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대의 유대인들에게(카프카와 모리츠 골트슈타인은 벤야민보다 겨우 열 살 연상이었다), 가능했던 반역 형태가 시온주의와공산주의였다. 그들의 아버지들이 종종 공산주의 반역보다 시온주의 반역을 더신랄하게 비난했다는 것은 참작할 만하다. 양쪽 모두 가상에서 현실로의, 허위와 자기기만에서 정직한실존으로의 탈출로였다. 하지만 되돌이켜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 P100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을 고집하고 있었고, 마르크스주의에경도된 친구들, 특히 그들 중 유대인 친구들의 의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둘 중 어느 쪽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측면도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으며, 두 경우 모두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상황의 비판이라는 "부정적" 요소, 부르주아적 가상과 허위로부터의 출구, 문학적이거나 학문적인 기득권층 바깥에 있는 위치였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 그것이 결국그를 어떤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끌고 갈지 십중팔구생각해보지 않은 채 - 채택했을 때 그는 꽤 젊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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