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김상근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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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예술가들의 삶은 의례 그렇듯 광기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의 예술 혼을 발산하기 위해 빠져들 수밖에 없을 고통에 찌든 삶은 이제 신비화 될 것도 없을 하나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5,16세기 르네상스 문화의 종식을 알리고 바로크의 시대가 도래되면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미술가 카라바조가 등장한다. 바로크의 창시자, 혹은 시대를 앞서간 불우한 화가쯤으로 인식 되고 있던 카라바조의 내면세계는 훨씬 더 격정적이고도 위태로운 삶으로 범벅 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미술은 역시나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던 16세기 로마는 굶어 죽어가는 거지들과 부랑자들, 창녀들로 몹시 어지러운 정세였다. 거기다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정신까지 포함하여 카라바조에게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전적으로 후원자의 취향에 맞는, 그리고 종교적으로 결코 위배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자존심 강한 카라바조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자신만의 미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둠과 빛을 강렬하게 대비한 ‘테네브리즘’과 성聖과 속俗의 적절한 배합, 지나칠 정도로 사실주의적인 화풍 속에서 실감나게 읽혀지는 그림의 해석이다. 신성화 되고 신비감으로 절묘하게 포장해야 할 종교화에 타나난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은 오히려 그림이 줄 수 있는 리얼한 실체의 모습까지 그대로 눈 속에 담을 수가 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겸손은 방탕한 삶을 살다 짧게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닌 듯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모델들의 종적을 파헤쳐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창녀였던 여자의 익사한 시체를 모델로 그린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 과 <성 마태와 천사>은 신성모독이란 죄를 뒤집어 쓴 채 수모를 겪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남루함 비천함으로 비쳐지는 마리아와 마태를 보면서 어떻게 종교계에서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창녀와 거리의 부랑자 같은 16세기 이탈리아 서민들을 표면적인 모델로 삼으면서까지 그는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던 걸까.

성聖과 속俗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시대를 앞서갔던 한 젊은 청년은 벌써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중성의 살인미학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동일한 각도로 움직이며, 성서에 등장했던 그 많은 일화의 주인공들까지도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지극히 인간적인 단편의 모습에서 더욱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폭력과 살인과 피가 난무하는 종교화에서 불연 듯 더욱 경건해지는 마음이 느껴짐은 속俗의 짙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구원을 얻고자 했던 카라바조 본인의 자화상까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라바조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강렬한 어둠과 빛의 대비로 중심에 있는 주인공의 묘사가 더욱 돋보이며 행위가 주는 거대한 선동에 가슴을 자극된다. 그림을 읽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더불어 현재까지 학계의 다양한 해석을 주도하면서, 거장의 깊이를 후세에 가장 강하게 전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읽는 기분은 바로크가 손 안에 잡히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성 바울의 회심>과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를 보고 반해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저자 ‘김상근’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무척이나 아늑하다. 카라바조의 명작 <승리자 큐피드> 와 <다윗과 골리앗>을 감상 하던 본인의 심정과 저자의 심정이 비슷했을까.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문외한이라는 겸손으로 시작해서 세세하게 시대별로 잘 정된 한 채 이어지는 ‘카라바조 바로알기’는 매우 안정되면서도 흥미로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며, 모든 예술 역시 로마를 거쳐 가는 지극히 평범한 그 진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정하고 싶을 만큼.

역사상 가장 에로틱한 모습의 큐피드의 그림을 보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라바조의 성 정체성이 어찌 되었든, 카라바조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하고 폭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든,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보고 있는 순간 모든 마음을 뺏겨버리는 큐피드의 애교 있는 눈빛처럼 카라바조의 작품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는 작품이 없다는 점, 예술가의 타오르는 열정으로 완성 된 대작 하나 하나의 쏟아 부은 사랑을 지금까지 후세인들이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그리고 성 제롬의 메멘토 모리처럼 강렬하게 정신을 지배해 오는 한 마디, ‘살아 있는 자들이여, 죽음을 기억하라!’ 는 평생의 슬로건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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