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프스키는 역사학의 과제와 난점을 지적할 뿐, 그것을 정면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세로 논의 영역을 좁혀서 이 문화적 유비가 나타나는 한 사례를 조명하려 한다.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이 바로그 사례다.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유비의 내용이 밝혀질 때, 양자는 정당하게 ‘평행현상‘ (parallels)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유비성의 내용에 대한 본격적 설명을 잠시 미뤄두고, 먼저 두 문화 현상의시공간적 일치라는 대단히 특기할 만한 사실을 그 유비성을 방증하는일종의 예비적 논거로서 제시한다. 
- P23

"그러나 모든 내적 유비를 접어두더라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전한 사실 영역에서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은 결코 우연이라고는 할 수없을 뚜렷한 동시발생(concurrence)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이 동시발생을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중세철학사학자들이 자신의연구 재료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은, 그들이 여타의 고려 사항들에 영햐을 반지 않았음에도, [중세]미술사학자들이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과 똑같았돤 것이다 - P24

파노프스키는 서로 무관한 양극단인 것처럼 보이는 신비주의와 유명론이 사실은 주관주의라는 한 경향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철학적 주관주의에 상응하여 등장하는 예술 현상이 원근법적 공간 해석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그는 후기 고딕예술에서 나타나는초상화, 풍경화, 실내화의 장르적 특성을 철학적 유명론의 정신과 연결시키고, 이 시기의 성화(Andachtsbilder)를 신비주의와 연결시킨다. "초상화, 풍경화, 실내화가 응시자로 하여금 신의 창조가 지닌 한없는 다양성과 무제약성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무한성의 감각을 일으키는 데 비해,
성화는 응시자로 하여금 창조자의 무한성에 자신의 존재를 침잠하게 만듦으로써 무한성의 감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후기 고딕예술의 복잡다기한 경향은 마침내 14세기 플랑드르 화파로 융합된다. 그리고 이는 유명론과 신비주의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64)의 철학에서 융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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