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든 생각은 주인공 코라의 자유를 향한 탈출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자유의 길’ 양쪽으로 시체가 매달린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 것처럼. 자유를 향한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는다. 조지아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인디애나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죽고 그녀 혼자 살아남았다. 지하철도를 통해 캘리포니아에 이르면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그녀의 도주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을 남긴다.

그녀의 끝없는 탈출은 조지아에서 노예들의 죽어야 끝날 것 같은 노동의 시간들과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안에 축적되어 있는 공동의 긴장감, 집단적 불안. 그 불쾌함을 떨쳐내기 위해 생일파티를 한다. 음악이 시작되고 춤판이 시작되나 코라는 춤판에 끼지 않는다. 탈주 중 잠깐씩 얻은 자유의 시간과 장소에서도 춤은 추지 않는다. 완전한 자유를 얻어야 그녀는 춤을 출 것인가?

생일파티 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 노예로서의 일상에 찾아오는 상념뿐이다. 그녀는 이것은 그저 찰나에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춤을 추지 않는 것이리라. 도주 중 잠시 경험하는 자유 속에서도 그녀는 춤을 추지 않는다. 그곳이 자유의 세상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자유를 잃고 밭고랑 한가운데 허리를 구부릴 때, 다시 필사의 탈출을 해야 할 때,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뿐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끝났다. 원이 깨졌다. 이따금씩 어느 노예는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밭고랑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상념이 밀려들 때, 혹은 이른 아침 신비스런 꿈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동안. 어느 따뜻한 일요일 밤, 노래 한가운데. 그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 감독관의 고함, 일하라는 부름, 주인의 그림자-영원한 속박 속에서 당신은 아주 찰나에만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40-41p

이 농장 전체는 코라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밸런타인 가족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모라는 그 증거들 속에 앉아 있었다. 아니, 코라가 그 기적의 일부였다. 코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거짓된 약속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다. 이제는 코라의 냉소적인 부분이 날마다 축복이 펼쳐지는 여기 밸런타인 농장의 보물들을 거부했다. 코라의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기에. 마음이 가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283p



노예의 탈출을 돕는 이들은 지하철도의 기관사와 차장과 역장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점조직원들과 밸런타인 농장의 사람들이다. 시저와 코라는 조지아를 탈출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머무르려고 했던 그곳에는 불임수술과 생체실험과 같은 음모만이 있을 뿐이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수치와 모멸감도 맛보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도망노예를 잡으려는 노예사냥꾼의 추격이다. 노예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백인들도 죽임을 당한다. 결국 노예사냥꾼에게 사로잡힌 시저는 죽임을 당한다. 코라는 탄로되고 폐쇄 되어가는 지하철도를 따라 노스캐롤라이나로 탈출하지만 결국 사로잡힌다. 테네시에서 다시 탈출하여 인디애나로 인디애나 밸런타인 농장에서 잠시 동안의 자유와 찰나의 행복을 맛보지만, 결국 백인들에 의해 살육을 당한다. 그녀는 노예사냥꾼을 죽이고 지하터널을 통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시골길은 고요했고, 양쪽 길가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코라는 형체 하나를 보았고, 다른 하나를 또 보았다. 그러고는 마차 밖으로 나왔다.
나무에 시체들이 썩어가는 장식물처럼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 길을 ‘자유의 길’이라고 하지.” 그가 다시 마차에 방수포를 덮으며 말했다. “이 시체들이 시내까지 가는 길 내내 걸려 있어.”
173p


아마도 이 ‘자유의 길’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과 그 후손들이 걸어가야 할 끝없는 길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예해방이 오기까지 수많은 주검을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자유를 얻은 순간에도 여전히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기에. 코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자유롭게 백인들이 쓰는 말씨를 배우고 글자를 배우면 그들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밸런타인 농장에서도 책을 읽으며 로열과 함께 할 시간들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그녀는 세상이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농장의 설득에 넘어갔다.
336p


그러나 곧 그 희망의 장소들은 학살의 현장이 되었다. 코라가 탈출을 포기하거나 도중에 죽음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추격자들의 집념이 무시무시해서.


그녀는 가짜 안식처와 끝없는 사슬을, 밸런타인 농자의 학살을 남겨두고 앞으로, 앞으로 갔다. 터널에는 어둠뿐이었고, 저 앞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것이다. 혹은 운명이 결정한다면, 막다른 골목-텅 빈 무자비한 벽 뿐이리라. 마지막 씁쓸한 농담.
340p


터널이 끝나고 햇빛이 비치는 땅 위로 나올 때마다 찬란한 태양 빛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 땅을 비추는 햇빛은 아직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터널의 끝에는 캘리포니아가 있고 그녀는 그곳을 지나는 흑인의 마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생각한다 마차를 모는 올리라는 사람은 도망노예였을까? 어디서 탈출했을까? 얼마나 멀리 오니 그것이 다 잊혔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미국의 아프리카인들은 얼마나 멀리 가야 그들의 암울했던 역사가 잊혀질까?
그들의 탈주는 얼마나 오래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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