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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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 인생의 황혼 녘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달링턴 홀의 새로운 주인 패러데이 어르신의 권유로, 6일 동안 자동차 여행길에 오른 집사 스티븐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스티븐스는 여행 내내 지난날을 회고하는데, 작가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그가 느꼈을 회한들, 그가 놓쳤던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스토리를 통해 더욱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스티븐스는 오솔길을 올라 바라봤던 장관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품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물론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라 말할 수 있다. 정중한 태도로 주인 어르신의 요구를 완벽히 수행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저택을 찾는 손님에게도 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스스로도 전문가적인 자신의 능력에 자긍심이 상당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집사로서의 일을 최우선하다 보니 개인의 삶과 감정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손님들의 시중을 드느라 부친의 임종 순간을 지키지 못했고, 집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느라 켄턴 양에 대한 마음 또한 살피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 어르신(달링턴 경)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맹목적이었다는 점이다. 주인의 결정으로 유대인 하녀 둘을 해고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켄턴 양은 ‘잘못됐다’며 화를 냈지만 그는 ‘우리의 직업적 의무는 우리 자신들의 자만심이나 감정이 아닌 우리 주인의 뜻에 맞추는 것’이라며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카디널 씨가 어르신이 나치들에게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다고 알려줘도 그는 주인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낼 뿐이었다. 집사로서의 충심도 좋지만 그 전에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적어도 한 개인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위대한 집사로서 자신의 업무에 노련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나 서툴고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비록 그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우리도 가끔은 했던(혹은 하지 않았던) 선택이나, 했어야 하는 (혹은 하지 않았어야 하는) 말을 두고 지나간 시절을 자책할 때가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켄턴 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p.294)


바닷가 부두에서는 스티븐스에게 즐겁게 지내고,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하라고 말해주던 노인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인생의 많은 시간이 지났고 많은 것을 놓쳤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뒤가 아니라 앞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지금도 인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며.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인 시선으로, 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해 보라고 한 그의 충고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렇다.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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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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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사십 년이 넘은 전자상가 건물, 그곳에서 은교는 여 씨 아저씨의 수리실에서 접수와 심부름을 맡고 있고, 무재는 트랜스를 만드는 공방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는 중이다. 그런데 『백의 그림자』의 은교와 무재를 보고 있노라면, 어수선하여 둘 데 없던 마음이 사르륵 가라앉으며 잔잔히 다독여지는 기분이다. 이 책은 환상과 현실 그리고 사랑이 잘 어우러져 독특하고도 개성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1. 환상 : 그림자가 선다, 그러나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림자는 대개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있다. 평소 자신의 그림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림자에 대한 특별한 설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림자가 일어설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자를 홀린 듯 반복해서 쫓아다녔던 사람들은 결국 핼쑥해지고, 기력을 다해 어느 날 죽고 만다. 그 위험성을 몰랐던 은교는 자꾸만 이끌려 그림자를 따라갈 뻔하다가, 다행히 무재를 만나 숲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다정한 무재의 당부가 어쩐지 단단하게 그녀를 붙잡아 주는 것만 같다.

 


2. 현실 : 우리와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모습,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던가. 이것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이들은 그것과 함께 자신의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다. 특히 무재가 은교에게 ‘소년 무재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말하며 어떤 원망도 내비치지 않던 무재. 그의 어조가 평온했기에 듣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처연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한편, 전체적으로는 오래된 전자상가 건물의 철거와 재건축에 관한 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하고 심란해한다. 협상은 더디게 진행되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마땅한 곳이 없다는 점, 결국 돈이 문제였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여 씨 아저씨의 친구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소설은 다방면에서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것은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3. 사랑 : 서로에게 힘이 되는 두 사람, 한 층 한 층 쌓여가는 은교와 무재의 마음.
그들의 대화는 때로는 말장난 같으면서도 때로는 무의미한 말들의 반복으로 아리송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중요하고 필요한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으며, 이러한 언어의 주고받음도 있다는 것을. 그렇대요, 그런가요, 라며 조곤조곤 도란도란 이어지는 그들의 말은 차분히 다음으로 이어지면서도 늘 서로에 대한 걱정과 염려,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무재와 은교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대화에서도 그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위로 받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오래도록 따뜻하게 포근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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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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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장르 중 SF 요소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영상도 그렇고 조금 먼 미래에서는 말도 안 되고 엉뚱하다고 핀잔을 들을법한 독특한 상상력들이 다 이루어지며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들은 언젠가 정말로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 『커스터머』의 배경은 이백 년 후의 지구다. 거대한 모래 폭풍이 지구를 덮친 이후로 아름다운 자연은 사라졌고, 세상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게 된다. 사막 도시의 모래 구역, 가장 피해가 적었던 태양 구역, 마지막으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특수한 방공호에 들어가 모래 폭풍을 피했던 비취 구역이다.


  모래시에 살고 있던 소녀 ‘수니’는 태양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여자이면서 동시에 남자의 몸을 가진 중성인 ‘안’을 만나 친구 이상이 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신체를 변형하는 커스텀 기술이 발전되고 대중화된 시대 속에서 수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자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고심하고 찾아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커스텀이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것이라면 커스터머는 신체를 바꿔서 다른 존재가 된 사람이다. '커스텀을 한 사람'과 '커스터머'는 다르다. 누군가는 그 차이를 미묘하다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선택한 사람.
그게 커스터머다.
난 커스터머가 될 것이다. (p.29)

 


  소설을 읽으며 커스텀에 대한 작가의 설정에 깜짝 놀랐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었다. 눈의 형태, 눈동자 색깔, 피부에 문양을 넣는 것, 머리 색깔, 심지어 몸에서 특정한 향이 나게 해주는 냄새에 관한 커스텀도 가능했고, 나아가 꼬리와 날개, 뿔도 선택할 수 있으며 동물의 머리로 커스텀한 사람도 등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식물계 커스터머는 몸에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커스텀 가게는 큰 도시일수록 많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보며 쇼핑하듯 이러한 것들을 고를 수 있다. 마치 지금의 우리가 옷가게나 화장품 가게를 둘러보듯이.


  누군가는 뭘 이렇게까지 바꿀 일인가 싶겠지만, 그것은 개인 선택에 달린 일이다. 무엇보다 커스텀은 신체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 기술을 활용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애 또한 고칠 수 있는 큰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소설 속에는 다양한 모습의 커스터머들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이야 저 정도의 기술과 선택사항이 없을 뿐이지 외모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소설 속 상황이 조금 더 낫다고 봐도 좋으리라. 쉽게 외모로 남을 평가하고 평가를 받는 외모지상주의, 외모 우월주의는 지금의 세상 쪽이 더 심한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커스텀을 단순히 외모에 대한 욕구, 신체를 바꾸는 것에 관한 것으로만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외적인 변화는 내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쳐 더 나은 나를 만들기도 한다. 혹은 정말로 원했던 자신의 모습을 커스텀을 통해 실현하기도 한다. 전자든 후자든 그것들을 합하여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그려지는 만큼, 이 소설에서 커스텀은 곧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소설 속에서 모두가 커스텀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커스터머의 존재를 매우 싫어하는 커스터비아는 커스텀을 반대하고 피켓 시위를 벌인다. 갈등, 대립, 사건 사고도 발생한다. 그리고 이 책은 커스터머를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인간복제와 돌연변이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는데, 덕분에 기술발전에 대한 빛과 그림자는 물론 거기에 파생되는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문제 역시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커스텀. 신체에 불편함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외모에 변화를 주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약간의 커스텀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모가 다는 아니지만(그럼에도 현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사람은 보는 것, 보이는 것에 많이 좌우되지 않던가. 게다가 자신감이 생기면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개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감에도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커스텀을 해보면 좋을까. 이런 모습도 좋고 저런 모습도 좋다. 뭐 어떠한가. 상상은 누가 뭐래도 자유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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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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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실이나 가치관 혹은 사람에 대해 어느 순간 확신이 들지 않으면서 머릿속에 혼란이 오는 경우. 아니면 그동안 분명 잘 알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어느 순간 아님을 알게 되는 경우. 이럴 때 우리는 선뜻 의견을 말하기가 어려워지며 동시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읽게 된 『오늘은 잘 모르겠어』. 제목에 끌려 펼치게 된 시집이다. 


  그런데 몇 번 되뇌어 볼수록 ‘오늘은’이라는 단어가 있고 없고가 큰 차이를 만들어냄을 발견해본다. 단순히 ‘모른다’고 해보자. 이것은 무언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거나 그동안 생각해본 적 없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잘 모르겠어’라는 문장은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잘 알았다는 뜻이다. 즉, 대충 얼버무리려는 게 아니라 그동안 열심히 생각했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비록 그 결론이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눈동자/내가 오래 바라보면 한 쌍의 신(神)이 됐었지//
당신의 무릎/내가 그 아래 누우면 두 마리 새가 됐었지//
지지난잠에는 사랑을 나눴고/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꺼풀은 지그시 닫히고/무릎은 가만히 펴졌지//
거기까지는 알겠으나//새는 다시 날아오나//신은 언제 죽나//
그나저나 당신은......//
(p.28~29,「오늘은 잘 모르겠어」전문)

 


  그러고 보면 세상은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그중에는 직접 겪는 것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잘 모르겠는 것으로 남을 때도 있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있고 자신에게는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시인의 ‘모른다’는 「축복은 무엇일까」에서도 이어진다.


  시인은 아이가 없으므로 아이가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묻는다. 그러다 이내 '나는 그 사실을 소유한 적이 없다‘며 자신이 어찌 알 수 있겠냐고 답한다. 아이 대신 시가 있고 당신이 있지만 여전히 시인은 축복은 무엇일까 물음표를 던지는 중이다.  

 


  한편「강아지 이름 짓는 날」은 진지한 분위기가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던 시다. 
  조만간 집에 새 강아지가 오는데 이름을 짓기 위해 온 식구가 모였다. “어머니는 "검둥이"가 어떠냐 물었다. 우리는 새 강아지의 털 색깔은 갈색이라 답했다. 어머니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p.184) 이 부분을 읽었을 때부터 감이 왔다. 아, 범상치 않은 가족이다, 새 강아지 이름 짓기가 만만치 않겠구나, 라고. 


  아니나 다를까 여동생은 "그렇다면 브라운 Then Brown"을, 인공지능을 전공한 남동생은 "야생지능 Wild Intelligence"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쉽사리 의견 조율이 되지 않던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제수씨는 “커피 한잔”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새 강아지 이름으로 혹은 이쯤에서 커피 한 잔 어떻겠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적절한 타이밍과 센스까지 갖춘 재치만점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식구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시인은 사진 한 장을 떠올린다. 강아지와 함께 잠든 자신의 모습을 담은, 아버지가 찍어주신 어린 시절의 사진이다.
  이 시는 강아지 이름 짓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움까지 아우른다. 왠지 더욱 애틋해지는 기분이었다.

 

 

여동생이 물었다. "아버지라면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지었을까?"
남동생이 답했다. "우리 뜻대로 하라고 했겠지."


어머니와 제수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강아지 이름을 짓기 위해 온 식구가 모인 날이다.
고인의 뜻을 마음 한구석에 새기고
우리는 밤이 늦도록 토론을 이어간다.
(p.189, 「강아지 이름 짓는 날 」부분)

 


  짝을 이루듯 「나는 시인이랍니다」라는 시와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라는 시도 기억에 남는다. 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나는 시인이랍니다」에서 말하는 시인은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사물을 조용히 관찰하고 오래오래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뒤이어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기를 멈춘 오늘 밤은 시인이 아니라고.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들은 마무리되지 않고, 어느새 시 쓰는 생각 대신 노동과 행복에 대해 걱정을 할 뿐이다. 그러나 괜찮다. 이 세상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시를 쓰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글쓴이는 몇 번이고 언급한다.


  시인은 아니지만 어쩐지 관찰하고, 생각하고, 시를 쓰고 싶어지는 오늘이다. 단 한 명이라도 시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니 거기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멋진 일이다. 평범함이 모이고 모여 어둠은 시 쓰는 사람들로 반짝이고 충분함은 늘 지속될 테니까.

 

 

그리고 물론 당신에게 나는 말합니다.
잊지 말아요. 나는 시인이랍니다.
슬퍼 말아요. 나는 시인이랍니다.
시는 우리 사이에 벨벳처럼 펼쳐져 있어요.
그것의 양 끝은 우리가 잠들 때 서로의 머리맡에 놓여 있어요.
(p.97, 「나는 시인이랍니다」부분)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밤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반드시 시인입니다.
오늘 밤 누군가가 시를 쓰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103,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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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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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오직 두 사람>.
  이 소설은 아빠와 딸에 관한 이야기다. 삼 남매 중 둘째인 현주를 유독 예뻐하는 아빠는, 둘이서 여행도 가고, 영화나 전시를 보고 브런치를 먹으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은 부녀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봤었다. 그러나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아빠와 딸이 잘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모의 애정이나 기대가 너무 크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느끼며 곧잘 실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결말은 늘 누군가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다시 아빠와의 관계로 돌아간다. 아빠의 기분을 살피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었던 그녀. 이런 패턴의 반복의 결과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빠와의 관계뿐이다. 그녀라고 답답한 순간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벗어나지도 끊지도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 아빠는, 만약 전 세계에서 희귀 언어, 그러니까 그 모국어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관계란 게 그렇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시간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그 관계는 무 자르듯 단번에 쳐낼 수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관계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고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도 그러한데 그것이 가족이라면 어떻겠는가. 타인이라면 어쩌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거나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을 꺼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을 위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솔직히 터놓고 말해보자. 그런 말 역시 당사자가 아니니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문제든 정작 자신이 그 중심에 있게 된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여길 수 있을까. 물론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며, 무엇이든 본인의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순적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가, 그 인생을 살아가고 감내하는 것 또한 자신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관계에 굴곡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화자는 허전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삶을 묵묵히 나아가고자 한다.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p.41, <오직 두 사람>)

 

 
  그 외의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은 읽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인생은 ‘누군가와의 만남, 혹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그 일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뉠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때로 자신의 삶에 있어 기점 혹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주말의 혼잡한 대형마트에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11년 만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부부 <아이를 찾습니다>.
-초등학생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인아.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자신이 돌아갈 곳, 인생의 원점이라고 생각하는 서진 <인생의 원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미친 듯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소설가 <옥수수와 나>.
-만나본 적 없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뉴욕으로 간 지훈. 하지만 자신 외에 다른 남자도 탐정의 연락을 받아 그곳에 도착하고, 누가 진짜 아들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건 유골함과 슈트 몇 벌인 상황 <슈트>.
-미혼인데 곧 출산을 한다며 애를 낳고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지 묻는 직원 최은지와 그 일을 암 병동에 있는 친구 박인수에게 의견을 묻는 화자. 최은지의 비밀을 지켜주다가 오히려 다른 직원들과 아내한테 괜한 오해만 사게 되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 사원들이 거치는 연수의 한 과정인 줄로만 알았던 방 탈출 게임. 하지만 핸드폰도 맡기고 들어왔고, 인터폰은 먹통인 상태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에서 점점 불안과 초조를 느끼는 사람들 <신의 장난>.

 


  일이 안 좋게 흘러간 경우 사람들은,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가는 이런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위트와 적절히 버무려 독자들에게 펼쳐 낸다. 그리하여 소설 속 인물들은 눈앞의 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나름의 합리화를 하거나 혹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며.
  희망은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지만, 그들은 살아간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응급실을 나온 그는 의료기기 샘플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소독약 냄새가 진득하게 깔린 병실의 복도를 지나 구매 담당자의 사무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인생의 새로운 원점이라고 생각하면서. (p.109, <인생의 원점>)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p.265, <신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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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3-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더니 되려 할 말을 찾지 못하게 된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서평을 이렇게 써주시다니... 기억이 새록새록햐집니다!

연두빛책갈피 2018-03-09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술술 읽히더라고요. 김영하님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히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