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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처음엔 평이하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왜일까? 그동안 환경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해서였을지 모르겠다. 책에 담겨진 내용들이 나를 각성시키지 못하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많이 무뎌졌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다. 사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울 수가 없다. 오래 전에 경고해 왔고,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오염, 온난화, 멸종 등을 향한 방향은 바꾸거나 늦추기에 너무 거대한 흐름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 거대한 쓰나미 경고를 받고 쌓는 둑은 미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감각하고 나태해진다. 무력감이 들었다. 혹시 나는 웬만큼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지식만 쌓고 실천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서 ‘환경 챙김’이라는 주제의 책들을 추천하고 선정하는 포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그 시민 선정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의무감도 나의 무감함에 한 몫 했지 싶다. 흥미를 일으키는 책을 찾으려는 의도로 읽었기에 자극적 문구가 없는 문장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가 단조롭게 다가왔다.
작가의 지구 환경에 대한 경고는 차분하다. 말문을 여는 유년의 기억들은 아름답다. 연구 논문과 통계와 과학적 예상으로 전개해 나가는 논리에 경광등과 같은 자극은 감춰져 있다. 그럼에도 근거자료들 앞에서 던지는 순수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직한 질문들은 환경에 나태했던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급격한 도시화와 식량문제, 집약적 농사법에 따른 비료, 농약, GMO식품으로 인한 문제들, 음식섭취의 빈부격차 등을 다룬 후 질문한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가?”라고.
인류는 어제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자원을 사용해왔다. 그 자원은 하늘 땅 바다 그리고 사람이다.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결핍과 고통, 그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지구가 필요한 만큼을 생산하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하는 무능에서 발생한다”(127p)고 이야기 한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를 구하는 시작점이 될,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127p)이다. 에너지 사용량과 관련하여 제시하는 자료들과 비교를 예를 들면 “1970년과 오늘날 사이에 운전의 전체적인 증가로 미국, 중국, 인도 세 나라의 연료 사용량은 스물네 개의 미시시피 강에서 한 시간 동안 흐르는 수량에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140p)라는 것이다. 실감나는 비교였다. 1939년 이후 에너지 고갈과 관련한 주장을 한 과학자들은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다. 물론 기후와 환경 과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모두는 이것이 예측 시간이 뒤로 미뤄질 뿐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대체연료를 찾아내는 일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
평균적인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보다 훨씬 낮게’(파리협정에서 그대로 따온 표현) 유지하기 위한 권고 사항들은 폭염, 가뭄,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 흉작 등의 모든 재앙을 막기 위함이다. 이런 예측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비관적이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 우리는 더욱 두려워하는 것으로 응답하지만 정작 실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190p)고 한다. 불과 2세기 전 석탄을 때기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200년 후를 상상해본다면 두려운 일이다. 풍요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면 400년 만에 지구는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상하는 일은 그리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자료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것이 많았다. 그 자료들이 가리키는 진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식량, 에너지, 환경, 멸종…. 아마도 그래서 새롭거나 자극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단조롭게 읽어가던 중 부록을 읽으면서 각성되었다.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에서 나의 가치관을 살펴보고(Step1), 정보를 모으고(Step2), 가치체계에 합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Step3) 자신의 가치관에 합당하게 개인 투자를 할 수 있을까?(Step4)를 단계별로 점검해보라고 한다.
저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스캔들을 일으킨 한 의사이야기는 생각할 지점이 있다. 간과 신장 이식으로 유명한 의사였는데, 인터뷰에서 건강을 위해 붉은 육류를 피할 것을 강조했던 그는 실제로 파파이스 프라이드 치킨 앤드비스킷 매장의 소유주인 것으로 밝혀졌다. “병 주고 약 주는” 의사였다. 가치체계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예이다.
또한 저자는 햄버거로 인해 아팠던 경험 이후 거대 패스트푸드 업체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 기업들이 4년 전 돼지저금통까지 탈탈 털어 투자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에피소드는 자본주의 시대에 가치관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준다.
이 책의 압권은 저자가 글을 쓰기 위해 찾아낸 사이트와 문헌들을 소개한 마지막 부분이다. 엄청난 양의 출처와 읽을거리들을 분류해서 이야기하듯 소개하고 있다. 그 양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그 소스에 접근하는 것이 쉽다는 사실에서 더 놀란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데이터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선택과 분류의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잘못된 자료나 너무 오래된 데이터에 대해서는 update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이 자료들을 보니 앞부분에 서술한 내용들이 그저 평이하고 단조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보며 그렇게 느꼈던 것은 독자인 내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가치체계에 합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