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40번 교향곡 1악장을 기타와 첼로로 퍼포먼스하듯 연주하는 것을 보고 파격이라는 댓글을 달려다 자판을 잘못 눌러 파계라 치고는 얼른 고쳤다.
'파'를 친 후 '겨' 와 'ㄱ'을 쳐야 하는데 ㄱ, ㅋ 자판 위에 있는ㅣ자판을 침범하기 쉽다. 이러면 파격이 아닌 파계가 된다. 파격과 파계는 얼마나 멀까? 아니 얼마나 가까울까?
어제 도착한 김리영 시인의 시집 ‘춤으로 쓴 편지’의 자서(自序)에 이런 구절이 있다.
블루베리 마카롱과 라스베리 마카롱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하나는 새콤한 맛 다른 하나는 달달한 맛 각자 부서지거나 녹으면서 그들의 생애를 산다..
파격은 파격이고 파계는 파계겠지? 김용범 시인의 ‘별의 늪’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죽은 별들의 광량을 모아 휘황한 별들로 다시 태어나는/ 아 침묵이 거름이 되는/ 아 죽은 별들의 광휘가 새로운 별들의 에너지가 되는 수억 광년 너머의 별의 늪”..
죽는 별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초신성(超新星)이라 부른다. 다른 별들이 태어날 수 있는 뿌리가 되는 죽음이기에 초신성이라 부르는 걸까?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
포기한 자는 정말 자유로울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물기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자진(自盡)과 같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