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의 섬‘(1994년 민음사 출간)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라 고백함으로써 묘한 감동을 준 정신과 의사 한스 요하임 마츠의 후속작인 ’릴리스(Lilith) 콤플렉스‘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이다.

이 책에 ’내적인 부모‘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그들의 부모가 범한 잘못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증오와 실망, 고통과 비애 등을 털어놓는데 그렇게 해야만 정신적인 고통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분석하는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내적인 부모이다. 즉 환자가 기억하는 부모이자 환자의 마음 속에 저장된 부모인 것이다.

릴리스는 아담과 같은 방식으로 신에 의해 창조된 여자를 말한다. 둘은 평화롭게 살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릴리스가 자신과 아담은 모두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기에 서로 동등하다고 주장하며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아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 내용이 비록 환자들의 마음을 분석한 데서 나온 것이지만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유년 시절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이를 사회에서 해소하기에 여러 병적인 징후(나치즘, 사회주의, 극좌파와 극우파, 테러, 근본주의, 소비지상주의 등)가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참고점이 될 만하다. 물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 아니다.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과 비교할 만한 것을 한 행동약리학자의 책(’중독의 모든 것‘: 2016년 출간)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에 견줄 것은 심리적 부모라는 개념이다. 실제(實際)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부모 같은 존재를 말한다.

저자 히로나카 나오유키는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잘 자란 자녀 중에도 망가질 사람은 망가지고, 형편 없는 부모가 멋대로 키워도 잘 자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말한 내적인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어린 시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부모를 말한다.

한편 히로나카 나오유키가 말한 심리적 부모는 실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이상적인 부모의 의미로 읽히는 존재이다.

부모 특히 아이 시절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내 궁금증 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애정 결핍은 예외 없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는지 아닌지, 애정 결핍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게 한다면 그것이 유일한 원인인지 아닌지 등이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그렇듯 자본주의 사회를 병든 사회로 규정하는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은 모성 신화의 허구를 말한다.(’부모 – 나 관계의 비밀‘ 참고)

저자는 어머니들에게는 타고난 모성 본능이 있다는 의미를 가진 모성 신화는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모성신화를 긍정함으로써 양육문제를 여성에게 떠넘기려 하고, 여자들은 이를 이용해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요“라는 말로 자녀 양육의 잘못을 방어하려 하고, 자녀들은 모성신화를 내세워 자신의 어머니의 문제를 직면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마즈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즈는 어머니 없는 동독 사람은 초기 결핍이라는 무의식적 위기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친밀함과 연대를 만들었고, 어머니 없는 서독 사람은 개인주의와 나르시스적인 만족(소비, 명예욕, 오락)을 통해 결핍을 보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릴리스 콤플렉스‘ 234 페이지)

동독과 서독을 대비해 설명하는 것은 ’사이코의 섬‘에서도 시도된 것이다. 마즈의 말에 애정 결핍을 겪은 사람이 후에 모성적인 여성을 원한다는 말은 없다.

물론 마즈의 초점은 병리적 행동에 있기에 어머니 같은 여성을 마음에 두는 것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전문가의 말을 참고해 넓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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