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正統)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시간에 쫓기며 종묘(宗廟) 해설 준비를 했는데 엉뚱하지만 정전(正殿)의 길이가 제기(祭器)와 신주 옮기는 도구를 보관하는 동, 서 협실(夾室), 눈비를 피하고 물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는 동서 행랑(行廊)으로 인해 늘어난 것은 의아하다는 데에서 생각이 멈춘다.

신실(神室)만을 따지면 정전은 겨우(?) 70미터에 불과할 뿐이다. 제례에 쓰이는 음식을 마련하는 전사청(典祀廳)의 사(祀)와 사당(祠堂)의 사(祠)의 차이도 궁금하다.(祠: 사당 사, 제사 사/ 祀: 제사 사)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牓) 모두 정확한 차이를 알고 싶다. 내 의문은 정통이 아닌 것일까? 공자(孔子) 생각을 하게도 된다.

제후가 아닌 대부가 8일무(佾舞)를 추었다고 강하게 질타한 공자, 망해가는 주(周; 좌묘우사의 기원인)나라를 이상 국가로 삼은 공자, 예의와 격식(格式)에 얽매였다고 볼 여지가 많은 공자, (논란 거리이지만) 출세를 위해 주유천하(周遊天下)한 공자,

평생 주역(周易)을 붙잡고 있었던 공자,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말해지기도 한 공자...격식과 예법, 엄격과 장엄, 경건과 엄숙.. 종묘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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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아침 산 모습이 신선합니다. 지난 수요일 남산에 올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인다는 의미의 인경산(引慶山)인데 후에 목멱(木覓)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 태조가 남산의 산신에게 목멱대신이란 이름을 부여했기 때문이고 현재 이름인 남산은 풍수지리에서 남쪽을 지시하는 주작(朱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인경, 목멱, 남... 이 변천보다 경사스러움을 뜻하는 단어(경기전慶基殿도 그렇지요...)에 제 마음이 많이 갑니다.

인경도 마찬가지이지만 경복(景福), 창경(昌慶), 경희(慶熙), 복수(福綏), 강녕(康寧), 영녕(永寧)... 이런 말들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경사보다 오명이, 평안보다 대립과 다툼이 더 크고 성했던 ‘조선‘의 역설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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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권현형 시인의 강의(‘시: 열정과 냉정의 동시성’..용산 도서관)는 감명 깊고 만족스러웠다. 문학박사이기도 한 저자의 강의는 필요한 만큼 철학적이었고, 자신의 시와 다른 시인의 시를 세밀하게 풀어줄 정도로 친절했다.

‘열정과 냉정의 동시성‘이란 강의 제목을 통해 짐작하겠지만 새롭게 보(고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라도 경계(境界)에 서려고 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묻지 못한 질문이 있어 아쉬운데 그것은 세상 또는 상투적인 것과 불화하는 것과 경계에 서는 것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다.

나는 그 분이 한 트라우마 또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에 끌렸다. 트라우마 또는 불안은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시쓰기란 결국 그것들마저 끌어안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조선의 두 군주(君主)를 생각했다. 폐비 윤씨의 아들 이융(李㦕)과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李祘). 어머니의 사사(賜死)라는 트라우마와 공포 속에 유폐된 이융은 조선 임금들 중 유일하게 시집을 낸 임금(이상주 지음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94 페이지)이고 부왕(父王)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은 창덕궁 후원에서 꽃을 감상(상화賞花)하고 낚시(조어釣魚)를 하고 옥류천(玉流川)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며 시를 썼다.(그래서 그의 모임을 상조회賞釣會라 함)

나는 그 두 인물을 언급하며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철학을 하는가, 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은 시인께서 언급한 릴케의 불안에 내가 자의적으로 철학자 하이데거의 불안론을 연관지어 한 질문이었다.

시를 쓰다 보면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지만 철학적 문제의식을 날 것으로 또는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푸는 것은 결국 (문제를 의식한) 나의 몫이란 생각을 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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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추방당한 존재이다. 그는 도시에서, 규칙적인 일에서, 그리고 제한된 의무에서 추방당한 존재이다...”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에서 내가 자주 음미하는 글이다. 블랑쇼는 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놓을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자는 돌아눕고 다시 돌아누우며 몸을 뒤척인다. 그는 ‘진정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블랑쇼의 글에서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은 자리를 찾는다는 말이다.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를 생각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자신의 기원 또는 존재 근거 등을 찾는 것이리라.

인간은 무엇이든 찾는 존재이다. “살아온 길이... 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1992년 4월 출간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수록 시 ‘꽃핀 나무 아래’ 중 일부)라고 말한 뒤 비유가 아닌 실제 무덤을 찾는 것을 주(主)로 하는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간 허수경 시인이 생각난다.

블랑쇼의 예의 그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 종묘에 간다. 무덤 묘(墓)가 아닌 사당 묘(廟)자를 쓰는 종묘.

거기서 신(神)을 대신하는 몸체인 신위(神位)를 만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인 신위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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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의와 문화해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사는 주로 가시적 유물과 무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분야이고 문화 해설은 궁궐(宮闕)이나 능(陵), 박물관의 구체적 전시물들 또는 유물들을 보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분야이다.

어떻든 문화는 역사 강의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이렇게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역사문화연구소 김용만 소장의 ‘조선이 가지 않은 길’에서 세종 이야기를 접하고서이다.

이 책에 의하면 세종은 최고의 성군이지만 노비정책에서만큼은 너무 큰 실책을 범했다. 남편과 아내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노비이면 그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에 따른 종천법(從賤法)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화 해설에서도 당연히 세종의 이런 실책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가시적인) 전시물들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실수를 말하게 될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세종의 종천법 수용을 증거하는 자료가 있겠지만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세종의 그런 점을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은 김용만 소장의 말대로 성군 세종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세종의 종천법 수용 이후 조선의 노비 숫자는 확대 일로를 걸었다. 이는 양인(良人)의 감소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조선은 상당히 허약한 나라가 되었다.(어떤 경우든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그런 점을 염두에 두는 해설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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