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들을 때는 더욱 지금이 봄이 아니라 겨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을 유난히 어렵게 보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지금이 겨울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드러난 것일까?
겨울 뿐 아니라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계절을 느끼게 하는 곡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음악이 아닌 표제음악이라 해도.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도 다르게 듣고 느낄 수 있다.
전통 그대로 휘몰아치는 겨울 한풍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한 비발디의 ‘겨울‘도 격정을 표현하거나 긴박한 상황을 묘사한 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
물론 플룻 연주로 듣는 멘델스존의 ‘무언가‘처럼 가볍고 작고 사랑스러운 곡에 다르게 들을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행동경제학이 있는 것처럼 행동음악학이란 학문도 있을 법하다.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인간은 온전히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심리학은 오늘 내가 두 음악을 들으며 보인 마음의 움직임을 무엇이라 정의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