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추방당한 존재이다. 그는 도시에서, 규칙적인 일에서, 그리고 제한된 의무에서 추방당한 존재이다...”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에서 내가 자주 음미하는 글이다. 블랑쇼는 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놓을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자는 돌아눕고 다시 돌아누우며 몸을 뒤척인다. 그는 ‘진정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블랑쇼의 글에서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은 자리를 찾는다는 말이다.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를 생각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자신의 기원 또는 존재 근거 등을 찾는 것이리라.

인간은 무엇이든 찾는 존재이다. “살아온 길이... 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1992년 4월 출간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수록 시 ‘꽃핀 나무 아래’ 중 일부)라고 말한 뒤 비유가 아닌 실제 무덤을 찾는 것을 주(主)로 하는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간 허수경 시인이 생각난다.

블랑쇼의 예의 그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 종묘에 간다. 무덤 묘(墓)가 아닌 사당 묘(廟)자를 쓰는 종묘.

거기서 신(神)을 대신하는 몸체인 신위(神位)를 만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인 신위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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