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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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폭설이 내려 차의 통행마저 어렵게 되었을 때가 있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필요없게 되자 나를 포함한 동네 주민들은 상의나 한듯 신호등을 무시하고 사차선 도로를 활보했다. 눈이 녹자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 모두 신호등을 잘 지키긴 했지만. 교통규칙이 눈 50cm보다 더 견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규칙이 필요하다. 이것은 표류소년 중의 하나인 랠프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협력을 위해 소라를 불면 모두 모여야 한다는 규칙과 구조를 위해 끊임없이 봉화를 올려야 한다는 규칙을 마련했다. 그는 그것을 다른 아이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어휘의 배열에 신경쓸 정도로 세심하며, '문명적'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힘을 돋울 멧돼지 고기보다는 비를 피할 오두막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도자가 한 명 뿐인 집단이 있던가? 생존을 위해 중요한 것은 질서와 봉화가 아니라 권력과 멧돼지고기라고 생각하는 소년은 잭이었다. 그는 꺼져가는 봉화와 도망가는 멧돼지가 있다면 서슴없이 멧돼지를 쫓기를 택한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독재자였다. 그는 소라고동이나 설득력 있는 언변 대신 고기를 공급하고 힘을 과시함으로써 소년들을 규합한다.

하지만 이들이 상반된 타입이었기에 갈등이 커진 것은 아니었다. 랠프의 이성과 잭의 힘은 영국에서건 무인도에서건 살아남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들일 뿐이다. 갈등을 키운 것은 무리중에서 제일 뛰어났던 두 소년이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장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둘 다 자신이 원하는 방법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무리를 분열시키고 긴장감으로 몰고갔다. 무인도에서의 이들의 표류일기는 곧 랠프와 잭이 권력을 향해 엎치락뒤치락 하는 백일천하이기도 하다. 랠프와 잭을 상징하는 두 무리가 일시적으로라도 화해할 때는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하고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뚱보소년을 조롱하며 희생양 의식을 치룰 때와 고기를 먹을 때 뿐이다.

처음에는 '돼지'를 놀리는 것으로 무리의 단결과 화기애애함을 유지하던 그들이 멧돼지를 사냥함으로써 피맛을 본 후 희생양 의식의 대상을 다양하게 택하고 방법도 잔인해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피냄새만 맡으면 잔인해지기 때문에 우유만 먹인다는 인도의 춤추는 코브라 같았다. 집을 나간 후 점점 사나워지는 들고양이거나. 네, 선생님, 아니요, 선생님이라고 재잘거리며 성가대원으로써 천상의 화음을 내었을 그들이 완벽한 잔인함을 보여주기까지는 몇 주의 시간과 몇 번의 사냥경험만 있으면 충분했다.

물론 이것은 잘 짜여진 우화이다. 그러나 너무 그럴듯한 우화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해도 무서울 지언정 놀랍지는 않을 것 같다. 이들이 점차 거칠고 잔인해지는 것은 선악의 구별이 없는 아이여서가 아니다. 소설의 배경은 바야흐로 세상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던 2차 세계대전 중이 아닌가. 소년들은 어른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 동안은 돌출시킬 필요가 없었던, 하지만 어른들은 익히 행하고 있던 인간게임의 법칙을 무인도에서 스스로 터득하고 행했을 뿐이다. 어른들의 세계대전은 핵폭탄과 함께 끝났지만, 아이들은 흔히 말하듯 어른들의 꿈을 먹고 자라는 이 세상의  미래니까 말이다. 끝까지 자기를 지키는 듯 보이는 랠프조차도 실은 그 게임의 주요인물이었을 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돼지'와 사이먼 정도일 것이다. 그나저나 '돼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제일 궁금한 것은 그것이다. 돼지의 입으로 직접 그의 본명을 들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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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09-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이상이면 항상 누군가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사회의 특징을 담을 책이죠

hoyahan1 2004-09-1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설에서도 권력에의 의지와 생존에의 의지는 구별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