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쯤 전 국회방송의 경복궁 해설 프로그램을 보았다. 궁궐의 전각들이나 소품들 중 잡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잡상이 500년간 경복궁을 지켜냈다는 말 때문이다.
잡상은 궁궐이나 누각 등의 지붕 위 네 귀에 덧얹은 짐승 모양의 상으로 어처구니라 불리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에 나오는 그 어처구니이다.
그런데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어 방치된 280년의 시간에도 잡상은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경복궁을 지켰는가?
만일 궁궐이 타 없어진 기간까지 잡상이 궁궐을 지킨 것으로 계산한다면 조선이 망한 이후 현재까지 잡상이 경복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라고는 왜 계산하지 않는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망하지 않았지만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고 흥선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된 이후 조선은 망했지만 경복궁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을망정 임진왜란시처럼 폐허가 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잡상이 500년 동안 경복궁을 지켰다고 말한 사람은 건물이 아닌 나라를 기준으로 연수를 계산한 것인가?
건물은 없어졌어도 주권이 있다면 건물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마찬가지 논리로 건물이 있어도 주권이 사라졌다면 건물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가?(건물은 가시적이고 주권은 추상적이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건물이라는 가시적인 사물과 주권이라는 추상 명사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복궁이 창건된 1395년부터 국권을 잃은 해인 1910년까지를 계산해 500년(실제는 515년)이라 말한 것이리라.
생각이 여물지 않은 글이어서 망설이다가 게시하는 것은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4대 문예지의 평론 부문에서 몇 해째 당선작이 없는 이유로 뻔한 해석, 이론 의존, 비판 부재 등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라딘 서재에서 한 이웃이 나를 늘 생각거리를 남겨주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도 작용했다. 상투적인 것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비판정신을 가동시키면 새로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