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피아노 의자 밑은 나의 아지트였다.
피아노 의자를 천장 삼아 누워있으면 꽤 아늑하고 나름 편안했는데
물론 다리는 쭉 삐져나왔으므로 때때로 오므려 피아노 의자에 모양을 맞추고는 했다.
마치 투명한 상자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니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차근차근 배워나갔어도
악보를 금방 금방 읽어내는 아이는 아니었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도 처음 본 악보를 한 번에 연주하는 건 불가능했는데
내게 오른손과 왼손의 합은 마치 1+1=2가 아닌, 1+1=3이나 4가 되는 느낌이었다.
오른손의 높은음자리표는 그럭저럭 짚어냈지만
왼손의 낮은음자리표와는 늘 데면데면한 사이였다고나 할까.
낮은음자리표의 '도' 역시 높은음자리표의 도와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면 얼마나 좋아,
나는 악보를 볼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드라마나 영화의 OST만 듣고 바로 악보로 옮길 수 있는 사람,
혹은 악보만 있으면 어쨌든 연주가 가능한 사람.
아니면 둘 다 가능한 사람.
이런 것들을 쉽게 쉽게 바로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며 감탄하고는 했다.
오른손 왼손이 꼬이고 머릿속도 꼬여 악보 한마디 나아가는 게 힘든 사람이 바로 여기 있으니까.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지만, 커갈수록 피아노 연습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고
층간 소음이 문제 되는 요즘에는 피아노를 치기가 무척 눈치가 보였다.
특히 여름은 더욱 그러했다.
누군가는 낮에 연습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그나마 물 흐르듯 하나의 연주를 해낼 수 있지 않는 한,
날씨는 덥고 습하며 사람들의 불쾌지수가 올라가 있는 여름은 피아노 소리도 주의해야 한다.
이럴 때면 밤이든 낮이든 헤드폰을 끼고서 얼마든지 연습할 수 있는 전자피아노가 새삼 부러워진다.
한음 한음 짚어나가며 뚱땅뚱땅거리는 소리를 내도 주변에 피해될 일이 없을 테니까.
만약 내 피아노가 전자피아노였다면 나름 연습을 꾸준히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내 피아노는 무거운 나무 피아노.
저 피아노와 함께 우리 가족은 이사도 여기저기 다녔더랬다.
물론 이삿짐 나르는 분들 표정은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피아노는 묵직했다.
엄마가 팔아버리자고 유혹했어도 싫다며 열심히 지켜온 피아노였건만,
얼마 전 나는 피아노와 이별해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집에 다른 것을 두기 위해 자리가 필요했는데 당장 필요하지 않는 피아노밖에는
뺄 것이 없다는 주장이 가장 크게 작용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네가 그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피아노 칠 수 있겠느냐 하면 솔직히 그 역시도 힘들 것 같으므로 피아노는 그냥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주자는 게 엄마의 의견이었다.
이번에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이라서.
내가 집을 넓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욕심으로 피아노를 지켜내더라도 연습이 불가능했다. (예전에 겨울에 문 다 닫고 연습했어도 가족한테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연습은 무리였다)
아, 피아노를 보내주어야 하는 순간이구나, 나는 묘한 마음이 되어 그렇게 피아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생각보다 허전함은 꽤 컸다.
피아노 칠 시간이 없었어도, 연주가 형편없었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온 피아노니까.
피아노는 우리 집에서 내가 아끼는 것 중 하나였고 알게 모르게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규칙적인 조율은 해주지 못했지만 여전히 참 좋은, 깊은 소리를 냈던 나의 피아노.
아직은 많이 생각난다. 마음에 구멍이 하나 생겨난 기분이다.
그래도 망가져서 버린 게 아닌, 누군가가 열심히 그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아껴주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갔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부디 오래오래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 나의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