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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시인, 윤동주 연구
이미옥 지음 / 박문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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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李美玉)디아스포라 시인, 윤동주 연구는 구성주의, 유동(流動) 의식을 가진 디아스포라, 현상학 등 세 단어를 키워드로 하는 책이다. 구성주의란 타자 체험과 관계된 말로 타인의 시점으로 세계를 조망하고 현재를 수렴해가는 것, 자신의 좌표를 설정해 나가고 주체를 구성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유동 의식은 고향 상실이 아닌 고향을 설정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현상학이란 주체의 의식을 흐름을 추적하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그간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 시인, 저항 시인 등으로 알려져 왔고 분석되어 왔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한 작업은 윤동주 시인의 의식의 변모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윤동주는 북간도 시인이다. 북간도는 윤동주의 물리적 고향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그는 북간도 이후 평양, 경성(연희전문), 동경에 이르는 이동 궤적을 보였다. 저자는 윤동주가 저항 시인이라는 연구에 대해 실제 그가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없음을 설명하며 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음을 언급한다.

 

흥미로운 점은 물의 심상에 주목한 연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본격적 작품 분석에 앞서 시대적 상황을 해석에 개입시키면 온당한 해석에 도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윤동주 시인을 디아스포라란 키워드로 분석한 시론들도 식민지 문제를 강조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며 식민지 문제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순수한 디아스포라 의식의 측면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디아스포라 문제를 디아스포라 정체성보다는 디아스포라 의식의 문제로 보고 그것을 주요 이론 틀로 세워 전개해 나갔다고 밝힌다.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개인의 상황과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구분할 수 있는 분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디아스포라 의식은 디아스포라 개인이 경험한 사유의 모든 지점을 포괄할 수 있는 수렴적 특성을 갖는다.(17 페이지)

 

저자는 디아스포라 개인과 타자가 한 공간에서 만나 발생할 때 생성되는 의식의 변용을 디아스포라 의식으로 설명한다.(22 페이지) 저자는 디아스포라에게 있어서 타자는 일상화된 개인이 아닌 거대한 구조 체계라 말한다.(23 페이지)

 

저자는 디아스포라는 역사적 산물이지만 의식의 작용은 내재적임을 언급한다. 즉 그것은 디아스포라가 처한 세계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생성, 발전하며 그 자체의 의식 자기의식의 뿌리와 연동하여 작용하는 것이다.(2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디아스포라 의식의 확대는 공간이나 시간, 가치 조망의 확대를 가져온다. 이런 확대는 시적 언어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26 페이지) 저자는 모국이라는 상상적 질서가 결코 현실에서는 질서화될 수 없음을 식민지라는 극단적 경험을 통해 확인한 윤동주는 자기 소외를 통해 만주에서도 모국 조선에서도 충족되지 못한 자기성을 구축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27 페이지)

 

윤동주의 디아스포라 의식은 디아스포라 경험에 기초하여 발현되는데 초기에는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순수의식을 보여준다면 후기로 갈수록 점차 자기 부정의 균열과 모순을 드러냈다.(28 페이지) 저자는 윤동주의 디아스포라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방법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난점이 대두됨을 언급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현상학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30 페이지)

 

윤동주의 정신적 모태인 명동촌이 북간도에 세워진 것은 1899218일의 일이다.(36 페이지) 윤동주는 만주를 거쳐갔던 다른 국내 시인들(백석, 이용악, 유치환, 이육사, 서정주 등)에 비해 오히려 만주에 대한 의식이 덜 반영되어 있다.(3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윤동주의 만주에서의 삶에는 유랑의 고통이 체험되어 있지 않다. 환경이 넉넉했고 일제 식민지의 영향을 덜 받았고 북간도가 민족 공동체적 공간이었다는 점 등 때문이다.

 

윤동주로 하여금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게 한 평양 숭실중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었다. 이에 윤동주는 만주로 돌아가 광명학원에 입학하는데 이 학교는 철저한 친일 학교였다. 연전(延專: 연희전문)으로의 유학, 모국과의 만남은 윤동주 일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53 페이지)

 

연전에 오기 전까지 윤동주는 상상적 고향에 대한 추구를 보여왔다.(61 페이지) 윤동주는 자화상이후 12개월 간 절필한다. 이 시에는 우물 물 즉 거울이 나온다. 저자는 라캉의 견해를 받아들여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은 자기의 모습이지만 이 바라봄을 통해 주체는 안과 밖을 구분하고 타자와 그 타자들로 구성된 세상을 응시한다고 말한다.(70 페이지)

 

저자는 욕망의 대상이 실재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과정은 죽음과도 맞닿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한다.(81 페이지) 라캉에 따르면 대타자를 상실한 실재계는 주체의 결여를 뜻하며 이는 자아의 죽음이란 측면에서 죽음의 충동과도 이어진다.(81 페이지) 이 상황에서 윤동주는 희생을 선택한다. 이는 윤동주가 외적 인격 즉 페르소나를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페르소나는 타인과의 관계설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격의 또 다른 모습이다.(82 페이지)

 

윤동주가 모델로 삼은 예수(‘십자가’)와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어로 개념화된 수많은 시간 가운데 윤동주는 항상 밤에 주목하고 있다. 밤은 윤동주에게 있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시간이다.(93 페이지) 윤동주에게 있어 출구가 없는 현실은 모국에 와서도 정작 모국을 되찾을 수 없는 시대적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의미한다.(94 페이지)

 

저자는 평양 만주 경성 일본 등으로의 이동을 통한 물리적인 거리는 상대적인 그리움을 유발시킨다고 말한다. 영원한 고향이란 없으며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의 이동은 존재론적인 탐험과도 같다.(107 페이지)

 

저자는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이란 시어를 디아스포라적인 원류인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한다.(110 페이지) 저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디아스포라 의식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한다.(121 페이지) 이 시에는 윤동주의 전체 시 가운데 가장 많은 대상들이 등장한다.(122 페이지)

 

저자는 시공간적인 움직임이 급류처럼 흘러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자신의 고정된 위치가 없이 눌 불안하고 초조한 헌대인들 또한 넓은 의미의 디아스포라라 말한다. 저자는 그런 이유로 윤동주가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고 결론짓는다.(131 페이지)

 

디아스포라 시인 윤동주 연구는 문제의식이 참신하고 논의가 성실한(설득력 있는) 책이다. 물론 윤동주가 사랑받는 이유는 디아스포라적 공통성 때문이라 단정지을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윤동주가 디아스포라적 시인임은 분명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항, 순수 등의 키워드로 인해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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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
채효정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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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해직 강사 채효정의 책이다. 이 책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교원도 아니고 노동하지만 노동자도 아닌 대학 강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우리는 가장 손쉽게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었고 가장 효율적으로 평가 지표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15 페이지)고 말한다.

 

저자는 교육자성과 노동자성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프레임은 교사든 교수든 강사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깨뜨려야 한다고 말한다.(19 페이지)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학교가 선생님을 해고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강의를 요청하겠다.”는 누군가의 주권적 제안으로 20161026일부터 1214일까지 매주 수요일 강의실 밖 잔디밭에서 진행한 열린 강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대학 당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자신의 불철저함에 대한) 반성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University의 어원을 예로 들며 자급하고 자립할 수 있는 단위를 가지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자치를 이루어 가는 모든 곳을 나라라고 정의(28 페이지)한 뒤 이곳이 정치의 장이 아닌 것 같지만 반드시 정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공간이기에(31, 32 페이지) 대학은 나라이고 하나의 작은 폴리스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저자는 대학을 대학으로 존재하게 하려면 대학으로서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33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대학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쫓겨난 자신의 처지가 학생들의 머지않은 미래라고 말한다. 정치철학자인 저자는 그에 맞게 고대 민주정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는 세 요소를 언급하며 대학과 기업의 차이를 논한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다워야 한다는 취지에서다.(이소노미아, 이세고리아, 이소크라티아가 그것이다. 이소노미아는 법 앞에서의 평등이고 이세고리아는 똑같이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이고 이소크라티아는 동등한 힘을 갖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책임지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말한다.(39 페이지)

 

저자는 비전임 교수가 전임 교수보다 훨씬 많고 비전임 교수 중에서 시간 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6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강의를 개설하거나 배정할 때 실제 강의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고 말한다.(41 페이지)

 

박정희 정권이 비판적인 지식인들과 젊은 소장 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고 강사들을 교원에서 제외시켰음을 상기시키며 저자는 21세기 대학은 엔클로저, 젠트리피케이션 등이 일어나는 장소로 정의한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인 공공 자원이 투입되기에 공공재이다.(엔클로저는 대학을 사유재로 봉쇄하는 것이다.)

 

대학은 모두의 것이다. 우리의 대학, 우리의 공화국을 자본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소수의 지배로부터 구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49 페이지) 저자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만드는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로 정의한다.(53 페이지) 저자는 민주주의를 시민의 정치가 아닌 노동자의 정치로 정의한다.(56 페이지)

 

저자는 인문학을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실천 등 다방면의 길을 통한 인간의 자기 해명과 자기 인식으로 정의한다.(57 페이지) 저자는 2() 노동 없는 대학에서 노동()에 적대적인 사회 환경을 문제삼는다. 대학 역시 노동()에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수라는 말이 있다. 이는 1학점에 대해 인정하는 강의 노동 시간을 말한다.

 

시수당 51,000원의 강사료를 받는 경우를 보자. 시수에 대한 노동 시간을 계산할 때 통상 3을 곱한다. 1학점 강의를 할 때 사전 사후 강의 시간이 앞뒤로 최소 한 시간씩은 더 들 것이기 때문이다. 1 시수는 대략 세 시간 노동으로 인정받는 셈이니 51,000원 나누기 3을 하면 시급은 17,000원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대학 교원으로서 강사는 강의 뿐 아니라 연구를 하고 학생도 만나는데 연구에도 시간이 들고 학생 상담 지도에도 시간이 든다. 1 시수당 아홉 시간의 노동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시간당 5,600원을 받는 것이니 최저 임금보다 못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저자는 독재자의 반대편에 섰다고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민중의 편에 서야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이고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때 민주공화국이 되는 것이다.(70 페이지) 저자는 뒤로는 이권을 챙기면서 박근혜, 최순실의 나라에서 잘 살았던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감옥에 갇혀 가며, 한 농민은 쓰러져 죽으면서까지 정권을 때려눕혀 놓으니까 죽은 개 위에 올라 타 민주주의자인 척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3강에서 저자는 1987년 민주 대항쟁과 2016년 촛불 집회를 대비하며 투쟁 현장에서 학생들(사회화된 집단으로서의 대학생)이 사라진 원인을 분석한다.(1987년에는 매일 데모를 했다. 2016년에는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시위했다. 학생들도 학교에 가지 않으면 학사 경고 받지만 단체로 가지 않으면 자를 수 없다.)

 

저자에 의하면 과거에는 등록금을 교육에 대한 대가로 생각했지만 오늘날은 등록금을 상품 구매 형식으로 생각하는 변화를 이야기한다.(등록금으로 학점을 사고 학위를 사는 것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도 어떻게 보면 학생들을 으쓱하게 만드는 브랜드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93 페이지)

 

교육이 상품 구매 행위로 이루어짐으로써 학생이 소비자가 되면 고육의 주체이자 정치적 주체로서의 학생 존재가 사라진다.(94 페이지) 학교는 학생을 돈으로 보고 학생은 자신이 낸 돈 만큼 가져가겠다고 하는 관계에서는 참된 교육도 우정의 관계도 성립할 수 없다.(95 페이지) 권리를 이익으로 환원하고 개인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극단적 개인주의를 통해 공동체를 파괴하는 길이다.(105, 106 페이지)

 

저자는 취업의 대안을 창업으로 설정한 현실을 비판하며 1인 기업체의 사장이란 것이 실은 자기 회사의 노동자인데 기업가와 노동자라는 이중적 존재를 하나의 몸 안에 체현한 이들에게 노동자라는 것은 쏙 빼고 사장님만 강조하는 비정상을 지적한다.(114 페이지) 대학에는 다시 대학생이 필요하다. 이 사회도 다시 대학생을 필요로 한다.

 

대학생들이 먼저 대학 안에서 싸워야 한다. 학생 사회가 해체되면 대학에서 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단위가 해체되는 것이고 전체 사회로 볼 때도 결정적으로 불리하다.(120 페이지) 4강 교수 없는 대학에서 저자는 지식인을 단지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만 지식을 가진 기술직 전문가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통찰적인 앎, 전일적인 앎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한다.(125 페이지)

 

저자는 교수와 학생이 편의점 점원과 손님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가 된 지 꽤 오래인 것 같다고 지적한다.(132 페이지) 저자는 대학 교수가 하는 일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 순위인지 묻는다. 연구 강의 사회실천이 아니라 강의 연구 사회실천의 순서이다. 저자에 의하면 교수는 존재론적으로 정의상 강의하는 사람이다. 학문과 지식의 시작은 교육이고 그 교육의 시작은 말이다.

 

배움이 서로 배움인 것은 서로 마주 보고 선 사람이니 가능한 것이다.(135 페이지) 강의는 항상 연구를 수반한다.(137 페이지) 그런데 오래 통합되어 있던 연구와 강의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분절이 생기기 시작했다.(138 페이지) 연구중심대학은 소련으로부터 스푸트니크 쇼크를 당한 미국이 군산학 복합체 연구 단위를 중심으로 우주 개발, 군비 확장 등을 위해 국가가 나섬으로써 비롯된 제도이다.

 

이 시스템은 엄청난 대학 관료 시스템을 낳았다. 대학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죽은 것은 학진(학술진흥재단) 체제와 더불어서이다. 학진은 1981년 교수들의 연구비 지원을 위해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출범했다. 문제는 학진이 거대 권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권력과 지식 엘리트들은 공생관계가 되었다. 대학에서 가장 많이 지원되는 분야는 곧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자되는 시장 영역이다.(155 페이지)

 

]저자는 대학을 공공재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국가 예산을 시장성이 없지만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155 페이지) 지금 대학은 더 큰 프로젝트를 따오는 교수들이 금권을 얻고 발언권을 얻는 구조가 되어 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맞고 있다. 돈에 길들여진 것이다. 상상력이 빈곤해진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면 연구의 자율성은 포기될 수 밖에 없다.

 

산학협력과정에서 교수들은 외부적으로는 업자이고 내부적으로는 관료화된다.(158 페이지) 저자는 교육과 학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연구 결과물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160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교육과 학문 연구 결과물을 민중의 언어, 시민의 언어, 일반의 안어로 번역하는 과정까지를 국가 서비스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160, 161 페이지)

 

피해는 만인이 보고 이익은 특정한 사람들이 챙기면서 불상사가 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테크노크라시를 해체해야 한다. 연구 결과물에 대해 강력하게 책임지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161 페이지) 저자는 입학 성적이 대학 교육의 결과가 아닌데 그 성적이 대학 서열화의 기초가 되는 것을 모순으로 선언한다.(171 페이지)

 

저자는 공공성의 원리가 깨지면 대학 교육은 공동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인들이 자신에 대해 투자하는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대학 교수의 임금이 교사보다 높은 이유를 그들이 그만큼 오랜 교육 기간 동안 금전적, 시간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을 공동체 교육이 아닌 개인의 자본 취득 과정으로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174 페이지)

 

저자를 통해 우리는 백화점의 인문 교양 센터와 차별성이 없는 대학 교양 교육 과정이란 인문학 앵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식의 인문학 붐은 좋지 않다. 인문학의 대중화는 인문학의 상품화와 다르지 않다.(184 페이지) 오늘날의 인문학은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중산층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속물주의적 교양으로 전락한 면이 있다.(185 페이지)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인문학의 생명은 저항성과 비판정신임을 확인한다.(187 페이지) 저자는 대학을 정치의 장소로 본다.(202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성직자와 관료, 귀족들을 양성하는 제도권 대학들이 대부분 산속 수도원에 있었던 반면 그 성스러운 캠퍼스를 박치고 나와서 철학과 법학 같은 세속의 학문을 커리큘럼으로 삼고 자유학예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대학들은 도시의 거리와 장터 광장 옆에 자리 잡았다.

 

대학이란 공간은 사회의 아고라, 포럼 역할을 해야 한다.(204 페이지) 모두의 일인 공공 사안을 민주적으로 처리하는 민주 공화국인 대학에는 반드시 정치(대학 구성원들 전체가 의견을 모으고 이 대학이 나아갈 좌표를 함께 결정하고 결정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가 있어야 한다.(205 페이지)

 

우려할 것은 통치가 정치를 대신하는 현상이다. 정치의 시작은 해결할 수 있는 권위자에게 답을 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동그랗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213 페이지) 시민은 도시민(都市民)도 아니고 신민(臣民)도 아니다, 시민은 정치적 존재이다. 국민은 정치적 존재가 아니지만 시민은 정치적 존재이다. 그래서 시민에게는 거부권이 있다.(223 페이지)

 

시민이 된다는 것은 정치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22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중립은 절대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처음 탄생했을 때 솔론이라는 사람이 민주의 요구를 받아서 정리한 개혁안이 있는데 그 내용에는 내란이 있었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솔론편에 나온다.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지켜보다가 이기는 놈의 편을 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227 페이지) 저자는 편()과 선(),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말한다. 정치적 주체가 되는 것은 누구의 편이 되는 것이고 선을 넘지 않으면 끝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235 페이지)

 

주인 없는 대학은 정치 없는 대학이라는 말이기도 하다.(238 페이지) 저자는 마지막 강인 대학의 탈환에서 너의 집권은 나의 실권, 나의 집권은 너의 실권으로 보지 말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들의 것이 되도록 권력의 지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어떻게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탈환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277 페이지)

 

공학적으로 생각하면 힘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할 뿐 커지거나 줄어듣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힘은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생기기도 한다. 저자는 2016, 2017년의 촛불이 정치 세력화하지 않았다고, 촛불은 정치의식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광장의 촛불이 자기 동네, 자기 회사, 자기 공장, 자기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 100만의 힘으로 작은 박근혜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이다.(283 페이지)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정치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287 페이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거론하며 40년 전 이야기로부터 우리의 시대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인가, 묻는다.(295 페이지)

 

저자는 사적 이익을 위한 투쟁처럼 보일까봐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교과 개편 재검토와 강사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자신의 강의는 포기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대학 교육과 제도 문제, 시간 강사 제도의 부당함 등 객관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공허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생존권 투쟁이라는 것을 정치, 사회적 구조를 바꾸려는 근본적 투쟁으로 보지 않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경제적 투쟁으로만 보는 관점이 정당한지 묻는다.(300 페이지) 저자는 밥그릇 싸움은 저차원적이고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투쟁은 고차원적이냐고 묻는다.

 

저자는 밥그릇 싸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투쟁이라 정의한다. 밥 한 그릇에 담긴 것은 배불릴 양식만이 아니라 삶을 지킬 주권과 존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전히 자신은 이 대학의 철거민, 난민, 몫이 없는 자로 서 있지만 또한 싸우는 사람으로 서 있다고 말한다.(306 페이지)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20176월 출간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해 읽은 것은 출간일로부터 7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이다. 그 이후 저자의 투쟁에 결실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여전히 피켓을 들고 선 저자의 사진이 실려 있다. 지금도 그는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나는 그의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많이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하며, (대학 당국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대응에) 분개하며 읽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의 실상, 대학의 구조적 모순, 정치와 민주주의 등 근본적인 개념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고 상투적이지만 힘 내시라는 말만 하게 됩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경의 불온한 인문학을 읽은 이래 인문학의 본령을 비판정신과 저항이라 표현한 책을 만난 것이 소득이다. 요즘 인문학이란 말을 불편해 하는 나에게는 시의적절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어 감사하다.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중산층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속물주의적 교양으로 전락한 인문학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깊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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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서울을 바꾸는 정책 꿈꾸는 내일 4
전우용 지음 / 서울연구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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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바꾸는 정책 꿈꾸는 내일 시리즈 네 번째 간행물인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의 '한양 도성'은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으나 2017년 국제 기념물 협의회로부터 등재 불가 판정을 받은 한양도성의 위상과 가치를 간단하게 조망한 책이다.(시리즈의 모든 책들이 150 페이지를 넘지 않는 소책자들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김수영 시 '거대한 뿌리' )는 시 구절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로부터 시작되는 '한양도성'은 얇지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은 알찬 책이다.(시에서 말해진 그녀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다.)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종각의 종소리와 함께 성문이 닫힌 뒤에는 낮 시간대 옥외 활동이 제약되었던 여성들만이 거리를 오갈 수 있었다"(6 페이지)는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도성과 서울의 관계이다. "도성은 서울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서울이었다."

 

성벽과 성문은 서울을 알리는 이정표 또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서울 사람들에게 성벽은 운명적 동반자였다. 서울을 방문하는 일은 성벽을 보고 성문을 지나는 일이었으며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같이 성벽을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개인 또는 소집단으로는 결코 자연에 맞설 수 없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분업과 협업 구조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지휘권을 장악한 집단이나 기구 즉 국가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은 서로 다른 문명 발달 단계에 있는 종족 사이의 전쟁과 병행된 과정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신석기 농업혁명과 그로 인한 정착 및 저장(잉여생산물에 대한)으로 인해 권력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언급되어야 한다.

 

도시(都市)라는 이름에서 도()는 모두 갖추었음을 의미하고 시()는 교환이 일어나는 장소를 의미한다.(20 페이지) 광희문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사이의 한양도성의 동남문이다. 수문인 오간수문과 이간수문(도성 안에서 발원한 하천의 물줄기를 성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만든 문) 인근에 있어 수구문(水口門)으로 불렸고 조선시대 도성 안에 매장이 일체 금지되었기 때문에 시체는 모두 성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광희문과 소의문이 시체의 출구로 배정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구문(屍口門)으로도 불렸다.(40 페이지)

 

안현미 시인의 屍口門 , 이란 시를 보자. “,파란 아침이고 시구문 밖으로 나가면/ 끝날 이 고통도 아직은 내 거예요. 친절하지 않을래요 종/ 합선물세트처럼 주어지는 생을 사는 건 당신들이지 나는/ 아니에요....죽은 자들만 불러모아 사망/ 자 주식회사를 만들고 영원히 죽고 싶은 나는, 시구문 밖,/ 봄 활짝 핀 착란이 그리워요.”

 

태종은 즉위 후 한동안 개성을 영구 수도로 삼으려 했다. 그러던 태종은 개성과 한성을 자주 왕래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한성에 이궁(離宮)을 지을 것을 명했다. 태종은 이궁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양으로 행차해 열흘 정도 조준의 집에 머물다가 공사가 끝난 뒤 창덕궁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어(移御)했다.(44 페이지)

 

한양도성을 처음 쌓을 때 도평의사사에서는 성곽은 안팎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나라를 굳건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18 페이지) 인조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세 번 절하고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청나라 의식)의 굴욕을 강요하며 항복을 받아낸 청 태종은 화의 조건 중 하나로 성이 무너져도 다시 쌓지 않을 것을 집어넣었다.(48 페이지)

 

한양도성의 성벽은 몸통인 체성, 체성 위에 낮게 쌓은 여장, 총을 쏠 수 있게 만든 총안 등으로 구성되었다.(58 페이지) 한양도성의 성문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공간과 그 외부 사이의 접촉을 통제하는 시설이다.(59 페이지) 도성을 빠져나가는 사람이나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나 모두 성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고 문을 여닫는 시간은 국가가 통제했다.

 

성문을 여닫는 시각은 도성 한복판에 종루를 세우고 종을 쳐서 알렸다.(59 페이지) 조선왕조는 도성을 쌓은 후 그 안을 한성부라 했다. 한성부는 새 수도의 행정 구역 명칭인 동시에 도성 안과 성저십리의 행정을 관할하는 정이품 관청의 이름이기도 했다.(67 페이지)

 

1420 년대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도성 안의 가호수는 17105, 성벽에서 10리 바깥까지의 거리 내에 있는 지역인 성저십리의 가호 수는 1779호였다. 성저십리의 면적이 도성 안보다 다섯 배 이상 넓었으나 인구는 1/10에 불과했다. 성저십리의 행정도 한성부가 담당했지만 성벽은 그 안과 밖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누었다.

 

도성 안은 왕실과 국가의 존립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도성 주민은 조세, 공물, 요역을 모두 면제받았다. 대신 도성 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국가의 지휘에 따라 일상생활을 조직할 의무를 졌다. 이를 방역이라 했는데 왕의 행차에 앞서 도로를 청소하는 일, 낙엽이 쌓였을 때나 눈이 많이 내렸을 때 궁궐을 청소하는 일, 내사산의 숲을 관리하는 일, 국상 때 상여를 지는 일 등이 모두 방역으로 부과되었다.(69, 70 페이지)

 

한양도성은 군사 시설로는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에도 왕은 적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도성을 버리고 피난했다. 성벽은 그저 성 안팎을 왕래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서울 성벽은 전쟁 때문이 아니라 세월 탓에 여기저기 무너져 내렸다.

 

숙종 때부터 다시 성을 수축(修築)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유사시 버리고 도망갈 성을 다시 쌓는데 대한 불만이 높아갔다.(75 페이지) 내사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한 몸이 된 한양도성은 놀이와 문예 활동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85 페이지) 성벽 주변에는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명승지가 많이 시인 단체인 시사(詩社)들의 모임도 자주 열렸다.

 

1899년 전차가 다니면서 그 궤도로 인해 성문을 여닫을 수 없게 됨에 따라 수백 년간 도성민의 일상생활을 규제했던 바라와 인정도 중단되었다. 대신 창덕궁에 대포를 설치하여 매일 정오에 오포(午砲: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쏘았다. 이로써 밤과 낮으로만 구분되던 중세의 시간은 정오를 기준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뉘는 근대적 시간으로 재편되었다.(91 페이지)

 

19108월 한국의 주권을 강탈한 일본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 소속으로 삼았다. 한성부의 수도 지위를 박탈하여 일개 지방 도시로 격하시킨 것이다.(96 페이지) 한양도성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고 해방과 동시에 거대한 인구 이동으로 훼손되었고 한국전쟁 중 집중적이고 대규모적인 피해를 입었다.(104 페이지)

 

1955년 혜화동과 성북동 안에 새 교지(校地)를 마련한 경신고등학교는 학교 신축 공사를 하면서 주변 성들로 축대를 쌓아 큰 물의를 일으켰다.(105 페이지) 경신고등학교의 축대는 현재까지도 한양도성의 완전성을 훼손한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105 페이지) 대한민국의 문화재 보호법은 19621월 제정되었다.(104, 105 페이지)

 

1968121일 북한군 특수부대가 청와대 인근 백악까지 침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악과 인왕 일대의 성벽 주변이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고 성벽은 군사 시설이 되었다. 성벽 주변에 군 초소 등이 신설되고 정상부에 방공 시설 등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도성은 다시금 훼손되었다.(109 페이지)

 

2006124일 문화재청은 광화문 해체, 복원 및 월대(月臺) 조성, 한양도성을 사적과 명승으로 지정, 관리하는 방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울 역사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서울 한양도성 내부 공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125 페이지)

 

20117월 문화제청은 서울성곽이라는 사적 지정 명칭을 서울한양도성으로 변경했다. 읍성, 산성, 토성 등 전국에 산재한 성곽 유산의 명칭 부여 방식을 통일한다는 취지에서였다.(129 페이지) 2012928일 한양도성도감이 설치되었다. 도감(都監)이란 조선시대에 특정 목적 사업을 위해 설치한 임시기구를 말한다. 서울시가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한양도성 보존관리 사업의 역사적 의의를 드러내고 사업단의 목표를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설정했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한양도성도감 설치와 동시에 서울역사박물관 산하에 한양도성연구소가 신설되었다.(137 페이지) 2014731일 동대문성곽공원 내 서울디자인 지원센터에 한양도성박물관이 개관되었다.(138 페이지) 1975년 서울성곽 복원 사업이 시작된 이래 박원순 시정(市政) 이전까지 한양도성 관리 행정은 외형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한양도성도감이 설치된 뒤부터 원형 보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조선시대 서울 고지대의 성곽 주변에는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다. 왕의 거처인 궁궐을 굽어보는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궁궐의 권위가 소멸되고 서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성벽 주변 고지대 여러 곳에 빈민들의 토막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무허가 주택이 건립되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1950 1960년대를 거치면서 낙산, 인왕산, 남산 기슭의 성벽 주변에는 예외 없이 마을이 생겼다. 1975년 성곽 복원 사업을 시작하며 성벽 주변의 일부 무허가 주택을 철거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전면 철거하지는 못했다.(144 페이지)

 

저자는 한양도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서는 한양도성을 우리의 값진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한양도성을 물리적 구조물을 넘어 정서적 구조물로 소생시켜야 한다는 말(151, 152 페이지)로 책을 마친다. 정서적 구조물이란 말이 중요하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효덕의 표상공간의 근대에 이런 논의가 있다. 조망(眺望)하는 인간이 없다면 풍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을 저자의 논의에 맞추면 한양도성을 역사적 의미가 담긴 정서적 구조물로 여기는 시민들이 없으면 그것은 단지 우리 밖의 물리적 구조물(애정의 대상이 아닌)에 불과하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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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 나희덕이 읽은 우리 시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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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관련해 최근 의미 있는 두 가지 발언을 접했다. 한 발언은 논문 지침서에서 발()해진 것으로 그 책은 순전히 저자 자신의 경험으로 쓴 책이라는 말이다. 다른 발언은 역사 소설 창작 지침서에서 발()해진 것으로 어떤 일에 성공한 사람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라고 하면 잘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까 되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말이 많다는 말이다.

 

두 발언은 좋은 지침서의 가치를 강조하는 말인 듯 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쓴 많은 서평도 논문 지침서의 저자처럼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이다. 역사 소설 지침서의 저자는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말하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은 잘 말하지 못하고 많은 실패를 거쳐 성공한 사람들은 발언 기회를 얻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나희덕 시인의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으며 수필 형식의 시비평집이 내게는 생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일 뿐 문학비평가라는 자의식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한국 문학비평가들이 시를 너무나 읽을 줄 몰라 시 비평을 썼다는 논자(김정란 교수 지음 비어 있는 중심’ 6 페이지)가 있지만 나희덕 시인은 거의 동시에 자신의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두(시인으로서의 정체성, 비평가로서의 정체성) 갈망이 그 후로 오래도록 서로를 먹여살렸다고 말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보랏빛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긴 글이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빨강과 파랑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갖겠다는 의미이지만 시와 시 비평, 읽기와 쓰기, 사유와 실천 사이에서의 그것도 포함되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첫 단원인 낡은 구두와 <낡은 구두>’에서 시인은 1994년 문익환 목사님의 부음을 실마리로 구두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며 하이데거 및 미당(未堂) 등에 대한 구두론을 펼친다. 백석과 서정주 시인의 고향론을 펼친 고향, 잃어버린 종소리에서 저자는 모든 인간은 방랑자인 동시에 거주자라는 볼노(L. F Bollnow)의 말을 인용한다.(38 페이지) 이 역시 보랏빛 이야기로 수렴하는 듯 하다.

 

탄생의 순간을 포착하는 시론에서 저자는 시가 태어나는 순간을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 말한다. 앞서 말한 역사 소설 지침서의 저자의 말을 연상하게 하지만 소설과 시는 다를 것이다.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에서 보랏빛을 역동적인 색으로 정의(59 페이지)한 저자는 그에 맞게(?) “정교한 방법론이나 비평적 테마를 제시해주는 시론보다 또하나의 시적 창조를 추동할 수 있는 맹아적 힘을 가진 시론들에 더 손이 간다.”는 말을 한다.(42 페이지)

 

역동(力動)의 동()과 추동(推動)의 동()이 같은 글자임을 유의하자. “가장 심각한 나의 우둔 속에서/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는 김수영 시인의 영롱한 목표의 일부를 인용하며 첨단의 노래와 정지의 미의 관계를 이야기(55 페이지)했던 저자는 장석남 시인과의 대담에서 침묵이란 그 속에 활발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꽉 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71 페이지)

 

활발한 운동성을 역동성이란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의외로 자신은 의미를 많이 남겨야 시의 꼴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한다.(78 페이지.. 이 말에 이어 저자는 장석남 시인은 의미를 자꾸 배제하면서도 시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초기 시는 체험 자체의 진정성만 있다면 시가 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 때문에 언어적으로 상당히 이완되어 있었다고 말한다.(79 페이지)

 

자연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에서 바다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에서 바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김기림, 임화, 이용악, 정지용 등의 바다 시편들에 와서이다. 이들은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서 경험한 현해탄이라는 구체적 바다를 근거로 바다에 대한 시를 썼다.

 

자연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에서 저자는 회화나 문학에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중립적인 공간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묻고(95 페이지) 같은 풍경을 보고도 그것을 느끼고 표현하는 바가 각각 다른 것은 대상에 대한 심미적 인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96 페이지) “풍경이란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보는 주체에 의해 선택된 심미적 인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96 페이지)

 

자연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는 시와 그림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례로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에 나오는 저만치라는 시어를 예로 들어 저자는 그것을 새로운 시선과 원근법적 구도로 본다.(101 페이지) ‘자연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는 상당히 깊이 있고 정밀한 시선에 의해 쓰여진 시론이다.

 

'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그리고 시'란 챕터는 시와 생태, 여성적인 것의 친밀성을 탐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연에서 생명의 광휘가 사라진 것과 예술작품에서 아우라가 사라진 것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125 페이지) 저자는 시를 사물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1회적인 아우라를 포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는 영역으로 본다.(126 페이지)

 

저자는 시에 있어서 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만남은 순전히 이념적 결합만으로는 안 되고 시인의 몸 자체가 생태적 공간이 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본다.(130 페이지) 저자는 다양성을 생태적인 것으로 본다.(136 페이지) '창조, 거대한 뿌리의 발견'에서 우리는 김수영 시인이 어떻게 선배 시인들 또는 전통에 대해 의도적 오독을 했고 또 그런 과정을 거쳐 자기 시 세계를 구축했는지 접할 수 있다.

 

저자는 김수영 시인의 독자적 시 세계 구축의 동력을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김지하 시인론인 '불귀(不歸)와 미귀(未歸)의 거리'에서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은 원래부터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실과 문화적 맥락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추상적이 되기도 하고 구체적이 되기도 한다(176, 177 페이지)고 말한 저자는 김지하 시인의 '황토'를 고도로 추상적인 시가 강렬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사례로 꼽는다. 저자는 불귀와 미귀의 문학적 차이를 논한다.

 

고정희론(‘시대의 염의(殮衣)를 마름질하는 손’)에서 저자는 고정희 시인을 기독교, 민중, 여성이라는 커다란 화두들을 자신의 내면 속에서 하나로 녹여내려고 했던 용광로 같은 시원(始原)이었다고 풀이한다.(222 페이지)

 

김혜순론(‘다성적 공간으로서의 몸’)에서 저자는 김혜순의 시에 나타난 다성적 특징을 다성성이라는 개념의 비평적 발원이기도 한 바흐친의 미학 이론과의 접점들을 통해 해명해 보였다. 저자는 문학이론의 현재적 의미는 언어적인 경계는 물론이고 시대나 장르의 차이를 넘어서 그 대화적 가능성을 발휘할 때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말을 한다.(220 페이지) 이는 바흐친의 미학이론은 도스토예프스키나 라블레 등의 작품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소실미학에 가깝고 그 이론으로 해명하려는 김혜순의 작품은 시임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저자의 글은 김혜순 시론에 이어 장정일의 초기 시론, 김기택의 시론, 최두석 시집 꽃에게 길을 묻는다평론, 이홍섭 시집 숨결평론 등으로 이어진다.

 

보랏빛을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으며 느낀 것은 저자의 시 읽기 내공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점이다. 치밀하고 어떤 때는 어려워 난감함을 갖게도 한다.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생각이 깊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순서인 장철문 시집 바람의 서쪽평론까지 저자의 글은 고르게 안정적이다.

 

김정란 시인이 말한 재단이 아닌 소통(疏通)의 글쓰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선()은 삶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식이고 시()는 삶의 무게를 끝까지 끌어안고 짊어지는 방식이라 말한다.(314 페이지) 저자가 바라보는 장철문 시인은 전기한 두 방식을 함께 지니고 가는 존재이다. 밝힐 수 없지만 김수영 시인에 대한 저자의 두 가지의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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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4
박홍규 지음 / 푸른들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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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의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를 읽었습니다. 헤세가 주관적인 영역에 사로잡혀 세상일에 무심한 채 사춘기적 고뇌를 작품화한 작가라는 세평이 잘못되었음을 40세가 다 되어서야 깨달았고 50이 넘어서야 그를 더욱 뜨겁게 좋아하게 되었다는 박홍규 교수의 책입니다.

 

우리의 철학이 얼마 전까지 2차대전시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의 철학이었던 것처럼 헤세의 데미안도 그런 내력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엽 일본이 극단적인 군국주의하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할 때 일본에서 많이 읽혀 우리나라에서도 읽힌 책이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물론 저자가 헤세를 완전히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헤세에 공감하는 만큼 회의합니다. 헤세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헤세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가졌었다는 점입니다. 헤세가 바라본 인도나 중국의 종교는 카스트제도나 봉건제도를 정당화하는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40 페이지)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헤세가 대단히 반사회적인 음양사(陰陽師)나 점쟁이 도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화가 나서입니다.(음양사는 천문天文, 역수曆數, 풍수지리 등을 연구하여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헤세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니지만 그가 평생 맞서 싸운 시민적 삶은 자본주의적 삶이고 추구한 예술가의 삶은 반자본주의적 삶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입니다. 저자는 헤세를 반국가주의적 아나키스트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헤세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헤세가 스승이나 친구들을 나름으로 이해하면서도 언제나 그들을 뛰어넘으려 했다는 점입니다.(34, 35 페이지)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부처마저 떠났고 세상에 맞서기 위한 반항 체험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41 페이지)

 

헤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고뇌를 극복하기보다 고뇌 때문에 죽습니다. 대부분 교양적 시민이 아니라 비교양적인 본능에 충실한 반시민적 인간상을 지향했습니다.(46 페이지) 저자는 전혜린의 헤세 해석을 비판합니다. 헤세 작품에 통틀어 나타나는 주제는 자아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참된 자아로 가는 길이었으며 이 모토에 그는 끝없이 충실했다는 전혜린의 말에 대해 자아로부터의 해방은 무엇이고 참된 자아는 무엇인가 묻는 것입니다.(47 페이지)

 

그러고 보니 자아로부터의 해방과 참된 자아라는 말은 너무 막연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그런 난해한 자아론보다 독일의 현실에 저항하는 개인의 자아, 즉 개성이라는 것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억압적인 현실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자는 헤세가 말한 자아란 사회나 역사, 정치 등에 의해 파괴된 자아이지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자아가 아니라고 봅니다. 헤세는 줄곧 규격에 맞추어지지 않은 자연아 개인이었고 그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50 페이지) 헤세의 제도권 교육은 중 2 중퇴로 끝났고 그 이후 그는 철저히 독학을 했습니다.

 

까닭 모를 외로움이나 알프스를 향한 향수가 아닌 역사나 민족, 대중으로부터 고독을 느낀 헤세는 현 사회를 부정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었지만 유토피아적 공동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삶을 강력하게 추구했기에 누구보다 사회적입니다.(53 페이지) 저자는 헤세를 독일문학의 가장 우직한 반항아라 부른 라니츠키를 예로 들며 헤세는 니체의 유일한 제자라 말합니다.(56 페이지)

 

헤세는 니체에 심취했습니다.(87 페이지) 저자는 괴테 이래 독일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고독한 자아성장이라는 주제는 독일사회 특히 교육제도에 대한 고뇌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88 페이지) 헤세는 예수와 톨스토이의 가르침을 따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삶을 꿈꾸었습니다.(99 페이지)

 

저자는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단순한 청춘의 애가(哀歌)가 아니라 체제 비판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가정과 학교와 직장이라는 체제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어느 10대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기서 정치와 경제는 구체적인 체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10대의 생활을 지배하는 권위주의적인 가정, 학교, 직장은 이미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전제하는 것입니다.(121 페이지)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적인 소설이자 사회비판적인 작품이었지만 다른 작가들과 같이 1900년 전후에 유행한 학교 소설의 유형을 따른 것입니다.(123 페이지) 저자는 헤세가 역사소설이든 시대소설이든 환상소설이든 그 어떤 픽션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예 소설가로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57 페이지)

 

이 말에 맞게 저자는 헤세의 작품들 속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을 예시하며 헤세의 심리나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령 1910년 작품인 게르트루트에 나오는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며 달든 쓰든 간에 그것은 당연히 내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책임지려고 생각하는 것이다.”란 구절을 보고 저자는 이처럼 운명을 수용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태도는 그 전의 헤세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가졌던 방황이 어느 정도 극복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작중 두 음악가의 대립은 여전히 헤세 마음의 대립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153 페이지)

 

1916년 헤세는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쟁의 충격과 포로들을 위한 격무, 막내 아들 마르틴의 중병, 부부관계의 위기 등의 탓이었습니다. 헤세를 심리치료해준 사람은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입니다. 헤세는 랑을 통해 융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과의 만남 덕분에 헤세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자신 속에 있던 무의식의 세계는 막연하고 단편적인 것이었으나 정신분석에 의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181 페이지) 저자는 전쟁이 한창인 1916년부터 쓰여진 데미안을 통해 헤세가 강조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란 말을 예시하며 데미안은 무더기 총알받이로 죽는 비인간적인 전쟁에 대한 거부이자 이를 초래한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지 추상적인 한 인간의 성장사라는 교육학적인 도식에 의해 쓰인 성장소설이 아니라 말합니다.(18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데미안에서 말해진 깨어나야 할 알은 낡은 유럽입니다.(191 페이지) 헤세는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이었고 평생 종교적이었지만 그의 종교성은 특정 종단이나 종파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헤세 안에 종교적 감성이 자리했다는 의미입니다.(219 페이지) 헤세에게 모든 종교는 같았습니다. 그의 그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싯다르타입니다.(221 페이지)

 

황야의 이리1960년대에 히피 열풍 속에서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유명한데 헤세 소설 중 가장 자서전적인 작품입니다.(234 페이지) 저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니체류의 아폴론적 인간상과 디오니소스적 인간상의 대비가 아닌 정신과 자연의 불일치가 초래한 체제와 시대의 문제를 풍자한 작품으로 봅니다.(256 페이지)

 

1931년 무렵 헤세는 히틀러에 반대하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라는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과거부터 공산주의를 지지했으나 정당 소속이란 그에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파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이 무렵 헤세는 유리알 유희를 쓰기 시작합니다.(274 페이지)

 

1945년 이후 유리알 유희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함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시즘과 니체를 비판한 파우스트 박사는 문명비판과 근대비판인 동시에 사회현실로부터의 추상화라는 점에서 유리알 유희와 공통점을 보입니다.(275 페이지) ‘유리알 유희2400년경 어느 전기 작가가 자기보다 200년 앞선 시대인 2200년경의 전설적 유리알 유희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 되어 있는 미래 소설입니다.(280 페이지)

 

헤세는 정신적으로 억압받는 시대에 정신적으로 해방된 가상의 미래를 빌려 그런 정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여 현실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씁니다.(281 페이지) ‘유리알 유희의 집필 시기는 1931년에서 1943년으로 나치의 집권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유리알 유희에서 주목할 부분은 헤세가 평생 추구한 개인화나 개성화가 그가 속한 집단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사회의 묘사 부분입니다. 헤세는 이단을 중시했습니다.(283 페이지) 피타고라스파, 그노시스파, 중세 스콜라 철학...

 

헤세는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혐오하고 자기 책을 통해 고집쟁이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304 페이지) 헤세는 사랑이 없는 독서, 경외감 없는 지식, 따스한 마음이 없는 교육 등을 정신세계에 있어서 최악의 적으로 간주했습니다.(304 페이지) 저자는 헤세에게서 체 게바라를 봅니다. 헤세의 삶과 문학은 개인의 독립선언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309 페이지) 헤세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반항할 것을 주문했습니다.(311 페이지) 저자는 말합니다. 반항하기에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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