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뼈 - 상상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권혁주.꼬마비.윤필 지음 / 애니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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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뼈의 스케일로 말하자면, 공룡이어야 했다. 더듬어가려면 공룡정도는 되야하지 않았나?' 뭔가 할말이 많았는데 정리는 안되서 책의 프롤로그와 '의도!' 에 대해 다시금 짚어보니 이런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맘모스 정도는.. 매머드 정도는... 그래, 그렇다. 그것이 창작이라면 적어도 그정도는 되야겠지. 하지만 이것은 '재창작' 이다. 창작과 재창작을 구분하는 것은 모호하지만, <코끼리뼈>는 애초에 재창작이다. 이미 기존에 우리가 이미 만났던(혹은 이제 만나게 될!), 덕내나는 이야기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다. 


 공룡뼈 였다면, 모두가 실제로 보지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해야 되겠지. 그럼 상상력도 더 그로테스크해 질테고? 뭐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만, 우린 이미 늘 공룡을 꿈꾸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있으니깐, 가끔은 이렇게 '알던 이야기'에 빠져보는게 더 재밌지 않을까. 그리고 따져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감초같은 이야기들은 다 '존재하는' 사람, 사건, 이야기. '외계인 이야기' 가 아무리 솔깃해도, 결국 사람을 모으는 것은 '아는 사람 이야기' 이 듯. 



어떻게 시작했을까?


영화들이 시리즈를 거듭하다가 위기를 맞닥뜨리면 결국 프리퀄이나 리부트로 향하듯, 우리는 어느정도 경과를 지켜본 후엔 그 시작에 관심을 갖는다. <진격의 거인>을 재밌게 볼 수록, '뭐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라고 궁금해 하듯 말이다. 이 <코끼리뼈>의 시작은, <날아라 호빵맨> 이다. 전 화를 다 보진않았지만, 노래까지 기억하는 나 또한, 그때에 머리를 떼어서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슬래셔 무비를 방불케하는 설정을 (아 애니메이션의 위대함..)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나이를 먹고 알게되는 것이다. '어 저거 좀 설정이...' 그렇다면 이제 호빵맨을 재미있게 얘기할 준비가 된 것이다. 보통은 여기까지 아닐까? 하지만 <코끼리뼈>에서는 작가의 동기에 초점을 맞췄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작가가, 극심한 배고픔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빵을 나눠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날아라 호빵맨>. 물론 나도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어쨌든, 모든 작품들이 저마다의 동기를 갖고 시작하겠지만, 그것이 <날아라 호빵맨>처럼 상상하기 힘든 작품일수록, 그 동기의 의미는 더 빛을 발한다. 그리고 이 지루한 글보다 훨씬 재밌게 '수다 화' 된 <날아라 호빵맨>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나름의 프롤로그로 재탄생 한다.

돌이켜보니, 이 <코끼리뼈>의 시작은 매우 '동기' 적절했다.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수다, 다양한 작가


하지만, 시작이야 그렇다 치고 <우주소년 아톰>이나 <드래곤볼> 같은 작품들은 고개를 끄덕일텐데, 어딘지 생소하거나, 의아한 작품들도 있다. (이거 나만 그런가!?..) 코끼리에게는 상아만 있는 것이 아니듯, 여기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화두에 오른다. 진정한 덕후라면, 남의 덕질을 받아들여 더 큰 덕력을 쌓아야 하는 법. 아는 작품은 아는 작품이니 당연하고, 모르는 작품이라도 여기 세 작가들이 메인 플롯에만 치중한다거나, 결말에만 함몰되지 않기때문에 충분히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만화뿐만이 아니라, TV프로그램, 영화, 소설, 음악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제한하지 않는 다는 점도 처음엔 경계가 되지만, 나중엔 이야기의 윤활유가 된다. 한 작품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아쉬운점도 이쯤되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코끼리뼈>를 통해 <거북이 춤추다>를 읽고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이야기는 아는 이야기와 모르는 이야기가 적절히 섞어야 재밌다. 맞장구도 어느샌가 매너리즘에 빠지니깐.


의외였던점이 또 있는데, 그것은 권혁주, 꼬마비, 윤필 세 작가의 덕 토크는, 작품만 공통적일 뿐이지, 자신이 상상하는 인물, 이야기, 핵심주제 등이 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물론 애정도 와는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처음에는 <드래곤볼>에 관한 만화가 없는 것을 보고 페이지를 앞뒤로 몇번을 찾아봤다. 글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아 이거, '세 작가의 상상력이 아주 평행하며 뻗어나갔구나.' 처음엔 그래도 약간 좀 아쉬웠다. (물론 지금도 약간...) 하지만 작가들의 이야기를 더 읽어나갈 수록, 이정도가 더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점이 없는 지점의 상상을 애써 양보하지 않는 것. 그러니 이렇게 다양한 상상이 나오고, 다양한 시선이 나왔을 것이라 짐작한다. 지나고나니, 그런것들이 다양한 토크를 가능케하고, 다른 재미를 주었다.



나는 지금 어느 코끼리뼈를 들고있나


<코끼리뼈>에 언급된 여러 작품들을, 세 작가들이 각자 바라보는 시선과 시점이 각기 다르듯 내가 이 <코끼리뼈>를 바라보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내가 이 <코끼리뼈>를 처음 만졌을 때는, 반가운 작품들에 관한 기대에 부풀어 흥미롭게 시작했고, 그들이 주인공과 메인스토리를 비껴나가 조연이나 서브플롯 등에 관심을 기울였을때 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 하게 되었다. 내가 전혀 만져본 적 없는 부위의 뼈를 만졌을 때, 가능한 스스로 찾아보았고, 낯섬은 곧 덕심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더듬어가던 <코끼리뼈>는 익숙했던 작품들을 새롭게 끼워맞추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형태와, 미쳐 보지못했던 새로운 코끼리까지 덤으로 알게되었다. 그리고 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먼저 저 앞에서 코끼리뼈를 더듬어가던 작가들에 대해 또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작가님들에게 차마 '뼈' 나 '더듬어가는' 이라는 표현을 쓸수가 없네요;) 서로 일치하는 애정, 다른 관점 다른 시선에서 보여지는, 결국은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작가들에 대해 (물론 이상한 의미가 아닌...) 작가들의 상상력에 대해 상상하는 것도 이 <코끼리뼈>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겉으로는 기존의 걸작과 괴작을 앞세우지만 말이다.


 (알고보니 얄팍한) 덕심을 믿고, 꼬마비 작가의 작품을 좀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 기존의 걸작들을 다른 시섬에서 바라봄을 넘어서, 숨은 걸작들을 발견하고 나아가 권혁주 작가의, 윤필 작가의, 꼬마비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금 상상하게 했다.


 자신이 어떤 코끼리뼈의, 어느 부위를 갖고 시작하던간에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코끼리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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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그녀는 : 바닷마을 다이어리 6 바닷마을 다이어리 6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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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만화책을 구입했다. 4권까지 있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최신작인 6권 -4월이 오면 그녀는- 까지 모아두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잊고 있던 오랜 친구에게 연락을 전하고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마주앉아서 이야기 듣는 기분. 이야기 속 인물들 한명 한명의 안부를 나는 그렇게, 천천히 묻고 있었다.


다시 1권부터 펼쳐들었다. 이미 모두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읽어 나갔다. 알고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 알고있다고 생각한 인물들이 어딘지 이전의 기억과는 다르게 전해졌다. 이미 쓰여진 이야기, 그려진 이야기들은 그대로 일텐데, 아마 내가 변했나보다. 보이지 않던게 보이고,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도 다른 시선에서 읽혔다. 좋은 작품이란 아마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났을 때는, 처음에 볼 수 없던 부분들이 보이는 것. 그렇게 섬세하고 사려깊게 그려진 이야기.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런 생각들이 두드러진건 아마, 끊임없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또 위태롭지만 결국은 그렇게 한 뼘 성장하는 인물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스럽지만 (결국) 어린 중학생인 ‘스즈’ 가 이끌어나가는 이야기는, 때론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때론 어른의 시선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며, 소리없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철든 (것 같은) 이도, 철들지 않은 (것 같은) 이도 결국 그렇게 고민하고, 슬퍼하고, 또 즐거워하며, 비슷한 질량의 성장통을 겪고, 또 겪어가며 성장한다는 따스한 시선이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 그래서 좋다. 누구의 모습도 소홀하지 않는 다는 태도에 대해. 아마 그 넉넉한 태도는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소중히 이어가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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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4권까지 있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한꺼번에 두권이 더해졌다.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듯, 1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 꼼꼼하게 읽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또 새롭게, 스쳐읽었던 인물들과 감정의 이야기가 또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직 읽지 못한 6권과, 5권이 더욱 설렌다.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졌을지도 궁금하다. 다시 읽는 시간들이 여전히 감동을 간직하고 있어서, 새로 읽을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더 잔뜩 부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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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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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소위 '대야', '다라이'라고 부르던 갈색의 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본격 아파트'의 시대 이전, 골목 이곳저곳을 뛰어놀며 누비던 유년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겨울철, 그 좁은 부엌 가운데서 그렇게 목욕을 하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낼 때 스며드는 한기는, 본능적으로 가장 따뜻한 곳으로 나를 달려가게 했다. 어쩌면 물기가 채 닦아내지 않았음에도 견딜 수 없는 지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달려야만 했던 곳, 그곳이 바로 크고 두껍고 무거운,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담요 속 이었다.

 

 

주인공 크레이그의 유년은 조금은 가련하게 펼쳐진다. 집에서는 권위적인 부모님에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롤림을 당하기 일쑤다. 기독교를 믿는 집안, 그리고 똑같이 기독교를 믿고 그런 학교였음에도 아랑 곳 않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험상궂은 장난들은 가끔은 회의감을 들게 했다. 그런 그에게 집에서 동생과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오아시스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로가 짖궃은 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서로가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은 방, 그 안에서도 침대 위의 담요 안과 밖은 작은 아이가 생의 전부처럼 느꼈을 매서운 바람들 속에서 따뜻한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훌쩍 자라 레이나 라는 자신의 뮤즈를 만나고부터 삶은 변화한다. 너무나 과분해서 때로는 그녀와 함께하는게 비현실적이고, 죄악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그때까지와는 다른 괴로운 마음과 고민들을 안겨줄때도 있지만, 그에게 새로운 담요로써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한 안식처였다.

 

 

레이라 로 모습을 바꾼, 그 새로운 담요 안에서의 안정과, 더 깊이 그것을 끌어당기고자 하는 본능은, 그동안 줄곧 배워왔더 기독교의 배움과 때로는 배치되어, 그에게 많은 혼란을 주지만, 그는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품 안에서 따뜻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가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 또한 그녀가 손수 한땀한땀 만들었던 담요였으니깐.

 

 

방학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눈부시고 따뜻했던 행복이었기에 더 짧았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너무도 멀리 떨어진 거리속에, 각자가 짊어져야할 각자의 삶의 무게로 인해 그들은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안녕을 이야기 하게 된다. 더 이상 서로의 따뜻한 품을 담요로 두고 살아갈 수 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비극적인 결말의 희미한 온도가 될 수도 있었을 그때의 한 순간,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서로의 존재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온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생의 한순간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그 순간은 비로소, 그 소중함이 결코 식지 않은 따뜻한 담요의 품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예술만화로 시리즈로 출간된 '담요'는 특히 크레이그가 레이나와 함께한 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 작가 자신의 이야기 였기 때문일까, 마치 레이나라는 그녀 삶 언젠가의 뮤즈에 대해서 헌사처럼도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뮤즈를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가 비록 한때나마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사실에 대해 작가는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추억한다. 레이나라는 뮤즈가 그 자신에게 선사했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묘사는, 그 청춘을 아름답게 칠해주었던 뮤즈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해 행복한 상상, 혹은 추억할 수 있게 인도해준다.

 

 

누구나 크건 작건, 담요가 됐든 아니든 유년시절 혹은 학창시절, 이제는 아무것도 아닐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자신을 감싸주었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인이라고 부를만한 나이가 되었을때에 그것은 아주 먼 얘기처럼 치부되어 버린다. 여전히 그런 따뜻한 곳을 그리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기억의 따뜻함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켜는 작은 성냥 하나의 따뜻함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계속 켜나가며 살아나가는 것이 삶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 자란 후에 바라보는, 유년의, 학창시절의 따뜻한 품이 이제는 너무 작게만 보일지라도, 그것들이 삶의 한 순간을 온전히 버티게 해주었 듯, 우리가 그 약하고 불안했던 그 순간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것은 성인이 된 이에게 주는 따뜻한 담요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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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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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는 두 집을 지어야 완생 이라고 한단다. 두집을 짓지 못한 것은, 완생이 아닌 미생.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것이라 한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흔한 넋두리가 얼핏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살아있지만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것을 비유한 그 바둑의 순리를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보니 적잖이 뜨끔거린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 한 수 한 수 바둑을 두듯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한 환경, 특이한 과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심정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제대로 살겠다는, 흔하지만 중요한 그 마음가짐에서 부터.

 

 

1989년 세계 바둑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녜웨이핑과, 우승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던 조훈현의 결승에 대한 이야기로 미생은 시작된다. 미생은 하나의 직장인 만화에서 차별화됨은 물론이거니와, 삶 전반을 통찰력 깊게 바라보는 만화인 것. 그래서 어쩌면, 당연히 미생이라는 지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장그래의 시작은 결연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직은 떠오르지도 못한 잠룡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을 누르고 있는 직장이라는, 세상이라는 수면위로 올라가 자태를 뽐낼 것인가. 펼쳐지는 그 한 수 한 수가 주옥같다. 그것은 장그래의 언행 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불쑥 드러난다.

 

 

어릴적 부터 바둑을 배워왔던 장그래는, 그 초반엔 마치 영재처럼 대접받지만, 언젠가부터 더이상 이길 수 없었고, 바둑이 자신의 평생의 업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지인에게 소개받은 두번째 직장은 종합상사. 자신에게는 오히려 그림자와 같은, 바둑이라는 수식어를 떼고서 백지의 상태로 부딪히는 승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식 취업이 아닌, 인턴사원의 자격. 짧은 시간 직장 상사가 내리는 업무를 수행해야하며, 같은 인턴들과 함께 입사P.T를 준비하고, 또 한편으론 경쟁해야 하는 상황.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이는 직장상사들의 소위 '갈굼' 또한 있긴 하지만, 그보다 아직 더 큰 문제는 동지이자 적인 동료 인턴들. 적당히 인상좋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그래서 함께 팀을 이룸에도 자신의 공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캐릭터로 보여지는 장그래는. 소위 '폭탄'으로 여겨지는데, 어쩌다보니 그는 그와 같은 '폭탄'으로 여겨지는 현장중심형 인턴과 한팀이 된다. 약간은 졸린 그 눈 처럼, 초반에는 끌려가는 듯한 장그래의 모습도, 서서히 바둑을 두던 때처럼, 상대방의 의중을 간파하고, 집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분명한 듯 때로는 흔들거리는 준비과정은 물론이고, 스릴과 긴장감과 있게 펼쳐진 입사 P.T는 장그래와 그의 동료들과의 중요한 시발점이자, 의미있는 한걸음이다. 준비과정 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첫번째 시험 관문과 같던 인턴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바둑이 아닌,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은 사실 바둑을 의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그래와 입사 동료, 그리고 사회라는 정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행동 하나 하나가 마치 바둑과 같이 느껴진다. 특히 장그래가 온갖 시험에 부딪히고, 깨지고, 극복해나가는 것은, 그 자신이 바둑을 두던 때의 갈고 닦던 집중력과 통찰력 과 같은 바둑의 덕목들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둑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단단한 힘들이 아래에서 그를 지탱하고 있던 것. 중간중간 계속해서 녜웨이핑과 조훈현의 대국을 중개하는 것과 그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 그리고 그것과 같이 나란히 성장해 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직장인이든, 직장인이 아니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누군가와 이해관계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주목할 수 밖에 없게끔 하나의 성장드라마로써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바둑에서 시작했지만, 바둑이 전면을 지배하지 않는, 하지만 끊임없이 바둑에서 길러질 수 있는 작은 덕목들이 직장, 사회 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 펼쳐지는 모습은, 바둑을 모르는 이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바둑을 아는 이에겐 어마어마한 재미를...(줄것이라 본다.) 바둑을 모르면서도 참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바둑을 둘 줄 모른다는게 이렇게 후회스러웠던 때가 없던 것 같다. 바둑을 알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도 즐기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장그래는,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완생을 찾아갈까. 어쩌면 완생이 아니어도 좋을지도 모른다. 미완이지만, 그래서 흔들리고 때로는 퍼지지만 멈추지 않는 것이 생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자신의 삶에 갈무리 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깨달은 그 후를 완생이라 한다면, 장그래가 펼쳐나갈 완생의 모습과, 그 과정은 정말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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