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김상근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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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예술가들의 삶은 의례 그렇듯 광기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의 예술 혼을 발산하기 위해 빠져들 수밖에 없을 고통에 찌든 삶은 이제 신비화 될 것도 없을 하나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5,16세기 르네상스 문화의 종식을 알리고 바로크의 시대가 도래되면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미술가 카라바조가 등장한다. 바로크의 창시자, 혹은 시대를 앞서간 불우한 화가쯤으로 인식 되고 있던 카라바조의 내면세계는 훨씬 더 격정적이고도 위태로운 삶으로 범벅 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미술은 역시나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던 16세기 로마는 굶어 죽어가는 거지들과 부랑자들, 창녀들로 몹시 어지러운 정세였다. 거기다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정신까지 포함하여 카라바조에게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전적으로 후원자의 취향에 맞는, 그리고 종교적으로 결코 위배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자존심 강한 카라바조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자신만의 미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둠과 빛을 강렬하게 대비한 ‘테네브리즘’과 성聖과 속俗의 적절한 배합, 지나칠 정도로 사실주의적인 화풍 속에서 실감나게 읽혀지는 그림의 해석이다. 신성화 되고 신비감으로 절묘하게 포장해야 할 종교화에 타나난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은 오히려 그림이 줄 수 있는 리얼한 실체의 모습까지 그대로 눈 속에 담을 수가 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겸손은 방탕한 삶을 살다 짧게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닌 듯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모델들의 종적을 파헤쳐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창녀였던 여자의 익사한 시체를 모델로 그린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 과 <성 마태와 천사>은 신성모독이란 죄를 뒤집어 쓴 채 수모를 겪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남루함 비천함으로 비쳐지는 마리아와 마태를 보면서 어떻게 종교계에서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창녀와 거리의 부랑자 같은 16세기 이탈리아 서민들을 표면적인 모델로 삼으면서까지 그는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던 걸까.

성聖과 속俗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시대를 앞서갔던 한 젊은 청년은 벌써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중성의 살인미학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동일한 각도로 움직이며, 성서에 등장했던 그 많은 일화의 주인공들까지도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지극히 인간적인 단편의 모습에서 더욱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폭력과 살인과 피가 난무하는 종교화에서 불연 듯 더욱 경건해지는 마음이 느껴짐은 속俗의 짙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구원을 얻고자 했던 카라바조 본인의 자화상까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라바조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강렬한 어둠과 빛의 대비로 중심에 있는 주인공의 묘사가 더욱 돋보이며 행위가 주는 거대한 선동에 가슴을 자극된다. 그림을 읽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더불어 현재까지 학계의 다양한 해석을 주도하면서, 거장의 깊이를 후세에 가장 강하게 전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읽는 기분은 바로크가 손 안에 잡히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성 바울의 회심>과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를 보고 반해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저자 ‘김상근’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무척이나 아늑하다. 카라바조의 명작 <승리자 큐피드> 와 <다윗과 골리앗>을 감상 하던 본인의 심정과 저자의 심정이 비슷했을까.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문외한이라는 겸손으로 시작해서 세세하게 시대별로 잘 정된 한 채 이어지는 ‘카라바조 바로알기’는 매우 안정되면서도 흥미로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며, 모든 예술 역시 로마를 거쳐 가는 지극히 평범한 그 진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정하고 싶을 만큼.

역사상 가장 에로틱한 모습의 큐피드의 그림을 보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라바조의 성 정체성이 어찌 되었든, 카라바조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하고 폭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든,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보고 있는 순간 모든 마음을 뺏겨버리는 큐피드의 애교 있는 눈빛처럼 카라바조의 작품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는 작품이 없다는 점, 예술가의 타오르는 열정으로 완성 된 대작 하나 하나의 쏟아 부은 사랑을 지금까지 후세인들이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그리고 성 제롬의 메멘토 모리처럼 강렬하게 정신을 지배해 오는 한 마디, ‘살아 있는 자들이여, 죽음을 기억하라!’ 는 평생의 슬로건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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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글.그림, 장 폴 리히터 엮음, 김인선 외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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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 국적의 한 소설가의 붐을 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독특한 주목 끌기가 시작되었다. 상업성으로 물든 거대한 흐름에 발맞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작품들까지 선풍적으로 저널리즘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는데,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을 찾은 관광객들로 박물관은 사상 초유의 만원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박물관의 명성답게 줄을 서야만 들어감은 당연했지만, 한 소설의 굉장한 히트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인 박물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그 소설의 성공이 상업적이라 힐난 할지라도 새롭게 추앙받기 시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에 대한 맹목적인 겸허함은 옳은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무수한 소문과 억측 망상, 더불어 음모론과 함께 제기된 은밀한 그의 사생활까지 들쑤시는 대중들의 관심이 한 예술가의 삶을 흐르게 채색할 지라도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참으로 바쁜 사람이었다. 화가라는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화가, 수학자, 과학자, 건축가, 조각가, 작가, 해부학자, 철학자…. 이 정도라면 이미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 아이도 대번에 눈치 채리라 예상하지만, 그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가 남긴 낙서들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작품이 탄생하기 이전에 습작으로 그린 그림들과 메모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재라 칭송 받기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간혹 궁금했던 차에, 5천 쪽이 넘는다는 그의 육필원고를 편안하게 해석한 책을 만나서 매우 기쁜 마음이다. 더욱이 그의 글은 왼손을 사용하여 역방향으로 써 내려갔고, 짧은 단어 몇 개만을 사용하여 문장으로 이어갔기에 해석하기에 상당히 난해하고 험난하다는 필자의 설명에 경외감이 들었고, 특유의 정자법까지 창안한 다빈치의 성의에 그가 얼마나 자신의 메모를 아끼고 은밀스럽게 보관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은 다빈치가 남긴 원고들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미공개 회화작품들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교한 회회가 탄생하기까지 무수하게 많은 시행착오와 소위 ‘학문의 발전을 위한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쉬 짐작 되지만, 그가 그토록 아끼며 돌본 원고들의 실체를 알게 되자, 더욱 더 숙연해짐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 된다. 르네상스를 이끌고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시대를 휘어잡은 한 인간의 내면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회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의 한 분야에서 원근법과 인체해부학이란 학문의 이론을 파고들며 완벽하게 완성코자 정진한 다빈치의 예술을 향한 간절한 정성 또한 느낄 수가 있다.

방대한 양의 메모와 간결하지만 엄청나게 난해하다고 알려진 그의 육필 원고들은 분명 일반인이 쉽사리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빈치 본인이 아닌 이상, 아무리 뛰어난 암호해석가라 할지라도 당시 직접 원고를 작성하며 느꼈던 감정과 사상의 전반적이고도 정확한 내용들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해석하기란 불가능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후 몇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온 그의 필사본이 이토록 중요하게 인식되는 까닭은, 다빈치 내면의 사상과 인식들, 혹은 은밀한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게 보존된 원고가 아니기 때문에 앞, 뒤 연결이 불안전한 문장도 다수이고, 어딘가 모르게 중심 틀이 무너진 듯한 인상을 받은 문장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학문에의 열망과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깊고도 음습한 내면은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본서의 절반이상의 분량은 회화와 해부학에 대한 학술이론이고, 나머지는 다빈치의 문학론과 철학적,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일상사를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문학론이었다. 유명한 화가 내지 건축가로만 알고 있었던 무지한 본인은, 다빈치가 이토록 위트 있고 해학적인 원고를 작성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학론 제1장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으리라 예상한다. 상당히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 우화들을 읽으며 여느 시인 못지않은 작가로서의 소질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미술학도라면 당연히 배우고 있을 기본적인 이론들로 충실한 본서의 무게감에 압도되어 상당히 위축 받을 수도 있지만, 지인들과 주고받은 개인적인 편지나 가계부, 혹은 다량의 격언들까지 읽어보며, 다빈치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써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고 놀라워서, 이제 더 놀라울 것도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러나 그를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증이 증폭되어 가는 것은, 알렉산더 폰 품볼트의 말처럼 자연의 통일이라는 관념 하에 인간의 감각들의 인상이 수렴되는 지점을 향하는 첫 출발점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자연주의 지향의 예술가로써, 유일하게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고자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 위대한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에 대한 위대한 선구자로서의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먼 미래의 후세까지 존경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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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베네치아 - 꿈꾸면 신나는 그곳...
뒤르크 쉬머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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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동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 역시 커져만 갔다. 나에게 이탈리아란 어떤 의미의 나라일까? 막연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아름다운 정경은 어느 순간 거품처럼 아스라이 사라질 듯 묘연한 풍경이다.

이탈리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르네상스의 3개 거장, 모든 예술의 원천, 스파게티와 피자, 나는 한번도 만져 본적 없는 명품 핸드백과 구두,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이탈리아를 떠올려 본다면, 하나 같이 모델처럼 잘 생긴 아주리 군단과 길고도 웅장한 로마의 역사쯤 될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 관광의 명소들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베네치아, 시칠리아…….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꿈속의 이탈리아. 장화처럼 신기하게 생긴 이베리아 반도.

무엇이 이토록 나를 전율시키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의 염원이기에 자연스럽게 중독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봤을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간혹 여행정보나 사진 등으로 접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도시들 중 한 곳이다. 베네치아를 생각할 때는 늘 세피아 톤으로 빛 바라진 항구의 정경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역사와 밀접 된 베네치아라는 오래된 도시의 매력을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기에 오늘도 그 곳엔 수많은 관광객들의 로망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이다.

본서의 작가 ‘뤼르크 쉬머’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의 편집인으로 일했고, 1999년부터 베네치아 통신원으로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독일인이다. 현지인이 아닌 외지인이 바라본 베네치아에 대한 일상과 전통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기에, 이방인의 시선으로 함께 느끼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생각 된다. 현지인이 서술하기에 다소 민감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밝은 모습으로 가려야 할 낭만의 베네치아를 외지인이 기록했기에 좀 더 사실적인 현장 보고서가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연한 세피아 톤의 빛바랜 베네치아는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처럼 영원히 조용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곳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자리한 풍경은 늘 그렇듯 소란도 있고, 문제 거리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 없이 조용해야 할 베네치아이지만, 베네치아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바라볼 땐 골칫거리이고, 그들의 낙원을 시끄럽게 만드는 장본인일 뿐인 것이다. 물론 베네치아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관광사업으로 수입을 올리기는 하지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주민들에게 그들의 베네치아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어차피 사람 살아가는 풍경이 확연히 차이 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왠지 모든 것이 멈춰져서 고독할 것만 같은 묘한 마력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도 우리와 같은 ‘하루’가 존재했다. 곤돌라 사공들은 열심히 노를 저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노을을 등진 노천카페의 주인들은 오늘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향긋한 카푸치노 한 잔과 달콤한 케Ÿ揚?판매하고 있다. 무라노 섬의 유리세공업자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의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주방장들도 열심히 오늘을 살아간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비둘기들까지 어지럽게 모이를 먹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작은 일화들과 베네치아 일상의 풍경들, 사람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이 본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광가이드 책자의 컬러풀한 사진과 짤막한 정보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없을, 베네치아의 소중한 한 귀퉁이인 셈이다. 비잔틴과 르네상스가 아직도 공존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일한 도시 베네치아의 낙원 같은 풍경 뒤에, 오염이 안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베네치아라는 거대한 이미지까지 오염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역사와 직결된 베네치아, 바로 그 곳에 서양 역사의 시작이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1500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십자군 전쟁 참전 군인들을 성지로 실어다주고 터키와 전쟁을 치렀을 갈레선들을 건조했었고, 노동 분업과 컨베이어벨트 작업과 함께 조선소의 해양공화국이 탄생했다. 전 세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많은 전쟁이 시작되고 종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해저 고고학의 보물들의 요람으로 아직도 베네치아에는 아름다운 선박과 곤돌라가 바다 위를 화려하게 노닐고 있다. ‘자코모 카사노바’가 이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에서 그의 천재적인 재량을 물려받았을 것이고, ‘리하르트 바그너’ 또한 모든 상처가 아문다고 했던 베네치아에서 죽기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한 요양을 했을 것이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괴테’가 바라본 베네치아 역시 그들처럼 영원한 꿈속의 안식처였던 셈이다.

언제나 환상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베네치아를 좀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냥 아름다운 도시로 각인되어 있겠지만, 책을 통해서나마 바다냄새와 더불어 사람냄새까지 흠뻑 마셔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 발로 베네치아를 밟아보리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책 중간 중간 흑백의 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베네치아의 작은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넣으면서 한 가지 느꼈던 사실은, 그 풍경 안에 나 역시 간절하게 담겨보고 싶다는 점이다. 파노텔라 제독처럼 베네치아에서는 꿈을 꾸어도 좋으니까. 아니, 꿈을 꾸어야만 하니까.


[인상깊은구절]
고독은 혼자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 M.스테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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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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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설 작품을 접할 때, 유독 작가의 데뷔작에 관심이 많다. 작품을 발표하면 차근차근 높은 수준으로 올라오는 경우도 많지만, 데뷔작이 큰 이슈가 되면서 초대형 신인으로 입지를 굳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운도 따르고, 출판사의 상업적인 홍보로 실력보다 부각된다는 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판단은 작품을 읽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한 작가의 데뷔작을 읽어보면 그 작가의 기량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초기작에 더욱 관심이 집중 되는 것 같다.

  ‘가이도 다케루’는 2006년「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이라는 의학 추리소설로 일본 추리 신인들에게 주어지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라고 하는 단순무식한 제목의 상의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관련 장르 소설의 규모가 굉장히 크다. 거대한 추리 소설 시장에서 ‘올해의 신인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셈이니, 데뷔가 대성공을 불렀던 것이다. 신인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읽는다면, 등단한지 몇 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중견 작가로 오인 할 만도 하다.

  요즘 한국에 의학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인데, 나도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새하얀 병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에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내부간의 갈등이 가장 큰 핵심요소로서, 환자와 의사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가 대단하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역시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대단한 의학 추리 소설이다.

   의심스러운 환자의 죽음을 수사하는 의사 ‘다구치’와 ‘시라토리’라는 괴짜 탐정이 등장한다. 너무 점잖아서 이상하게 웃긴 ‘다구치’와, ‘이라부’ 저리 가라 할 만큼 괴팍한 성격의 ‘시라토리’. 이 두 콤비의 활약이 독자로 하여금 신선한 웃음을 유발한다. 작가가 현직 의사라서, 대학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생동감 넘치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모르는 의학용어들도 많이 나왔지만, 글을 읽는데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독자들의 연령과 직업을 고려해서 최선 적으로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바티스타 수술 팀에서 벌어지는 잇따른 환자 사망 사고. 그리고 용의자로 정의 되진 않았지만, 용의자 물망에 오른 6명의 의사들을 차례대로 의심의 화살을 겨누는 모습. 그들을 주시하는 두 명의 수사관. 이렇게 제 각각 별난 캐릭터들이 펼쳐가는 조화로 책을 읽으며 더욱 큰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마지막 한 장을 위해서 ‘책 한권’을 절대 할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반전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초반의 내용들을 모조리 말살 시키는 경우가 있다. 반전도 좋지만, 그럴 경우 독자들은 약간의 허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평행선이 있었다. 튼튼한 뼈대에 맞춘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범인의 폭로보다 더 큰 즐거움을 소설의 ‘초, 중반’을 읽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데뷔작이 큰 상을 받았으니, 작가도 인정받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 신인이 참 놀랍다! 그리고 대단하다! 작년에 「13계단」을 읽으면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가이도 다케루’ 역시 겁 없고 무서운 신인임에 틀림없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 「나이팅게일의 침묵」「나전 미궁」도 꼭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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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출판된다고 하는거 같더군요^^

mind0735 2007-02-1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너무 너무 기쁩니다! 물만두님. ^^
요 책 정말 재미나더군요~!
 
하느님의 이력서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오영욱 그림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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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은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져서 지구의 대기업에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력서 한 통과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지상으로 내려온 하느님은 프랑스 어느 대기업의 인사부장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인사부장은 하느님의 ‘대단한’ 이력서를 읽으면서도 어쩐지 심드렁한 반응인데……. 인사부장은 하느님의 이력서에 적힌 수많은 업적을 읽으며, 존경심 이전에 왜 그렇게 하셨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는 듯 보였다.

  하늘과 땅, 바다와 바람, 모든 동물과 인간까지 창조하신 하느님은 의외로 아주 단순한 이유로 이들을 창조했다. 사제들도 없던 그 옛날, 혼자서 모든 것을 탄생시키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지금은 후회가 더욱 많아 보인다. 인간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기 위해서 꽃과 별, 아름다운 바다를 만들었지만, 인간들은 이제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감사하기는커녕, 물질문명의 이득만을 취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 밭이 멋지게 펼쳐져 있지만, 어둠 속에 빛이 주는 황홀경도 무시한 채, 인간들은 밤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TV만을 시청하며 밤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은 튼튼한 두 다리를 주셨음에도 걷는 것을 극도로 증오하는 인간들은 자동차를 만들어 두 다리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지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만드신 풍부한 천연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들을, 망치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인간들은 무자비로 훼손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를 예리하게 하고 있다. 굉장히 짧은 분량의 우화 같은 소설, 「하느님의 이력서」는 유머러스하고 기발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냉정한 현실 비판의 감각까지 지니고 있다. 점점 삭막하고 복잡하게 변해가는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역시 위에서 지켜보기 애처롭고 화가 나는 일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에서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을 발견한 ‘장 루이 푸르니에’의 「하느님의 이력서」를 읽으며, ‘만일 신이 정말로 존재하신다면, 왜…?’, 라는 가정에 힘을 실어 넣을 수 있었다. 

  ‘짐 캐리’주연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느님의 업무가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보여 지고 있다. 세상 업무에 지친 창조주는 자신의 업무를 인간에게 일주일간 맡기게 되는데, 그 동안 세상은 엉망으로 변하고 만다. 코미디 영화에서까지 신의 존재가 코믹하게 그려지는 것을 보면, 지극히 신성시하며 찬양하던 순수한 존재로서의 절대자에 대한 존경심은 대중화와 함께 많이 수그러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하느님을 소재로 접하게 되는 매체들 속에서 우리는 무서운 존재로서의 신이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존재의 신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의 이력서는 아마도 손에 쥐기도 힘들만큼 많은 업적들이 적혀 있어서, 일일이 검토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소설,「하느님의 이력서」를 읽으며 다시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우리는 너무 과소평가하며 불필요한 것처럼 업신여기지 않았나, 하고 반성해 본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제발 사고 좀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자꾸만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무거운 문제들만 발생시키는지 모르겠다. ‘하느님의 이력서’에 적힌 내용들을 훑어보면서, 모두들 반성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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