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에 실린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는 시인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란 궁금증을 풀고자 여기 저기에 자신의 몸을 대보는 상황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은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 저기에 대본다. 시인은 열무잎, 흰누에나방의 날개, 헝겊조각, 어린 나뭇가지, 검은 해초 뿌리, 조개의 둥근 무늬, 딸아이의 머리띠 등에 몸을 대본다.

이 상황이 특별한 것은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을 자신의 몸에 대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무엇인가에 대보기 때문이다.

해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흔적‘이란 시를 떠올려본다. 글을 쓰는 과정은 결국 어딘가에서 가져온 글감들을 내 글의 전개에 끼워 맞춰 보는 일이 아닐지?(물론 머릿 속에서)

덕수궁을 제외한 경복, 창덕, 창경궁 시나리오를 대충 완성했다며 동기 신** 선생님이 이것 저것 보고 마구 써서 다시 차근 차근 고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은 지난 8월 초였다.

그는 지난 8월 2일 내 해설 컨셉이 새로와 좋았다고 평하며 자신도 완전 새로운 컨셉으로 경복궁 외전(外殿)을 준비했다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신이 없어 그냥 일반 버전으로 해설했다며 아쉬움을 표했었다.

‘브레너(Brenner)의 빗자루’(Sidney Brenner’s Broom)란 개념이 있다. 자신이 탁월한 아이디어나 명쾌한 통찰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과감히 발표한 뒤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이해되지 않은 것은 빗자루를 이용해 양탄자 아래로 쓸어버리듯 아이디어를 버리면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에 비해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란 개념도 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면도날은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는 도구를 의미한다. 오컴의 면도날은 처음부터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들을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고, 브레너의 빗자루는 먼저 쓰고(포함시키고) 나중에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절제와 균형의 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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