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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인물들은 '쿠시로에 내린 UFO'에서 나온 것처럼 안정적인 사랑(혹은 섹스)이 만족되면 '죽음이나 성병이나 우주의 무한함'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강력하고 평범한 진실은 하루키의 인물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의외로 손에 넣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것을 묘사한 하루키의 소설은 그토록 잘 팔렸다, 고 난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맥주와 위스키를 좋아하는 유순하고도 느긋한 남자가 보여주는 쿨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니.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법하다. 현실로 말하자면 사랑이나 섹스보다는 '죽음이나 성병이나 우주의 무한함'의 공급이 더 많은 형편이다.
그런 하루키가 사회문제로 관심을 돌렸다고 한다. 그에 대한 반응은 '아니, 왜 네가...!'와 '드디어 재능있는 청년이 철들었다'로 나뉜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어떤 방향선회를 했든 '얼마나 잘 해냈나'가 제일 중요하다. '조국 만세, 우리 조국에게 힘을!'이란 슬로건을 내걸기 시작했다는 무라카미 류처럼 방향선회 자체가 역겨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족이지만, 젊었을 때 자유롭고 퇴폐적인 척 했던 사람은 끝까지 그쪽으로 지조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사회란 없다. 오로지 마약과 쾌락뿐!'이라고 외쳐왔던 자가 국기를 흔들기 시작하는 것만큼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 하는 일은 없다.
다행히 하루키는 그런 쪽은 아닌가보다. 결론적으로, 방향선회를 시작해 '고베대지진'이란 사회비극을 소재로 다룬 연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기분좋게 읽어줄 수 있는 습작이었다. 현실을 소재로 했으되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 그의 소설은 기발하기도 했지만 소재를 빼놓고는 전작들과 별 변화를 느낄 수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무국적성'과 '시대에 대한 무관심'의 대표작가가 '사회문제'로 방향선회를 했는데 금방 걸작이 나와버린다면 그것도 너무 소설적인 일이다.
책의 앞과 뒤에 빽빽한 한일 작가와 평론가의 찬사와 해설은 그런 하루키의 방향선회에 대한 출판사(시장)의 불안감의 표현인 것 같다. 하루키의 책을 팔아 먹고 살던 쪽에서야 그의 방향선회는 반갑지 않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작가들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옛정을 생각하고,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는 하루키식 위트를 고려해 나는 하루키의 실험을 두 팔 벗고 지지한다. 어느 평론가의 바램대로 '하루키식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작가의 용기있는 실험은 독자의 기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