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간호사가 다가와 면회가 끝나고해리엇이 건물을 나설 때마다 아치가 창으로 달려가 그녀가 차에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차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동안 그쪽을 쳐다본다고 알려주었다. 해리엇은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동생을 만날 때마다 비록 말은 없어도 두 사람이 가족이란 사실을 아치가 이해한다고 믿기로 했다. 그녀는 동생을 차에태우고 주변을 드라이브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드라이브는 점점 길어져 나중에는 아치를 집에 데려가 저녁을 먹이고 소등시간전에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었다. 이때쯤 그녀는 오래도록 믿어왔던 지능박약이란 진단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이브를 갈 때면 아치는 주차장에 세워진 50대가 넘는 자동차중에서 그녀의 파란색 차를 즉시 찾아냈다. 처음 몇 번은 안전벨트매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야 했지만, 나중에는 차에 타면 바로 혼자서 안전벨트를 맸다. 토마토를 잔뜩 따서 차에 싣고 함께 집에 간적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아치에게 토마토를차에서 내려 차고에 갖다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일을 하다가 퍼뜩동생은 "차고"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급히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미 동생이 야채를 모두 차에서 내려차고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정리해 놓은 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앞마당으로 나가 여기저기 흩어진 쓰레기를 줍더니 바깥 쓰레기통에 넣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치가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바위같은 침묵 저편에는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 P271

그녀와 함께 스펜서 주립병원을 찾았을 때 루스는 해리엇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치는 명백한 자폐증이었다. 루스는 확신했다. 그녀의 의견은 충분한 권위를 지녔다. 이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설리번 박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펜서 주립병원에서그녀가 내린 진단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그녀와 해리엇이 아치를 데리고 나가 루스가 설립한 기관에서 막문 열 준비를 하고 있던 집단주거시설로 옮기려고 하자 그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병원장은 완고하게 반대했다. 아치는 평생을 주립병원 시스템 속에서 살았으므로 다른 곳에서는 어찌할 바를모를 것이 했다. 아치는 견디지 못할 겁니다.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전혀 그렇지 않았다. 74세가 된 아치는 누나의 굳은 의지와 루스설리번의 명성에 힘입어 웨스트 버지니아주 헌팅턴의 한 주택으로옮겨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제 그는 3,000명이 아니라 다섯 명과 함께 살았다. 1919년 이후 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긴 것이다. 병원장의 예상과 달리 죽지도 않았다. 다만 20세기 초에 잃어버린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70년 만에 그는 장난감을 갖게 되었다. 곰인형이었다. 한시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세발자전거 타는 법도배웠다. 침대에서 어찌나 열심히 펄쩍펄쩍 뛰던지 직원들이 달려와말려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뛰다가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혀 다칠것 같았기 때문이다. - P272

아치는 1997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단주거시설에서 살았다. 누군가 그를 가리켜 살아있는 최고령 자폐인이라고부르기도 했다. 장례식에는 100명이 넘게 참석했고, 살던 집에는 그의 이름을 딴 새로운 명칭이 붙여졌다. 캐스토 하우스다.
삶의 막바지에 구출된 아치는 9년간 기가 막힌 삶을 누렸고, 그의이름으로 명명된 집에 자신의 자취를 남겨놓았다. 침대 위 천장에갈라진 자국이 바로 그것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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