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주객전도란 말로 수식할 수 있다. 주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물질이나 행위에 예속되는 것이다. 중독은 또한 의존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마음의 병과 다르다. 가정 내 폭력이나 스토킹 등 인간관계에 사로잡히는 것도 중독이다, 중독은 자라온 환경이 나쁘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냐는 특수한 문제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의존과 중독은 어떻게 다른가? 의존은 그 자체로는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것, 협심증 환자가 니트로글리셀린을 복용해야 하는 것 등이 의존 사례이다. 중독은 무언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에게는 기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심리가 있다. 이 메커니즘은 약물이나 도박 등으로 감정이 극심하게 흥분된 상태에서도 작동한다.
비정상적일 만큼 감정이 극심하게 고조되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데 강한 힘이 필요하므로 감정이 원래 수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약물은 신체 입장에서는 이물질인데 신체는 약물의 영향을 없애려 하는데 앞서 말한 다운됨이 크기에 동일한 강도의 약물로는 예전과 같은 흥분을 맛볼 수 없다.
마음을 다루는 의학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 동일한 사람에게 한 의사가 중독 진단을 내리고 다른 의사가 중독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판단 기준은 있다. 중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사회적 관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동일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상처받기 쉽다.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만큼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컴퓨터 게임에서 왕따를 당하는 캐릭터가 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는다. 심리적 통증은 신체적 통증에 가깝다고 한다. 인간은 항상 상처를 받으며 성장하기에 자신을 달랠 줄 아는 노하우가 요구된다.
문제는 상처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거처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거처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장소,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 충실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거처 부재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거처감이 없으면 자신의 능력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세력권을 잃은 동물처럼 심리적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기효능감이 떨어진다.(67 페이지)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에 근거하는 감(感)이다. 인간은 현실에서 패할 경우 가상 현실인 게임 속에서 이길 수 있다면 자기효능감이 향상된다.
자기효능감의 상승은 쾌감이므로 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약물이나 도박 등으로 자기효능감을 끌어올리면 진정한 자기효능감은 점점 더 떨어진다. 현대 심리학은 죽음 충동(trieb)의 존재여부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충동을 공격성의 문제로 본다. 그 공격성은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death drive에 의한 suicide)
저자는 완벽주의를 공격성과 연결짓는다. 목표의 완벽 수행은 불가능하기에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구불만에 빠지고 어느 순간 폭발한다. 이런 성향은 자신에게 향하기도 한다. 중독은 자신에게 서서히 가하는 자해이다.
저자는 심리적 부모의 중요성을 논한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도 망가지는 사람은 망가진다. 형편 없는 부모가 멋대로 키워도 문제 없이 잘 자라는 사람도 있다. 가정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수많은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따분하고 무료한 상황이 계속되면 뇌가 스스로 감각자극을 만들어낸다. 환각이다.
자극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한 것은 약물이나 도박에 손을 대는 심리와 관계가 있다. 저자는 공동체에 바탕을 둔 축제 공간을 잃어 그 유사품을 생활 곳곳에서 찾는데 이것이 중독의 사회적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80 페이지) 중독에 빠진 사람을 대할 때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10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약물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심리를 보인다. 나의 진정한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좀 더 대단한 힘이 숨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표면적이고 얕은 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수준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등이다.(109 페이지)
인도대마의 잎이나 꽃송이를 말린 것을 마리화나(marijuana)라고 한다. 마리화나는 포르투갈어 mariguango(취하게 만드는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꽃송이에서만 채취한 것은 간자(ganja), 순수하게 수지(樹脂)만을 사용한 것을 해시시(hashish)라고 한다.(115 페이지)
약물은 뇌에 작용한다. 인간의 뇌는 자몽 크기이지만 500 그램 정도인 자몽보다 훨씬 무거운 1.3에서 1.4 kg의 무게를 갖는다. 사람 뇌의 신경세포(neuron)는 1000억개에 이른다. 신경세포는 전기적으로 흥분하고, 화학물질을 생산, 분비한다.(130 페이지) 신경세포와 다른 신경세포는 아주 작은 틈(시냅스; synapse)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본다.
신경세포가 생산한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 neurotransmitter)이 세포 밖으로 분비된 후 시냅스를 헤엄쳐 반대편 신경세포에 도달한다. 반대편의 신경세포의 막에는 수용체라는 특별한 단백질이 있는데 열쇠구멍에 열쇠가 딱 들어맞듯 수용체에 신경전달물질이 결합된다.
신경계의 신호 전달은 바톤을 이어받으면 반드시 다음 주자가 달리는 릴레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음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 신기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송신측)의 주역은 한 종류이지만 가지고 있는 수용체(수신측)는 한 종류가 아니다.(132 페이지)
가령 도파민 작동성 신경세포는 세로토닌 수용체, GABA(감마아미노낙산) 수용체, 글루타민산 수용체 등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를 갖는다. 세포 단위로 약의 작용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약물 의존 욕구가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과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사람은 제임스 올즈(James Olds; 1922 - 1976)로 그는 정신과 의사나 약리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였다.(133 페이지) 일반적으로 약물은 동일한 양을 반복 투여하면 효과가 떨어지지만 각성제는 반대다. 흥분이 강렬해지면 한 달 정도 각성제를 끊었다가 다시 주사해도 강한 흥분이 일어난다.(136 페이지)
파블로프의 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억이 형성되었다는 의미이다. 어째서 이런 기억이 형성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지금 전 세계에서 분자(molecule) 수준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중독과 관련 없는 정상적인 기억이 만들어질 때도 나타난다.
약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쉬운 기억이 자동적으로 형성된다. 신경계는 그저 약물이 일으키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것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약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상태에 빠져버린다. 중독에 빠지면 보수계(報酬係: cerebral reward system)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잃어버린다.(138 페이지) 약물중독은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일단 한번 손을 댄 후에는 기분이 거의 자동적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상태에까지 이른다.(139 페이지)
도박 중독으로 유명한 사람 중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 작가 겸 정신과 의사인 가가 오토히코(加賀乙彦)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은 빚, 가불, 정치운동, 연애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 밀착해서 일어난 반면 뇌전증 발작이나 문학창작은 그런 현실에서 강렬하게 이탈하고 싶어할 때 일어났다.(150 페이지)
지나치게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oniomania)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애정이라고 한다.(164 페이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쇼핑중독증 환자는 마리 앙트와네트이다. 쇼핑의 본질은 부지런히 모으는 것일 수도 있고 펑펑 쓰는 쾌감과 연관되는 것일 수도 있다.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자, 제안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를 기르자 등의 답을 제시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은 완치가 되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완벽하게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저자는 중독 치료란 졸업이 없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지만 삶 자체가 졸업이 없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니 실망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 중독에 빠지는 배경에는 사실 아픈 기억이 숨어 있다. 저자는 마음은 뇌의 작용이며 뇌의 작용은 화학물질인 약의 힘으로 바꿀 수 있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중독약의 역할을 떠맡으면서도 중독약보다는 작용이 완화된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약물을 작동약(agonist)이라 한다. 금연을 돕는 보조제로 사용되는 니코틴 껌, 니코틴 패치 등이 대표적이다. 작동약과는 반대로 중독약의 효과를 제거하는 약을 길항제(antagonist)라 한다. 헤로인 중독에 사용되는 날트렉손(Naltrexone)이 대표적이다.
오직 알콜 중독의 치료에만 사용되어 알콜이 간(肝)에서 분해되는 속도를 늦추는 약이 있다. 디설피람(disulfiram)이 대표적이다. 숙취가 오래 지속되게 하는 약이다. 중독 대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중독 대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관점이 분야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잘 활용하여 밀접하게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271 페이지) 줄곧 중독의 예방 대책의 필요성을 주장한 저자는 사회를 클린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낙오자를 만드는 구조는 잘못되었다고 말한다.(278 페이지) 가령 그것은 학생이 대마초를 피워 검거되면 서둘러 그를 퇴학 처분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전문가의 관리를 받고 자조(自助) 집단의 동료와도 연결된 이상 그 사람은 더 이상 중독자가 아니다. 중독의 영역은 넓고 깊이를 알 수 없다. 저자는 인간에게 수많은 욕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프로이트가 말했듯 단 하나의 욕망이 있고 그것이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다채로운 욕망으로 변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282 페이지)
저자는 의존하는 대상이 충족시켜 주는 욕망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중독은 정신분석, 범죄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논의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야라 해야 옳을 것이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선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