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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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나 정의, 양심... 뭐라고 말해도 좋다. 그런 가치들을 위해 침식을 잊고, 그런 가치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성자열전 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오로지 서준식, 이 사람을 빼놓고는.

'옥중서한'이 국가권력의 억압에 대항해 옥중에서 투쟁한 18년간의 기록이라면 '생각'은 옥에서 나와 세상을 향해 인권의 실현을 외친 14년 간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모든 인생을 담보로 한 기나긴 여정. 서준식은 '옥중서한'에서 '생각'까지 20대의 청년에서 초로의 중년이 되었지만, 국가권력의 억압은 여전하고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세상도 여전히 견고하다.

"'인권'에 대해 치열한 관심을 간직하는 사람은 번번히 완강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수없이 깨지면서 분노 속에서 인권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터득할 것입니다. '인권'을 통해 이 세계의 진실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말을 가슴이 찢어지게 사랑하면서도 슬픔 없이는 그 말을 올리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런게 바로 현장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넥타이와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과 쑤시는 몸과 무시된 자존심을 소유하면서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잴 수 없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준식은 철저히 후자에 속하며,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인권이나 평등이란 개념은 비린내 나는 현장의 내음과 함께 읽는 사람의 마음에 박혀버린다.

그는 '인권'이란 말이 휴지조각이 되는 현장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절대 체념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체념이나 포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18년 간 비전향 장기수로 옥에서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포기이며,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만큼 서준식에게 어울리는 문구는 달리 없다. '생각'은 그 과정에서 '인권하루소식'같은 인기 없는 지면에 소개된 깨알같은 의지들의 모음이다. 그 속에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부터 장기수 , 재소자 고문, 인권영화제, 국가 보안법, 어린이 인권, 간첩, 여성문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옥중서한' 의 어딘가에 결혼하고 자식을 두는 자신을 그려봤다던 편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에서 서준식은 정말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보통 어떤 인물을 형상화할 때 '그는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따듯하고 자상한 아버지였다'라는 등등의 표현을 쓰는데, 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야말로 따듯하고, 따듯하고도, 따듯한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따듯해야 다른 사람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따듯함은 눈물이 날 정도다. 하지만 역시 딸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서준식 특유의 모습은 어디 가지 않는다. 딸들에 대한 그의 바램은 더없이 소박하지만, 또 하나의 순수하고 강한 인간을 길러내고자 하는 의지만은 더없이 크다. 그는 딸들이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슬픔을 이해하는 인간이 되고, 옳은 가치들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강한 '언니'들이 되기를 바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린이 인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아마 그가 두 딸의 아버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이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의 인권이 향하는 마지막 꿈은 '평등'이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지배 의지나 어두운 욕망을 '인권' '도덕' '사랑' '예술' 따위의 말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이런 눈속임을 가려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평등'이다. 인권의 기본 축은 자유와 평등이며 인권운동은 항상 '평등'의 땅을 굳건히 딛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서준식에게 사랑이란 인생 자체로 보여주는 이타심이다. 정의에 대한 요구란 세상을 향한 애정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그것뿐이 아니니 한 마디만 더하자. 나는 서준식같은 인간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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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벅차올라서 쓰신 글인 걸 느낄 수 있습니다.

hoyahan1 2005-10-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준식 선생의 글을 읽으면 누구나 진심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그의 힘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