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확실히 한국은 자아비판이 부족한 사회는 아니다. 즉, 한국사회의 단점들이 자기를 비판할 줄 몰라서 초래된 것은 아니다. 자칭타칭 지식인에서부터 외국에 좀 살다 왔다는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 신문의 조그만 박스기사에까지 우리는 외국과 우리를 비교하여 우리를 비판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국과 찌개는 환경오염이 심하니 외국 어디처럼 국물요리 대신 음료로 대체하자는 위대한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생산적이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정당했는가? 단언하건데, 이것들은 대부분 쓰레기였다. 자기가 조금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혹은 외국에 살면서 외국인을 목격했다는 자랑과 투정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사회비판과 대외인식의 문제점은 자학은 있되 자기비판은 없었던 것이다. 매저키즘은 이유를 가리지 않는다. 그냥 고통당하는 게 좋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로에서 글쓴이들의 매저키즘은 객관적인 사회비판인 것처럼 행세해 사람들을 기죽여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홍세화 선생이 외국물 먹은 매저키스트의 또 다른 출현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것은. 내가 홍세화 선생의 책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에서야 읽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아니,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강의 위치까지 트집잡아서 애꿎은 한강을 비난해?'하는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박노자 교수가 그랬다시피 어떤 사회를 비판할 때는 역사적, 사회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다른 사회와 비교할 때는 더욱 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말한 국내외의 어떤 논객보다 더 사려깊게 그 작업을 했다.

이제는 유명해진 '똘레랑스'나 '사회정의'같은 개념은 그가 무분별하게 수입한 외제품이 아니다. 한국에는 많은 과일이 있는데도 바나나가 없어서 이 모양 이 꼴이라는 뜻으로 한 말도 아니다. 그는 그것이 프랑스라는 아무개 나라의 그럴듯한 '제품'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획득해온 역사의 성과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회에 전해져 그 사회를 깨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것은 반대로도 가능하다. 예들 들어 프랑스가 자랑으로 여기는 자국의 문화가 실은 다른 문화를 침략, 약탈하면서 발전한 바가 크다는 것. 그 과정에서 일제를 능가하는 만행을 저질어왔고, 고도로 발전한 토론문화와 수다문화에도 그런 역사적 오점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다는 것.한국의 문화는, 조선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땅의 문화는 자기를 지켜오면서 만들어간 문화지 남을 침략해가면서 만든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대국이라 자랑하는 프랑스에 전해줄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성과는 그런 것이다.

결국, 문명은 서로에게 스승이다. 우리가 지난 세기동안 너무도 격렬했던 역사적 도전과 격변 속에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우를 저질렀더라도, 그래서 현사회가 결코 사람 살기에 좋은 사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것을 쓰레기처럼 방치해 악취를 더해가지 말고 거름으로 삼아 인권이 존중되고, (홍세화 선생의 말대로) '홍익인간'과 '중용'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곳으로 만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제발 SM클럽에나 가주기 바란다. 자학은 우울하고 음습할 뿐이지만 정당한 자기비판은 즐겁다. 비젼이 되기 때문이다. 1,2세기 후에,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똘레랑스나 사회정의를 말하듯 홍익인간과 중용을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우리사회는 많이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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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 2004-04-2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익인간과 중용의 가치라...... 실현 될수 있는 가치로 여겨지면 좋겠군요. ^-^

hoyahan1 2004-04-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등이나 자유란 말도 처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는 귀족들의 조롱과 평민들의 무관심에 시달렸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사란 그래서 재밌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