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박사의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성적 갈등이 큰 문제가 되던 예전과 달리 21세기인 지금은 이미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79 페이지) 그리고 이런 글도..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전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275 페이지)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정도언 박사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시대로 여겨질 법하다. 이현재 교수의 ‘여성 혐오 그 후, 비체가 된 사람들’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남성경제의 영역에서 분명한 것은 어머니든, 처녀든, 娼女든 모든 여성들은 남성경제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글(24 페이지)이다. “남성들은 재생산용 여성과 쾌락용 여성을 이분화하여 소유함으로써 여성혐오의 지배 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는 글(26 페이지)도 그렇다.


남성은 여성을 변함없이 성적 기준 또는 성적 지배구조적 관점에서 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성 혐오는 여성(이라는 일반적) 대상이 아닌 여성 비체를 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38 페이지) 비체는 “콧물, 침, 분비물을 뜻하는 비체(鼻涕)처럼 액체성을 지닌, 흐르며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하고 오염된 것이자, 기존의 언어와 질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비체: 非體)이다.(2016년 11월 11일 한국일보 더러운 주체 ‘비체’… 페미니즘의 주역이 되다)


비체는 아브젝트(abject)라 한다. 부정(否定) 접두사 a와 대상을 뜻하는 object의 합성어이다. 비체는 시뮬라크르와의 비교를 추동(推動)한다. 김혜순 시인은 “나는 그들이 붙여준 이름 그대로 마녀도, 미친 여자도, 괴물도, 매춘부도, 천사도 대모신도 아니다. 그러나 나를 가두는 각종 울타리, 미세한 권력들의 종소리 속에서 나는 미친 여자고, 괴물이고, 매춘부이고, 천사이며, 대모신”이란 말을 한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수록 ‘어머니와 처녀라는 허구’: 163 페이지)


자신의 글쓰기는 “안과 밖, 상위와 하위의 동시적 언술“이며 자신은 ”하나의 주체에서 또다른 주체로 끊임없이 흘러다“닌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신을 ”처녀이고, 어머니이고, 아기이고, 할머니”라 표현한다.(177 페이지) 내가 비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정끝별 시인의 ‘파이의 시학’(2010년 2월 출간)이란 평론집에서이다.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를 비체(아브젝트)로 분석한 글이다.


시인은 아브젝트의 상상력을 “부정(不淨)에 의한 부정(否定)”으로 정의한다.(‘파이의 시학’ 33 페이지) 먹고 마시는 행위를 “죄 많은 육체의 슬픈 필요“로만 여기는 초월적이고 금욕적인 세계관에 반항하는 음식과 관련한 흥겨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텍스트가 ‘질마재 신화’에 수록된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라는 시라고 한다. ”어머니(육체)로부터의 분리에 저항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물 중 하나가 숨이다.“(‘파이의 시학’ 37 페이지)


또한 크리스테바가 말했듯 ”억압과 공포를 심하게 느낄수록 우리는 말을 더 많이 한다. 말이 가득 찬 입으로 말하면서 금기의 원인인 어머니를 배출하고 그 금기가 수반하는 억압과 공포를 치료한다.“(‘파이의 시학’ 50 페이지) 김혜순 시인과 정끝별 시인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어머니이다. 김혜순 시인은 ‘어머니 - 모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란 글에서 ”한 시인이 계속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안의 어머니를 발견해나가는 길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53 페이지)고 운(韻)을 뗀 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점점 더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되며, ”쾌락을 원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더한다.(60 페이지)


”지금은 이미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기 어려운 시대“라는 말에 반하는 말이다. 이래서 정신분석학이 가부장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큰 갈등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정신분석을 가부장적인 제도가 되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 해야 할 듯 하다. 물론 나는 이와 별도로 정신분석학이 자아심리학, 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 등에 의해 영토가 넓어졌다는 말(‘프로이트의 의자’ 275, 276 페이지)에 수긍하고 그런 현상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신분석의 영토를 넓힌 것 가운데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대상관계이론이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대상은 사람을 의미한다.(‘프로이트의 의자’ 81 페이지, 177 페이지) 정신분석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은 늘 대상을 찾으려 한다는 말이다. 프롬은 전이(轉移)를 책임을 맡아줄 누군가를 갖고자 하는 욕구로 본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7 페이지)


갖고자 하는 누군가는 어머니,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누군가, 칭찬과 벌을 주고 훈계와 가르침을 주는 아버지일 수 있다. 프롬은 흥미로운 말을 한다. ”자신의 우상으로, 신으로 택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하는 모든 인간의 상황이 일반적 의미에서의 전이의 개념“(‘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7 페이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상 관계이론은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인데 프롬은 그 자신이 아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있다고 해도 현재 그 자신이 충분히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한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프롬은 어떤 이가 그의 어린 시절의 중요한 사람 즉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느꼈던 정서를 치료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전이 개념은 ”너무 협소“하다고 말한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6 페이지) 프롬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대상을 숭배하는 것, 이념적 우상에 목숨을 거는 것 등은 전이 현상 때문이다. 프롬에 의하면 신으로 선택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하는 모든 인간의 상황이 일반적 의미에서의 전이이다.


프롬은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매우 강력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앞으로 나가려는 것으로 한 아이의 탄생 즉 어머니의 자궁을 박차고 나오려고 치받던 충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152 페이지) 앞으로 나가려는 강항 경향성은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의 글은 스타니슬라프 그로프의 글과 비교하게 한다. 인간의 공격성을 해명하는 글에서 그로프는 프롬이 악질적 공격성(maglinant agression)이라 표현한 인간의 폭력성은 동물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코스믹 게임’ 254 페이지)


인간계는 과잉 폭력성의 계가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주산기(周産期: 출산 전후의 기간)의 고통을 나타내난 표현들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거나 전쟁을 선포했던 군사,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코스믹 게임’ 256 페이지)은 흥미롭다. 그들은 적들이 우리의 목을 졸라 숨을 막히게 하고, 폐에서 마지막 숨을 짜내고, 우리에게서 생존 공간을 빼앗아간다고 비난한다고 한다. 표사(漂砂), 어두운 동굴, 복잡한 미궁,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심연, 빨려들거나 삼켜질 위험 등도 흔히 언급되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공격성의 원인을 주산기로 돌리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것이 그로프의 진단이다. 공격성의 뿌리는 개인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는 초개아적 영역에까지 뻗어있다는 것이 그로프의 주장이다. 비체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것에 단서가 될 이야기를 그로프는 한다. 육신을 지닌 존재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거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태도는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코스믹 게임’ 269 페이지) 그로프에 의하면 물질계를 포함한 경험계들은 그저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분화되지 않은 창조 원리를 보완해주는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물론 물질 영역의 대상과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