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영화가 책보다 대중적인 매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건 착오인 것 같다. 오손 웰스가 영향받고 영화에 도입한 셰익스피어, 카프카, 세르반테스의 경우 쉽게 읽히지 않음은 오손 웰스의 영화와 같지만 지금도 꾸준히 재출판되어 마음만 먹으면 그 대가들의 작품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가. 일단 개봉된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은 이상 그 시기가 아니면 일반인은 구할 수 있는 경로조차 알기 어렵게 되어버린다. 현재의 누군가가 오손 웰스의 영화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찾는 것만큼 가망없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오손 웰스의 구구한 명성만 들었을 뿐 그의 영화라고는 본 적도 없는 나는 평론집을 통해서 그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어느 정도의 호기심의 충족과 그만큼의 안타까움이었다. 도대체 오손 웰스 이후 수백번 패러디되었다던 거울방의 총격씬은 어땠을까, '악마의 손길' 처음 부분의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호기심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을 상상해볼 수 있는 단서는 잡은 셈이 되었지만. 덧붙여 그의 대표작들을 그가 영향받은 옛 대가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고 1960, 70년대를 활동했던 미국 영화감독의 세계에 대한 시각을 접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번번한 제재로 최후 편집에서 배제되어 개봉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영화들과, 배우로 번 돈으로 유럽 각지를 떠돌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에피소드, 영화의 기술과 방법을 세계를 바라보는 상징적인 눈으로 이용해 영화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해봤다는 오손 웰스의 특징은, 태어난 지 100년도 안 되는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와 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비록 필름으로 오손 웰스를 만나진 못했지만 '영상은 영상으로 평가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영화를 비평하는 영화가 없는 이유이자 평론이 글로 이루어지는 이유다'라고 비슷하게 말했던 평자의 말을 떠올리며 오손 웰스를 만나기 위한 워밍업을 했다는 만족감으로 자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기회에든간에 '시민 케인'을 비롯한 그의 영화를, 스튜디오 편집판이 아닌 오손 웰스 편집판으로 보고 싶다는 바램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