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나온 한글 소설 한 편을 골라 줄거리를 소개하고 당대 한글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를 짚는 과정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에 담긴 의미를 궁구(窮究)하고 있다. 지난 해 문화 해설사 전문가 과정 수업 중 세종의 한글 창제의 동기를 묻는 원장님께 표면적 의미와 숨은 동기로 나누어 설명해야 하는지 물었다.
원장님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시며 세종의 한글 창제의 동기는 애민(愛民)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나는 한글은 유불(儒彿) 싸움의 진흙탕 속에서 불(佛)이 살아남아 남긴 우리 글자라 할 수 있다는 정찬주 작가의 ‘천강에 비친 달’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은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에서 "우리말 불교 책을 펴내는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언해(諺解) 불전(佛典)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물려는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언해는 조선 시대에 한문으로 적힌 문장을 다시 한글로 풀어 쓴 것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적힌 책을 뜻한다. 경복궁 함원전(含元殿)에서 불교 행사를 하는 등 불교에 친화적이었던 세종은 승(僧: 남자 승려)과 니(尼: 여자 승려)를 도태시키라는 의미의 태승니(汰僧尼) 원칙을 어긴 임금이었다.
태승니는 태조 즉위 다음 날 사헌부에서 올린 '하늘의 뜻에 응해 혁명하여 보위에 올라 꼭 해야 할 일 ' 열 가지 중 한 항목이다. 애민(愛民)과 지배층 견제(牽制)를 양자 택일의 항목으로 볼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