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은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시대를 통해 정치 철학을 논하고 있다. 이제는 요와 순임금을, 삼왕은 우문무(文武)를 가리킨다. 이 시대 사관들이 기록해놓은 것들 중 후세에 전할 만한 내용을 추려 담은 것이다. 원래는 상서尙書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로 그리고 거기에 경()을 붙여 서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삼경三經이라고 하면 시경서경역경을 부르는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를 보면 이 서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사기를 쓰기 위해 천하를 3번 주유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춘추, 좌전, 국어 등과 함께 이 서경도 읽었다. 그가 사기를 쓰는 데 이 책들이 자료가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순 임금 때 우는 아버지 곤에 이어 치수(治水)를 위해 등용된다. 그는 하나라의 우왕이다. 우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13년을 밖에서만 지냈다.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 이것을 줄여서 과문불입이라고 말한다. 사기하 본기(夏本紀)에 담겨있다. ‘과문불입하며 우왕은 홍수로 인해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물길을 내고 그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땅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공물, )을 거두었다. ‘구주九州안에 속한다는 것은 '왕의 교화가 미치는 문명 세계'임을 뜻했다. 이후 '구주(九州)'는 곧 '천하'이자 '중국'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 내용은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우공禹貢등에 담겨있다.

 

안민즉혜 여민회지(安民則惠黎民懷之)

순 임금 앞에서 우, 백이, 고요가 의견을 나눈다. 고요는 그 자신이 수양하는 데 신중하고 길게 생각하며 구족(九族)의 질서를 돈독히 하면 많은 현명한 인재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에서 먼 곳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을 뿐”(83p)이라고 말한다. 우 왕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이니, 능히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할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은혜()'이니, 뭇 백성들이 그를 마음으로 따를 것입니다.(知人則哲, 能官人. 安民則惠, 黎民懷之.지인즉철, 능관인. 안민즉혜, 여민회지)”라고 말한다.

 

이어 고요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을 말한다. 세 가지 덕을 갖춘 자와 여섯 가지 덕을 갖춘 자, 그리고 아홉 가지 덕을 갖춘 자를 차등을 두어 등용해야 한다고 한다. “관대하면서 준엄하고(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있고(柔而立),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고(愿而恭),

다스리는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신중하고(亂而敬), 유순하면서도 의지가 강하고(擾而毅),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直而溫), 대범하면서도 청렴하고(簡而廉),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착실하고(剛而塞), 용감하면서도 정의로워야(彊而義)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요는 직위의 적임자가 아닌데도 관직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일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내용 역시 서경고요모皐陶謨의 내용을 사기』 「하 본기에 실었다.

 

이 대화에서 우는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할 생각만 하고 있다(85p)”고 말한다. 무엇을 그렇게 하냐고 고요가 묻자 우는 치수와 백성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실제적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육로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니며, 진흙 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길은 바다에 징을 박은 신을 신고 다니며, 산을 다니며 나무를 베어 길을 열었. 고요는 그에게 그것이 우의 훌륭한 덕이라고 한다. 고요는 정치 철학을 담당한다면, 우는 행정가이며 실용주의적 인재다. 순은 이런 인재들을 얻었으므로 그의 치세 때 백성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라의 탕()왕은 폭정을 일삼던 걸()왕을 치고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경탕서편에는 걸왕이 폭정을 일삼고, "하늘에 태양이 있는 한 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죽는다면 모를까, 내 권력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교만하게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은 이 태양은 언제쯤 사라질까? 나와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리라!”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냥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탕은 여러 제후들과 힘을 모아 명조전투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상 본기가 아닌 은 본기로 한 것은 주 나라에서 은()으로 낮춰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은은 상나라가 망할 당시 수도 이름이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 왕의 타락과 폭정은 극단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은감불원(殷鑑不遠)': "()나라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라"라고 교훈했다. 상나라를 폄하함으로서 주나라의 무왕이 새 왕조를 열 수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상()이 은()으로 불린 이유다. 역사 시간에 가 아닌 로 외웠던 나는 익숙한 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나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 무정(武丁)은 꿈에서 현몽한 열()을 찾고 등용한다. 그에게 부()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으로 불렀다.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그의 간언을 다 수용한다. 이들의 만남과 대화는 서경(書經)열명(說命)편에 기록되어 있으며, 후대에 수없이 인용되는 위대한 명구들이 담겨있다.

 

작주즙舟楫, 작림우

若金用汝作鑢. 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

"만약 내가 쇠()라면 너를 숫돌로 삼을 것이고, 만약 큰 강을 건너려 한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해마다 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

왕이 인재(부열)를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비유를 들어 고백한 구절이다. 자신을 숫돌처럼 벼리고, 배와 노, 단비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야말로 왕으로서 신하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요, 구애이다. 이후 훌륭한 재상을 일컬어 '주즙지신(舟楫之臣, 배와 노 같은 신하)'이라 부르고,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임우(霖雨)'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

 

知之非艱行之惟艱(지지비간, 행지유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부열이 무정에게 한 이 말은 수많은 정치가들 사상가들의 화두가 된 명구이다. 쑨원(손문) 등의 혁명가들도 지행합일을 논하며 인용했다고 한다.

서경의 주된 사상은 첫째로 천명(天命)사상이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며, 천명이 새로워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덕 있는 왕에 의해 나라가 세워지더라도 그 왕위를 잇는 자가 덕이 없다는 천명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워 진다. 따라서 왕은 덕을 닦고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둘째로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사기 본기인민을 위한 정치가 서경에 나타나는 기본사상이다. 사기』 「은 본기사람이 물을 주시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 백성들을 살펴보면 다스려지는 지 그러지 않는지를 알수 있다.(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은 본기98p)고 한 것은 바로 이 민본 정치를 말하는 예이다.

천명사상과 덕치, 민본정치와 더불어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기서경모두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잘 다스린 왕들은 인재를 찾고 등용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윤고요부열과 같은 재상을 얻는 것은 그야말로 천명이기도 하고 왕의 덕이기도 하다.

 

현대의 정치에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다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인재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투표소를 나서니, 내가 누른 도장의 가벼움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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