더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고양이를 기르는 지인에게도 듣기도 했지만, 어디에서 얘기를 듣거나 보거나 하더라도,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정말이지 보통내기가 아닌 듯 보였다. 기르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뭐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 말은, 그만큼 잘해주고 말고의 얘기가 아니라, 정말이지 하나의 자식처럼 키운다는게 와닿을 정도였다는 말이다.

 

 

이 <탐묘인간>을 읽는 많은 '탐묘인간' 들도 아마 자신의 이야기가 책에 그려져 있는 것을 느끼며, 많은 것들을 공감하고, 또 교감할 것이다. 자신의 고양이를 더 사랑스럽게 느끼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돌아볼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와 공감한다는 것은 아주아주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대화의, 소위 통한다는 것의 즐거움은 따지고보면 누군가의 공감을 얻는 부분이 아주 많으니깐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애묘가들이 자신들을 똑닮은 이야기에 웃고, 또 뭉클해하며 이 예쁜 책한권을 넘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책에 그려진 것이 곧 자신의 이야기니, 이 단순하고 작은 그림에도 쉬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길위에서 고양이와 마주했다. 고등학교 때 공원에서 발견했던, 우유를 사서 먹게끔 해주었던 고양이, 홀로 떠난 여행길, 차 아래에서 숨어 나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했던 고양이, 엘리베이터 앞에 누워서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울던 고양이 등등.. 신기하게도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나 또한 떠오른다. 고작 이런 단발성의 순간들도 그럴진데,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서 함께 해온 애묘가들에게 고양이란 존재는 얼마나 의미있을까. 아주 예전에, 강아지를 왜 키우냐고 묻는 내 질문에, 동물은 배신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던 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비교했을때 성격이나 특성이 많이 다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그 자체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된다.

 

 

오랜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한 작가는, 작가의 삶과 고양이의 삶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전문적이고 애정있게 그려냈다. 그리고 자신과 고양이의 삶을 일상의 모든 순간과, 상상의 그 어느 순간에도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날씨와 계절뿐만 아니라, 마음에 눈물이 내리는 순간에도 고양이와 함께 했기에 이렇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그려질 수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희미하고 연한 색을 띄고 있지만 분명, 진하고 선명한 고양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이 책,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이도 이렇게 반할 정도인데, 애묘가로서 안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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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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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것들이 한 두개 쯤은 있는 법이지. 결코잊을 수 없는것들.

 

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삶은 태어나서 숱한 환경의 영향속에서 자라오는 것과 다름없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 이미 한 생명이 잉태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성인들의 정신질환이나, 성격, 트라우마 등을 유년에서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임신기간에 임산부의 정신이나 질병의 영향에 따라서도 한 인간의 많은 것들이 좌우된다는 과학적 이론이나 근거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외적인 것들을 지칭하는 환경을 제외한다면 남는 환경요소는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든 그 무언가가 될 터. 

 

누군가가 만든 기계에서부터, 누군가가 만든 만화에서까지. 그 분야는 다양하고, 또 광범위하다. 어느 나이가 되었든, 누군가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를 갖고 놀며 꿈을 꾸었을것이고, 누군가는 티비를 보며 꿈을 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보며 꿈을 키웠을 것이고...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의 유년의 많은 영향들을 '만화'에서 받았다고 고백하는 한 인간이 있다.

 

만화는 언제나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화 없이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만화는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신문에 연재되던 짤막한 카툰이나 만화책들이다.

 

재미있는 일이야... 에르제가 그 장면을 삭제했더라면 기차를 보며 땡땡을 떠올릴 일은 없었을테지. 이런식으로 내 인생을 바꿨을 만한 소소한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아마 백만 개쯤은 나올 거다..

 

유년과 관련된 기억, 부모님, 고향 집, 동네, 그리고 만화 등, 새로운 것들보단 오래된 것을 훨씬 더 좋아하고 그리워하며, 많은 것이 옛날과 바뀌어버린 현실과, 앞으로 또 많은 것이 바뀔 가능성을 끔찍히 싫어하는 만화가 세스는 엄마와 동생이 살고있는 고향집에 갔다가 우연찮게 만화책 한권을 손에 들게된다. 그것은 작은 우연과 같았지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책이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그 만화책이 세스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 만화책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뉴요커'라는 잡지에서 보게 되는 다른 만화가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는 사실. 마치 친구 따라 오디션 현장에 갔다가 캐스팅되고, 소개팅에서 알게된 이성의 다른 친구와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연히 어떤 것을 접하고선, 그것과 관련된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갖게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어쨌든 순수한 열망이 없었다면 우연으로 점철된 이 믿기지 않는 길을 따라 캘로의 집까지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35)

 

세스가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게 되는 캘로라는 작가는, 한때 잘나가긴 했지만, 쇠락의 길을 걷고 만 만화가다. 여러방면으로 수소문해보지만 많은 자료를 찾을 수도 없었고, 게다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만화가인 세스가 만화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신도 고백하듯, 캘로라는 만화가는 그렇게 잘 나갔던 만화가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성기는 잠깐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 했던, 그러니까 어쩌면, 한 시대를 살아갔던 그저 그런 만화가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명성과 업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존경받거나 길이길이 남아 누군가가 발굴의지를 가질만큼 대단한 만화가는 아니었다는 말.

 

세스는 옛것을 추종하고, 현대의 것과 미래의 것을 거의 두려워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는 인물이다. 게다가 주변의 것들과 현상에 대해 무척이나 회의적이고 비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회의와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또 고민하고 생각하고 질문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나의 자기기만이 어느 정도 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스스로를 지기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마침내 자신에게 정직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마음 저 깊은 곳에 내가 외면한 진실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신기할 따름이다.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그걸 회피할 수 있다는 게.

 

누군가와 깊이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상대방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어.

 

내 생각에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착한 만신창이와 못된 만신창이. 그렇잖아 누구나 다 만신창이야. 누구나 다 자신만의 상처를 지고 살아간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안으로 삭이잖아. 개중엔 훨씬 더 잘 다스리는 사람도 있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봐도, 캘로에 대한 성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캘로라는 만화가에 대한 퍼즐을 맞추는 일은, 작지만 조금씩 진전을 이뤘고, 그 사이에서 그의 인생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갔다. 죽마고우인 체트와 만나 진지하거나 혹은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며, 여자친구를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했다.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기억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것들에 대해서 무한한 경배와 신뢰, 그리움을 갖고, 자기 자신의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시각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생 다 살고 나면 결국 이깟 종이 몇 장 남기고 끝이란 말이야? (108)

 

캘로라는 만화가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그 자신의 개인 취향에 따른 것임을 알기라도 하듯, 그는 캘로에 대해서 이렇게 자조할때도 있지만, 캘로의 고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별 볼일 없어 보였던, 누군가의 생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미천하고 불운했던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만큼 잔잔함은 더 파동을 더해간다.

 

아무리 사소한 기억이라도 어느순간 마음속에 강렬하게 새겨져 세월이 히르면 흐를수록 더 소중해질 수도 있다. (78)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 묻는 이 만화는 ,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 과정의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무엇을 남겨야, 얼마만큼의 업적을 남겨야 인간은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것일까? 전성기를 가졌다가, 쇠락한 것으로 보여지는 한 만화가-캘로의 삶은 세스에게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만화가로서의 삶을 접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한 후 사업가로서 생을 마감한 만화가 캘로. 마지막으로 세스가 찾은 캘로에 대한 조각은 그의 가족들과 친구였다. 그의 딸과 그의 친구, 그의 어머니...

 

만화가로서는 긴 생명을 얻지 못한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과 자식과 함께 했던 시간을 행복하게 간직하고 살아갔음을.. 세스는 캘로의 딸과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되는 것이다. 세스가 종이 몇장 남기고 끝이라고 생각한 한 인간의 삶은 그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행복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인생을 떠난 캘로의 가족이,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부분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삼자가 겉으로 드러난 업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삶의 가치는 큰 의미가 아님을, 떠난이가 남은 이들에게 얼마만큼 남겼나 보다는, 어떤 감정과 순간을 남겼느냐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해준다. 세스가 캘로라는 한 만화가이자 한 인간의 삶을 좇다가 만난 것은, 세스뿐만이 아니라 캘로의 가족들에게도 행복한 순간을 안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자네도 내 나이쯤 되면 세상 모든 게 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될거야. 인생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연속이 아니야.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이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끌려다니는 거지.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좀 다르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게 마련이지만, 그건 정말 보통 의지로는 안 되었을 걸세.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러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했을 거야. (155)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바쳐 남긴것의 가치는, 물질적인 양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다. 삶을 떠난 사람이 스스로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추억하는,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삶은 무엇을 하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로 판단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헬렌이 죽고 얼마 안되어 나도 그 애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네... 작가로 살았던 때가 그립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조금 비참한게 영혼에는 좋아요." 자네한테는 불행하다는 대답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을 했을 때 그 애의 미소를 봤다면 절대 그럴 수 없지. 아무렴, 그 애는 행복하게 살았어. 말없이 수긍하며 사는 삶에 만족했어. (163)

 

각색은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는 실제 만화가인 세스가 정말로 캘로에 대한 자료를 모았던 이야기 이다 . 세스가 그간 모은 캘로의 만화는 맨 뒤에 삽입되어 있다. 게다가 이 책의 구성 그 자체가 마치 캘로의 한 일대기를 담아놓은 앨범인 것인마냥 책의 앞뒤 날개 안쪽에는 캘로의 가족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독자들이 마치 세스가 되어 캘로의 삶을 잠시 열어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이 책의 제목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는 실제 만화가 세스의 어머니가 그에게 종종 해주었던 얘기라고 한다. 바래고 잊혀진 것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인생의 끝에서 남기는 가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소중한 이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 이란 것을... 세스는 알게되었고, 독자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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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3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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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사이의 공간, 그 주변에는 들짐승들이 유유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마치 연극의 배경같기도 한 집 안에 소이치로와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세노 소이치로는 꿈을 꾸었다.

생전의 어머니가 계셨다.

너는 무언가에 쓰인 게로구나.

칼을 차면 인성을 유지할 수가 없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 세상의 것으로 있지 못할 게야.

부디 그 사실을 명심하거라. 

 

인상깊은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3권이다. 소이치로는 검을 팔았던 곳에 가서 다시한번 자신의 검을 본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검을 다시 되사오지 못한다.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몸안에 있는 오니와 상담해봐야 하는 일. 한편, 도박으로 진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된 칸키치는 의기소침하며 학교에 나가지 않는일이 생긴다. 이렇게 학교에 나가지 않고 홀로 물수제비를 던지던 켄이치는 괴상하고 정체모를 소녀를 만나 기묘한 모습을 목격하지만, 이내 소이치로에 의해서 위험을 모면한다. (칸키치는 그것이 위험이었다는 사실조차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일전에 검을 팔고 그대로 간직해 두었던 돈으로 칸키치 아비의 도박빚을 갚아준다. 칸키치가 괴상한 일을 겪긴 했지만 소이치로에게는 아직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키쿠치를 미행하던 츠네고로가 키쿠치에게 기습적으로 살해당한뒤 분위기는 이제 다시 소이치로의 이야기로 본격 전환된다. 2권에 이어 계속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츠네고로, 약간 뚱한 외모가 어딘가 귀엽고, 선했던 그였기에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죽음을 무릎쓴 1:1대면에 부하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먼저 보냈던 그런 마음의 인물이라 그런지, 의원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로 그가 부상만을 당했으면..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키쿠치는 멈추려 하지 않는다. 소이치로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죽이려는 움직임은 계속됐다. 소이치로에 대한 어렴풋한 연정이 느껴지는, 활터의 오카츠까지 해치려하지만 다행이 오카츠는 타고난 감수성 덕에 목숨을 건진다. 안도의 마음과 함께, 오카츠의 애잔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 살짝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키쿠치를 아버지가 거느렸던 가신이 보낸 암살자임을 확신하는 소이치로는 츠네고로의 죽음에 책임을 지기위해 비록 죽도로나마 목숨을 건 일합승부를 펼친다. 마치 산과 같은 덩치와 악함을 풍기던 키쿠치와 소이치로의 대결은 아직은 때가 아닌 듯 싶지만 짧게 펼쳐지는 소이치로와 키쿠치의 주막에서의 대면은, 일합에 펼쳐지는 그 순간의 긴장감을 기막히게 표현해냈다. 표면적으로는 소이치로의 패이지만... 키쿠치는 굉장히 자존심에 타격을 받은 듯 하다. 결국 키쿠치는 츠네고로의 복수를 하고자 한데 뭉친 많은 포리들에 의해 오라를 받게 된다.

 

뭐랄까, 츠네고로의 죽음은 확실히.. 독자들에게 꽤 안타까운 생각이 들게하는 부분이 있어서.. 소이치로 주변의 인물들이 앞으로 어떤 위험에 처하는건 아닌지 좀 불안하기도 하다. 아무튼, 4권에서는 드디어 소이치로의 내력이 밝혀지니...이제 본격적으로 소이치로를 둘러싼 음모의 윤곽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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