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오니아 반란의 주동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이오니아에 있는 도시들과 사모스나 키프로스 같은 섬들과 스파르타나 아테네에 까지 확산시킨다. 아리스타고라스의 배후에는 페르시아로 끌려간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가 있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밀레토스를 공격해온 다레이오스에게 일찌감치 항복하고 그의 수하에 들어가 페르시아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밀레토스를 다시 차지하고자 자신을 대리하고 있는 사위 아리스타고라스에게 페르시아에 항거하라고 비밀리에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받기 전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에 공적을 세우고자 군대를 동원해 낙소스를 공격했다. 낙소스 원정은 실패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만을 입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다레이오스에게 받을 문책이 두려워 오히려 페르시아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에 원병을 요청하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오니아 지역 도시들을 선동했다. 각 도시국가들은 셈법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전쟁에 참전했다. 이것이 Ionian revolt,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이오니아 반란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연구하며 이오니아와 아프리카 흑해주변 도시 등의 역사와 문화, 인종 등을 조사하고 직접 다니며 탐사했다. 그러면서 마라톤 전쟁 직전에 일어난 이오니아 지역 헬라스 도시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전쟁에 주목한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서술해간다. 이 이오니아 전쟁을 통해 많은 도시들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나름의 전쟁을 일으킬만한 이유들과 열망들이 있기도 했다. 노예 상태로 이주한 민족들과 혈육이 몰살당한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심 등.
주목할 만한 것은 지도자들의 욕망과 무책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빼앗긴 권력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복수심과 불안감을 이용한다. 페르시아가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노예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거짓을 전파하며 선동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많은 도시들이 다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여 다른 도시들의 참전하게 한다. 그리고 패색이 짙어지자 도주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제5권~6권) 헤로도토스는 이 역사를 기록하며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들에 집중한다. 지도자들의 욕망에 의해 전쟁에 끌려 나온 시민들과 노예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전쟁의 승패가 기울면 지도자들은 항복과 결사 항전을 고민하고, 협정을 맺기도 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이익을 앞에 놓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싸운다. 그 와중 협상과 지체와 결렬과 재개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희생을 키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고대 국가들은 전쟁 중 서로가 적이 되기도, 연합군을 이루기도, 중재자로서 개입하기도 한다. 구원(舊怨)을 따라 혹은 이익을 따라 합종연횡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에 일어난 전쟁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현대 전쟁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에서는 휴전시간 15분을 앞두고 지휘관의 자존심 때문에 신병들을 적의 참호로 보내 육탄전을 벌이는 비인도적 장면이 있다. 종전 협정 내용이 독일에 수치스러운 것이었기에 지도자는 프랑스군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한다. 적의 참호에서 끔찍한 육탄전을 벌이던 파울 보이머는 칼에 찔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휴전 나팔이 울리고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파울은 죽는다. 전쟁의 허망함을 전하려는 극적 연출 장면이다. 그리고 지도층의 몇 사람의 공로 의식이나 욕심에 의해 많은 생명이 부질없이 죽어가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2023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많은 부분 수상을 했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전장의 잔인함을 대비시킨다. 인물들의 대화는 때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굶주린 병사들의 열악한 식사와 후방에 있는 고관들의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식사 장면을 대비시킨다. 조국을 위해 참전하는 십대 청년들의 낭만과 첫 전투의 공포와 참혹함이 급격하게 대립한다. 그들의 패기와 열정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으로 변해버린다. 나 역시 저들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돌아간다 한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참담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러닝 타임을 확인했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빗발치는 총탄과 화염 방사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달리는 그들의 둔한 몸짓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이 비참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그들의 심정이 화면 건너편으로 전해졌다.
“학교 교사, 탄광의 광부, 은행원, 양계장 주인, 시골 지주, 도시 중간계급, 노동자, 농민 등 그들이 격렬한 전화(戰火)의 한복판에서 계속 참호를 지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인지대 언저리 저 냉혹한 죽음이 다스리는 그 자투리 땅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일까?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공격에 나서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을까?”(『봄의 제전』 289p)
원작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체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상상된다. 그가 16살 때 전쟁이 났고, 2년 뒤 1916년 11월에 사범학교를 다니던 중 징집되었고, 1917년 플랑드르에서 처음으로 최전선의 전투를 경험했다고 한다.(『봄의 제전』467p)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영화의 대비적 이미지 보다는 화자인 파울의 마음에 집중한다. 그의 심상에 떠오르는 문장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잔인하고 허무하다. 17살인 파울과 그의 동기들 7명은 전선으로 보내져 흩어져 배치되고 죽음을 경험한다. 파울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파울은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학생이 아닌 전우들은 구두 수선공, 농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똑같이 총탄, 장갑차, 화염방사기, 화학전 독가스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다. 1918년 종전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파울은 끝나지 않는 전쟁에 조바심 낸다. 그 초조함과 실망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1918년 여름 – 불타 버린 전쟁터 위로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왜?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11장)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더욱 전쟁에 나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여전히 어쩌면 더 많은 죽음들을 경험한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는 파울 보이머에게서 우울과 당혹감을 엿보게 된다. 반면 그의 눈에 비친 나무들, 빨간 마가목 열매는 아름답기만 해서 처절하고 더욱 허무하다.
“하지만 1918년 여름에 출정은 계속되고 죽음도 그치지 않는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곳 생활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간절히 여겨진 적은 없었다. 우리의 숙소 주변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 풀줄기에 달라붙은 매끈매끈한 닥정벌레, 어스름하고 서늘한 방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저녁노을, 해 질 녘의 신비스러운 검은 나무들,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흐르는 물, 꿈들과 오랜 수면-아, 이런 생활, 생활, 생활!”(『서부 전선 이상 없다』 11장)
그리고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로 마치며,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는 파울의 몸을 조명한다.
종전 소식을 기다리는 전쟁 지역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대피 사이렌과 폭탄 터지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도시의 밤이 당분간 조용하려나?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국가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셈법과 경우의 수를 따져 이익이 되는 조항들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이 전쟁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나름의 예측과 전망을 통해 종전의 때를 점치고 있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불안한 가운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폭격 소리에 실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