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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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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로 대변되는 힘의 관계는 갑과 을로 나뉜다. 갑질은 바로 그 갑이 저지르는 못된 횡포를 말한다. 우리 사회의 갑들은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등이다. 하지만 갑질은 상대적이어서 힘센 사람 앞에서 을인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갑으로 군림할 수 있다.

 

저자 강준만은 갑질을 우리가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본다. 저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안 드림의 토대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방식을 내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각개전투 사회의 시스템이다. 요즘에는 각자도생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다. 저자는 진보가 힘주어 주장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그들이 온힘을 다해 비판하는 낙수효과의 사회적 버전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하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6.25 심성(心性)이란 것이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참사를 겪는 동안 우리 국민들이 몸에 익힌 극단의 생존경쟁, 물질만능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인주의 등을 말한다.

 

갑질은 6.25 심성이 구현된 것이다. 물론 갑질은 한국인의 전투성을 키워준 동력이었다. 한국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압축성장을 하게 한 힘이 한국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모욕사회이다. 남에게 모욕을 주는 걸 자신의 인정욕구 충족이나 존재감의 확인수단으로 이용하는 사회인 것이다.(42 페이지)

 

한국은 우리가 개인주의 사회로 알고 있는 서구 사회보다 공동체성이 훨씬 취약한 나라이다.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나는 모욕을 견디는데 너는 왜 못하냐며 내부 고발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를 보며 이는 인간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라 말한다.(59 페이지)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온갖 불합리와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이런 불합리와 모순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성은 없고 떼 쓰고 과시하고 일그러진 의식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양상을 보면 어린아이들의 막무가내를 보는 듯 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란 말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는 '너 따위가 감히'를 핵심으로 하는 권력 담론이자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갑질 언어이다. 저자는 나름으로는 제법 성공을 거둔 이들이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으로 간주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그들이 기고만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열심히 조성해오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오직 남과의 서열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84 페이지) 사실 속물적 과시와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신분이나 지위를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경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국가 시책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린 탓도 있었지만 황실은 세원(稅源)이 없어 벼슬을 팔아서라도 국고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탐관오리들만이 득실거렸는데 벼슬을 돈 주고 샀으니 본전 뽑고 이익까지 남겨야 했음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다. 갑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오늘날 양반 족보는 학력, 학벌 증명서로 대체되었다.

 

저자는 능력주의는 허구이거나 사기(詐欺)라 말한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되는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서울대 합격률은 아파트 가격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모든 능력을 세습되지 않은 재능과 노력의 산물로 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즉 능력주의이다.(145 페이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온갖 차별과 서열주의의 시발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로부터 배운 그런 악덕들을 학생들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벌 카스트는 상징자본은 물론 돈과 힘까지 독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 어떤 면에서 인도보다 뒤떨어진 카스트제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161 페이지) 저자는 지위(地位)의 본질은 비교라 말한다.(191 페이지) 한국인들이 자부심이 낮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남의 시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좁은 땅에서 동질적인 사람들이 몰려 살다보니 갖게 된 인정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211 페이지)

 

저자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는 상상력과 용기, 이것이 바로 지위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 말한다.(222 페이지) 학력, 학벌 차별처럼 외모 차별도 갑질의 하나이다. 대기업의 중소 기업 착취도 그렇다.

 

미생(未生)’을 통해 널리 알려진 비정규직에 대한 푸대접, 차별 등도 그렇다. 우리나라도 서구 선진국들처럼 고용 안정성이 없는 비정규직이 돈을 더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272 페이지)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재벌을 사랑하는 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에 비유한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기면서도 고용확대를 주저하고 오히려 사내 하청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을 주도한다. 하도급 기업에 대해 납품 단가 후려치기, 기술 빼앗기 등 불공정 거래를 일삼으며 이익의 공유를 거부한다. 중소기업 영역과 심지어는 골목상권까지 침투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사는 나라는 경쟁 과잉이지만 강자들()이 사는 나라는 경쟁 과소이다.(245 페이지) 관피아, 전관예우, 담합 등을 보라. 저자가 말했듯 한국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공정 경쟁조차 구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245 페이지)

 

우리 사회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승자 독식 사회가 되었다.(276 페이지) 승자 독식 사회란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대학 등록금 폭등의 원인이 대학 서열화에 있는데 그것을 오히려 강화하면서 억울하면 너도 대학 가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라 말한다.

 

저자는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왜 우리만 자기성찰을 해야 하느냐?”, “왜 적을 이롭게 하느냐?“는 항변으로 대체하는 멘털리티라 말한다.(280, 281 페이지) 한 사교육 관계자는 가진 사람들이 부를 세습하는 장치들이 너무 단단하다, 공부 잘 한다고, 명문대 나온다고 중산층으로, 그 이상으로 올라가긴 쉽지 않다, 대학 잘 가는 것은 경쟁력 요소의 하나일 뿐 그리 큰 경쟁력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318 페이지)

 

온갖 독설을 하며 공부를 독려하던 이의 말이다.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고착화 사회, 변화(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없는 정체 사회가 되었다. 이게 가장 큰 갑질이 아닐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를 우리 나라를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런 가혹한 투쟁이 을에게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것이라 말한다.(33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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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 한국적 페미니즘, 한국적 포스트모던 영성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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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는 한국 유교의 종교성을 여성들의 삶, 리더십 등과 연결시킨 책이다. 1부 다른 유교, 2부 다른 기독교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영정조 시대의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 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 1832)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제시한다.

 

강정일당은 지극한 종교인,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남편에게 삶에서 도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귀중한 일임을 일일이 강조하고 부귀나 생계, 과거 시험 등이 결코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누누이 상기시켰다.

 

저자는 이런 의식이야말로 오늘날 어떤 현대의 페미니스트 주체의식보다 더욱 견실한 주체의식이라 규정한다.(48 페이지) 저자는 유가적 도()의 특성이 성인지도(聖人之道)의 추구라고 보면서 그것이 단순히 어떤 정치경제적 의미나 윤리, 도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배움을 통해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깊은 내재적 초월성과 종교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유교 종교성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공적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 유교 영성과 종교성이 오늘날 여성들에게 포괄성과 지속성의 영성을 준다고 본다.

 

저자는 가정의 안녕을 기초로 해서 정치와 문화와 경제를 통괄해서 보는 안목, 드러나는 일순간의 효과에 좌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결심, 자신의 가정이나 사적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의 만물에 마음과 관심을 두는 포괄적 배려심과 생명적 책임감 등의 덕목과 배려심이야말로 오늘 여성들에게도 긴히 필요하고 그것을 강정일당과 같은 유교 여성들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한다.(53 페이지)

 

1부의 두 번째 장인 한류와 유교 전통 그리고 한국 여성의 살림 영성은 우리가 어떻게 유교 전통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고 어떻게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물은 글이다.

 

저자는 유교의 내성외왕(內聖外王),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등의 가르침을 공과 사, 이념적 삶과 물질적 생활, 타자와 자아 등 오늘날 여성들도 포함해서 현대인들이 첨예하게 느끼는 삶에서의 근본적 간극들을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조화시키려 한 노력으로 본다.

 

내성외왕은 안으로는 성인(聖人)이며,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는 뜻으로, 학식과 덕행을 모두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하학이상달은 낮고 쉬운 것을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성적 차별과 무관한 유교의 태극론적 우주관이 리()의 현실적인 활동을 위해 다시 음과 양의 우주론적 기()의 원리를 받아들여 형이상학적으로 존재의 구별과 차별을 말하기 시작했다.(60 페이지)

 

현실의 인간 삶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차별이 되었고 종법(宗法) 질서는 지독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주의의 위계질서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교 성속 체계의 사각지대이다.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세계관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속()의 전 영역을 거룩의 영역으로 화()하게 하기 위해 출발점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출발점을 모든 세속 가정의 적장자 가부장으로 본 것이라고 이해(61 페이지)하는 저자는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도 또 하나의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본다.(62 페이지)

 

()는 하나이지만 여럿으로 나뉘어져서 다르다고 직역할 수 있는 이일분수(理一分殊)란 모든 리는 태극이라는 하나로 귀결되며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태극이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주희(朱熹) 철학의 핵심이다.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한류의 바람과 그 밑바닥에 오랜 기간의 유교적 살림의 과정에서 다듬어진 한국 여성들의 살림의 영성과 리더십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63 페이지)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의문이 든다. 유교 이전에 있었던 장구한 세월의 비유교적 가치관들은 오늘날의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다.

 

저자는 유교 전통 여성들보다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현대 여성들이 오히려 사적 영역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유교 여성들은 당시 하나의 공적 영역이기도 했던 가계의 유지와 계속을 위해 모자 관계를 극진히 일구었다. 반면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현대 여성들은 대부분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 갇힌 것이라는 논리이다.(67 페이지)

 

저자는 사기종인(舍己從人)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사기종인이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남이란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논리이다. 문제는 그런 대의를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보상책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다.

 

저자는 한국 유교의 사기종인의 종교성과 영성을 영적 종교성, 세속적 종교성, 탈세속적 종교성 등으로 부른다. 저자는 생명을 낳고 살리고 보살피면서 공적 영역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의 역할을 극진한 의미의 주체성의 표현으로 본다.(69 페이지)

 

저자는 사기종인의 리더십이 어짊을 구해 성인(聖人)됨을 이르는 구인성성(求仁成聖)의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74 페이지) 저자는 원망은 곧음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으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이 사기종인과 구인성성의 덕을 실행하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왜곡될 수 있으며 자기 부정과 굴종, 억압의 덫이 되는지 잘 알려준 것이라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의 세계는 인간 문화 자체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과 같은 인간적 토대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관건은 누가 사기종인과 구인성성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 되는가, 이다. 저자는 이는 단순히 정치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안목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훨씬 더 궁극으로 밀고 가서 존재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탐구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82 페이지)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성()과 속()을 분리하는 종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성과 속이 급진적으로 하나됨을 지향하는 유교적 도의 가르침으로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보자고 말한다. 저자는 맹자가 말한 무군(無君)을 공적 영역의 훼손과 함몰에, 무부(無父)를 가족적 삶의 해체에 견준다.(87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서구 기독교 여성신학자들이 가부장적 전통을 여성해방적으로 재해석하여 다른 관계를 맺고 있듯 유교 진영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88 페이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교의 포스트모던적 종교성이다. 저자는 서구적 포스트모던의 탐색과 유교의 궁극 이해가 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에 비해 여성 인권 면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고려 시대가 당면했던 문제로 혼인이 성립하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을 든 저자는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논의에 의거해 너무 단기적인 과정과 정태적인 개별 대상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좀 더 긴 기간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남귀여가혼의 문제점은 여자 집에서 혼수를 마련하고 사위를 거주시켜야 하는 제도였기에 실제 상황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집안의 여성들은 버림받을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고 도이힐러의 논의란 조선 사회에서 16세기 중반과 17세기 후반의 큰 인구 증가로 효율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 토지가 더 이상 작게 나뉘어서는 안 되었기에 출가한 딸에게까지 상속을 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여자와 남자의 대결 구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91 페이지) 저자는 모든 역사적 추세를 부동적이고 진화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는 역사의 정태주의, 역사에서 오직 끊임 없는 변화만을 보고 그런 변화의 기저에 있는 질서와 역학 구조, 방향 등을 무시하는 역사 상대주의를 모두 배격하고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경험을 실증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는 분명 뚜렷한 포괄적인 사회발전의 방향과 구조가 드러난다고 역설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92 페이지)

 

193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엘리아스는 1970년대 아날학파에 의해 재발견된 이후 빛을 보았다. 아날 학파는 사건들로 시끄러운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평형들을 밝혀냈다. 즉 시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시원으로의 목적론적 과정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의 평형 뒤에 찾아오는 급격한 변환의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변증법적 역사 철학의 패러다임을 파기시켰다.(이정우 지음 담론의 공간’ 146 페이지)

 

시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시원으로의란 말을 들으니 베르그손이 거부한 기계론과 목적론이 생각난다. 엘리아스는 유럽인들의 삶의 변화를 문명화 과정으로 보았다. 이에 영감을 받은 저자는 조선조(朝鮮朝)가 성립한 이래 유교적 예()를 국가 삶의 전 영역으로 확산시키고자 한 조선의 예치(禮治) 노력이 조선 사회를 유교화해 갔고 그 과정 안에 여성들의 삶과 살림살이도 포괄되었다고 말한다.(92 페이지)

 

저자는 조선조 이전에는 여성들이 문화의 각 분야에서 그렇게 폭넓게 활동한 적이 없었다는 한국 여성사 연구를 소개한다.(수긍할 수 있지만 여성들의 활동이 기록보다 더 크고 많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란 의문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문해력을 갖추고 외국어 성서를 번역하거나 여신도들을 계몽한 조선 여성들을 거론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조선사 이전에 미미했던 여성들의 활동을 감안하면 조선은 특히 여성의 주체적 능력면에서 발전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유교화 과정을 단순히 간단한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의 예화(禮化: 매너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저자가 말하는 성화란 성과 속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영역을 서로 깊이 연결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유교를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그 안에 풍부한 영적 추구와 실천적 수행의 차원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96 페이지) 물론 저자가 말했듯 공자 자신도 유교 가부장주의에 갇혀 있었다.

 

유럽에 가서 서양 지도교수로부터 명나라의 신유교 사상가 왕양명을 소개받고 단번에 빠져들었다는 저자(85 페이지)는 체()와 용(), (), (), 안과 밖의 하나 됨을 훨씬 강조하는 양명은 대학 팔조목의 모든 공부가 결국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결코 안팎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121 페이지) 팔조목이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이다.

 

저자는 5내가 믿는 이것, 한국 생물(生物) 여성정치와 교육의 근거에서 한나 아렌트가 19세기 부르주아 제국주의로부터 파생된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원리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탄생성의 원리라 말한다. 탄생성의 원리란 오직 태어남에 근거해서 귀한 존재이고 존엄한 존재임을 말한다.

 

2부 다른 기독교의 1한국 천지생물지심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미래에서 저자는 오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리주의와 공리주의, 경제제일주의는 경제라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서 삶의 다른 모든 차원이 무시되고 억압되는 것으로 서구적 근대 문명의 물질주의와 깊이 관계되어 있고 그 문명의 토대가 되는 기독교 절대주의와 거기서 실체론적으로 굳어진 기독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179, 180 페이지)

 

저자는 여성신학자로서 우리 시대의 물음을 위해 유교와 대화하려는 이유는 유교의 보편성과 인간주의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탈세속적이거나 선험적인 방식이 아닌 보편과 다원성, 이곳, 수행의 인간성 속에서 답을 찾는 유교의 비근한 특성이다. 저자는 서구 전통의 배경에 있는 기독교 영성의 초월 신관과 실체론적 세계관을 신유교의 내재 신관과 생명 유기체적, 역동적 사고와 밀접히 만나게 한다면 생명 경시와 공동체 파괴의 인류 문명적 난제를 푸는 데 좋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185 페이지)

 

책의 중요 부분은 24포스트 휴먼 시대에서의 인간의 조건5장 한국 교회와 여성, 그리고 인류의 미래이고 핵심적인 장은 4장이다. 이 장은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유교 전통을 하나의 특별한 종교적 전통으로 보며 거기서 여성들이야말로 그 유교적 영성을 아주 잘 체현하면서 살아왔다고 본다.(281 페이지)

 

유교 영성의 핵심은 이 세상의 세간적 삶에서 도를 이루려는 것이다. 유교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은 이 세상의 온갖 살림살이를 맡아오면서 그 유교적 삶을 살아온 경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아가 신이 되고 원리가 되고 법이 되는 서구 근대성이란 유()의 사고를 극단적으로 펼친 결과라고 생각한다.(283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의 사고이다. 저자는 사기종인 극기복례, 구인성성 등을 유교적 무의 세 가지 방식으로 본다. 이 세 덕목은 서구 근대주의가 빠져들기 쉬운 자아 절대 의의 유()의 언어에 대한 대안으로서 유교적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무()의 언어이다.(298 페이지)

 

물론 전통 사회에서 이 세 언어는 한편으로 여성들에게는 혹독한 억압의 언어였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들도 도덕적 주체성을 세우는 일을 회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적 사기종인, 여성적 극기복례, 여성적 구인성성이란 말이다.

 

저자는 모든 포스트휴먼적 논의에서 나오는 관계성의 의미나 익명성의 의미 같은 것들이 유교 전통, 특히 거기에서의 여성들에 의해서 실행된 유교적 삶 속에서 이미 잘 녹아 있다고 본다.(303 페이지)

 

저자는 맺는 말에서 기독교 성경의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동시에 전하는 수로보니게(가나안) 여자의 믿음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귀신 들려 괴로워하는 딸을 고쳐달라는 여자의 이야기로 예수가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이들을 먼저 먹여야지 개들에게 빵을 던져줄 수 없다는 말로 거절하자 여자는 개들도 주인의 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는다는 이야기로 예수를 굴복시킨다는 내용을 갖는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뜻을 꺾고 승복한 예는 이것이 유일하다. 여인에게 승복했다는 점이 중요한데 그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이다.(311 페이지) 저자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속된 것을 거룩으로 선포하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 말씀 사건, 언어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스도 영역의 확장이고, 한 청년 예수가 그리스도로 선언되는데 그치지 않고 이방여인과 온 피조물이 그리스도로 선언되는 것을 고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필요한 것은 변화이고 대화이고 질적 도약임을 알게 하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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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
홍성담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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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說)과 대설(大說)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소설은 디테일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고 대설은 스케일 큰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대설에 어울리는 형식은 무엇일까? 풍자(諷刺)가 아닐지?

 

이 즈음에서 생각나는 시인이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했고 때로 자신을 까발렸다. 가령 이렇게.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이 시의 제목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그럼 풍자(諷刺)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간 시가 김수영에게 있을까? 있다. 바로 누이야 장하고나란 시이다.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네가 아니면 내가 그렇다..”

 

김수영을 언급하는 사설(辭說)이 길었다.(사설이란 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유는 홍성담 화백의 난장의 장르인 대설(大說)의 첫 걸음을 떼어 놓은 김지하 시인이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란 산문으로 김수영 시인의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란 시를 창조적으로 배반(?)했기 때문이다.

 

홍성담 화백. 박근혜를 풍자한 세월오월을 그린 분이다. 세월(世越)이란 바로 세월호 사건(2014416)을 말한다.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대설 난장(亂場)’은 한 바탕 시원하고 짜릿하게 썰을 푼 홍성담 화백의 작품이다.

 

홍성담 화백은 난장을 출간한 같은 출판사의 월간지20145월부터 20161월까지 바리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난장은 역시 전기한 월간지에 실었던 그의 죽음 뒤엔 음악이 흘렀다를 수정, 보완한 작품이다.

 

특기할 것은 연재 시작과 함께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는 점이다. 정해진 이정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사건이 터진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그 사건을 담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가능하다.

 

사건이 터지고 홍성담 화백은 바로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의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단원고 학생도 희생자 가운데 있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28세의 여자 화가 오현주이다. 검은손에 의해서 쫓기면서도 그 검은손의 정체를 쫓는 인물이다.

 

3년의 수감 생활을 거쳐 석방된 그는 어느 날 매복꾼들에게 기습을 당한다. 그 위기에서 그는 매복꾼들에게 사지가 찢겨 죽는 대신 불암산의 큰 바위 절벽에서 투신을 하는 길을 택한다. 1829년에 죽은 처녀귀신인 천무생이라는 어린 귀신이 함께 몸을 날린다.

 

두 사람 아니 귀신은 중랑천 물속으로 떨어지는데 거기에는 투명한 흰 정체의 사람들이 이어가는 긴 행렬을 펼쳐졌다. 흰 정체의 사람들이란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서 수장당한 세월호 희생자들로 자신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해 그 이유를 따지기 위해 청와대로 가는 무리였다. ”그럼, 지금 이 행렬의 목적지가 어딘가?“.. ”청와대.“

 

난장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색채를 보임에도 직설적이다. 아니 그런 색채를 보이기에 직설적이라 해야 할까? 홍성담 화백은 어릴 때 눈병에 걸린 자신을 위해 정안수 한 그릇을 떠놓고 웅얼웅얼 비나리를 하신 할머니의 심정으로 작품을 썼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력에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배신당하고 찢긴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 분이었기에 걸판진 한 바탕 대설을 늘어놓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난장은 자신들을 쫓는 검은손의 정체를 역으로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기이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검은손의 윗 대가리란 것들이 가진 특성이다. 바로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 이제 끝났다? 시작도 끝도 없고, 삶도 죽음도 사라진, 중심도 주변도 없는 곳에서, 영원도 찰나도 없는 시간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속도 단절도 없이 마냥 존재할 뿐이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듯 사회성과 실존성이 교차하는 느낌을 준다. 하기야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하고 난장처럼 풀어내는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실존적인 것이 아닌지? 한바탕 굿을 본 것 같은 마음이 가득하다. 작가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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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
장세이 글.사진 / 목수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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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해설 공부를 하다 보면 3이란 숫자를 자주 접하게 된다. 궁궐의 33(三門 三朝: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3(: 천지인), 3(: 신향로, 어로, 세자로), 3간택(揀擇), 주역의 3() 등이다.

 

장세이의 서울 사는 나무를 접하고 저자가 한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는 집, 나무, 사람이라는 (변형된) 3()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전문서는 3재를 가치를 의미하는 천(), 법칙을 의미하는 지(), 주체를 의미하는 인()으로 풀었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163 페이지)

 

3이란 숫자에 눈길이 가서인지 서울 사는 나무역시 서울의 세 곳(길가, 공원, 궁궐)에 사는 나무들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길가, 공원, 궁궐), 그리고 사람까지 함께 어우러진 드라마이다.

 

역시 3이란 숫자로 볼 것이 하나 더 있다. 하수(下手)는 꽃을 보고, 중수(中手)는 잎을 보고, 고수(高手)는 잎도 꽃도 없는 한 겨울 줄기를 보고 나무를 구분한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논어자한(子罕)편에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숲 해설사인 저자는 고백하건대 벚나무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이제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남으려 꿀샘을 만들고 꽃만큼 단풍이 고운 나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고 말한다.(33 페이지)

 

길가와 공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시민들이고 궁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왕 또는 왕족들이다. 물론 서울 사는 나무는 길가, 공원, 궁궐 등을 두루 돌아다닌 저자의 관점에 따라 엮인 이야기 모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에 백송(白松)이 유명하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이를 죽여 온 동네가 피바다가 되자 이를 덮으려 재를 뿌려 잿골로 불리다가 지금은 재동(齋洞)으로 불린다.(재를 뿌려 덮은 것과 목욕재계의 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527일 미래 유산 해설대회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바로 그 재동 백송을 찾았다. 역사/ 문화, 시민 생활, 나무가 결합된 해설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된 대회이다. 이 역시 3()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백송 말고 가문비 나무도 유명하다. 나무 껍질이 검어 검은피 나무 즉 흑피목(黑皮木)으로 불리다가 가문비 나무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문비 나무는 검다. 저자는 헌재가 하는 일을 두 나무가 희고 검고로 차이나듯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라 말한다.(76 페이지)

 

저자가 다닌 다양한 명소들을 보면 체험이 많은 것을 말해줌을 알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수업을 받은 것이 지난 해 12월 두 차례였다. 경희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에 의하면 경복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전각이 여기저기 팔려나가고 정전인 숭정전(崇政殿)마저 옮겨진 경희궁은 공원으로 분류되어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다.(153 페이지)

 

숭정전은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 선언한 곳이다. 슈베르트의 보리수(菩提樹)’에 나오는 보리수의 정확한 이름은 피나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식물학자가 아니라면 피나무 종류는 매우 비슷하여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204 페이지)

 

저자는 삼청공원의 나무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224 페이지) 나무 이름을 모르니 부를 수 없고 그래서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49만여 제곱미터의 거대한 창덕궁은 절반 이상이 후원 곧 숲이며 무려 16,000여 그루의 나무가 살아간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후원이 아닌 대문 앞에 심어져 있다. 중국에서처럼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그렇다.(289 페이지)

 

()는 느티나무일 때는 괴, 회화나무일 때는 회로 읽는다. 정조 이야기를 했지만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는 정조의 증손자 헌종의 사랑채이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 연경당(演慶堂)도 그렇다. ()/ () vs ()의 대비는 이해하려만 골()이라니...연경당은 계동마님댁의 모델이다.

 

저자의 행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종묘(宗廟)행이다. 저자는 종묘도 궁궐이라 말한다. 신들의 궁궐인 신궁(神宮)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망묘루(望廟樓)만 팔작지붕이고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 전사청(典祀廳), 향대청(香大廳), 재궁(齋宮) 등이 모두 맞배지붕이라는 점이다. 맞배지붕은 소박미가 있다.

 

궁궐은 왕이 살아 있을 때 살던 곳이고 종묘는 사후 영혼이, 능은 몸이 사는(묻힌) 곳이다. 이 역시 3()라 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건물 색이 밝았다가 진했다가 한다. 처음 짓고 난 이후 계속 덧지은 결과다.(368 페이지)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종묘에 들면 재궁 앞 물박달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기품도 없고 단정치 못한 물박달나무가 어떻게 종묘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나는 비무장 지대에 사는 나무들 특히 북의 화공(火攻)에 타는 나무들을 보며 참 기구(崎嶇)한 나무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험할 기, 험할 구) 종묘 연못에는 향나무가 있다. 초혼(招魂)의 나무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제사 공간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과라는 말도 있다.

 

저자는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던가. 민초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는 물박달나무는 꿋꿋이 신들의 정원에 살며 우리도 기억하라고 외친다.”고 말한다.(375 페이지) 빵으로 치면 페스트리, 사무용품으로 치면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가 물박달나무이다. 나무 이야기는 결국 삶의 이야기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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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 인문여행 시리즈 8
이향우 글 그림, 나각순 감수 / 인문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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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鷹峯)이란 종로구 와룡동, 삼청동,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매봉이라고도 한다. 이향우 저자는 안국역이 아닌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창덕궁을 볼 것을 제안한다.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의 정문)을 향해 북쪽으로 길을 걸어보자는 의미이다. “돈화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응봉을 머리에 얹은 돈화문이 보인다.”고 한다.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를 출처로 하는 돈화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교화를 도탑게 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돈화문은 현존 궁궐 문들 중 가장 오래된 문이다. 저자는 무엇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취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21 페이지) 계절, 날씨,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질 분위기와 멋을 느낄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이야기 거리를 찾는 데 큰 관심이 있다. 왕이 움직일 때 머무르던 별궁(別宮)을 뜻하는 이궁(離宮)으로 출발한 창덕궁은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 동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동궐(東闕)로 불렸고 창경궁과 함께 후원을 공유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남문이다. 금호문, 요금문, 경추문은 창덕궁의 서문이다. 단봉문은 동문이다. 건무문은 북문이다.

 

돈화문 안쪽에는 천연기념물인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중국 주나라에서 궁의 외전 영역에 괴목(槐木: 느티나무)을 심어 삼정승들이 정사를 논한 것에서 유래했다. 같은 회()자를 쓰지만 회화나무일 때는 회, 느티나무일 때는 괴라고 읽어 구분한다.(장세이 지음 서울 사는 나무’ 285 페이지)

 

금천교(禁川橋)는 배산임수의 조건으로 명당수를 궁궐의 외전 영역에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냇물 위에 세운 다리이다.(39 페이지) 금천교는 조선시대 궁궐 돌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모든 궁궐의 외전에는 반드시 금천이 있다. 창덕궁의 금천교(禁川橋)는 금천교(錦川橋)이다.

 

금천교 홍예 북쪽에는 현무를 의미하는 거북을 놓았고 남쪽에는 성군의 출현을 상징하는 백택(白澤)을 조각했다. 두 홍예 사이 가운데에 역삼각형 형태의 사나운 나티(짐승의 모양을 한 귀신의 일종) 부조 조각을 했다. 창덕궁 궐내각사는 궁궐의 궐내각사들 중 유일하게 복원되었다.

 

창덕궁에는 내각이라 불리는 규장각이 있다. 강화의 규장각을 외규장각, 창덕궁의 규장각을 내규장각(내각)이라 한다. 규장각은 왕립 도서관이다. 봉모당과 보각(왕실 서고) 사이에 향나무가 있다. 종묘가 국가 사당이라면 창덕궁 선원전은 왕실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65 페이지)

 

종묘 대제는 왕이 주관하는 친행(親行)과 세자나 고관이 대행하는 섭행(攝行)으로 나뉜다. 금천교를 지나면 진선문을 마주치게 된다. 태종과 영조 태 진선문 안에 북을 설치해 민원을 듣고자 했다. 옥당(玉堂)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옥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학문 연구, 시강(侍講), 언론 기능을 했다. 시강은 왕이나 세자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정면 5,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인 인정전은 밖에서 볼 때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은 통층 건물이다.(88 페이지) 인정문을 들어서면 금천교를 이어 진선문에서부터 따라 온 삼도(三道)가 인정전 월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삼도는 가운데 길이 양쪽 가장자리 길보다 넓고 약간 높다. 가운데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이고 오른쪽 길은 문반이 다니는 길, 왼쪽 길은 무반이 다니는 길이다.

 

삼도 좌우에 품계석이 있다. 정조가 조정의 위계질서가 문란해졌다 하여 바로잡기 위해 관리의 품계를 나타내는 표지석으로 세운 것이다.(95 페이지) 인정전에도 잡상이 있는데 잡상은 궁궐 건죽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붕 추녀마루에 장식한 토우의 일종이다. 우리 나라 궁궐의 잡상 종류는 모두 열 가지이다.(108 페이지)

 

인정전 월대 모퉁이에 있는 무쇠로 만든 큰 물동이를 드므라고 한다.(110 페이지) 창덕궁의 편전은 선정전이다. 선정문과 선정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행랑이 있는데 이렇게 건물 중앙을 가로지르는 행랑을 천랑(穿廊)이라 한다. 선정전은 혼전(魂殿)으로도 사용되었다. 혼전은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 뒤 삼년간 신위를 모시던 전각이다.

 

선정전은 조선의 궁궐 전각 중 유일하게 남은 청기와 건물이다.(117 페이지) 선정전 앞은 창덕궁의 동쪽 궐내각사가 있던 곳이다.(120 페이지) 선정전 동쪽의 희정당은 국왕이 평소 거주하던 곳이다. 순종이 타던 리무진 승용차가 건물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남행각에 현관(porch) 시설을 덧붇였다.

 

희정당 지붕 동쪽 합각 마루에는 강()이란 글자가, 서쪽 합각 마루에는 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132 페이지) 희정(熙政)이란 화평하고 즐거운 정치를 의미한다. 희정당은 내전(內殿) 영역에 속하는 왕의 침전으로 지었으나 순조때부터는 편전으로 주로 사용했다.(137 페이지)

 

보경당(寶慶堂)은 성종 때에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가 신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정사를 보던 곳이다. 장고(醬庫)는 음식물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던 곳이다.(: 젓갈 장) 대조전(大造殿)은 왕비의 시어소(時御所: 임시 거처)이자 침전 영역이다.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 지붕의 건물이다.

 

대조전에 딸린 휴식 공간으로 사용된 경훈각(景薰閣)이 있다. 경훈은 경치가 훈훈하다는 의미이다. ()은 향풀 훈자인데 종묘가 위치한 곳이 훈정동(薰井洞)이다. 희정당 동쪽의 성정각(誠正閣)은 창덕궁의 동궁이다. 성정이란 거경(居敬) 궁리(窮理) 성의(誠意) 정심(正心)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현문(迎賢門)이 유명하다. 현인을 맞이하는 문이란 의미이다.

 

관물헌에 걸려 있는 현판의 집희(緝熙)는 인격이 오래 빛나기를 바라다, 계승하여 넓히겠다는 뜻이다.(174 페이지) 관물은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모을 집) 성정각 담장 너머에 중희당(重熙堂)이 있었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동궁 영역으로 여러 천문 기구들이 마당에 놓여 있었다.

 

중희당은 정조가 장자인 문효세자를 위해 지은 세자의 집이었으나 문효세자가 5세에 죽자 정조가 자신의 편전으로 사용하다 후에 효명세자(순조의 세자)가 대리청정을 한 곳이다.(179 페이지) 낙선재(樂善齋)는 헌종의 사랑채로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집이다. 석복헌 동쪽에 수강재(壽康齋)가 있다. 낙선재나 석복헌과 달리 단청을 한 집이었다.

 

대왕대비의 처소를 동조(東朝)라 한다. 궁궐의 동쪽에 위치했다. 수강재는 순원왕후의 육순을 맞아 대왕대비의 거처로 고쳐 지어졌다.(206 페이지) 창덕궁 후원을 현재와 같은 규모로 확장한 왕은 세조이다. 후원 영역에 많은 정자가 지어진 것은 인조 때이다.(234 페이지) 후원의 면적은 약 9만평으로 창덕궁 전체 면적 145천평의 60퍼센트에 이른다.

 

천원지방(天圓地方)에 근거해 지은 정자가 많다. 부용정도 그렇다. 하늘의 덕은 둥글고 원만한 데 있고 땅의 덕은 반듯한 데 있다는 의미이다. 주합루(宙合樓)의 주합은 천지를 의미하고 규장각(奎章閣)의 규장은 황제가 지은 문한(文翰)이나 어필을 의미한다. 규장각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라는 의미이다.(254 페이지)

 

17763월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는 즉위 석 달 무렵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짓도록 명하여 9월에 완공시켰다.(255, 256 페이지) 의두합(倚斗閤)은 효명세자(순조의 아들)가 닮고 싶었던 할아버지 정조를 지칭한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인 정조의 뜻을 이어 왕권을 강화하고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 했다.(285 페이지)

 

연경당(演慶堂)은 효명세자가 1828년 아버지 순조의 40세 생신에 존호를 올리며 의례를 행하기 위해 진연처로 창건했다.(293 페이지)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의미이다.(: 펼 연) 북촌의 계동마님댁이 창덕궁 연경당을 본따 지은 건물이다. 연경당은 궁궐 안의 민가 형식의 집으로 단청을 올리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295 페이지)

 

연경당은 본디 사랑채의 당호였다. 사랑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사랑방과 누마루로 나뉘어져 있다.(299 페이지) 창덕궁 존덕정은 모임 지붕의 건물이다. 용마루 없이 추녀마루로만 구성된 지붕이다. 존덕정 북쪽 창방에는 정조가 쓴 글이 걸려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天明月主人翁自序)란 글이다. 만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지만 하늘의 달은 오직 하나라는 뜻이다.

 

정조 자신을 달에 비유하여 달빛이 만개의 개울을 고루고루 비추듯 만백성을 보살피겠다는 애민사상과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임금도 오로지 정조 하나 뿐이니 이에 대한 도전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한 개혁 군주로서의 정치관을 읽을 수 있다.(321 페이지)

 

창덕궁은 그 어떤 임금보다 정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뜻에 따르는 것이 태극과 음양오행에 합당한 일이며 우주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일이라 말한 정도...품계석, 규장각, 주합루, 만천명월주인옹자서, 상조회(賞釣會) 등은 그의 그런 의지를 잘 보여준다.

 

폄우사(砭愚榭)는 효명세자의 독서처였다.(326 페이지) 폄우란 어리석음을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돌침 폄. : 정자 사) 관람정(觀纜亭)은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관람정의 현판은 파초잎 모양이다. 청의정(淸猗亭)은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 정자이다. 정조는 문장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알면서 환을 쏠 줄 모르는 것은 문무를 갖춘 재목이 아니라고 꾸짖었다. 규장각 신하들에게 활을 쏘게 한 곳이 바로 춘당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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