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비틀어 모든 표준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하나의 조건(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하나이고 비표준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정확한 꽃 이름들, 잘 알았습니다... 프리지어, 튤립, 아네모네, 히아신스, 라벤더, 재스민...

고맙습니다... 꽃물결 꽃사태 꽃천지 속 꽃가마 타고 꽃구경이나 가고 말겠습니다 꽃의 몸으로 환생하고 말겠습니다란 말을 한 시인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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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의 섬‘(1994년 민음사 출간)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라 고백함으로써 묘한 감동을 준 정신과 의사 한스 요하임 마츠의 후속작인 ’릴리스(Lilith) 콤플렉스‘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이다.

이 책에 ’내적인 부모‘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그들의 부모가 범한 잘못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증오와 실망, 고통과 비애 등을 털어놓는데 그렇게 해야만 정신적인 고통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분석하는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내적인 부모이다. 즉 환자가 기억하는 부모이자 환자의 마음 속에 저장된 부모인 것이다.

릴리스는 아담과 같은 방식으로 신에 의해 창조된 여자를 말한다. 둘은 평화롭게 살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릴리스가 자신과 아담은 모두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기에 서로 동등하다고 주장하며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아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 내용이 비록 환자들의 마음을 분석한 데서 나온 것이지만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유년 시절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이를 사회에서 해소하기에 여러 병적인 징후(나치즘, 사회주의, 극좌파와 극우파, 테러, 근본주의, 소비지상주의 등)가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참고점이 될 만하다. 물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 아니다.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과 비교할 만한 것을 한 행동약리학자의 책(’중독의 모든 것‘: 2016년 출간)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에 견줄 것은 심리적 부모라는 개념이다. 실제(實際)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부모 같은 존재를 말한다.

저자 히로나카 나오유키는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잘 자란 자녀 중에도 망가질 사람은 망가지고, 형편 없는 부모가 멋대로 키워도 잘 자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말한 내적인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어린 시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부모를 말한다.

한편 히로나카 나오유키가 말한 심리적 부모는 실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이상적인 부모의 의미로 읽히는 존재이다.

부모 특히 아이 시절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내 궁금증 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애정 결핍은 예외 없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는지 아닌지, 애정 결핍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게 한다면 그것이 유일한 원인인지 아닌지 등이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그렇듯 자본주의 사회를 병든 사회로 규정하는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은 모성 신화의 허구를 말한다.(’부모 – 나 관계의 비밀‘ 참고)

저자는 어머니들에게는 타고난 모성 본능이 있다는 의미를 가진 모성 신화는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모성신화를 긍정함으로써 양육문제를 여성에게 떠넘기려 하고, 여자들은 이를 이용해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요“라는 말로 자녀 양육의 잘못을 방어하려 하고, 자녀들은 모성신화를 내세워 자신의 어머니의 문제를 직면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마즈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즈는 어머니 없는 동독 사람은 초기 결핍이라는 무의식적 위기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친밀함과 연대를 만들었고, 어머니 없는 서독 사람은 개인주의와 나르시스적인 만족(소비, 명예욕, 오락)을 통해 결핍을 보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릴리스 콤플렉스‘ 234 페이지)

동독과 서독을 대비해 설명하는 것은 ’사이코의 섬‘에서도 시도된 것이다. 마즈의 말에 애정 결핍을 겪은 사람이 후에 모성적인 여성을 원한다는 말은 없다.

물론 마즈의 초점은 병리적 행동에 있기에 어머니 같은 여성을 마음에 두는 것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전문가의 말을 참고해 넓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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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모든 것 - 중독의 개념에서부터 진단, 증상, 치료, 재활까지
히로나카 나오유키 지음, 황세정 옮김 / 큰벗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중독은 주객전도란 말로 수식할 수 있다. 주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물질이나 행위에 예속되는 것이다. 중독은 또한 의존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마음의 병과 다르다. 가정 내 폭력이나 스토킹 등 인간관계에 사로잡히는 것도 중독이다, 중독은 자라온 환경이 나쁘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냐는 특수한 문제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의존과 중독은 어떻게 다른가? 의존은 그 자체로는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것, 협심증 환자가 니트로글리셀린을 복용해야 하는 것 등이 의존 사례이다. 중독은 무언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에게는 기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심리가 있다. 이 메커니즘은 약물이나 도박 등으로 감정이 극심하게 흥분된 상태에서도 작동한다.

 

비정상적일 만큼 감정이 극심하게 고조되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데 강한 힘이 필요하므로 감정이 원래 수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약물은 신체 입장에서는 이물질인데 신체는 약물의 영향을 없애려 하는데 앞서 말한 다운됨이 크기에 동일한 강도의 약물로는 예전과 같은 흥분을 맛볼 수 없다.

 

마음을 다루는 의학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 동일한 사람에게 한 의사가 중독 진단을 내리고 다른 의사가 중독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판단 기준은 있다. 중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사회적 관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동일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상처받기 쉽다.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만큼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컴퓨터 게임에서 왕따를 당하는 캐릭터가 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는다. 심리적 통증은 신체적 통증에 가깝다고 한다. 인간은 항상 상처를 받으며 성장하기에 자신을 달랠 줄 아는 노하우가 요구된다.

 

문제는 상처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거처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거처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장소,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 충실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거처 부재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거처감이 없으면 자신의 능력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세력권을 잃은 동물처럼 심리적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기효능감이 떨어진다.(67 페이지)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에 근거하는 감()이다. 인간은 현실에서 패할 경우 가상 현실인 게임 속에서 이길 수 있다면 자기효능감이 향상된다.

 

자기효능감의 상승은 쾌감이므로 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약물이나 도박 등으로 자기효능감을 끌어올리면 진정한 자기효능감은 점점 더 떨어진다. 현대 심리학은 죽음 충동(trieb)의 존재여부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충동을 공격성의 문제로 본다. 그 공격성은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death drive에 의한 suicide)

 

저자는 완벽주의를 공격성과 연결짓는다. 목표의 완벽 수행은 불가능하기에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구불만에 빠지고 어느 순간 폭발한다. 이런 성향은 자신에게 향하기도 한다. 중독은 자신에게 서서히 가하는 자해이다.

 

저자는 심리적 부모의 중요성을 논한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도 망가지는 사람은 망가진다. 형편 없는 부모가 멋대로 키워도 문제 없이 잘 자라는 사람도 있다. 가정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수많은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따분하고 무료한 상황이 계속되면 뇌가 스스로 감각자극을 만들어낸다. 환각이다.

 

자극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한 것은 약물이나 도박에 손을 대는 심리와 관계가 있다. 저자는 공동체에 바탕을 둔 축제 공간을 잃어 그 유사품을 생활 곳곳에서 찾는데 이것이 중독의 사회적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80 페이지) 중독에 빠진 사람을 대할 때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10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약물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심리를 보인다. 나의 진정한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좀 더 대단한 힘이 숨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표면적이고 얕은 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수준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등이다.(109 페이지)

 

인도대마의 잎이나 꽃송이를 말린 것을 마리화나(marijuana)라고 한다. 마리화나는 포르투갈어 mariguango(취하게 만드는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꽃송이에서만 채취한 것은 간자(ganja), 순수하게 수지(樹脂)만을 사용한 것을 해시시(hashish)라고 한다.(115 페이지)

 

약물은 뇌에 작용한다. 인간의 뇌는 자몽 크기이지만 500 그램 정도인 자몽보다 훨씬 무거운 1.3에서 1.4 kg의 무게를 갖는다. 사람 뇌의 신경세포(neuron)1000억개에 이른다. 신경세포는 전기적으로 흥분하고, 화학물질을 생산, 분비한다.(130 페이지) 신경세포와 다른 신경세포는 아주 작은 틈(시냅스; synapse)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본다.

 

신경세포가 생산한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 neurotransmitter)이 세포 밖으로 분비된 후 시냅스를 헤엄쳐 반대편 신경세포에 도달한다. 반대편의 신경세포의 막에는 수용체라는 특별한 단백질이 있는데 열쇠구멍에 열쇠가 딱 들어맞듯 수용체에 신경전달물질이 결합된다.

 

신경계의 신호 전달은 바톤을 이어받으면 반드시 다음 주자가 달리는 릴레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음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 신기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송신측)의 주역은 한 종류이지만 가지고 있는 수용체(수신측)는 한 종류가 아니다.(132 페이지)

 

가령 도파민 작동성 신경세포는 세로토닌 수용체, GABA(감마아미노낙산) 수용체, 글루타민산 수용체 등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를 갖는다. 세포 단위로 약의 작용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약물 의존 욕구가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과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사람은 제임스 올즈(James Olds; 1922 - 1976)로 그는 정신과 의사나 약리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였다.(133 페이지) 일반적으로 약물은 동일한 양을 반복 투여하면 효과가 떨어지지만 각성제는 반대다. 흥분이 강렬해지면 한 달 정도 각성제를 끊었다가 다시 주사해도 강한 흥분이 일어난다.(136 페이지)

 

파블로프의 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억이 형성되었다는 의미이다. 어째서 이런 기억이 형성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지금 전 세계에서 분자(molecule) 수준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중독과 관련 없는 정상적인 기억이 만들어질 때도 나타난다.

 

약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쉬운 기억이 자동적으로 형성된다. 신경계는 그저 약물이 일으키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것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약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상태에 빠져버린다. 중독에 빠지면 보수계(報酬係: cerebral reward system)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잃어버린다.(138 페이지) 약물중독은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일단 한번 손을 댄 후에는 기분이 거의 자동적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상태에까지 이른다.(139 페이지)

 

도박 중독으로 유명한 사람 중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 작가 겸 정신과 의사인 가가 오토히코(加賀乙彦)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은 빚, 가불, 정치운동, 연애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 밀착해서 일어난 반면 뇌전증 발작이나 문학창작은 그런 현실에서 강렬하게 이탈하고 싶어할 때 일어났다.(150 페이지)

 

지나치게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oniomania)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애정이라고 한다.(164 페이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쇼핑중독증 환자는 마리 앙트와네트이다. 쇼핑의 본질은 부지런히 모으는 것일 수도 있고 펑펑 쓰는 쾌감과 연관되는 것일 수도 있다.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자, 제안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를 기르자 등의 답을 제시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은 완치가 되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완벽하게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저자는 중독 치료란 졸업이 없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지만 삶 자체가 졸업이 없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니 실망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 중독에 빠지는 배경에는 사실 아픈 기억이 숨어 있다. 저자는 마음은 뇌의 작용이며 뇌의 작용은 화학물질인 약의 힘으로 바꿀 수 있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중독약의 역할을 떠맡으면서도 중독약보다는 작용이 완화된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약물을 작동약(agonist)이라 한다. 금연을 돕는 보조제로 사용되는 니코틴 껌, 니코틴 패치 등이 대표적이다. 작동약과는 반대로 중독약의 효과를 제거하는 약을 길항제(antagonist)라 한다. 헤로인 중독에 사용되는 날트렉손(Naltrexone)이 대표적이다.

 

오직 알콜 중독의 치료에만 사용되어 알콜이 간()에서 분해되는 속도를 늦추는 약이 있다. 디설피람(disulfiram)이 대표적이다. 숙취가 오래 지속되게 하는 약이다. 중독 대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중독 대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관점이 분야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잘 활용하여 밀접하게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271 페이지) 줄곧 중독의 예방 대책의 필요성을 주장한 저자는 사회를 클린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낙오자를 만드는 구조는 잘못되었다고 말한다.(278 페이지) 가령 그것은 학생이 대마초를 피워 검거되면 서둘러 그를 퇴학 처분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전문가의 관리를 받고 자조(自助) 집단의 동료와도 연결된 이상 그 사람은 더 이상 중독자가 아니다. 중독의 영역은 넓고 깊이를 알 수 없다. 저자는 인간에게 수많은 욕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프로이트가 말했듯 단 하나의 욕망이 있고 그것이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다채로운 욕망으로 변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282 페이지)

 

저자는 의존하는 대상이 충족시켜 주는 욕망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중독은 정신분석, 범죄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논의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야라 해야 옳을 것이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선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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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전집’에 이어 약 5개월만에 서정인 작가의 장편 ‘달궁‘을 받았다. 절판된 책을 새롭게 출간하는 ‘최측의 농간’의 신동혁 님으로부터.

내가 ‘달궁‘을 읽은 것은 지난 89년, 90년 무렵으로 민음사의 ’세계의 문학’이란 계간지를 통해서였다. 약 27, 8년만에 다시 책을 대하게 되니 이런 저런 추억들이 스쳐간다.

달궁은 지리산 자락의 마을이고 본문에는 연천 영감에 대한 내용도 있어 친근감을 느낀 것 외에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다.

내가 작품을 연재하던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으니 기분이 묘하다. 당시 ‘달궁‘ 다음으로 유익서 님의 ‘민꽃소리’란 소설을 읽었다.
이 작가는 지난 해 ‘고래 그림 비(碑)’란 소설을 냈다. 문화 해설사 기초과정에서 배운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어서 각별하게 생각했지만 아직 책을 사지도 못했다.

이제 ‘달궁‘도 다시 읽고 90년대 예술가 소설인 ’민꽃소리‘의 정서와 비교할 새 예술가 소설인 ’고래 그림 비‘도 읽을 생각이다.

예술의 부드럽지만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 지금도 읽는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까지... 나는 어설펐던 20대의 기억을 돌아보는 출발점에 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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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강사로 산다는 것 - 나는 출근하지 않고, 퇴직하지 않는다
강래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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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설사 입문 단계에 들어선 내 상황 때문이다. 물론 나는 강사와 해설사가 어떤 차이들을 갖는지 헤아려 말할 여력이 없다. 강사는 어느 정도 나이도 있어야 하고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을 인식으로 연결짓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저자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강사라는 직업을 택하고자 한다면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의 시간을 말한다. 양적인 시간이 크로노스라면 질적이고 효율적인 시간이 카이로스이다. 성실이 전부가 아니다. 특별한, 임팩트 있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일에서도 그렇고 독서에서도 그렇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의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 없는 지식(obsoledge: 시대에 뒤떨어진, 무용한 등을 의미하는 obsolete와 지식을 뜻하는 knowledge의 결합어)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재학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평생 학습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강사에게 필요한 과제라 하기보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직업이 강사라 해야 타당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휴식은 지난 시간의 보상이자 앞선 시간의 준비다. 역시 강사에게 잘 맞는 말이다. 직장인은 마음껏 쉴 수 없다. 강사는 쉴수록 더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가변적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하게 변했고 점점 가중될 것이다. 저자는 관성(慣性)처럼 걷는 길이 아닌 좋아해서 가는 길을 주문한다. “길이 있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보자.”(44 페이지)

 

강사는 존재감을 보장받는다. 저자는 같은 말을 해도 귀로만 들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눈을 감으면 듣는 이의 머릿 속에 이미지가 살아 움직여 가슴이 쿵쾅거리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의라고 한다.(61 페이지)

 

본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떤 강사가 강의 후 80여명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중 대여섯 명에게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요즘 추세는 쉽게 해결하고 어려운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강사 이야기를 하는 책의 서평에서 하기 그렇지만 책으로 읽고 해결하려는 나 같은 사람에게 강의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물론 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듣게 하는 강의나 공무원 연수 차원에서 마련하는 강의 등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들은 내용이 이해가 안 가면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다. 강사에게 피드백을 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적당히 알고 강의하는 것은 셀프 디스와 같다.(78 페이지) 강사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강사는 공부를 해야 일을 잘 할 수 있는 직업이기에 자연스럽게 뇌섹남, 뇌섹녀가 된다.

 

강사에 대한 평가는 강의 내용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강의를 위해 교섭하는 것도 평가의 기준이 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강의 후의 모습도 중요하다. 강사에 대한 평가는 청중의 느낌이 결정한다. 느낌 중에서 강의 내용이 가장 비중이 크지만 전부는 아니다.(90 페이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91 페이지)

 

저자는 강사도 감정노동자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109 페이지) 저자는 강사도 프리랜서라 말하며 프리랜서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롭지만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116 페이지) 강사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무심해서는 안 된다.(118 페이지) 강사는 유연해야 한다.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면 성장이 없다. 멘토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지만 멘토들도 새로운 도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오고 지혜는 듣는 데서 온다. 생각과 감정의 차이에도 논쟁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훨씬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125 페이지)

 

강사도 게이트키퍼(gatekeeper: 뉴스나 정보의 유출을 통제하고,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결정권자) 역할을 한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교육 시장은 레몬 마켓(lemon market)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레몬 마켓은 구입 해서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품질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불량한 시장을 말한다.

 

최근에는 전문 강사 위주의 피치 마켓(peach market)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피치 마켓은 가격 대비 고품질의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겉과 속이 모두 탐스러운 시장을 의미한다.(150 페이지) 저자는 강사로서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돈보다 인연이라는 원칙, 진심을 다한다는 원칙으로 강사 일을 해왔다고 말한다.

 

아무나 강의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며 역시 강의를 할 만한 사람이 강의를 한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교육생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려고 애쓰기보다 강사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감성적 투자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161 페이지)

 

저자는 강사를 시작한 지 10년 정도 고생한 경우이다. 처음에는 가장 역할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데 정작 본인만 자신의 외모와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한다. 이는 강사들에게도 해당하는, 경계해야 할 심리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지만 원판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 있는 태도로 대신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외화내빈보다 탄탄한 내실을 기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기에 좋은 인상을 주려면 웃는 것이 최고다.(174 페이지)

 

강사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강사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180 페이지) 차별화된 내용을 차별화된 방법으로 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할 수 있는 강의가 무엇인지, 없다면 무엇을 배워서 강의할 것인지, 배운다면 배우기 쉬운 내용을 선택할지, 시장의 수요가 많은 것을 선택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또한 시장의 수요가 있다고 해도 베스트셀러인지 스테디셀러인지 따져봐야 한다.(183 페이지) 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와 같은 일직선상 내용 전개나 유명한 책을 요약하는 식의 설명식 강의는 곤란하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 감정을 담아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여러 심리학 용어들 중 내 경험과 관련해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스머페트의 법칙(Smurfette principle)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여성 학자인 카사 폴리트(Katha Pollitt: 1949 - )가 명명한 법칙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자인데도 미디어 속의 주요 캐릭터 중 여성은 한 명 뿐이다. 남성은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데 반해 여성은 남성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말에서 기인한 용어이다. 스머페트는 만화 영화 스머프에 나오는 한 명뿐인 어성 캐릭터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며 저자는 여성 강사들은 서비스와 이미지 메이킹, 웃음, 커뮤니케이션 등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남성들은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의 경우 주제나 대상 등에서 제한을 받는 일이 없다는 말을 한다.

 

지난 해 문화해설사 심화 과정 등록을 앞둔 시점에서 원장님과 통화를 했다. 당시 나는 남자인데다가 나이도 적지 않아 핸디캡을 느낀다는 말을 했었다. () 스머페트의 법칙을 우려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사리에 맞는 우려는 아니었던 듯 하다.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화된 내용을 차별화된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리라.

 

그러려면 당연히 늘 공부하며 주기적으로 내용을 새롭게 하는 컨텐츠 업데이트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건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저자는 교육 특히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을 가르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지적인 잠재력을 일깨워 스스로 삶에 또는 일하는 모습에 변화를 일으키도록 돕는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189 페이지)

 

요즘은 나이가 많으면 진부하다고 해서 흠이 되는 경우도 있고 학력이나 경력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연예인, 운동 선수, 작가, 평범한 시민이나 대학생에게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관건은 주제의 명확성과 유익성이다.(191 페이지) 경험은 소재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주제일 수는 없다.(194 페이지)

 

강의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강의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메시지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 중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도려낼 수 있는 아니오의 결단이야말로 교육생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 증 하나다. 재미의 시대, 내용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공감의 시대이다.

 

공감이란 청중의 생각과 느낌을 알고 반응하는 것이다.(203 페이지) 조리 있게 말하고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213 페이지) 강사는 내용을 잘 분류할 뿐 아니라 내용과 내용이 바뀔 때마다 요약과 전환을 잘 해주어야 한다.(214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의외성, 명료성, 대비성, 구체성, 진실성, 감성 등이다. 강의는 사족(蛇足)은 생략해야 한다. 가르친다는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한다. 강의는 목적이 분명하고 시간 내에 얻고자 하는 목표가 명료하기 때문에 웃음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

 

놀이는 재미만 있으면 되지만 학습은 현실 속 상황과 연결하여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웃음이나 재미는 부수적 요소다.(223 페이지) 강의는 애드리브가 아니다. 애드리브는 섬광처럼 번뜩이는 말솜씨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은 괜찮지만 긴 시간을 지속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존 1 시간 강의를 2 시간으로 늘리거나 2 시간 강의를 1 시간으로 줄이는 것 공히 새로 판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강사는 자기 자신부터 감동받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도 강사를 말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애드리브가 뛰어나도 강연 준비가 부족한 강사보다 애드리브가 부족해도 준비가 철저한 강사가 결국 강사로서 성공할 수 있다.(232 페이지)

 

듣는 사람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떤 연령대인가, 몇 명이 듣는가, 직위나 직책은 어떤가, 학력은 어떤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초반 10분이 골든 타임이다.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은 더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뺄 것이 없는 상태라 말했다. 결론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자칫 밋밋한 마무리로 강의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거나 횡설수설 떠들어서 죄송하다는 식으로 끝내면 겸손해보이기보다 초라해 보일 수 있다.(243 페이지) 강의 내용을 적당히 준비하고 잘 배열하는 것은 기본이고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있다면 좋은 강의라고 할 수 있다.

 

청중을 학습의 주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센스도 발휘해야 한다.(244 페이지) 질문은 청중이 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때도 사용하지만 참여를 이끌어낼 때 훨씬 효과적이다. 나와 결혼해 달라는 포러포즈처럼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264 페이지)

 

손은 가능하면 가슴과 허리선 안에서 움직인다. 가슴 위로 올리면 과장된 느낌이고 허리 이래로 떨어뜨리면 너무 잔잔하다. 뒷짐을 오래 지지 않는다. 양손을 만지작거리지 않는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는다. 팔짱을 끼지 않는다. 손을 허리에 올리지 않는다. 요약할 때는 손가락을 사용해 중요 포인트를 다시 정리한다.(267, 268 페이지)

 

저자가 언급한 내용들을 하루 아침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즐기라는 말을 강조한다.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 역시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거쳤다. 내용에 만전을 기하며 항상 새롭게 보고 준비하고 듣는 이들을 고려/ 배려하는 자세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두고 두고 펼쳐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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