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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부터 벽초 홍명희 옛 집터, 함석헌 기념관, 김수영 문학관, 연산군 묘 등을 순례했다.

도봉문화원과 연락이 닿아 연산군 자료집 몇 권을 얻었다. 가는 곳마다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함석헌 기념관이었다. 함석헌 기념관은 선생님의 묘소가 있던 연천(전곡읍 간파리. 내가 사는 곳은 전곡읍 전곡리) 이야기,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번역한 김용준 선생님과 선생님의 인연, 무교회주의의 우찌무라 간조와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곳이다.

김용준 선생님은 20대 초이던 1949년 봄 우연히 들은 선생님의 강연에 푹 빠져 ‘내가 본 함석헌‘이란 책을 쓰기까지 했다. 11년 전인 2006년의 일이다.

김용준 선생님은 자신의 전공인 유기화학 외에 모든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는 말을 했다.

일정을 마쳤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언주역까지 직행해 마감 직전에 병원에 들어가 위장약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이다.

연산군 자료를 펼치니 명성태황후 121주기 기신제 참반(參班)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명성황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왕후는 가냘픈 미인이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워서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석하고 야심적이며 책략에도 능할 뿐 아니라 매우 매혹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비숍 여사의 여행기를 출처로 하는 글이다. ‘연산군‘에는 의외로 단종의 시가 실려 있었다.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궐에서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는구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특별한 설명 없이 언급된 단종의 삶에 관한 글에 인용된 시이다.(이유가 궁금하다.) 너무 가슴 아픈 시이다.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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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사이 서촌(7일), 성북동, 혜화동(10일) 답사를 한 내게 김환기 화백(1913 - 1974)의 일화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서울도 당연히 배워야 할 텍스트이다.

서화숙 논설위원의 ‘마당의 순례자‘를 다시 읽은 덕이다. 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본다는 괴테의 말은 이런 때 사용할 말이다.

지난 2013년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진달래길이 실은 북한산이 아니라 인왕산에서 부암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다는데 거기도 가본 적이 없다. 내년 봄도 저 내년 봄도 있으니 천천히 가볼 것˝(105 페이지)이란 글을 보고 낭만에 빠졌었는데 오늘은 [˝이쪽은 환기미술관. 환기가 원래는 성북동에서 살았대. 그런데 가족이 미국에서 귀국해보니 옛날 한국을 떠날 때 성북동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이곳 부암동이더래. 그래서 환기미술관을 지었지. 저기 북악산 성곽 보이지?˝](5 페이지)란 글에 눈이 멈추었다.

옥선희 영화평론가가 ‘북촌탐닉‘이란 책에서 ‘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어도 이사왔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란 멋진 말을 했는데 서화숙 위원의 마을 사랑도 인상적이다.

지난 9월 19일 왕릉 연구팀이 번개로 서대문에 모였었다. 그때 프랑스 대사관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는 이 모임 이후인 9월 24일 정동에서 러시아 대사관을 해설했었다.

‘마당의 순례자‘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서대문구 부암동이라는 돌 문패를 단 집도 나온다. 건축가 김중업 씨가 프랑스 대사관을 지을 때 활용한, 시멘트 처마가 있는 집이다. 부암동이 1975년에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편입되었으니 이 집은 그 전에 지어진 집이다.˝(102 페이지)

줄줄이 이어지는 인연과 역사가 신기하다. 한번 읽은 책도 다시 읽을 거리를 만들어야겠다. 14일 김수영 문학관, 연산군 묘 등을 둘러보게 되는데 답사가 아닌 순례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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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심우장, 길상사, 수연산방 등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주역(周易) 강의를 알리는 벽보(壁報)를 보았다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조지훈 시인의 낙화(落花)’ 시비가 서 있는 곳 가까이에서이다. 지난 달 말 ()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에 수록된 여러 시들 가운데 낙화를 스타트로 읽었는데...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낙화를 책에서, 그리고 시비를 통해 연속으로 접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낙화는 아포리아(막다른 길) 같은 시인가? 나는 사실 이 점이 궁금해 이 시를 가장 먼저 읽었다정지용의 유리창‘, 이상의 오감도‘, 김수영의 등 대표적인 난해 시들을 제치고 낙화를 고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낙화가 어려운 이유들 중 하나는 ‘, ’주렴 밖에 성긴 별‘, ’귀촉도 우름‘, ’머언 산‘, ’촛불‘, ’하이얀 미닫이등의 시어들이 인과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시간적 선후 관계로 엮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265 페이지)

 

난해하다고 알고 있는 시가 난해하지 않은 시로 평가받는 경우보다 쉽다고 (잘못) 알아온 시가 난해한 시라는 판정을 받은 경우가 더 난감하다주역 강의를 하겠다는 분은 청고(靑皐) 이응문(李應文) 선생님이다. 검색을 해보니 이런 글이 뜬다.

 

일장기의 일장(日章)'암연일장(闇然日章)'이란 주역의 궤에서 유래한 것으로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걸친 것은 그 화려함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함인 것과 같이 군자의 도는 어두운 듯하나 날로 밝아온다는 의미인데 요즘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그와 반대되는 적연일망(的然日亡)의 소인배들의 모습이라는 글이다.

 

4년 전 기사인데 내게는 본격 강좌 시작 전에 맛보기로 제공하는 (무료) 강좌로 보인다문제는 강의가 이미 시작(125)되었다는 점. 1회의 강의이니 대장정이 될 것이다. 궁금한 것도 있고 주저되는 부분도 있다. 이야기 거리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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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 프랑스의 창조적 독서 치료
레진 드탕벨 지음, 문혜영 옮김 / 펄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은 자신을 문학을 이용한 독서 치료 즉 창조적 독서 치료를 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소개(30 페이지)하는 레진 드탕벨의 책이다. 독서 치료란 말은 1961'웹스터 인터내셔널 사전'에 처음 등장했다.(17 페이지) 독서 치료가 가능할 수 있는 부분은 언어가 우리의 가장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본보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16 페이지)

 

물론 저자가 명시하지 않았지만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가진 '삶의 혼돈을 다시 회복하게 해주는 질서'도 독서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는 부분이다.(48 페이지) 오늘날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은 문학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평범한 글쓰기에도 치유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3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독서치료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책이 지닌 모든 효과를 성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37 페이지) 저자는 독서 치료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라 할 시() 치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보자. 저자는 프랑스의 심리 치료사인 루시 기예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것은 시가 가진 신비한 힘은 리듬, 울림, 생각이라는 세 가지 힘이 합쳐져 생긴다는 말이다.(62 페이지)

 

시의 리듬은 인간의 모든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한다.(63 페이지) 물론 증상에 맞는 즉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시들은 따로 있다. 우리는 흔히 은유의 힘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사물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온다.(저자는 인간이 겪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들은 은유적으로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38 페이지..은유의 힘은 명법 스님의 '은유와 마음'을 참고하면 좋다.)

 

저자는 오직 은유만이 신체를 자극할 수 있고, 은유가 없다면 텍스트는 죽은 나뭇가지와도 같다고 말한다.(138 페이지) 스탕달 신드롬의 발원지인 스탕달의 일화를 보자. 스탕달 신드롬은 예술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못해 절망감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스탕달이 스탕달 신드롬에 (처음) 빠진 것은 이탈리아에서였는데 그때 그는 미칠 듯한 상태에 빠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고 포스콜로의 시집을 펴게 되는데 그 책에 스탕달을 미칠 듯 가슴 뛰고 절망스럽게 만든 대상들이 너무도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것이 은유의 힘이고 문학의 힘이고 독서치료가 가능한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의 독서치료를 기존의 그것과 차별화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동안의 독서 치료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책 읽기에 가깝다(81 페이지). 독서치료사로서 저자의 남다른 점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문학에 대한 수많은 사유를 선보인다.

 

저자는 자신은 처음부터 책에 애착을 느껴왔고 책의 빳빳함과 책의 판형에 애착을 느껴온 것 같다고 말한다.(191 페이지)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 오늘날의 저자가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강탈하고 가필하고 베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시절을 거쳐(203 페이지) 자신의 고유한 문학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문학은 빵처럼 발효하는 것(205 페이지)이고 독서에는 기분전환용 독서와 역량을 키워주는 독서 즉 글을 쓰게 만드는 독서가 있다는 점이다.(202 페이지) 저자는 독서 치료와 글쓰기 교실, 독서 치료와 필사 교실을 병행할 것을 주문한다.(91 페이지)

 

저자는 정신적인 것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읽기와 쓰기에 내재된 물질성에 대해 언급한다. "근육의 향연이 없으면 정신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99 페이지.. 이 말은 당신이 걷는 동안 떠오른 생각만이 가치 있다는 니체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서양 중세 수도원의 책 사본 제작소인 스크립토륨(scriptorium)에서는 동물 가죽의 표면에 글을 새겼다. 가죽을 자르고 무두질을 해서 그 위에 매우 뾰족한 도구로 생채기를 입혔다.(89 페이지) 오늘날과 매우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중요한 말은 낭송에는 근육의 즐거움이 있고 피부로 느껴지고 입으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저자의 말이다.

 

증상에 맞는 시를 처방하고 근육을 쓸 것을 권유하는 저자는 그것만으로 이미 독서 치료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저자는 텍스트는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읽히도록 만들어졌다고까지 말한다; 103 페이지) 책 읽는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없다.(103 페이지)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은 목소리의 진동에 어울리는 문체적 특성을 지닌 문학 텍스트를 매개로 신체기관의 가장 깊은 부위와 접촉하는 것이라 말한다.(109, 110 페이지) 물론 독서 치료사는 몸만 아픈 환자에 대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독서 치료사는 몸이 아픈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하려고 개입하는 사람이다.(178 페이지)

 

저자는 책에 긍정적 효과만이 있다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책은 약()도 되고 독()도 되지만 효과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은 예술이 삶의 삭막함을 대신해주고 혼란과 맞서도록 해주기 때문이다.(121 페이지) 이야기가 가진 고유 속성은 세상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

 

독서 치료를 절대로 하나의 단순한 처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처방은 아무 의미가 없다.(14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책 읽기는 빠져들었다가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는 유연한 종속 관계이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것이다. 또한 마음이 진정되었다가 흥분하고 다시 진정되기를 반복하는 감미롭고 주기적인 착란이다.(174 페이지)

 

이제 결론을 내리자. 독서 치료사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독서를 매개로 상상력과 창조력을 다시 갖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는 상상력, 자기 동일시, 해석을 통해 결핍과 빈곤함으로 인해 텅 빈 상태가 된 정신 공간을 채워준다.(181 페이지) 타인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독서 치료라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성을 풍성하게 하고 창조성을 발전시키는 일(113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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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가리라 아무 것도 부족할 것 없는, 광대하고 눈부신 축제 한가운데로..˝ 레진 드탕벨의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에서 읽은 빅토르 위고의 시이다.(전후 맥락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눈 내린 경복궁 사진을 페북에서 보던 찰나에 만난 시이다. 눈 내린 종묘 만큼 아름답다. 소담하게 내린 눈 풍경은 광대하고 눈부신 축제라는 말로 수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폭염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 8월 경복궁을 답사하던 순간이 떠오르는데 만일 지금 이 눈 속에서 경복궁을 답사 또는 해설 해야 했다면 아무 것도 부족할 것 없는 광대하고 눈부신 축제 한 가운데로 가겠다는 시를 평화롭게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혜화역에 내렸는데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있다. 낭만은 사라지고 현실이 펼쳐져 있다. 일과가 다소 질척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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