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들을 때는 더욱 지금이 봄이 아니라 겨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을 유난히 어렵게 보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지금이 겨울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드러난 것일까?

겨울 뿐 아니라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계절을 느끼게 하는 곡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음악이 아닌 표제음악이라 해도.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도 다르게 듣고 느낄 수 있다.

전통 그대로 휘몰아치는 겨울 한풍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한 비발디의 ‘겨울‘도 격정을 표현하거나 긴박한 상황을 묘사한 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

물론 플룻 연주로 듣는 멘델스존의 ‘무언가‘처럼 가볍고 작고 사랑스러운 곡에 다르게 들을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행동경제학이 있는 것처럼 행동음악학이란 학문도 있을 법하다.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인간은 온전히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심리학은 오늘 내가 두 음악을 들으며 보인 마음의 움직임을 무엇이라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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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 2017-03-26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개 바이올린 소나타/소곡이나 실내악은 가을에 어울린다고들 하는데, 파형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에 따라 인간이 반응하는 정도의 경계를 나름 수치화해서 보여줄 수 있다면 (20년 내로는 될 겁니다) 확실히 계절에 맞는 음악을 알 텐데요. 재밌는 주제입니다.

비발디가 유명하지만 비슷한 표제로 차이콥스키의 소곡집을 빼놓을 수 없죠.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러시아가 늦게까지 쓰던 율리우스력을 고려해도 어쩐지 잘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러시아를 다녀오면 달라지려나, 모르겠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3-2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거리를 주시는 댓글 감사합니다. 빛과 소리가 상이한 듯 하지만 파동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계절에 맞는 파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MIO 2017-03-27 14:36   좋아요 1 | URL
음! 계절별 체광량이나 심지어 산란량에 따른 하늘 색 같은 것도 다르니 빛과 소리가 또 그리 엮일 수도 있겠군요. 재밌네요. 기분좋은 의외성을 찾게 됐습니다. :)

벤투의스케치북 2017-03-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 부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과학 분야에서 일본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대단하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분야도 고르다. 원자핵 공학을 공부한 뒤 신경 생리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연구자인 고토 히데키의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노벨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일본 과학의 위상과 저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일본 과학의 위상에 감탄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이 뿌리고 거둔 과학 발전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과학의 여명, 전쟁과 과학자, 패배로 빛나다, 의사 대 과학자, 일본인과 노벨상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도 시사적이다.

책의 앞 부분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등장한다. 물리를 통해 서양 사고를 공부하게 한 의사 출신의 지식인으로 이상주의자보다 현실주의자의 길을 간 선구자이다. 그가 서양 학문에 주목한 것은 부국 강병 차원이었다. 일본은 개국에 즈음해 서양 기술과 학문을 배우며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혼신을 다했는데 이는 주변 국가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메이지 신정부는 법률, 어학, 광산학, 건축, 야금학, 화학, 축산, 의학,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신지식을 맹렬한 속도로 받아들였다. 국위와 국력과 직결되는 것들이었다. 아드레날린을 발견한 다카미네 조키치, 각기병에 효과를 내는 오리자닌(Oryzanin)이란 쌀겨 추출물을 만들어냈지만 노벨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스즈키 우메타로 등의 이야기도 읽을 만하다.

‘벽암록’에 출처를 둔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이 있듯 과학 발전에도 사제 관계는 중요하다. 줄탁동기란 알 안에서 쪼는 줄의 시간과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알을 깨트리는 탁의 시간이 같아야 온전한 병아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이다.

저자는 사제 관계를 방목형과 군대형으로 나눈다. 방목형은 소수파이지만 제자에게 원하는 연구로 자유롭게 하는데 의외로 제자가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방목형의 대표는 일본 최초(1949년)의 노벨상(물리학)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와 2008년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난부 요이치로 등이다.

군대형은 제자를 엄격하게 단련시키고 제자를 통해 업적을 쌓는다. 물리학자 나가오카 한타로가 대표적이다.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하이젠베르크와 폴 디랙을 평가한 부분도 흥미 있게 읽힌다. 하이젠베르크는 열정적인 엘리트가 예상되었지만 밝은 스포츠맨 유형이고 디랙은 과묵하고 항상 생각이 많은 철학자 유형이었다고 한다.

유카와 히데키, 도모나가 신이치로 등 노벨상 수상자들을 길러낸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니시나 요시오는 원자핵이 플러스인 양성자와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가 모여 있기에 같은 플러스 전하끼리 반발해 흩어지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새로운 소립자를 가정했다. 이것이 중간자(meson)의 시초이다.

히틀러의 적대(敵對) 정책으로 독일에서 쫓겨난 유대인 과학자들이 미국에 거주하며 우라늄 농축에 성공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일본은 이 점에서 생각을 잘못한 것이었다. 만주 731 부대에 파견되어 아이들을 상대로 동상(凍傷) 실험을 해 물의를 일으킨 요시무라 히사토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한 대학에서 “의과는 병과(兵科)여야 한다. 사람 죽이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말도 나왔었다. 731 부대에서는 물만 마시고 얼마나 살 수 있는지도 실험했다. 포로들인 마루타는 수도물의 경우 45일을 살았지만 미네랄이 없는 증류수로는 33일만에 사망했다. 어떤 군인은 유행성 출혈열에 걸린 환자의 혈액을 중국인에게 접종해 병에 감염되게 했다. 의사 뿐 아니라 과학자 대부분이 군 연구에 종사하고 있던 시대였다.

유카와 히데키는 공부에 몰두하면 중얼중얼하면서 몇 시간이나 연구실 안을 곰처럼 어슬렁거렸다. 이 버릇이 시작되면 도모나가는 도서관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유카와 히데키는 오카와 히데키였다. 그런 그가 유카와 히데키가 된 것은 유카와 집안의 데릴 사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히데키의 아내인 스미(スミ)가 일본인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냐고 묻자 히데키는 자신이 노벨상을 받을 계획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스미는 집안일을 전부 할 테니까 당신은 노벨상을 꼭 받아 주세요란 말을 했다.

일본은 레이더, 원폭, 페니실린 등 전쟁의 국면을 좌우하는 개발 경쟁에서 미국에 모두 패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관계에 의하면 힘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수록 그것을 중개하는 입자는 가벼워 먼 거리를 재빨리 날아간다. 전기적인 힘의 경우 두 전하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약하지만 서로 당긴다. 전기력은 가장 멀리까지 작용하는 힘이다. 그에 부합해 광자는 무게가 없다.(203 페이지)

유카와 히데키는 첫 논문을 쓸 때 군더더기를 싫어해 문장을 계속 간결하게 수정했다. 심지어 문장에 적합한 단어는 단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단어 선택에 극도로 신중을 기했다. 유카와는 시퍼렇게 간 칼날 같은 날카로운 문장을 썼다. 유카와는 이론은 관계가 있는 모든 현상을 설명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하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논문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48년 유카와는 미국 동부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초청을 받아 일본을 떠났다. 저자는 이를 두뇌 유출(brain drain)이라 말한다. 유카와 부부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원리(질량 에너지 등가이론)를 발표했기 때문에 원폭이 개발되어 당신 나라의 두 곳에서 많은 살상자가 발생했다며 자신의 책임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유카와는 원자핵에서 매력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여 있기 때문에 플러스라는 같은 전하를 가진 양성자들의 반발 작용으로 흩어져야 하는데 결합되어 있다. 유카와는 전자기력, 중력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 뒤 그것을 해명하고자 했다. 유카와는 불확정성 관계에 의거해 핵력을 중개하는 새로운 입자의 무게까지 산출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동양인이 양자역학의 핵심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카와는 이론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첫 물리학자이다. 유카와의 이론은 당시까지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계산만으로 소립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명확하게 제시했다.(225 페이지)

도모나가 신이치로에게 늘 뒤져있던 유카와가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중간자 이론 발표로 인해서이다. 1965년 도모나가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슈윙거, 파인만과 함께. 물론 두 미국인은 도모나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공식 수상 기록에 도모나가의 이름을 첫 번째로 올렸다. 훨씬 앞서 이론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드물지 않았지만 일각에서 의학생리학상은 무리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런데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가 그 상을 탔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시모무라 오사무는 제약회사 면접에서 당신은 회사에 맞지 않습니다란 말을 들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물리 연구는 이론과 실험으로 나뉜다. 유카와는 손재주가 없었고 도모나가는 손재주가 좋았다. 볼프강 파울리는 이론 물리학자 동료들이 무서워할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빨랐다.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조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서 귀찮은 실험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손재주는 너무 없었다. 극단적인 기계치였다.

문제에 착수할 때 이론물리학자들은 영향이 작은 것을 전부 없앤다. 그런 미미한 요소를 식에 포함시켜 풀어보면 복잡해질 뿐이고 결론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모델을 만들어 대략적인 풀이를 생각하는 것을 정성적(定性的) 연구라 한다. 이 정성적 연구에는 고도의 이론적 감각이 필요하다. 이론 물리학자에게는 수식보다 아이디어가 중요했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수식 자체는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은 아인슈타인 한 사람이다. 유카와의 중간자 이론도 수식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중간자를 설정해서 그것의 주고받음으로 힘이 발생한다는 아이디어가 훌륭했던 것이다.

양자(量子)라는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이 제안했다. 그는 빛이 광자라는 입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 양자에 확률 해석을 가해 양자역학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확률 해석에 동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에 반대했다. 난부 요이치로는 끈이론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초끈이론의 시초가 되었다.

난부는 대칭의 세계(물질과 반물질의)라면 빅뱅 당시 에너지로부터 같은 수로 탄생한 입자와 반입자가 합쳐져 전부 사라져야 하는데 한쪽의 세계만이 현재 남아 있다는 것은 자발적인 대칭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현대의 서양 기술은 그 밑바탕에 있는 생각을 배우지 않는 한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의를 드러내며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 말한다. 이익의 논리에서 이치의 논리로 중심을 옮겨 직시하지 않으면 비극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377, 378 페이지)

후쿠자와 유키치(19 세기 일본의 계몽 사상가, 교육자)는 일본이 외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유형의 학문 가운데 물리를 특히 중시했다. 하지만 그 마음의 밑바탕에는 학생들에게 무형의 사상성을 키우려는 생각이 있었다. 저자는 유카와 히데키를 동경해 이론 물리학을 공부했다. 흥미와, 그 이상의 의미와 교훈을 주는 책으로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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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3-26 0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인들이 과학기술에서 뛰어난 것은 어떤 원인(까닭)에서일까요?

일본 아니메가 전세계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까지도)을 사로잡고 있죠. 아이들의 속성은 순진무구함, 순수함, 꿈, 미지에 대한 동경, 왕성한 호기심, 청순발랄함, 끊임없이 샘솟는 희망스런 존재, 등등이랄 수 있죠. 이런 속성을 일본 아니메가 가장 잘 표현해내기 때문에 전세계 아이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는 문화적 코드가 됐다고 봅니다.

과학기술력, 공학력, 극도로 섬세하고 정밀한 제조력, 인간 심성의 뿌리를 자극하는 동심의 아니메력, 원본보다 더 원본스러운 복제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방력,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의 모든 능력을 파악해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자기파악력 · 지피지기력 · 자기운용력, 제3자적 관점력, 이 모든 것을 결합해 폭발적 시너지로 창출하는 막강한 정책력 · 경제력 ― 이런 것들이 일본의 힘의 원천이라고 봅니다.

저런 능력들은 결국은 (단순화하는 것이긴 하지만) 감각의 능력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감각의 능력이란 다름 아닌 뇌의 능력이죠. 일본인들의 감각 능력은 그 예민함, 섬세함, 정밀함, 날카로움에서 인류 최강 수준이랄 수 있죠. 그건 일본인들이 처한 환경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뇌는 뇌가 처한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죠. 환경이 감각을 키우고 뇌를 키우는 제1의 요소 · 기제 · 조건이기 때문이죠. 일본인들은 지구 인류가 처한 그 어떤 환경보다 뇌 자극적인 환경에 진화역사적으로 처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지구적 환경은 뇌 발달한테는 최상의 환경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들한테는 치명적인 약점 혹은 원천적 결함 혹은 근원적 한계가 있죠. 이 약점 · 결함 · 한계 때문에 일본은 결코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처럼 국가적 단위에서, 다시 말해 전국민적 단위에서, 악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몇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메의 나라, 동심의 나라, 순진무구하고 청순발랄한 아니메의 나라, 그러나 국가적 단위로 악의 모의하는 반인류성의 나라 ― 일본의 지독한 뿌리깊은 원천적 모순이자 비극의 씨앗이죠.

이런 상극이 서로 통하는 일본적 원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왜 일본은 결국은 파멸 혹은 자멸할 수밖에 없을까요?

벤투의스케치북 2017-03-26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게 써주셨군요...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자가 과학자여서 그런지 과학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관심이 아니라 내공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참으로 많은 분야를 관련지어 생각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실험물리학자/ 입자물리학자인 리언 레더먼은 과학의 전 분야를 일렬로 세워서 피라미드를 쌓는 것은 다소 무례한 행동이라고 말하면서도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선배들의 격언을 한 마디 덧붙인다.
“물리학자는 오직 수학자에게만 경의를 표하고 수학자는 신에게만 경의를 표한다.”는.(‘신(神)의 입자(粒子)’ 38 페이지)

하이젠베르크는 최대의 난관은 수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 어느 점에서 자연에 연결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따지고 보면 결국 자연을 설명하자는 것이지 수학을 하자는 것이 아니잖는가?란 말을 한다.(‘입자, 인간, 자연에 대한 단상’ 77 페이지)

물리학자 폴 핼펀은 “두 사람(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모두 수학에 열정이 있었지만 수학 그 자체를 사랑했다기보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사랑했다.”고 말한다.(‘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52 페이지)

일본의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는 이런 말을 했다. “역시 수학자가 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까지나 사고가 비약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이었다. 물 샐틈 없는 논리로 문제를 좁혀 들어가는 방법은 나의 기본적인 관심사가 아니었다˝(김범성 지음 ‘나가오카 & 유카와 : 아시아에서 과학하기’ 105, 106 페이지)

리언 레더먼, 하이젠베르크, 폴 핼펀, 유카와 히데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모두 물리학자다.

수학자의 말을 들어 보아야겠지만 가장 크게 관심을 끄는 것은 유카와 히데키의 말이다.

유카와가 말한 비약이란 유카와가 중간자(中間子: meson: 전자보다 무겁고 양성자보다 가벼운 소립자)의 존재를 예견한 것과 관련된 말이다.

유카와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전자를 주고받는다는 가정하에 핵력을 설명하려 했었던 하이젠베르크로부터 양자역학의 핵심을 유럽의 어느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토 히데키 지음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224 페이지)

최근 클래식 피아노 곡을 완벽하게 연주한 한 한국인 연주자가 현지(독일이었던가?) 언론으로부터 독일인보다 더 독일의 정서를 잘 이해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음악과 과학은 그 청출어람(?)의 면모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궁금하다.

음악 연주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가?

나는 각 민족이나 국가의 고유 정서가 있고 그것은 그 민족이나 국가의 구성원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갖는 공통의 정서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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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와 히데키(1907 – 1981)와 도모나가 신이치로(1906 – 1979)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 과학자들이다.

이론물리학자 유가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1949년으로 전 분야를 통틀어 일본 최초이다. 도모나가가 수상한 것은 1965년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1968년, 오에 겐자부로가 ‘만연 원년의 풋볼’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1994년이다.

유가와와 도모나가는 연구가 잘 되지 않을 때 죽음을 생각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이 가운데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사람은 유가와이다. 자서전에서 유가와는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이론물리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금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

유가와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많은 에세이를 썼다.(고토 히데키 지음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202 페이지)

유가와는 논문을 잘 쓰지 않아 학과장인 야기로부터 유쾌하지 않은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원래 도모나가를 초빙하려 했지만 자네 형님이 부탁을 해 어쩔 수 없이 채용한 것이며 도모나가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유가와는 야기를 마음 속에서 끊어냈다고 한다.

이렇듯 유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 페친의 글 때문이다. 도서 디자인 관련 편집 회의에서 이 책(과학책)은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다.

나는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쉽게 쓰기보다) 쉬울 것 같다는 인상을 갖도록 하는 것은 미끼 아니냐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사실 사기(詐欺)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미끼라 말한 것이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의 저자는 학자의 논문은 세일즈맨의 영업 실적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

순수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지만 할머니도 이해할 것 같다는 인상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략 차원으로 보고 싶다.

유가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중간자(中間子)의 존재를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예언의 배경에 유가와의 비범함이 있다. 어릴 적 한 절에서 형과 놀다가 넘어진 일이 유가와에게 있었다고 한다.

넘어지면서 묘비에 머리를 부딪혀 울던 어린 유가와의 눈에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보였는데 그렇게 흩어지는 햇살을 보고 유가와가 상상한 것이 바로 무수한 별이었다고 한다.

어떻든 나뭇가지 사이로 곱게 흩어지는 햇살을 보고 무수한 별을 상상한 것도 인상적이고 성인이 되어 그 기억을 되살려 중간자를 떠올린 것도 예사롭지 않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다가 불확정성 원리의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의 사례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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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3-25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자의 논문은 세일즈맨의 영업 실적 같은 것‘이라는 말이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3-2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blueyonder님... 생각이 같아 반갑습니다...^^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테리 이글턴 지음, 조은경 옮김 / 알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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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는 무신론은 결코 쉬운 개념이 아니며 전능한 신은 진정 없애버리기 힘든 존재라는 전제하에 문화가 신을 대체하는 기제임을 주장한 책이다. 이글턴은 제도의 의미를 갖는 종교와 개인적 차원의 신앙을 구분하고 교회와 신을 구분한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럼에도,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 등의 부사(副詞)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 또는 신에 반()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결국 종교적이거나 신앙적인 면모를 보였거나 신학에서 유래한 개념들에 주된 초점을 두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기에 이글턴은 무정부주의자들보다 무정부주의란 개념이, 허무주의자들보다 허무주의란 개념이 무신론자들보다 무신론이란 개념이 먼저 등장했음을 언급한다. 이 중 무신론에 초점을 맞추면 결국 무신론자라 불린 사람들이 신을 저버린 게 아니었다는 말이 가능하다.

 

알랭 바디우의 행적도 도마(?)에 오른다. 즉 그는 열렬하게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신학적 내력을 가지고 있는 무한함(infinity)과 공허(the void)라는 개념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턴에 의하면 무신론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16세기이다.

 

계몽주의에 대한 논의도 관심을 끈다. 이글턴에 의하면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신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지몽매한 종교적 믿음을 런던 스트랜드 가()의 커피 하우스에서 일어날 법한 대화로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같은 차원에서 계몽주의가 종교를 공격한 것은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미개한 믿음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문명화된 믿음으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거론되었다.

 

계몽주의의 관심은 신의 죽음이 아니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이글턴은 계몽주의는 철학적인 글에 국한하지 않는 하나의 정치적 문화였다고 말한다. 계몽주의가 종교를 공격한 것은 신학적 차원에서라기보다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계몽주의자들은 신에 대한 사랑의 자리를 인류에 대한 헌신으로 대체했고 신성한 은총은 시민의 덕성으로 바꿔놓았다.

 

이글턴은 계몽주의는 정서적으로 그리고 상상의 근원으로는 너무 희박하고 상징적 관점은 너무 빈약해서 근대성에 자기정당화를 이룰 확실한 수단을 제공할 수 없는 형태의 사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주적 조화보다는 종교가 주는 위안에 더 관심이 많은 대중의 충성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45, 46 페이지)

 

도덕도 거론되었는데 이는 여러 가지 가명(假名)을 이용하며 숨은 신()의 이름 중 하나였다. 회의주의자 데이비드 흄은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별개의 것이고 진리는 두 개라는 의미를 지닌 이중진리론을 연출했다. 이성(理性) 역시 거론되었다. 이성은 그 자제로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어느 면으로 보나 점점 확실해지는 신의 부재에 그럴듯한 대체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성서의 하느님은 인격을 가진 존재인 반면 이성은 비인격적 거만함 때문에 명백하게 신 같지 않다고 이글턴은 말한다. 이글턴이 말하는 것은 딜레마 같은 현실이다. 물론 이성이 처한 딜레마이다.

 

전능한 신의 개입 없이 돌아가는 엄격하게 이성적인 세상은 모순되게도 자의적이고 비이성적인 신을 만들어내었고 신을 우주의 주변부로 추방하는 것은 신을 없어도 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의 신비성을 한층 깊게 만드는 행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글턴으로부터 이성은 사실과 가치를 연결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글턴은 신의 왕국은 현존하면서 부재하고, 인간 역사에서 모든 곳에 편재하지만 여전히 초월적 형태로 온다는 정통 기독교의 내부 갈등은 치명적일 정도로 느긋하다고 말한다.

 

이런 무능력한 이중성을 개조하는 일은 독일 관념주의자들에게 맡겨질 터였다. 근대의 역사는 신의 대리자를 찾는 일에 집중한 역사였다.(65 페이지) 신을 대체하는 문화를 이야기했지만 정신분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위 성직자, 고백 의식, 원죄 의식, 존재론적 죄책감, 신비스러운 법, 종파간 분립, 황당할 정도로 불가해한 무의식을 탐구하는 준() 신학적 방법 등을 갖춘 대용 종교를 만들어내기도 한 것이 정신분석이다.(66 페이지) 이글턴이 강조하는 바 아마도 신임을 잃어버린 신의 대역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문화일 것이다.

 

예술로 알려진 이미지의 보물 창고가 종교적 믿음의 경쟁관계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낭만주의가 도래한 다음일 것이다.(75 페이지) 이글턴은 영()인 아버지가 신체를 가진 아들로 구현(具現)되듯 이성이라는 영원한 관념이 예술이라는 초라한 물질에서 스스로를 명시(明示)한다고 말한다.(76 페이지) 절묘한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숭고한 진리를 매일의 품행으로 연결시키는 종교적 믿음을 대체하기에 예술은 소수적 성향이 강하다. 역사상 그 어떤 상징 체계도 종교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78 페이지)

 

시인이나 철학자는 세속의 성직자라는 지위를 부여받았고 예술과 신화는 일련의 신성한 의식과 유사한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주의로 인해 그리고 자연은 완전히 죽은 물질이라는 시들어버린 합리주의로 인해 고통받은 인간 정신도 치유되었을 수 있다.(83, 84 페이지)

 

자발적으로 종교를 세속적으로 다룸으로써 종교를 불명예스럽게 만든 바로 그 체계(자본주의)가 종교가 제공하는 상징적 통합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다.(86 페이지) 이글턴은 종교가 이미지, 의식, 이야기를 활용했듯 이성도 새로운 신화 또는 미학이라는 새롭고 흥미로운 담론을 이용했다고 말한다.(93 페이지)

 

이성과 감각을 연결하는 것이 미학의 역할이다.(94 페이지) 문화는 신의 세속적 이름이다.(102 페이지) 이글턴은 기독교의 중요 미덕으로 교육받은 자를 위한 것(신학)과 대중을 위한 것(헌신적 실천)이 따로 있는 것을 꼽는다.(107 페이지)

 

낭만주의자를 주제로 한 챕터에서 이글턴은 예술은 욕망을 정련 또는 숭고화시키는 작업으로 그 분열성을 진정시키면서 동시에 보편적 상태로 끌어올린다고 말한다. 자기표현과 미학적 균형의 필요조건 사이에 가능한 최상의 균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128 페이지)

 

절대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절대성의 존재를 느낀다. 절대성은 보여질 수는 있으나 말로 표현될 수는 없다. 아마도 절대성은 그저 규율적 관념이거나 편리한 가상, 본질적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는 분명 믿음과 신의 죽음 사이 어딘가에 갇힌 일종의 부정(否定)적 신학이다.(129 페이지)

 

()은 적극적 규정이 아닌 무엇이 아니라는 식의 부정의 방법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신학이 부정 신학이다. 낭만주의는 관념론자들과 신정론(神正論)을 공유한다. 인간은 다투고 불화하지만 이는 오직 미래의 조화에 필수적인 서곡일 뿐이다.(131 페이지)

 

상상력은 은총의 세속화된 형태이다. 상상력은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이 너머에서 자아를 붙잡고 그렇게 해서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방식으로 자아가 꽃피게 만든다. 상상력을 욕하는 것은 최소한 문학계에서는 일종의 신성모독이다.(133 페이지)

 

그러나 괴테의 말을 들어보자. 그에 의하면 상상력은 분열된 능력,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인 동시에 공포와 망상의 근원이다.(135 페이지) 상상력에는 라캉의 실재와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적 요소가 있다. 상상력은 통합적이기보다 분열적이다. 상상력에는 은혜로움 뿐 아니라 신성의 공포가 있다.(136 페이지) 워즈워스는 이런 사나운 힘을 우화시키고 길들이는 것이 시의 임무중 하나라고 보았다.

 

근대성이 진정한 무신론을 성취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해보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마침내 무신론을 달성했을 때도 결코 종교적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종교적 믿음을 타파해서 얻은 것은 아니었다.(155 페이지)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신은 항상 다른 모습을 하고 무대에 다시 등장한다. 문화는 과연 일반 대중과 지성인을 정신적 교감 안에서 하나로 묶으며 종교 이후 시대의 신성한 담론이 될 수 있을까?(158 페이지) 가능하지 않다.

 

계몽주의가 종교적 신념을 축출하는 데 실패했다면 관념론자와 낭만주의자들은 종교를 세속화하지 못했다. 우리의 경외감, 존경심, 의무감 등을 신에게서 인류에게로 돌리려 무던히 애를 쓴 허버트 스펜서, 조지 엘리엇, 조지 헨리 루이스 같은 19세기 합리주의자들에게 과학은 불가해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준종교적 활동이었다.(181 페이지)

 

예수에 대해 적확한 논리를 펼친 이글턴은 쇼펜하우어에 대해서도 선언적인 말을 한다. 쇼펜하우어는 일종의 종교적 이단자이자 그가 몹시도 시기한 헤겔의 악몽 버전이며 순수한 형이상학자라고.(196 페이지)

 

이글턴은 신이 죽어버린 후 욕망의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197 페이지) 니체가 볼 때 진정한 초인은 우주의 공허함에 맞서고 종교의 위안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과학자다.

 

신을 계속해서 생존하게 하는 다양한 인공호흡기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은 도덕이다. 이글턴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반대하며 라캉이 주장하듯 신이 죽었다면 우선 허락해줄 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자연에 대한 통치권과 으스대는 자기독립적 모습의 초인에게서 신에 대한 신성함의 기색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신이 결국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202 페이지)

 

이글턴은 마르크스의 사상 특히 초기 사고는 유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에 그에게서 진정한 무신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203 페이지) 니체의 초인이 문제이다. 즉 전능한 신처럼 초인도 오로지 자신에게 의지한다. 퇴행적으로 신학을 훔쳐보지 않으면서 자율성이나 자기생산을 말할 수는 없다.

 

좀더 넓은 의미의 문화는 종교의 공산주의적 정신과 같은 무엇인가를 보유한다. 과학, 철학, 문화, 그리고 정치는 종교의 쇠퇴에도 존속하며 제각기 그들만의 사업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사업을 유지하면서 종교의 임무 중 몇 가지를 나눠서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다.(221 페이지)

 

비극은 자유와 결정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쳤는데 그 한 가지는 혐오스러운 결정론을 섭리 또는 신이라는 좀더 고상한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227 페이지) 비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근대에 또다른 형태의 분열된 종교 역할을 했고 개념이라기보다 이미지의 문제로 더욱더 인상적인 존재감을 풍겼다.

 

미국의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는 어떤 사람이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 후 삶의 구원으로서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본질이 시라고 말한다. 스티븐스는 시와 훌륭한 음악이 천국의 빈자리와 찬송가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신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경제는 아마 순전한 무신론자일 수 있지만 경제를 감시하는 국가는 여전히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될 필요성을 느낀다.(246 페이지)

 

종교적 믿음과 관련해 인간은 역사상 가장 성공을 거둔 상징체계를 하루 아침에 버리지 않는다. 원리주의는 전지구적 교리다. 세상은 너무 심하게 믿는 자들과 너무 믿지 않는 자들로 양분된다.(248 페이지) 서구 자본주의는 세속주의 뿐 아니라 원리주의를 낳는 데도 일조한 셈인데 이는 가장 칭찬할 만한 변증법의 위업이다.

 

동시대 자본주의가 탈신학, 탈형이상학, 탈이념, 탈역사의 시대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에 분노에 찬 신이 자신의 부고 공지를 너무 빨리 돌렸다고 항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과학과 이성은 종교의 권위 비슷한 것을 계승하려 했다. 급진적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성보다는 예술이 통치권을 찬탈하려 했다. 혹은 찬탈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신의 자리를 대체하려 했다.

 

현재는 우파가 아닌 좌파 진영에서 정치에 대한 종교적 보충물을 찾는 이들이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분명 후기 자본주의의 정신적 공허감에 대응하기 위해서이지만 사실상 믿음, 희망, 정의, 공동체, 해방 등에 대해 세속적 개념과 종교적 개념 사이에 중요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254 페이지)

 

지적 측면에서 볼 때 종교는 순전히 헛소리이지만 종교가 반드시 필요한 공손함, 미학적 매력, 사회 질서, 도덕적 교화에 기여한다면 지적 측면에서 헛소리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256 페이지)

 

이글턴은 알랭 드 보통, 마키아벨리, 니체 등이 종교에 대해 보인 '그럼에도'의 역설을 언급한다. 마키아벨리는 종교적 개념은 공허하지만 공포를 조장하고 폭도를 진정시키는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뻔뻔스러운 대담성을 발휘해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의 죽음이라기보다 인간의 불신이라 지적했다.(258 페이지)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유사(類似) 종교라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꽤 오래이다.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는 이 불분명한 말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한 책이다. 물론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니체, 알랭 드 보통 등을 비롯한 많은 사례들이 망라되었고 풀어서 설명했지만 쉽지만은 않다. 같은 저자의 신을 옹호하다를 읽어야겠다. 이글턴의 종횡무진의 박학과 다식(多識)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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