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1 -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 위대한 작가들 10
콘스탄틴 모출스키 지음, 김현택 옮김 / 책세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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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25권이 나왔었다. 아무리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내가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돼서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변했다. 결국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뿐 아니라 전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은 드디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종단계에 돌입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천재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흥미가 호사가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술, 도박, 여자, 방랑에의 중독.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몸을 버리고 성격은 누구도 좋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지만 인류를 감탄시키는 예술을 창조하는 천재. 여기다 파행적인 로맨스가 끼어들거나 요절을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역사 속의 인물은 스캔들로 부활한다고 하지만 천재에 대한 세간의 인상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그동안 읽은 단상들도 이러한 독자들의 소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4살의 데뷔작의 성공, 처형 직전에 황제의 사면을 받아 살아난 사회운동가, 유부녀를 향한 히스테릭한 사랑, 도박에의 중독. 이것은 곧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고 '인간의 신비'를 풀기 위한 그의 평생의 노력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귀결되는 사상의 여정은 뒤로 물러나 버렸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다른 데 있음을 모출스키는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그리 특출나게 보이지 않았던 음울한 소년이 고골리와 푸쉬킨에 경도되어 청년기를 보내고 인간의 혼에 대한 탐구로 고골리와 푸쉬킨을 뛰어넘어 프로이트와 니체 이전에 인간의 어둡고 병적인 내면을 전례없이 표현하게 된 과정은 그의 문학세계와 한 번 씨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그리고 평론가와 독자들이 그를 좋아할 때나 싫어할 때나 높이 평가할 때나 무시할 때나 한결같이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관의 심화를 문학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가장 위대한 부분이다. 그에게 인간의 신비에 대한 탐구나 창조는 삶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끝까지 본능으로 남았다. 삶과 본능을 분리시키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이기에 그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박력있게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연구가들의 당황시킬 정도로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을 아내에게 보냈던 도스토예프스키. 아이들을 끔직히 사랑해서 난 지 며칠만에 죽은 첫 딸을 평생 잊지 못했던 도스토예프스키. 현대인의 심연을 건드리는 '병적인 의식의 끝없는 모순'을 표현했던 가장 위대한 서사작가의 가치는 남편과 아버지의 사랑을 꾸밈없이 드러냈던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영원히 남을 것 같다. 그가 탐구한 세계나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우리 문명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단 증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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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평전 - 위대한 폭군 미다스 휴먼북스 4
천징 지음, 김대환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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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예술, 문학, 과학, 종교, 스포츠, 상업, 정치 어느 분야에서도 천재는 그 시대를 넘어서 수세기, 수십세기동안 영향력을 발휘한다. 샤넬이 없는 현대 패션을, 데카르트 없는 서양 철학을, 붓다가 없는 불교를, 아인슈타인이 없는 현대 물리학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인간적인 질투도, 만민평등의 민주주의도 이 자명한 현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역사는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이름을 남기는 자와 무명으로 영원히 묻히는 자를 '선택'하는 특성과 함께, 한 사람의 천재를 낳고 빛나게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천재 한 명의 이름 앞에 묻어버리는 '상징' 또한 특성으로 한다. 다윈과 간발의 차로 진화론을 정립한 영국 학자와 아인슈타인보다 며칠 뒤에 상대성 이론을 창안한 프랑스 학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그의 조국 진나라의 기틀을 갈고 닦았던 지도자들과 그 기틀을 위해 엉겅퀴처럼 고생했던 백성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진시황으로 하여금 천하를 얻게 한다면 천하가 모두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사람은 진시황의 적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일했으나 끝내 진시황의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마성을 경계했던 울료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시황의 유명한 책모인 이사 이전에 울료라는 '브레인'이 있었듯이 진시황 이전에는 그의 대사업을 가능하게 한 강국 진나라를 영양가 없는 변방 야만국에서 서쪽의 강국으로 키워내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선대 지도자들이 있었다.

또한 타국에 인질로 와 있던 수많은 왕의 아들들 중 하나인 진시황의 아버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왕위로 밀어올리기 위해 전재산을 투자했던 여불위라는 대상인(그가 진시황의 생부라는 설도 있지만 끝내 그의 권력을 경계했던 진시황에 의해 죽었다), 진시황의 '작전'을 수행하다 죽은 장수들과 백성들, 중국 통일을 위해 땅과 목숨을 바쳐야 했던 다른 나라들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천징은 진시황이라는 상징 앞에 스러져간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천하를 소재로 삼았던 예술가.' 우리는 그 결과물인 통일 중국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현대인들은 진시황을 '위대한 폭군'이라 부른다. 그에 덧붙여 위대한 폭군 뒤에 병풍처럼 늘어선 고대인들을 기억하는 것도 현대인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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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한길로로로 45
페터 풍케 지음 / 한길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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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결국 영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영국 귀족을 동경했고, 그의 애인 알프레드 더글러스가 옥스퍼드 출신의 영국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빅토리아 시대는 그에게 호기심을 보이긴 했으나 일탈적인 행각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는 도망치는 것을 사양한 채 악명높은 영국 감옥에서 몰락했다.

그는 머리가 좋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빨리 배웠으며,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열등감도 없었고, 사교적이고 화술에 능했으며, 가끔은 미남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불완전한 세상을 경멸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쳤지만 그 자신 예술을 위해 삶을 바치지는 못했고, 사람들의 사랑과 교제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어설픈 면도 있었다. 분명 그는 모순적인 성격에다가 작가로써 단점을 끊임없이 노출시켰다.

하지만 '나는 나의 천재를 인생에 사용했으며, 작품에는 재능만을 사용했답니다.'라는 그의 고백을 접하면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날같이 다양한 개성이 용인되는 시대에는 치기쯤으로 보이는 그의 화려한 몸치장과 조롱적인 태도는 분명 나르시즘에서 그 원인이 있다해도 사회에 아부만 하는 자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이유있는 반항'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자 하고 사회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랬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을 하찮게 만들지는 않았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의해 단죄받는 것이 아닐까. 그를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았다면 사회는 그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무관심으로 반응했을테니까.

더구나 인생을 이상적으로 가다듬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한 그의 욕망이 예술에 대해 그렇게 했던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다를 것은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실수는 인생을 작품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 아니라 끝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인생과 작품 둘 다를 놓쳤다는데에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끝내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표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세 명의 등장인물처럼 되지 못했다. 배질 호울워드의 예술가로서의 성취도 놓쳤고, 도리언처럼 아름다워지지도 못했으며, 헨리 경처럼 현실과 거리감을 유지한 채 품위를 지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실의 오스카 와일드는 희극적이고 모순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번뜩이는 기지와 사람들을 유혹하는 철학을 잃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의 책이 계속 팔리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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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100장면 - 가람역사 7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이무열 지음 / 가람기획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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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한반도 면적의 세 배다. 또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영토를 통째로 갖고 있으며 수십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수 집단인 이슬람 교도만 해도 수천만명에 달한다. 이런 현기증나는 특징은 이 나라가 혼란과 기적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유럽 중세의 암흑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 차가운 억압과 문화의 불모지 속에 갇혀 있던 러시아가, 일약 근대에 이르러 푸쉬킨부터 시작해서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그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톨스토이등의 엄청난 천재들을 배출해냈고, 음악, 무용, 과학, 문학의 위대한 유산을 현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는 러시아인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갖게 했고 프랑스 못지않게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으로 만들었다.

또한 위대한 성군과 위대한 폭군이 있었음에도 외세의 침략과 내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지만 차르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버리고 혁명으로 돌입한 후 레닌과 스탈린(그는 폭군에 가깝다), 흐루시초프, 고르바초프 하에서 1970년대를 전성기로 미국보다 앞서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핵을 개발했으며, 전국민이 복지 아래로 들어오게 한 '사회주의 기적'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 후 1990년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몰락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도 러시아란 나라의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대단하기도 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심스럽기도 했다. 책 몇 권 읽고 그 나라를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하지만. 하지만 앞으로의 행로는 무척 기대된다. 남아도는 천연자원과 인력으로 인한 경제적인 발전말고도, 문화적으로, 그리고 세계의 한 일원으로써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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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 한나래 시네마 19
홍성남 엮음 / 한나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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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영화가 책보다 대중적인 매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건 착오인 것 같다. 오손 웰스가 영향받고 영화에 도입한 셰익스피어, 카프카, 세르반테스의 경우 쉽게 읽히지 않음은 오손 웰스의 영화와 같지만 지금도 꾸준히 재출판되어 마음만 먹으면 그 대가들의 작품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가. 일단 개봉된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은 이상 그 시기가 아니면 일반인은 구할 수 있는 경로조차 알기 어렵게 되어버린다. 현재의 누군가가 오손 웰스의 영화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찾는 것만큼 가망없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오손 웰스의 구구한 명성만 들었을 뿐 그의 영화라고는 본 적도 없는 나는 평론집을 통해서 그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어느 정도의 호기심의 충족과 그만큼의 안타까움이었다. 도대체 오손 웰스 이후 수백번 패러디되었다던 거울방의 총격씬은 어땠을까, '악마의 손길' 처음 부분의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호기심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을 상상해볼 수 있는 단서는 잡은 셈이 되었지만. 덧붙여 그의 대표작들을 그가 영향받은 옛 대가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고 1960, 70년대를 활동했던 미국 영화감독의 세계에 대한 시각을 접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번번한 제재로 최후 편집에서 배제되어 개봉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영화들과, 배우로 번 돈으로 유럽 각지를 떠돌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에피소드, 영화의 기술과 방법을 세계를 바라보는 상징적인 눈으로 이용해 영화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해봤다는 오손 웰스의 특징은, 태어난 지 100년도 안 되는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와 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비록 필름으로 오손 웰스를 만나진 못했지만 '영상은 영상으로 평가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영화를 비평하는 영화가 없는 이유이자 평론이 글로 이루어지는 이유다'라고 비슷하게 말했던 평자의 말을 떠올리며 오손 웰스를 만나기 위한 워밍업을 했다는 만족감으로 자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기회에든간에 '시민 케인'을 비롯한 그의 영화를, 스튜디오 편집판이 아닌 오손 웰스 편집판으로 보고 싶다는 바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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