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49

스위프트는 영국 성공회의 하인이자 대성당의 주인이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의 남쪽 통로에서 바라보면, 벽면 상단에는 스위프트의 묘비명이 새겨진 검은색 대리석 패널이 걸려있고, 그 좌측 하단에는 퉁퉁한 이목구비가 강조된 흰색 반신상이 있고, 그 앞 바닥에는 그의 유골이 묻혀 있었다. 스위프트본인이 라틴어로 쓴 묘비명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이렇게 옮겼다.
스위프트는 저 안식처에 닿았으니흉폭한 분노에가슴 찢길 일은 이제 없으리라이승에 취한 여행자여 용기가 있거든그가 갔던 길을 가라그는 인간의 자유를 섬기는 하인이었다.
자신의 무덤이 관광명소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한 듯한 묘비명이다.
- P53

식민지에서의 사나운 탐욕스러움과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에서의 숨 막히는 무사안일함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해낸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였다.(소설에 등장하는 나태한 젠트리 계급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노예 농장의 수익에 기생한다.)하지만 스위프트는 18세기에 이미 이런 종류의 지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프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아한 사교계가뒤에서, 밑에서,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까발려주는 작업이었다. 유머 그 자체가 이중적 시야를 갖는 방법, 당위와 실상의간극을 감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위와 실상의 간극은 논리,
언어 등의 형식 요소에도 존재하고 사회생활, 정치생활의 위선에도 존재하는 만큼, 유미라는 동력은 단순한 농담에서도 작용할 수 있고 장문의 풍자에서도 작용할 수 있다. 스위프트의 시에서 유머가 고상함과 저속함을 끊임없이 오가는 데 있다면, 그의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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