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유디나는 20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소련에서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산 피아니스트이다. 호로비츠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망명을 해 자신의 예술을 세계에 알린 것에 비해 폐쇄적인 사회의 예술가로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서방의 어느 예술가에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스탈린이 사랑한 피아니스트라는 닉네임도 그녀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던 듯 스탈린의 총애를 '신을 믿고 회개하라'는 답장으로 화답한 강철의 여인이기도 하다. 공산주의 하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가난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리아 유디나는 망명을 한 예술가들 못지 않게 굳건히 자기 세계를 지켰던 사람이고, 공산주의 하에서는 진정한 예술가가 있을 수 없다는 편견을 명쾌하게 깨버리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마리아 유디나의 피아노 연주는 선명하고 힘차다. 여성 피아니스트에게 선명한 음색을 가졌다고 하면 힘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선명한 음색을 내는데 힘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음 하나가 또렷또렷하게 들리기로 유명한 굴다의 연주도 마리아 유디나에 비하면 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굴다에게는 실례지만. 개인적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5번만 비교하자면 굴다보다 마리아 유디나의 연주가 훨씬 좋다. 5번 '황제' 2악장의 아다지오 부분의 연주는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저릿저릿할 정도이다. 임팩트가 강한 베토벤 음악중에서 너무나 조용한 부분이라 연주자에 따라서는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마리아 유디나의 연주로 인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됐다. 베토벤 음악의 백미는 꽈꽝꽝꽝 하는 터프한 부분보다 서정적인 부분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유디나의 연주는 그 자체로 최고의 선물이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더 바랄 수 없을 정도이다. 협주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환상의 호흡을 들려준다. 1948년 실황 녹음이라 요즘 음질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고졸한 느낌이 드는 것을 즐길 수도 있겠다. 좀 더 선명한 녹음 버젼으로 들으면 감동도 배가 되겠지 하고 굴다의 연주를 샀는데 한번 듣고는 다시 마리아 유디나의 베토벤으로 돌아왔다. 역시 녹음기술보다는 연주자의 기량, 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