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뜻의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란 말은 잘 알려진대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이다. 열화당(悅話堂)이란 출판사의 이름은 바로 이 도연명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궁궐문화원 문화유산 전문해설사 36기 모임의 단톡방 대화에 나도 참여하며 내가 생각한 것이 바로 열친척지정화란 말이다. 즐거운 담소란 우리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나는 경복궁 해설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올렸고 이**님은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고추잠자리의 엘피 버전을 녹음해 올려주셨다.

 

이‘‘님은 이 방 남자분들은 너무 로맨티시스트라 감성을 잃어가는 아줌마에게 너무 버겁다는 글을 올렸다. 온통 정치색인 세상과 잠시 격리(?)된 채 한담(閑談)을 즐기는 것도 좋으리라...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만큼 원활하게 돌아오는 정치이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 현대 정치는 너무 타락했다. 사실 바른 정치는 시민의 현명한 참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되 문화적 감수성도 함께 간직하는 삶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가 이 겨울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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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박사의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성적 갈등이 큰 문제가 되던 예전과 달리 21세기인 지금은 이미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79 페이지) 그리고 이런 글도..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전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275 페이지)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정도언 박사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시대로 여겨질 법하다. 이현재 교수의 ‘여성 혐오 그 후, 비체가 된 사람들’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남성경제의 영역에서 분명한 것은 어머니든, 처녀든, 娼女든 모든 여성들은 남성경제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글(24 페이지)이다. “남성들은 재생산용 여성과 쾌락용 여성을 이분화하여 소유함으로써 여성혐오의 지배 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는 글(26 페이지)도 그렇다.


남성은 여성을 변함없이 성적 기준 또는 성적 지배구조적 관점에서 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성 혐오는 여성(이라는 일반적) 대상이 아닌 여성 비체를 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38 페이지) 비체는 “콧물, 침, 분비물을 뜻하는 비체(鼻涕)처럼 액체성을 지닌, 흐르며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하고 오염된 것이자, 기존의 언어와 질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비체: 非體)이다.(2016년 11월 11일 한국일보 더러운 주체 ‘비체’… 페미니즘의 주역이 되다)


비체는 아브젝트(abject)라 한다. 부정(否定) 접두사 a와 대상을 뜻하는 object의 합성어이다. 비체는 시뮬라크르와의 비교를 추동(推動)한다. 김혜순 시인은 “나는 그들이 붙여준 이름 그대로 마녀도, 미친 여자도, 괴물도, 매춘부도, 천사도 대모신도 아니다. 그러나 나를 가두는 각종 울타리, 미세한 권력들의 종소리 속에서 나는 미친 여자고, 괴물이고, 매춘부이고, 천사이며, 대모신”이란 말을 한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수록 ‘어머니와 처녀라는 허구’: 163 페이지)


자신의 글쓰기는 “안과 밖, 상위와 하위의 동시적 언술“이며 자신은 ”하나의 주체에서 또다른 주체로 끊임없이 흘러다“닌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신을 ”처녀이고, 어머니이고, 아기이고, 할머니”라 표현한다.(177 페이지) 내가 비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정끝별 시인의 ‘파이의 시학’(2010년 2월 출간)이란 평론집에서이다.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를 비체(아브젝트)로 분석한 글이다.


시인은 아브젝트의 상상력을 “부정(不淨)에 의한 부정(否定)”으로 정의한다.(‘파이의 시학’ 33 페이지) 먹고 마시는 행위를 “죄 많은 육체의 슬픈 필요“로만 여기는 초월적이고 금욕적인 세계관에 반항하는 음식과 관련한 흥겨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텍스트가 ‘질마재 신화’에 수록된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라는 시라고 한다. ”어머니(육체)로부터의 분리에 저항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물 중 하나가 숨이다.“(‘파이의 시학’ 37 페이지)


또한 크리스테바가 말했듯 ”억압과 공포를 심하게 느낄수록 우리는 말을 더 많이 한다. 말이 가득 찬 입으로 말하면서 금기의 원인인 어머니를 배출하고 그 금기가 수반하는 억압과 공포를 치료한다.“(‘파이의 시학’ 50 페이지) 김혜순 시인과 정끝별 시인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어머니이다. 김혜순 시인은 ‘어머니 - 모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란 글에서 ”한 시인이 계속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안의 어머니를 발견해나가는 길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53 페이지)고 운(韻)을 뗀 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점점 더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되며, ”쾌락을 원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더한다.(60 페이지)


”지금은 이미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기 어려운 시대“라는 말에 반하는 말이다. 이래서 정신분석학이 가부장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정신분석을 가부장적인 제도가 되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 해야 할 듯 하다. 물론 나는 이와 별도로 정신분석학이 자아심리학, 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 등에 의해 영토가 넓어졌다는 말(‘프로이트의 의자’ 275, 276 페이지)에 수긍하고 그런 현상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신분석의 영토를 넓힌 것 가운데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대상관계이론이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대상은 사람을 의미한다.(‘프로이트의 의자’ 81 페이지, 177 페이지) 정신분석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은 늘 대상을 찾으려 한다는 말이다. 프롬은 전이(轉移)를 책임을 맡아줄 누군가를 갖고자 하는 욕구로 본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7 페이지)


갖고자 하는 누군가는 어머니,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누군가, 칭찬과 벌을 주고 훈계와 가르침을 주는 아버지일 수 있다. 프롬은 흥미로운 말을 한다. ”자신의 우상으로, 신으로 택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하는 모든 인간의 상황이 일반적 의미에서의 전이의 개념“(‘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7 페이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상 관계이론은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인데 프롬은 그 자신이 아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있다고 해도 현재 그 자신이 충분히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한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프롬은 어떤 이가 그의 어린 시절의 중요한 사람 즉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느꼈던 정서를 치료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전이 개념은 ”너무 협소“하다고 말한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6 페이지) 프롬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대상을 숭배하는 것, 이념적 우상에 목숨을 거는 것 등은 전이 현상 때문이다. 프롬에 의하면 신으로 선택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하는 모든 인간의 상황이 일반적 의미에서의 전이이다.


프롬은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매우 강력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앞으로 나가려는 것으로 한 아이의 탄생 즉 어머니의 자궁을 박차고 나오려고 치받던 충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2 페이지) 앞으로 나가려는 강항 경향성은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의 글은 스타니슬라프 그로프의 글과 비교하게 한다. 인간의 공격성을 해명하는 글에서 그로프는 프롬이 악질적 공격성(maglinant agression)이라 표현한 인간의 폭력성은 동물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코스믹 게임’ 254 페이지)


인간계는 과잉 폭력성의 계가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주산기(周産期: 출산 전후의 기간)의 고통을 나타내난 표현들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거나 전쟁을 선포했던 군사,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코스믹 게임’ 256 페이지)은 흥미롭다. 그들은 적들이 우리의 목을 졸라 숨을 막히게 하고, 폐에서 마지막 숨을 짜내고, 우리에게서 생존 공간을 빼앗아간다고 비난한다고 한다. 표사(漂砂), 어두운 동굴, 복잡한 미궁,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심연, 빨려들거나 삼켜질 위험 등도 흔히 언급되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공격성의 원인을 주산기로 돌리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것이 그로프의 진단이다. 공격성의 뿌리는 개인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는 초개아적 영역에까지 뻗어있다는 것이 그로프의 주장이다. 비체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것에 단서가 될 이야기를 그로프는 한다. 육신을 지닌 존재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거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태도는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코스믹 게임’ 269 페이지) 그로프에 의하면 물질계를 포함한 경험계들은 그저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분화되지 않은 창조 원리를 보완해주는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물론 물질 영역의 대상과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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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를 넘어 겨울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몇 군데 박물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개인적으로 경복궁 해설을 한 콘텐츠 하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은 서대문 자연사박물관과 남양주의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이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은 이종필 교수가 학생들에게 관람을 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를 냈다는 글을 보고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고 남양주 자연사박물관은 비교의 마음이 작용해 가고 싶은 곳이 된 경우이다.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은 그제 친구 모친 장례식에서 알게 된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싶어 찾으려는 것이다. 언제일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선 12월 23일 나는 이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해설사와 그분의 다섯 친구(모두 여자)분들을 상대로 경복궁 해설을 해야 한다. 모두 교양과 지적 열의를 가진 이 여섯 여자분들께 해설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지난 주 시연을 한 경복궁 단청 콘텐츠가 새롭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물론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은 장애인 성폭력 상담사로도 활동하는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해설사에게 글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나타 형식의 제시부를 응용해 정전인 근정전에서 시작하는 동선이 아닌 근정전을 마지막 순서로 설정한 내용이,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는 그 분들의 마음에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조언을 청해 결정할 생각이다. 새롭고 창의적이되 쉽게 풀어쓰는 내공을 발휘해야 한다. 준비하고 생각하고 스피치 연습을 해야 하는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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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인문학 -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9인의 사유와 통찰
전병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인문학이란 말(궁극의 인문학 28 페이지)을 들으면 대화의 필요성,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지능에서 중요한 것은 남이 못 본 것을 연결하거나 없던 것을 상상해내는 능력이란 말(30 페이지)은 독서와 생각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최근 나는 경복궁 단청 시연을 했다. 정전(正殿)인 근정전부터 시작해 사정전, 천추전에서 마무리하는 순서를 뒤집어 사정전, 천추전, 근정전의 순서로 했다. 소나타 형식에 맞춘 것이다. 종결주제를 가장 나중에 배치한 것이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인문학은 ‘왜?‘라는 질문을 하는 데에 중요성이 있음을 알게 한다. 이태수 교수의 말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인문학이란 본래 항상 근원을 캐려 드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 하게 돼 있다는 말(16, 17페이지)이다. 김대식 교수는 진정한 이과(理科)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67 페이지) 김대식 교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진화생물학의 토대를 깔고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으며(71 페이지) 사회의 모든 현상을 뇌과학으로 설명하려 해서도 안된다(72 페이지)고 말한다.


김대식 교수는 반복된 생활이나 뻔한 생각들보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87 페이지) 정보를 수동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역동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뇌 인지 능력에 좋다고 한다. 다양한 운동, 신선한 공기, 멀티 비타민, 충분한 수면, 건강한 음식, 소식 등도 중요하다. 유발 하라리는 생물학은 역사의 기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95 페이지)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힘(지배력)을 얻는 데는 극도로 우수하지만 그 힘을 자신의 행복으로 바꾸는 데 있어서는 그 만큼 우수하지 못할 뿐더러 훨씬 능력이 떨어지기에 힘은 선조들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그들보다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96 페이지) 하라리는 인간의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상력은 인간 특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간 불행의 씨앗이라 말한다.


기지(旣知)의 사실이다. 농업으로 인해 인류는 쌀과 같은 단일 식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영양실조, 병해충은 물론 사회적 서열화와 착취, 가부장제 등의 길을 열었다. 하라리는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개별 인간을 초월하는 법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인간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체계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종교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라리는 역사에 어떤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18 페이지) 하라리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역사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라 말한다. 하라리는 인간의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상력은 인간 특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라리는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개별 인간을 초월하는 법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인간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체계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종교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하라리의 결론이다.(122 페이지) 하라리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고 우리 머리를 좀 더 자유롭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가능한 미래들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122 페이지) 역사를 모르면 역사의 우연적인 것들을 진정한 본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서양사학자 주경철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생각을 흔한 오해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반복된다면 예측이 가능할텐데 그렇지가 않으며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예측이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128 페이지) 주경철 교수는 역사는 학교 수업이나 교과서를 통해 알아온 것이 아니라 문학(과거), 티브이 사극, 영화, 인터넷(현재) 등 가외(加外)의 것을 통해 알았다고 말한다.(135 페이지) 주경철 교수는 전문 연구자들의 노력과 일반인들의 역사 인식, 양자가 모두 튼튼하고 서로 교감해야 하는데 양자 모두 부실하고 관계도 미약해 보인다고 말한다.(136 페이지)


주경철 교수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는 건 세상에 없고 해석된 역사가 진리라 말한다. 문제는 이렇게 말하면 양자가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자료)과 상상은 배타적이지 않다. 최대한 많은 사실을 확보해야 상상이 가능해진다.(141 페이지) 주경철 교수는 역사는 해석된 기억이자 꼼꼼한 상상이라 말한다. 역사가는 예측이 아닌 해석을 한다는 것이 주경철 교수의 결론이다.(142 페이지)


김대식 교수가 진화생물학, 뇌과학 환원주의를 잘못된 것으로 보았듯 주경철 교수도 자본주의를 정의라고 보는 것도 원흉으로 보는 것 모두 문제라 말한다.(151 페이지) 인지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과학이 이성적으로 전진하는 것은 과학자 개인들이 대단히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동료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과정(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려면 동료 리뷰: peer review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을 통해 합리성이 발현된다고 말한다.(189 페이지) 과학자들도 어쩔 수 없이 자기 이론을 편애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직감하고 그 느낌을 사수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애써 사후 정당화의 근거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190 페이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21세기는 전통적인 계층적 지식구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 지식(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229 페이지) 빅데이터 분석가 송길영은 여성이 변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고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한 것이라 말한다.(276 페이지)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글이란 보태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민 교수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결성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군더더기를 빼는 것이다. 형용사와 부사를 적게 쓰라는 말이다. 정민 교수는 한 글자만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이정우 교수는 주희朱熹의 세계는 음표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무너질 듯한 조화로운 교향악의 세계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인간의 얼굴‘ 124 페이지)


정민 교수는 글에는 여운이 있어야 한다, 절대 다 말하면 안 된다, 그러낼 듯 감춰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의미가 전달되는 글을 써라 등의 옛 말을 전한다.(300 페이지) 정민 교수는 독서에서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 중하나가 다독(多讀)의 개념이라 말한다. 같은 책도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이 있고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야 할 책이 있고 목차만 봐도 대개 알 만한 책이 있고 한두 장만 읽어보면 더 볼 것도 없는 책도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독서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3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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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한 필진이 공개되었다. 내 궁금증은 내가 읽은 역사책의 저자와 참여 필진들이 얼마나 겹치는가, 이다. 단 한명이고 근현대사가 아닌 조선사를 담당했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조선사 담당 필진은 세 사람이다. 한 기사는 현대사 집필을 맡은 7명 중 순수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참여해 역사 왜곡(이 말이 거슬린다면 편향된 역사의식 표출이라 하자)을 한 것이 순수 역사학자가 아니어서는 아님을 감안하면 문제 있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관에 문제를 보이는 것은 계급의식 때문이다. 어떻든 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조선사 부분을 맡은 사람의 책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유연하게 처신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 책들을 읽는 것 못지 않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글쓰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논한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그래서 역사에 담긴 숨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애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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