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의 해미(海美)는 정해(貞海)의 해(海)와 여미(餘美)의 미(美)를 합해 만든 이름이다.

해미(海美)를 말하면서 해미읍성(邑城)을 빼놓을 수 없다. 해미면에 자리한 조선 시대의 읍성이며 천주교 순교 성지이다.

고종때의 일로 주로 이름 없는 천주교 신자 1000여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나희덕 시인의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은 내가 즐겨 읽는 시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이야기한다.

회화나무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할 때 형틀로 사용한 나무이고 느티나무는 마을의 자랑거리인 우람한 노거수이다.

시인이 말하는 것은 그 회화나무의 아픔을 헤아린 뒤 찾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지만 말고 그 나무의 어둠도 기억하라는 것이다.

최근 내 주요 관심지가 된 창덕궁에도 회화나무와 느티 나무가 있다. 해미의 두 나무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궁궐에 사는 나무들이다.

회화나무는 돈화문(敦化門)을 들어서면 보이는 왼쪽에 있고 느티나무는 이 나무들을 등지고 볼 수 있는 금천교 옆에 있다.

삼정승을 상징하는 중국을 따라 창덕궁에도 같은 의미로 회화나무를 심었다.(장세이 지음 ‘서울 사는 나무’ 289 페이지)

그러면 느티나무는? 창덕궁 금천교(錦川橋)를 와서 보라고 말하는 나무가 아닐지?

돌로 만들어졌기에 임진왜란때도 불에 타지 않은 금천교에서 내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은 무지개 모양의 다리 기둥이다. 힘을 분산시키고 안정감도 있고 아름다운 대칭인 다리.

자연인 나무는 대칭이 아니고 인위인 다리는 대칭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대칭도 아름답지만 비대칭으로부터 오는 나무의 자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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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관련해 특별히 관련 있는 단어가 옥(玉)이란 글자가 아닐까 싶다.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인 옥당(玉堂)의 옥, 옥새(玉璽)의 옥이 모두 창덕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옥당은 궐내각사(闕內各司)에 속하는 곳인데 특별히 창덕궁의 궐내각사만 복원이 되었다.(2013년 출간 이향우 지음 ‘궁궐로 떠나는 힐링 여행 창덕궁’ 49 페이지)

궐내각사는 궁에 들어와서 업무를 보던 관리들의 작은 관청을 말한다.

신문 기사(2015년 12월 14일 세계일보 ‘경복궁 복원규모 줄이고 사업기간 연장’)를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궁궐 내 정치·행정관청이 밀집했던 궐내각사 영역 건물 복원은 3단계(2026∼2034년, 궁중통치권역)로 정해졌다. 지금은 경회루를 등지고 광화문을 바라봤을 때 별다른 건물 없이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 지역이다.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 등의 건물이 복원될 예정이다.”

지난 6월 7일 창덕궁 수업에서 순정효황후에 대해 들었다.

1910년 한일합방 직전 열린 어전 회의(창덕궁 대조전)에서 순종이 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받은 급박한 순간 병풍 속에서 나온 순정효황후 윤씨(순종의 황후)가 안타까운 마음에 치마 속에 옥새를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최근 한 신문이 이 사실을 전하며 옥새(玉璽)와 옥쇄(玉碎)란 말을 함께 썼다. ˝치마 속에 옥새를 숨긴˝이란 말과 ˝옥쇄와 함께 나라를 빼앗겼습니다.˝란 말이 함께 쓰인 것이다.

그런데 옥쇄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크고 올바른 일을 위해 명예를 지키며 깨끗이 죽는 것을 비유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언어 사용은 앞에서 언급한 ‘궁궐로 떠나는 힐링 여행 창덕궁’에서도 보인다.

“며칠을 차마 사위(嗣位)할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성복(成服)일에 이르러서야 막차(幕次)에서 면복(冕服)으로 갈아입은 왕세자가 빈전에서 무릎을 꿇고 옥쇄를 받습니다.”(85, 86 페이지)

잘 쓴 책인데 사소하겠지만 잘못은 잘못이다. 묘하게도 창덕궁을 설명하는 두 매체(신문과 책)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옥새와 관련해 다른 궁궐도 이야기거리가 있는지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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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때는 해수가 들어차고 썰물때는 지하수가 차올라 담수호가 된다는 제주 비양도의 펄랑못을 티브이에서 보았습니다.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간만조 수위를 보이는 염습지라네요.

방향 가늠이 어려워 밀물도 썰물도 주체는 달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았습니다. 달이 당기니(써니) 우리 입장에서는 바닷물이 멀어지는 것이고 밀어내니 가까와지는 것이라고요. 맞나요?

방향 가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좌묘우사를 말할 때는 경복궁이 기준이고 동궐과 서궐을 말할 때는 우리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맞나요?

그나저나 몇년 전 관리권이 기획재정부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면서 관리주체가 불분명해 아름다운 풍광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하네요. 현재 날이 더워 습지는 녹조로 가득한 상태입니다.

습지는 일반 재산이지만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것이 맞는데 한국자산관리공사로서는 일반 재산 현황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를 보며 잊혀진 궁궐인 경희궁은 공원으로 분류되어 서울시의 관리를 받고 경복궁은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는 현실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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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상황’이라는 기독교 온라인 월간 잡지가 있다. 불교 온라인 계간 잡지인 불교평론에 가끔 들어가 보듯 ‘복음과 상황’에도 가끔 들어가 본다.

(언제 문제 없었던 때가 있었겠냐만..) 요즘 두 종교가 모두 문제인데 그래도 관심을 두는 것은 전기한 잡지들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론이 늘 내 관심이다. 오만(傲慢)이겠지만 나는 믿음이 없는 부류이다. 좋아하는 신학자 가운데 도로테 죌레가 있(었)다.

정미현이란 여성 신학자가 이 분의 책(‘저항과 신비’)을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와 별개로 죌레의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는 감명 깊게 읽었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죌레의 논지는 저항(적 행동)과 신비(적 지향)는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복음과 상황’ 최근호에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란 제목의 정미현 교수의 글이 실려 반가운 마음(죌레, 정미현 두 분이 두루 관련되었을 것이기에 2중으로)에 클릭했는데 정기 구독자만이 볼 수 있어 아쉬움을 삼켰다.

시간이 되면 페미니즘과 기독교적 관점을 결합한 분들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 한가한 심산인지 모르겠지만 초기 불교, 초기 기독교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나에게 있다.

오늘 그 점을 오랜만에 거듭 확인한 것이다. 저항과 신비가 하나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참된 영성이란 신비와 저항을 한 품에 아우르는 것임을 주장한 죌레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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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소성괘 여덟개가 만나(8 곱하기 8) 64괘가 된다는 통설과 달리 4상(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 세 번 만나(4 곱하기 4 곱하기 4) 64괘가 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흥미롭다. 나는 64괘가 8 곱하기 8이란 사실로부터 8일무(佾舞)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8일무란 가로 여덟, 세로 여덟 사람 즉 64 명이 추는 춤이다. 종묘 제례에서 추는 춤이다.

주역의 대의는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기 위해 굳이 주역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평생 주역을 배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는 공자, 역시 평생 주역을 공부했지만 난해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다산 선생 등을 보면 주역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수천년 전의 책을 너무 신비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산 선생은 평생 주역을 배웠지만 점을 치는 용도로는 한 번도 주역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유배 중에 자신의 앞날을 점친 것으로 볼 만한 행동을 했다.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는 원리를 알기 위해 주역을 공부한다는 사람도 자신의 구체적 운명을 미리 알려는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주역에 입문한 사람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나는 주역을 이야기거리를 얻는 데 활용한다.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시집)을 풍천소축, 산뢰이 등의 괘로 분석한 것이 한 예이다.

물론 주역을 공부하는 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주역을 공부한다고 말하는 것은 석연치 않다. 차라리 점을 치기 위해 배운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하다.

점은 고대인들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삶에 대처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서툰 과학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주역이 살아남은 것은 점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주역은 철학서의 성격이 더 강한데 진시황(과 그 일당들)이 점서로 오해해 놔두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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